180. 포병의 나라.
쿵!
가벼운 충격이 내 몸에 전해졌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어, 수고했어요.”
“네, 회장님.”
“그럼 내릴까? 제인?”
“웅, 오빠. 아얏!”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아이, 참? 아까 오빠가 너무 오래 세게 해서 그렇잖아?”
“…….”
9월 1일.
전용기를 타고서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려 13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한 끝이었다.
너무 멀어서 일반 여객기는 직항도 거의 없는 먼 여정인데, 그 긴 시간 동안에 내가 제인과 비행기 안에서 뭐 하나?
그저 사랑이나 해야지.
그런데 너무 열심히 했나 보다.
제인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니.
트랩에서 내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회장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폴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브와슈차크 부총리님! 뭐하러 나오셨어요?”
“하하하! 귀빈 중의 귀빈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나와야지요. 원래는 대통령께서 직접 나오겠다고 난리 치시는 것을 뜯어말리느라 혼이 났습니다.”
“아이고, 내가 뭐라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난번에 뵌 이후로 더 격이 상승했는데요? 회장님께서는 이제 어느 나라에 가셔도 국빈급입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이 폴스카 친구들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다는 소리였다.
“험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제 아내입니다. 제인, 폴란드 국방부 장관 겸 부총리이신 분이야. 인사드려.”
“제인 강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오오! 지난번에 결혼하신 그분이시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 강 회장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나저나 제인 강이라….
확실히 성을 내 성을 따라서 변경하자 이젠 누가 이름을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제인도 은근히 놀림을 많이 받았는지, 은근히 좋아했고.
확실히 제인 스미스보다는 제인 강이 낫다.
“가만? 그런데 우리 조지는?”
“아, 조지. 미스터 패튼은 우리 대통령과 함께 관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안 나오고?”
“네? 회장님께서 번거롭다고 나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던데요?”
“이놈의 자식이, 빠져 가지고….”
“…….”
아무리 내가 빈말로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도 그렇지, 폴란드 부총리가 나오는데 자기가 안 나와?
하여간 곧장 준비된 차에 탑승하여 바르샤바 시내로 향해 가기 시작한 지 얼마 후, 고색창연한 폴란드 대통령궁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우리 폴란드 대통령 공식 관저인 바르샤바 궁전입니다.”
“오! 멋지네요?”
“하하하! 멋지기는 한데, 17세기 건물이라 불편한 면도 좀 있습니다.”
“아, 그래요. 음? 저 기마상은 누구입니까?”
나는 대통령궁 중심에 자리 잡은 검을 든 기마 동상을 가리켰다.
“우리 폴란드 구국의 영웅인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원수입니다.”
“원수?”
“폴란드의 공작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이기도 합니다만, 나폴레옹 휘하에서 폴란드군을 이끌며 26인의 원수 중의 한 명이셨습니다.”
“아….”
“우리 폴란드에서는 최고 영웅입니다. 원래 저 동상은 원수 사후에 적이었던 러시아 황제도 그 인품을 존경해서 동상 건립을 허용했는데, 후손들이 못난 탓에 온갖 수모를 당하다가 결국 1944년에 나치 독일에 의하여 폭파되었지요.”
“저런….”
“바르샤바 봉기 때 일입니다. 결국, 다시 만들어 세운 동상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동상쯤 되는 것 같다.
한마디로 훌륭하신 분.
이윽고 차가 관저 정문 앞에서 멈추자,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조지 놈이 나온 것이 보였다.
“하하하! 드디어 오셨군요!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폴란드 대통령인 안제이 두다입니다.”
“안에서 기다리시지 않고요, 반갑습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알렉스 강입니다.”
“네, 정말 반갑습니다. 조지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대통령도 조지냐?
조지, 넌 대체….
두다 대통령이 제인가 인사하는 사이에 난 조지를 향하여 인상을 긁었다.
“야! 조지!”
“왔냐?”
“그래 왔다, 이 자식아! 회장이 오는데 여기서 자빠져 있어?”
“네가 나오지 말라며?”
“내가 오지 말란다고 안 나와?”
“그럼?”
“…….”
다른 서양인이 그랬으면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 자식은 한국 문화에 빠삭한 놈이다.
내가 겸양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 것을 알면서도 안 나온 것이다.
“너, 두고 보자.”
“괜히 성질이야?”
“…….”
참자, 참아.
폴란드 대통령 앞이다.
잠시 후, 우리 측에서는 조지만 배석하고, 폴란드 측에서는 두다 대통령과 브와슈차크 부총리만 배석하여 정상회담도 아니고 환담도 아닌 이상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제인은 두다 대통령의 영부인인 아가타 콘하우저 두다 여사와 함께 자리를 피해 주었다.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일찍 오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일도 있고 일도 바빠서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 그리고 회장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인의 미모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잠시 환담을 하게 되었는데, 두다 대통령은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스키 선수로 활약할 만큼 활동적이라 하는데, 확실히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양반 상당한 우파다.
내가 폴란드에 오기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파를 넘어서 거의 극우 직전에 있을 정도여서 국내 반발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유럽연합과의 마찰도 심각했다고 한다.
낙태 전면금지도 하고 언론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 양반의 뜻이라기보다는 집권당의 영수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의 의지라는 평이 주도적이었다.
하여간 그런 정책들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겨져서 유럽연합의 지원금도 홀딩 된 상태였는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침공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폴란드가 대러시아 전선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됨으로써 낙태 따위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 거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여러 가지로 이번 전쟁에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우리 폴란드도 덕분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정말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서 파도처럼 밀려올 때는 어찌나 난감하던지요. 그런데 그때 미스터 패튼이 하늘의 천사처럼 나타나지 뭡니까?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와 함께 말이지요!”
“꼭 이번 전쟁을 대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카르마는 우리가 얻은 이익의 일부라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하여 많은 재난 관련 물자를 비축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그 구호물자가 공교롭게도! 아주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긴요한데 필요한 것들만 있더군요?”
“…….”
공교롭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네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위하여 말입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건 저의 진심입니다. 세상에 회장님 같은 부자는 처음 봅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번에 우리 한국에서 대규모로 무기를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지금 무기 시장은 생산자가 갑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지경이지요. 하하하!”
“그래도 그게 아니잖습니까? 하여간 납품은 차질없이 진행될 겁니다.”
“네, 그건 저도 믿습니다. 한국인들은 근면하고 성실하니까요.”
그렇다.
우리 한국인들은 근면하고 성실하다.
특히 공돌이들을 갈아 넣으면 더….
미안하다, 창원의 공돌이들이여.
대신 수당은 왕창 챙겨주라고 했으니까, 그걸로 위안으로 삼으시길.
“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납기를 잘 지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브와슈차크 장관의 말을 듣고서 정말 놀랐습니다.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미리 무기가 준비되었다고 하더군요. 전쟁이 날 것을 미리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뭐,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냉정하게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게 제 성공의 비결이니까요.”
“호오!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 폴란드에도 회장님 같으신 분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하….”
“하하하!”
그런 일이 있기는 어렵지.
아니면 착하게 살든가.
“어쨌든 회장님께서 미리 무기를 발주해 놓으신 덕분에, 많은 나라가 한시름 놓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우리 폴란드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가 모두….”
“음? 유럽 전체가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6월에 계약했는데, 무기가 벌써 배를 타고 우리 그단스크 항을 향해서 항해 중입니다. K2전차 초도 물량 50대와 K9자주포 60대가요. 그리고 11월까지 전차와 자주포 모두 100대 이상을 납품하겠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무기가 이렇게 빠르게 배송되는 것은 처음 봅니다. 그것도 전차와 자주포 같은 기갑 장비가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급합니다.”
“으하하하! 그것도 조지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예? 무슨 말을요?”
조지 이 자식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 글쎄, 조지가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를 지휘하면서 자꾸 알 수 없는 말을 하잖습니까? 분명히 영어는 아닌데요?”
“대체 뭐라고….”
“빨리빨리!”
“크헉!”
난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고,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물었더니 한국말로 Hurry Up! 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인들은 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하면서요.”
“아, 네. 우리가 좀 그렇지요. 심지어 오늘 저녁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에 도착해 있기도 합니다. 로켓배송이라고….”
“오우! 지쟈스! 환타스틱!”
“아니, 뭐, 지쟈스까지….”
“아닙니다. 우리 폴란드에서는 잘해야 1주일 안에 받으면 성공하는 것으로 봅니다. 열흘이 넘는 것이 보통이고요. 그리고 ‘로켓배송’이라? 크으! 이름 한번 죽입니다! 역시나 포병의 나라답군요!”
“…….”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군대가 포방부라고 할 정도로 포병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155mm 자주포만 K9과 K55A1을 합쳐서 2,500대에 달한다.
그 말은 휴전선 238km에 1km당 한 대 이상을 깔아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완전히 포병에 미쳐버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회장님과 한국 덕분에 이번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합니다만?”
“회장님이시라면 우리가 왜 이리 빠른 무기 배송을 원하는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흐음, 역시나 그런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차 세력을 K2전차와 미국의 에이브람스 전차로만 유지할 생각입니다. 자주포는 우리 국산 AHS 크라프 대신에 K9자주포로 일원화할 생각이고요.”
폴란드 육군의 전차 세력은 과거 소련의 T-72 전차와 T-72를 폴란드에서 자체 개량한 PT -91 트바르디, 그리고 독일제 전차인 레오파드 2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T-72 전차와 PT -91 전차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전량 공여 중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레오파드2 전차도 전량 우크라이나에 준다는 말인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독일이 레오파드2 전차의 공여를 승인하지 않을 텐데요? 독일은 여전히 러시아 눈치를 보고 있잖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네? 내 도움이요?”
여기서 내가 왜 나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