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로또로 역대급 재벌!-188화 (188/250)

188. 시험이라니요?

한국에는 있을 만큼 있었고, 슬슬 짜증이 나기도 해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던 내 계획은 수정해야만 했다.

“누구요?”

“빈 살만이요.”

“걔가 왜?”

“글쎄요? 하여튼 정부 측에서도 요청하고 우리 측에도 별도로 일정을 잡아달라고 사우디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흐음, 빈 살만이라….”

빈 살만이 한국에 온다면서 뜬금없이 나를 보자고 하는데, 기름 부잣집 아들내미가 왜 날 보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빈 살만이 보자고 하면 봐야 하는 거야?

그건 좀 불쾌한데?

“살만이가 보자고 하면 내가 봐야 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사우디 대사관에서도 대사가 직접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회장님 일정에 무리가 없다면, 꼭 뵙고 싶어 한다고 말이지요.”

“부회장님 생각은 어때요?”

“제 생각에는 한번 만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하고 사업적으로 이리저리 꽤 얽혀 있잖습니까?”

“뭐, 그쪽에서 기분 좋아할 관계는 아니지요.”

테슬라 대주주 지분을 최고점에서 넘겼는데, 지금 테슬라 꼬락서니가 좀 그렇지.

반 토막이 나 있는 상태니까.

물론 본인들이 판단하여 산 것이니까,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하하하! 사우디 최고 권력자인데 그런 것으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네, 그리고 어쨌든 본진인 한국에서 만나는 것 아닙니까? 한번 보시지요? 나름의 세기의 만남이 될 것 같은데요?”

“세기의 만남은 무슨….”

“세기의 만남 맞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분들의 만남이니까요.”

“자꾸 이상한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리고, 부회장님은 은근히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흐흐흐!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뭐, 우리 기업인들의 빽이 되어 주시는 의미도 있고요.”

“그럼 한번 볼까요?”

“그렇게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미국은 살만이를 보고 가는 것으로 하지요.”

“저기, 빈 살만입니다. 살만이가 아니고요.”

“그게 그거 아니에요?”

“천만의 말씀! 빈 살만의 뜻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이름인 무함마드를 부르시는 것이 낫습니다. 괜히 직접 만날 때 실수하실 수도 있어요.”

“…….”

이상한 쪽에 해박한 남정원 부회장이다.

***

11월 17일, 공식적인 명분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빈 살만이가 방한했는데, 참으로 거창하다.

꼴랑 20시간을 머무른다는데, 숙소인 로체 호텔을 통으로 빌리고 가구들도 직접 공수해서 단장하고 아주 그냥 생난리를 쳐댔다.

방송에서도 연일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을 보도하면서 호들갑을 떨었고.

심지어 당일에는 국무총리가 직접 공항까지 영접을 나가는 것을 보고 역시 기름집 파워가 쎄긴 쎄다는 것을 절감했다.

왕세자임에도 완전히 국빈 대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을 마치 부하들처럼 일렬로 앉혀 놓고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뇨? 하는 것을 보니 기가 다 찼다.

짜식이 금수저 주제에 꼴값을 떨어요.

물론 나는 그 대열에 끼지 않았다.

내가 가오가 있지, 살만의 아랫사람처럼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거다.

당연히 사우디 측에서도 나만 따로 비공개로 저녁에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사전에 살만이와 동급의 의전을 받는 것으로 했고.

“어서 오세요!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알렉스 강입니다.”

살만이는 의외로 이슬람 전통 의상인 깐두라를 하지 않은 채 편한 옷을 입고 나를 맞이했다.

머리도 흔히 중동의 남자들이 쓰고 다니는 쿠피야도 안 쓰고 있었고.

그런데 이 자식, 탈모가 중증이네?

나와 비슷한 나이로 아는데 벌써 머리털이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아서 나를 흡족하게 해주었다.

역시 신은 공평했다.

모든 것을 주면서도 머리털은 안 주시다니.

알라 후 아크바르다.

하여간 그렇게 마주 앉아서 차를 들며 환담을 나누었다.

“그래요, 왕세자께서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하하하! 사실 진작부터 보고 싶었습니다.”

“응? 저를요?”

“네, 투자의 신이라 불리는 미스터 강입니다. 또, 우리 사우디와는 여러 비즈니스로 인연도 있었고요. 특히 테슬라를 최고점에서 매도하는 그 솜씨는 정말….”

“어험, 혹시 그 일로 기분이 상하신 겁니까? 우리는 결코 테슬라를 떠넘기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노우! 노우!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국부펀드가 큰 손실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건 전적으로 우리 측의 판단으로 매입한 거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매번 성공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매입을 주도한 당사자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어, 어? 혹시?”

“혹시라니요? 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는 겁니까? 그저 자리에서 내쫓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에요.”

“아, 예….”

솔직히 살만이가 처벌했다고 했을 때 좀 위험한 상상을 했다.

참수한다거나, 아니면 투옥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태형을 가한다거나.

내가 아랍 세계에 편견이 있었나 보다.

사실 그럴 만도 하잖아?

하여간 살만이는 나를 연신 치켜세우면서 계속하여 내게 투자 비법을 물었는데, 내가 뭐 할 말이 있나?

그냥 운이 좋았고, 냉철하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했다고 하는 수밖에.

그런데도 살만이는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

이놈 리액션이 좋은데?

유튜버 같은 것을 하면은 떼돈을 벌 것 같았다.

“으하하! 대단하십니다!”

“아니 뭐, 대단할 것까지야….”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무함마드가 웬만해서 감탄하는 법이 없는데, 미스터 강에게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합니다.”

“아, 예…. 좋지요.”

“저기, 바이든 대통령과도 친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친하다기보다는 바이든 대통령께서 절 좋게 봐주셨을 뿐입니다.”

한참 나를 올려치다가 느닷없이 바이든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거 때문에 나를 보자고 한 것인가?

“우리도 다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습니다. 미스터 강이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이자 정치적으로 동반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워워! 저는 한국인입니다. 방금 왕세자께서 하신 말씀은 제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오오! 역시 대단하시군요! 이토록 신중하시다니!”

“…….”

우리 살만이는 내가 숨만 쉬어도 대단하다고 감탄할 기세네.

얘 대체 왜 이러는 것이야?

“그래서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알고 있으시겠지만, 내가 바이든 대통령과는 사이가 좀 껄끄럽습니다.”

“잘 모릅니다.”

“역시 잘 아시는군요.”

“잘 모른다니까요?”

이 자식이 내 말을 듣는 거야 뭐야?

“하여간 그래서 말이지요, 그게 참 내게는 부담스럽습니다. 겉으로는 미국과 각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과 우리 사우디는 그래서는 안 되는 사이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양국은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말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5년 2월에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얄타회담을 마치고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다.

루스벨트는 전후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막대한 석유의 공급처로 사우디를 선택한 것이고, 반대로 사우디는 신생 국가로서 국가와 왕조를 유지할 힘을 제공해 줄 나라로 2차대전의 먼치킨 국가인 미국을 선택했다.

이로써 미국은 페트로 달러 시스템을 통하여 전 세계의 금융패권을 쥐게 되었고, 사우디는 미국의 무력을 배경으로 삼아서 왕조의 안정과 국가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었으니, 정말 완벽한 궁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궁합이 흔들리고 있지만 말이다.

“맞습니다. 양국의 국민감정은 둘째치고서라도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그렇지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미국이 싫어하는 일을 하시는 겁니까? 특히 그 언론인 사건은 좀….”

“자말 카슈끄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정말 그 사건은 쉴드를 쳐줄 수가 없었다.

반정부 언론인을 자국도 아닌 외국, 튀르키예에서 암살한 것이니까.

그것 때문에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비난했고, 서로 틀어진 거였다.

왜 그렇게 무리한 짓을 했지?

“그건 거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세자의 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였는데, 그자가 나를 밖에서 계속 흔들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만약에 그 당시에 그자를 내버려 두었으면 내 권위가 손상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빌미로 내게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겠지요. 이 정도만 말씀드리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모가지가 달렸었다는 말인데, 이 문제는 더 거론해 봤자다.

내가 거론할 필요도 없고.

살만이 이놈은 생각보다 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다.

수많은 왕자 중의 하나였고, 현 국왕의 친아들이라 한들 결국 여러 아들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아마 일곱 번째 아들이던가?

하여튼 그런 위치에서 왕세자까지 올라섰으니, 살만이가 얼마나 심한 피비린내 나는 음모와 정쟁의 길을 뚫고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겉으로 보이는 금수저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구타의 밤’이라고 알려진 리츠칼튼 호텔에서의 대숙청을 보더라도.

“그럼 쉽게 가지요.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서 회장님 중간에 다리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뭐 그 정도야 상관은 없겠지요. 바이든 대통령께는 있는 그대로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현재 백악관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회장님께서 그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것도 같이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조금 아프실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아까 그 이야기만 빼고 뭐든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이 무함마드가 회장님께 깊이 감사할 겁니다.”

“그럼 정말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백악관을, 아니 미국을 시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시험이라니요?”

“미국과 사우디는 추구하는 가치가 맞아서 동맹인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기에 동맹 아닌 동맹 관계인 나라지요.”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이해관계가 흔들리고 있어요.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사우디는 이전보다 그 이해관계가 낮아지고 있지요.”

“그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그래서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

“미국은 기본적으로 패권 국가이고, 누군가가 그에 도전하는 꼴을 절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우디가 그것을 흔들려고 한다? 바이든의 연락은 받지 않고 푸틴의 전화를 받아요? 제정신입니까? 미국 대신에 러시아와 중국에 접근하면 사우디의 위치가 올라갈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에너지 위기가 기회로 보이지요?”

“…….”

“착각하지 마시기를 진심으로 충고하겠습니다. 미국은 무서운 나라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원자라는 나조차도 백악관에 들어갈 때면 항상 긴장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세계 최고 부자라는 위치도,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어….”

“항상 명심하세요. 요즘 아슬아슬하게 미국의 인내심을 가끔 시험하시는데, 제발 선을 넘지 마시기를 빕니다.”

이건 내 진심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여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최후를 기억하라고 하려다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말았다.

“후우! 정말 아프군요.”

“우리 속담에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쓸 겁니다.”

“진심 어린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미스터 강.”

“별말씀을….”

이제 할 말 다 했으니 간다고 하고 일어났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하고 오래 있을 일은 없었으니까.

“혹시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좋은 약을 받은 것에 대하여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글쎄요?”

뭐가 있을까?

내가 더 부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온 김에 우리 한국산 무기나 왕창 사가시지요?”

“아! 무기요? 알겠습니다.”

무기나 왕창 팔아먹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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