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이자 좀 줄여줘!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기에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우리 살만이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진짜 왕창이다.
“기뻐하여 주시옵소서!”
“…….”
사극 찍으세요?
이러다가 전하~~~! 소리도 나올 것 같네.
“이종배 사장님, 거 사극 좀 적당히 보시지요.”
“으하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뜬금없이 마곡 사무실로 들이닥친 현도 로뎀 이종배 사장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물 한잔 드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숨넘어가겠습니다.”
“우리 흑표가! 우리의 귀염둥이 흑표가!”
현도 로뎀의 애물단지 흑표가 드디어 귀염둥이까지 되었다.
“하아, 그래 흑표 전차가 왜요?”
“지금 방한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통보가 왔습니다. 우리 K2 흑표 전차를 무려 800대나 구매하겠다고 합니다! 으하하하!”
“오오! 800대나?”
“네, 그렇습니다! 내일 중으로 기본 계약을 체결하고 세부 조건은 추후에 협상하겠다고 합니다.”
“이야? 그 친구 진짜 왕창이었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다음 날 바로 이렇게 왕창으로 피드백이 올지는 정말 몰랐다.
그런데 이런 것을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남정원 부회장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허어! 역시 왕정 국가는 다르군요. 사실상 국왕이나 다름없기는 합니다만, 왕세자가 이런 문제를 이렇게 쉽게 결정하다니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하하! 이게 즉흥적인 것 같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네, 사우디군은 현재 M1A2S 에이브럼스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 중인데, 2세대 전차인 M60A3 슈퍼 패튼과 AMX-30 전차를 700여 대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10여 년 전부터 독일의 레오파드 2 전차로 교체하려고 했지만, 독일이 거부했지요.”
“역시 인권 문제인가요?”
“그렇습니다. 인권 문제도 이스라엘의 반발도 의식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예멘 내전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 문제로 흐지부지가 되었습니다.”
“아, 그 틈을 우리가 노린 것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우디가 그 이후로는 전차 교체사업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한방에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 감사하라고 하면서요?”
“하하! 그 친구도 참. 아, 그런데 파워팩은 괜찮겠어요? 내가 독일 총리보고 간섭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으하하! 일이 되려니까 이렇게도 되나 봅니다.”
“네?”
“튀르키예 현지에서 그 슨트의 망할 변속기를 올해 초부터 시험했는데, 얼마 전에 무리 없이 통과했다고 합니다.”
“오오!”
흑표 전차는 심장이 아팠다.
그렇게 국산 파워팩으로 대체하려고 했건만, 슨트가 만드는 변속기가 10년 이상 말썽을 부려서 엔진은 3차부터 국산을 사용하지만 변속기는 여전히 독일의 RENK사 변속기를 조합했었다.
그런데, 그 망할 국산 변속기가 튀르키예 알타이 전차용으로 진행된 시험을 통과했다니?
“하하!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이게 폴란드 수출보다 훨씬 영양가가 있습니다. 폴란드는 200대만 직수출이지만, 이건 800대 전부 직수출이거든요.”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오랜 세월 애물단지였던 흑표 전차가 이렇게 효자가 되다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회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뭘 그렇게나…. 응?”
“네? 왜 그러십니까?”
이 위화감은 뭐지?
가만? 우리가 현도 로뎀을 언제 인수했나?
이종배 사장은 왜 나에게 달려와서 보고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 자연스러움은 또 뭐고?
“남 부회장님.”
“네, 회장님.”
“우리가 언제 현도 로뎀을 인수했던가요?”
“아뇨? 대주주이기는 하지만 그런 적은 없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아!”
그제야 남정원 부회장도 황당한 표정으로 이종배 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사장님!”
“예?”
“현도 장우성 회장에게 보고는 하고 여기로 오신 거예요?”
“어, 어….”
“…….”
“…….”
역시나 바로 내게로 달려온 거였다.
이 양반이 제정신인가?
이렇게 큰 건수를 자기네 회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내게로 먼저 달려오면 어떻게 하냐고?
그룹 오너들이 이런 것을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하는데.
“이 사장님! 장 회장에게 이르지 않을 테니까, 얼른 양재동으로 가서 보고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이종배 사장이 황급히 자리를 뜬 후, ‘왕창’에 관련된 소식은 계속 들려왔다.
역시 전부터 간을 보던 천궁 2 지대공 미사일을 UAE가 계약한 것과 동일한 AESA 레이더 사양으로 15개 포대 총 50억 달러어치를 발주하겠다고 했고, 대전차 미사일 현궁도 대량으로 발주한단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우리의 명품 자주포 K9자주포가 대미를 장식했다.
사우디는 자주포를 궤도형은 구형인 M109 계열을 가지고 있고, 차륜형은 중국산인 PLZ-45와 프랑스의 세자르를 사용했는데 M109를 전량 K9으로 교체한다고 한다.
“휘유! 이거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리 왕세자라도 이건 정말….”
“뭐, 왕정 국가나 가능한 일이지요.”
“하하….”
어쨌든 우리 살만이에게 고맙다고 전화라도 해줘야겠다.
20시간만 머무른다는 인간이 여태까지 한국에 있는 것도 궁금했고.
“하하하! 이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 하하하! 아닙니다. 원래 생각하고 있던 무기들인데, 이참에 결정한 겁니다.
“하여간 고맙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런데 일본을 가셔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 머무르고 있어도 괜찮습니까?”
- 상관없습니다. 일본 방문은 취소했으니까요.
“네? 취소요?”
뭐냐 이 인간은?
일본쯤 되는 나라 방문을 이렇게 막 멋대로 취소해도 되는 거야?
우리야 고맙기는 하지만.
- 의전 문제로 시끄럽게 하길래, 내가 그냥 취소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방문할 생각은 없어서요.
“의전 문제라니요?”
- 예전에 나루히토 왕세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당시 왕위 승계 서열 1위였던 압둘라 왕세제께서 영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요?”
-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 측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후미히토 왕세제가 영접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외교는 이런 것이니까요.
“일본에서 나오기 싫다고 한 겁니까?”
네, 어디서 관방장관 나부랭이를 내보낸다고 하잖습니까? 기분 나쁘게….
“아….”
- 적어도 당분간 내가 일본에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놈, 역시 성깔 있네.
우리 같았으면 썩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사정을 설명하면 양해했을 것이다.
관방장관 나부랭이라고 했지만, 일본의 관방장관은 내각 서열 2위로 낮은 서열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그걸 째 버리네?
이걸 호쾌하다고 해야 하나?
***
“으허허! 그 녀석이 그렇게 너에게 부탁했어?”
“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사례까지 ‘왕창’ 받았는데 입 씻을 일은 아니어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LA로 가지 않고 곧장 백악관을 방문하여 살만이의 의중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놈, 눈치는 빠르네.”
“예? 눈치가 빠르다니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하도 건방지게 굴기에 각료들이나 측근들이 한번 손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거든.”
“아….”
미국이 손을 본다는 말은 절대로 손금이나 봐주자는 말이 아닐 거였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독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여간 알았다. 앞으로 하는 것을 봐서 결정하지. 알렉스, 너는 더는 관여하지 말아라.”
“네….”
나도 관여하기 싫다.
“그건 그렇고 미얀마에서는 네 부하가 정말 잘 싸우고 있던데? 제법이야? 으하하!”
“헨리가 워낙 유능하니까요.”
“생각도 못 했는데, 내년에는 그 빌어먹을 군부 놈들을 내쫓을 수 있겠어. 그럼 중국이 많이 실망할 거다.”
“흐흐흐! 아마도 그렇겠지요?”
“당연하지! 미얀마 군부가 쫓겨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중국은 대부분의 남쪽 접경국이 반중이 되는 거야. 그 라오스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놈들이야 신경 쓸 것도 없고.”
“뭐, 중국 애들이 자초한 거지요.”
“그렇지.”
동쪽으로는 우리와 일본이 있고, 조금 내려와서는 대만이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반중 국가인 베트남에다가, 영해 문제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와도 투덕거리고 있었다.
인도야 말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귀중한 요충지인 미얀마까지 철저한 반중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아마도 골치 꽤나 아플 것이다.
“알렉스야.”
“네, 조.”
“미얀마 군부가 네게 이를 갈고 있는 것은 알지?”
“흐흐흐! 알지요.”
“조심해라. 궁지에 몰린 쥐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법이야. 게다가 중국 놈들도 너를 눈엣가시로 보는 상황이고.”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요. 아시잖아요? 내 경호원들 실력을?”
내 경호원들은 대부분 그린베레와 델타 출신들이다.
첨단 장비도 도배를 했고.
“원래 경호는 아무리 철저해도 구멍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도 조심해. 나도 우리 정보부서에 신신당부하고 있으니까, 조짐이 있으면 알려주마.”
“고마워요, 조.”
“고맙기는? 우리 사이에.”
“하하하!”
***
오랜만에 LA집으로 돌아오니 역시 집만 한 곳이 없었다.
이틀을 쉬고 난 후에 회사로 출근했는데, 그리 반갑지 않은 놈이 나를 찾아왔다.
머스크 놈이다.
“알렉스!”
“넌 왜 왔어?”
“내가 오면 안 되는 거냐?”
“하아…. 아냐, 반갑다! 반가워!”
반가울 리가 있나?
요즘 트위터를 아주 작살 내고 있던데.
그렇게 시끄럽게 해서, 머스크 놈은 10월에 결국 완전히 트위터를 인수했는데 아주 그냥 회사를 초토화하고 있었다.
기존의 임원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직원의 75%를 해고하겠다고 하니,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광고주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보안 문제도 생겼으며, 부채도 3배나 늘었다.
한마디로 망조가 든 거다.
게다가 오너이자 회장이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는데 테슬라라고 무사할까?
주가는 연일 떨어져서 이젠 반 토막도 안 되었다.
미친놈이다.
그런데 왜 온 거지?
“알렉스, 나 부탁이 있거든?”
“뭔데?”
“이자 좀 줄여줘! 이자 때문에 못 살겠다고!”
“뭐 인마?”
“젠장! 기준금리가 벌써 4%다. 네게 빌린 돈의 금리는 당연히 더 올랐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못 살겠다고!”
“…….”
미국에서는 보통 고정금리가 일반적인데, 내가 이놈에게 트위터 인수대금 400억 달러를 빌려줄 때는 일부러 변동금리로 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금리가 폭등하자 감당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돈이 400억 달러인데 주식을 팔지 않는 이상 버틸 재간이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