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그 작전을 진행한다.
“이번 겨울이 따뜻할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날씨는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글쎄요? 제가 장담한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회장님이 뭘 믿고서 장담을 하신다는 겁니까? 만약에 혹한이라도 덮치면 누가 책임을 지게요?”
“제가 책임지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 회장님이요? 회장님이 대체 뭘 어떻게 책임지신다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저는 책임질 능력이 있습니다.”
“아니 대체….”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슐츠 총리를 내버려 두고 다시 내 휴대폰을 들었다.
띠리릭! 띠리리릭!
- 여보세요?
“리엄, 납니다.”
- 아, 회장님. 유럽에 계신 것으로 아는데, 어쩐 일이십니까?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뭐 좀 물어보려고요.”
하하하! 또 무슨 일을 벌이시는 겁니까?
“이따가요. 지금은 독일 슐츠 총리님과 함께 있어서요.”
- 네? 아,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말입니다, 이번 겨울에 혹한이 닥쳐서 독일 에너지 수급 상황이 절박해지면, 우리가 긴급하게 지원할 수 있어요?”
- 흐음, 이거 대답을 잘해야겠는데요?
“가능한지 아닌지만 알려주세요.”
- 그렇다면야, 가능합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어떻게 가능한 거죠?”
- 우리 영향력과 라인을 총동원하면 문제없습니다. 독일과 가까운 지역에서도 LNG는 있으니까요. 간단합니다. 위약금을 물어주고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는 LNG를 가로채면 그만입니다. 다만 상당히 많은 돈을 주어야 할 겁니다. 뭐, 회장님께는 그리 큰돈이 아니겠지만요.
“그래요? 하여간 가능하다는 거지요.”
- 절대적으로 가능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나 가능한 것이지만….
“하하! 고마워요.”
- 나중에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이따 전화할게요.”
네, 회장님.
전화를 끊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슐츠 총리에게 입을 열었다.
“방금 통화한 사람은 리엄 골드먼이라고 우리 카르마의 에너지 담당 사장입니다. 총리께서도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무, 물론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리엄은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아, 악명 인사라고 해야 하나?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주물럭거리면서 원성도 많이 샀으니까.
“우리 골드먼 사장이 된다고 하는군요. 그럼 제가 책임질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네, 믿습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되었지요? 당연히 공식적인 문서로 약속드리겠습니다.”
“휴우! 이거 참! 정말 명불허전이군요. 회장님에 관한 믿기 어려운 소문을 들으면서 상당히 과장되었지 않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전차 공여를 승인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신 겁니다.”
“저도 후련하군요. 그거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국내 여론은 사실 반대가 근소하게나마 더 많아서요.”
“그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독일을 위해서라도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아까 비난은 지나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 비난의 정도를 너무 과소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전 세계에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정도의 여론도 파악하지 못하면 접어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히 제 기분도 별로입니다.”
“아니 회장님….”
슐츠 총리가 내 말에 눈에 띌 정도로 당황했는데, 솔직히 진짜로 빈정이 상했다.
막말로 유럽연합을 만들어서 가장 크게 혜택을 본 나라가 독일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맹주처럼 온갖 똥폼은 다 잡았고, 그 와중에 러시아 가스를 빨아 먹으면서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여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이런 몽니를 부려?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냐고.
그동안은 독일에 대하여 상당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자꾸 이러니까 짜증이 심하게 났다.
“적당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전쟁은 유럽의 전쟁입니다. 독일이 유럽의 맹주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졌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그게 아니라….”
“아! 하던 이야기나 마무리 지으시지요.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설마 조건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 조건이요? 무슨 조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무슨 섭섭한 말씀을? 총리님 말씀대로 만약에 독일에 혹한이 덮쳐서 우리 카르마가 위약금을 다 물어주고 바다에 떠 있는 LNG선들을 독일로 향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 것 같습니까? 그런 리스크를 저보고 공짜로 부담하라고요?”
“그건 전차 공여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까?”
“네에? 우와아! 이거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내가 무슨 우크라이나 사람인 줄 알겠네요? 저, 한국 사람입니다만?”
“네? 회장님이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에이, 여기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제가 한국 정부입니까? 그리고, 그건 크게 봤을 때 ‘일개 개인’인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요?”
“어, 어….”
어리바리하기는.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아니, 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뭐라고 합니까? 제가 아무리 독일 총리지만,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슐츠가 울상을 지으면서 대답했는데,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슐츠 총리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돈을 줘?
주면 얼마나 줄 것이고, 그 돈은 어디서 뺄 거냐고?
돈이 있다고 해서 정말로 줄 수도 없다.
독일이 무슨 독재 국가도 아닌데, 그런 결정을 했다가는 바로 총리 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가는 무기에 태클 걸지 마세요. 지원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하시고요.”
“하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전차와 자주포를 수출하는데, 독일이 파워팩 금수 조치 때문에 중단된 건이 있습니다.”
“네?”
“대표적으로 UAE에 K9자주포를 수출하여다가 중단되었습니다. 오만에 K2 전차를 수출하는 건도 말이 나오고 있고요. 그거 전부 풀어주세요.”
“끄응, 알겠습니다.”
현도 로뎀이나 화나에는 우리 카르마 홀딩스 지분이 상당히 들어가 있다.
소소하지만, 이런 거라도 풀어줘야지.
“마지막으로, 중국 문제인데요.”
“중국이요? 중국이 여기서 중국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
“중국의 무기에 탑재되는 엔진이 모두 독일 기술 기반이거나, 독일제라는 것은 아시지요?”
“예? 그건 잘….”
“아,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제 말이 맞습니다. 지금까지야 어쩔 수 없지만, 더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번에 중국이 태국에 위안급 잠수함을 수출하는데, 거기에 MTU 사 엔진이 들어갑니다. 그것에 금수 조처를 했던데, 앞으로도 계속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젠장, 독일하고는 엮인 것이 별로 없다 보니 요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소소하게 이런 것이나 요구해야지.
하긴, 말이 엄청난 리스크를 부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가 지는 리스크는 전혀 없다.
이번 유럽의 겨울은 정말 따뜻한 것이니까.
그나저나 이번에도 결국은 기승전중인가?
***
“반군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사령관님. 이미 카친, 사가인, 카인, 샨주 등이 사실상 놈들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쾅!
“대체 우리 군인들은 뭘 하는 거야! 어떻게 반군 나부랭이들에게 밀릴 수가 있냐고!”
“사령관님! 반군 나부랭이가 아닙니다. 구르카 놈들과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프가니스탄 코만도들의 무력이 정말 무섭습니다. 놈들은 전쟁의 프로들이라, 우리 군인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놈들에게서 훈련을 받는 반역자들도 날이 갈수록 전투에 능숙해지고 있습니다.”
“공군! 공군을 보내서 모조리 폭격해 버려!”
“조종사들이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뭐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놈들이 통제하는 지역의 상공에 뜰 때마다 족족 격추되고 있습니다.”
“뭐? 대체 어떻게?”
“놈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맨패즈 미사일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지가 오래입니다.”
“빌어먹을! 그 망할 인간은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이유가 뭐냐고!”
“…….”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대체 미얀마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한국놈이 왜 자신들을 적대하여 반군을 지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둘째치고서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었다.
중부와 남부의 주요 지역을 여전히 군부가 통제하고 있지만, 상황이 계속 이렇게 흘러간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작전을 진행한다.”
“사령관님!”
“이봐! 아직도 모르겠나? 이러다가 우린 다 죽는다고! 정권이 뒤집히면 반군 놈들이 우리 군부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고 보나?”
“…….”
“어차피 우릴 이렇게 만든 것은 그놈이야. 그놈만 없으면 지원은 끊어질 것이고, 그럼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작전 진행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중국은 뭐라고 하나?”
“전면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대신에 지원은 해주겠다고….”
“흥! 겁쟁이 놈들! 결국은 미국을 무서워하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놈의 근거지가 미국이고, 바이든 대통령과도 보통 친분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럼 뭘 지원하겠다는 거야?”
“정보와 자금, 그리고 장비입니다. 그것도 자신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철저히 배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한국이라도 맡으라니까는…. 휴우! 어쩔 수 없지. 하여간 최대한 지원을 받아 내도록!”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이 문제군. 거기는 어떻게 하지?”
“한국은 우리 요원들이 직접 타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치안이 워낙 잘 되어 있고 총기류가 철저히 금지된 나라라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돈을 주고 동원할 세력도 없고요.”
“젠장! 되는 일이 없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미얀마인들이 워낙 많이 있기 때문에, 신분을 노동자로 위장하여 잠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보와 장비는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 될 것이고요. 또한, 퇴로도 서쪽 해상을 통하여 중국으로 빠져나가면 됩니다. 다만….”
“다만 뭐야?”
“한국은 내버려 두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작전을 펼쳤다가는, 자칫하면 한국군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야, 한국 작전도 같이 진행한다.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 우리를 적대하면 그 누구도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일세. 가족들도 말이지.”
“알겠습니다.”
“올해 안으로는 반드시 놈을 죽인다! 알았나?”
“네, 사령관님!”
보고하던 인물이 나가자, 민 아웅 흘라잉은 이를 갈았다.
“이놈! 알렉스 강! 쓸데없이 간섭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마! 으드득!”
9월 초,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대화였다.
***
“웅? 갑자기 왜 갑자기 오한이 들지?”
나는 느닷없이 드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