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로또로 역대급 재벌!-182화 (182/250)

182. 약하면 잡아 먹힌다.

“어서 오세요, 젤렌스키 대통령!”

“이렇게 직접 뵙게 되는군요. 마음이 급하여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그나마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비서에게 차를 내오게 한 다음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야 상관은 없습니다만, 폴란드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폴란드의 대통령과는 전쟁 이후로 수시로 연락하는 사이인데, 회장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헬리콥터를 타고 왔습니다. 직접 뵙고 감사의 말씀도 드리고, 그리고…….”

“…….”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두다 대통령과 같은 목적이겠지.

가장 절실한 것은 우크라이나니까.

“젤렌스키 대통령께서도 두다 대통령과 같은 말씀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군요?”

“네, 부끄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전차가 필요합니다. 러시아에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면 절실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폴란드를 비롯하여 스페인, 핀란드 등의 많은 나라에서 주겠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독일! 그 독일이!”

“휴우….”

진짜, 독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나라다.

처음에 꼴랑 방탄모 5,000개를 지원했다가 ‘다음은 베개를 줄 거냐?’라는 비웃음까지 당했지만, 우크라이나가 그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정말 잘 싸우자 남들 못지않게 지원을 해주는 나라가 독일이다.

아니, 남들 못지 않게가 뭐냐?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답게 이리저리 상당히 많은 품목의 무기를 지원해 주었다.

냉전 시에는 군사 대국이었으나 냉전이 끝나자 여기저기 전부 뿌려주고 폐기하다 보니 줄 것이 정말 많지가 않아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나름 욕먹지 않으려고 애는 썼다.

그런데 그럼 뭐하냐고?

꼭 결정적인 순간에 이딴 식으로 발목을 잡는데?

이러니 돈과 무기는 남들 이상으로 지원하고 욕을 먹는 거였다.

무엇보다도 그 불분명한 태도, 그게 문제였다.

여전히 러시아 가스에 미련에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그동안 러시아산 가스에 중독에 된 거다.

하긴, 그렇게 긴 세월을 저렴한 러시아산 가스를 사용했으니, 길들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젤렌스키 대통령님.”

“네, 회장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두다 대통령의 연락을 받고 오셨지요?”

“예?”

“제가 와 있으니, 가서 어떻게든 사정해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다 대통령이 말이지요.”

“그게….”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림이 그려졌다.

내가 독일을 설득하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자, 아마도 나와의 만찬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연락했을 거다.

조금만 더 쑤시면 넘어갈 것 같은데, 2%가 부족하다고 말이지.

그러니까, 당사자인 당신이 얼른 와서 읍소하면 넘어갈 것이라고 오라고 했을 것 같았다.

두다, 그 아저씨 정말 여우네 여우.

“맞지요?”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두다 대통령을 비난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어떻게든 독일의 승인을 받아보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회장님께서 오시는 것을 미리 제가 알았다면, 당연히 뛰어서라도 찾아왔을 겁니다.”

“저도 돕고 싶습니다. 지금도 도와드리고 있고요. 하지만, 제가 뭐라고 독일 총리를 찾아가서 전차 공여를 승인하라고 합니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요?”

“두다 대통령에게 들은 것이 있습니다.”

“뭘요?”

“우리는 전쟁 중이라 폴란드만큼 외부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습니다만, 제가 두다 대통령에게 들은 것의 일부만이라도 사실이라면, 독일은 회장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데요?”

“자금 동원력으로 따진다면 일본과 독일도 회장님 근처에 못 갈 것이라고….”

“…….”

폴란드를 떠나기 전에 적당히 두다 대통령에게 경고라도 해야겠다.

왜 동네방네 떠들고 난리냐고?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꼭 독일을 설득하여 주십시오. 우리 우크라이나는 정말 전차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전차! 전차만 있으면 우리 군인들이 러시아 놈들을 내쫓을 수 있습니다.”

“하아….”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우리 우크라이나로서는 어찌 그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은인이십니다만, 조금만! 조금만 더 도와주십시오!”

젤렌스키 이 양반, 일본식으로 도게자라도 박을 기세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말이다.

코미디언이라고 온갖 비아냥을 당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나?

솔직히 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치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리 좋은 평을 받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덥수룩한 수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쟁 직전 사진의 얼굴보다 10년은 늙어 보이는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래, 이왕 도와주는 것,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최선을 다하겠지만, 약속은 못 합니다. 전차 공여를 승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일의 권한이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독일 슐츠 총리가 거부하여도 절 탓하지는 마세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회장님이 지원하신 것만으로도 미국 다음인데요?”

“쩝, 내일 여기 폴란드를 떠나서 바로 독일 슐츠 총리를 만나보지요. 만나 줄지나 의문이지만….”

“회장님을 문전박대하면, 저와 두다 대통령이 정말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저와 약속한 것은 잘 지키고 계시지요? 제가 보고 받기로는 애는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전쟁 중이라 힘에 부치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정부패 같은 것은 우리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라도 충족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그래요?”

“네, 유럽연합은 우리에게 가입 조건으로 법치, 에너지, 구조개혁, 거시금융 안정성 등 4개 분야에서 개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참에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시어서 이미 국가반부패국(NABU)을 설치하고 국장을 임명했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먹이로 전락한 근원적인 원인을 따지면 나라가 개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넓은 땅에,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곡물이 저절로 자란다는 옥토 중의 옥토인 흑토지대가 전 세계 흑토의 30%를 차지할 만큼 비옥하다.

거기에 다른 지하자원도 많고.

그런데 왜 몰도바 다음의 유럽의 최빈국 소릴 듣고 여자들은 해외로 나가서 몸을 파느냐고.

오죽하면 지폐에 성매매 방지 캠페인용으로 매춘부 그림이 들어가 있을까?

이렇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정치적인 혼란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부정부패가 가장 컸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부패 지수는 180개 국가 중에서 122위란다.

이런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그러니 국력이 약해서 러시아의 먹이가 된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잘 먹고 잘살았으면 친러 따위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나라가 개판이니까, 돈바스 지역에서 그보다 낫다고 생각한 러시아를 추종하는 무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 약한 부분을 러시아가 후벼 파고 들어간 것이고.

어떻게 보면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자초한 면도 있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에서, 그것도 러시아 같은 대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나라에서는 자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건 중국을 이웃으로 둔 우리나라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팩트다.

약하면 잡아 먹힌다.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올리가르히 놈들을 이번 기회에 숙청할 수 있어요. 전쟁이란 통수권자에게 무한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토록 강력하게 저항하고 저를 무시하던 올리가르히 놈들이 제게 찍소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 잘만 극복하면 우크라이나는 강국이 될 것입니다. 그만한 역량도 있잖습니까?”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조프 연대….”

“아조우입니다, 회장님.”

아, 우크라이나 말로는 아조프가 아니라 아조우지.

“아, 미안합니다. 하여간 아조우 연대, 그거 나치색 빼는 것도 좀 더 확실히 하시고요.”

“회장님, 아조우 연대가 초기에 네오나치 성향의 민병대로 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그 망할 푸틴 놈이 억지로 핑계를….”

“전혀? 정말 100%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

“아조우 연대가 푸가 놈에게 ‘탈나치화’ 명분을 준 것은 사실이잖아요?”

“물론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백인우월주의나 나치를 추종하는 자들은 전부 내쫓았습니다. 제가 유대인입니다. 젊었을 때는 이스라엘로 유학하러 갈 생각도 했던 사람이고요. 그런 제가 나치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그리고, 돈바스 지역에서의 학살? 인권유린?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러시아 놈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습니다. 이건 2016년도에 이루어진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 보고서나, 엠네스티 조사 결과로도 명확하게 적시되어 있습니다. 뭐? 1만 4천 명을 학살했다고요? 돈바스 전쟁 8년 동안 양측의 민간과 군인 희생자 전체가 숫자랍니다!”

“흥분하지는 마시고요.”

“아, 죄송합니다. 아조우 연대로는 하도 시달려서요.”

“아조우 연대의 악명이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일부는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 서방의 시각입니다. 그것을 부풀려서 러시아는 선전하고 많은 사람이 믿습니다.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하아….”

“그러니 더 강력하게 나치 색채를 빼란 말입니다. 이건 나중에 대통령께도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번 전쟁은 명분 전쟁입니다. 서방은 명분으로 움직이는 나라들이고요. 그 명분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강력한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명분이 희석되면 지원도 약해질 것이다.

“제가 드린 100억 달러는 잘 쓰셨어요?”

“네,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벌써 다 쓰셨어요?”

“돈을 받고서 한 달도 못 갔습니다. 전쟁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거든요.”

“허어….”

“용처는 명확합니다. 증빙 자료는 지금 챙기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군요. 알았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그럼 이만하지요.”

“그럼 독일의 승인,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젤린스키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방문까지 배웅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와 헤어진 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왠지 지쳐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젠장!

“젤렌스키 대통령!”

“네?”

“제가 우크라이나 국채를 사주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300억 달러!”

“크헉! 감사합니다!”

나는 감격해 마지않는 젤렌스키의 어깨를 감싸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무상으로 100억 달러 드릴 테니까, 적절하게 잘 사용하세요. 또, 별도로 대통령께는 10억 달러를 드릴 테니까, 부정한 유혹에 흔들리지 마시고 그걸로 부하들도 챙기세요.”

“이, 이렇게까지….”

“우리 열심히 합시다! 파이팅!”

“크흐흑!”

“어, 좀 떨어져….”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내 품에 안기는 젤렌스키 때문에 나는 질겁했다.

확 떼 버리지도 못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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