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래? 언제지?”
“미국 시각으로 12월 24일입니다.”
“양놈들 크리스마스이브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미국이 가장 들떠 있을 때라 그렇게 잡았다고 합니다.”
“그건 잘했군. 가장 행복한 날이 악몽이 될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한국에 있는 놈의 가족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
“경보병 사단(LID) 출신들로만 따로 선발하여 작전팀을 구성하고 지난 6개월 동안 훈련을 시켰습니다.”
“경보병 사단 애들이라면 믿을 만하지.”
“네, 그중에서도 베테랑만 선발했고, 이미 30명을 캄보디아 국적으로 세탁하여 외국인 계절 노동자로 위장해서 지난달에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계절 노동자? 그게 뭐지?”
“한국 놈들은 배가 불러서 농사나 어업에 종사하려는 자들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서 단기간으로 인력을 수입하여 노동을 시키는 제도입니다.”
“정말 배가 불렀군. 그럼 무기는?”
“중국에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퇴로도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바다로 마련해 주기로 했습니다만, 솔직히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될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서요.”
“빌어먹을 중국 놈들! 자금도 자신들이 전부 지원하기로 해놓고는….”
“5억 달러도 간신히 받아 냈습니다.”
“어쩔 수 없지. 급한 것은 우리니까. 하여간 그럼 잡히거나 하더라도 캄보디아 국적인 것으로 알겠군?”
“결국에는 어떻게든지 미얀마인들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증명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우리 애들이 털어놓을 염려는 없나?”
“모두 가족들이 많은 아이들만 선발했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못할 겁니다.”
“잘했군.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그 빌어먹을 놈만 없어지면 반역자 놈들을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네. 그날이 몹시 기다려지는군.”
민 아웅 흘라잉은 독사 같은 눈을 빛내면서 이를 갈았다.
***
“제인.”
“웅, 오빠.”
“이거 내 선물.”
“헤헤헤! 이번엔 뭐야?”
“풀어 봐.”
“어디 볼까?”
제인이 내가 준 선물 박스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어머나! 너무 이쁘다, 오빠!”
내가 제인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200만 달러가 넘게 주고 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다.
남자인 내가 봐도 홀릴 것 같은데, 여자인 제인이 보기에는 정말 황홀한 모양이었다.
“이리와. 내가 채워줄게.”
“웅, 오빠.”
제인의 새하얀 목에 목걸이를 채워주었다.
천사의 모습을 한 제인이 목걸이를 하자,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오빠, 이뻐요?”
“하아….”
“웬 한숨?”
“대체 사람 같아야 말이지? 그냥 천사잖아?”
“피이! 헤헤헤!”
“제인, 행복해?”
“웅! 너무너무 행복해요.”
나는 손에 든 와인잔을 내려놓고서 제인을 안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제인, 사랑해.”
“오빠, 사랑해요.”
쪼오옥!
길고 긴 키스를 했다.
정말 너무 행복하여 영원히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쿵! 타다당! 타당!
하지만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에이, 저놈들이 정말….”
“한국에서 보낼 것을 잘못했나 봐.”
“그러게 말이야.”
저녁부터 갑자기 웬 갱단이 LA 전역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성스럽고 축복받은 날에 말이다.
경호팀장 해리의 말로는 무슨 엘살바도르계 갱단이라고 하는데, 이놈들의 난동으로 LA 전역이 초비상 사태고 모든 경찰력이 그놈들을 제압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단다.
아무래도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LA 경찰 당국에 기부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대체 세계 최강대국의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인 LA 치안이 이 모양이냐고?
어쨌든 간에 우리 집은 안전하다.
해리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는 했지만, 내가 미얀마 일에 개입하면서 경호를 강화하여 무려 100여 명에 이르는 이지스 요원들이 나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이럴 때는 정말 2만 평에 이르는 대저택을 사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옹성으로 만들었고, 경호원들도 여유 있게 상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잘까?”
“웅, 오빠.”
제인이 배시시 웃으면서 내게 안겨 왔다.
오늘은 선물한 목걸이만 걸치게 하고….
콰아앙!
“어맛!”
“억!”
가까운 곳에서 터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엄청난 폭발음과 진동에 나는 제인을 황급히 끌어안았다.
이거, 너무 가깝다.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총성이 들리고, 계속해서 무언인가가 폭발했다.
타타타당! 타타당!
쾅! 쿠앙!
빌어먹을!
확실히 우리 집이다.
“해리! 해리!”
벌컥!
경호팀장 해리를 찾는 내 외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해리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달려 들어왔다.
해리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해리가 내 경호를 맡은 이후로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무슨 일이야, 해리?”
“회장님! 습격입니다! 피하셔야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해리? 우리 경호원들은? 그리고 우리 집은 철옹성이라면서?”
“놈들이 트럭에 폭탄을 실고 정문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폭탄을 탑재한 사제 드론이 폭격하여 경호원들 상당수가 이미 당했어요! 적들은 RPG에 온갖 중화기로 무장했고요! 어서! 일단 지하로 대피하셔야 합니다!”
“세상에! 미쳤군! LA 한복판에서? 지원은?”
“경찰은 살바트루차 놈들 때문에 못 올 것입니다! 이지스 본부에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전부 난동으로 막혀 있어서 시간이 걸립니다! 지하로 대피하여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셔야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콰왕! 쾅!
“으아아악!”
폭음과 비명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해리는 나와 제인에게 서둘러 방탄복을 입히고 지하 벙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서 지하로 이동할 때였다.
퉁! 퉁! 퉁!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에 나는 제인을 껴안고 엎드렸다.
쾅! 쾅! 쾅!
이동하던 거실문이 박살이 났다.
“빌어먹을! 유탄발사기!”
역시 유탄발사기 소리였다.
군대에서 자주 듣던.
“회장님! 엎드리세요! 놈들이 곧 들어올 겁니다!”
“총 줘! 내게도 총을 줘!”
“카일! 회장님께 총 드려!”
나는 HK416 소총을 쥐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사격 연습을 했으니 한몫은 할 수 있을 거였다.
“회장님! 사모님만 보호하세요!”
“알았어, 해리!”
그때였다.
툭! 툭! 데구르르!
가구로 엄폐하고 있던 우리 앞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수류탄!”
쾅! 쾅! 쾅!
“아아악!”
제인이 비명을 질렀다.
타타타타타! 타타타타!
이어서 쏟아지는 기관총탄들….
“크억!”
“악!”
해리를 비롯한 내 경호원들이 열심히 분전했지만 역부족이다.
한 명씩 쓰러져가는 경호원들.
모두 내 미국 생활 초기부터 나를 지키던 형제들이다.
닉, 카일, 메이슨….
나를 지키려다가 그렇게 한 명씩 쓰러져 갔다.
마지막으로 해리마저.
“회, 회장님….”
“해리!”
해리마저 쓰러졌다.
타탕! 타타탕!
“크억!”
내가 놈들을 몇 명인가 쓰러뜨렸지만 놈들은 너무 많았다.
“크흑!”
“오빠!”
타탕! 탕! 탕!
방탄복이 보호하지 못하는 내 다리에 먼저 총을 맞았고, 이어서 왼팔, 그리고 오른팔….
“오빠! 으허엉!”
“제. 제인…. 도망쳐….”
“오빠….”
총성이 멈추고 놈들이 들어왔다.
저벅! 저벅!
쓰러진 내 눈앞에 군홧발이 보였다.
그리고 내 머리채를 잡아드는 손길에 고개를 드니, 중년의 백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알렉스 강.”
“누, 누구냐?”
“쯧쯧! 세계 최고 부자라는 양반이 부귀영화나 누리면서 살지, 뭐 하러 쓸데없는 일에 개입하여 이 꼴이 되셨소?”
“미얀마냐? 중국?”
“뭐, 가시는 길에 알고 가는 것도 좋겠지. 둘 다라고 해둡시다.”
“빌어먹을!”
“아, 의뢰인이 꼭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 한국에서도 귀하의 가족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요.”
“이, 이…. 으아아아아!”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소미까지 당했다는 말에 나는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 봐야 했다.
나는 몰라도 제인이라도 살려야 하니까.
“내 아내라도 살려줘!”
“쯧! 그게 될 것 같소?”
“돈을 주마!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정말 지금 제인을 살려낼 수 있다면 1,000억 달러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요. 100억 달러? 1,000억 달러? 그 돈을 어떻게 주시게? 현금으로? 이체한다고 칩시다. 바로 추적당할 텐데 내가 미쳤소?”
“제, 제발….”
“부인이 엄청난 미인이라 그냥 죽이기 아깝지만, 그래도 고이 보내드리겠소. 내 성의라고 생각하시오.”
“아, 안 돼!”
“오빠!”
타앙!
“끄아아아악! 죽여버릴 테다! 죽일 거야!”
제인이 죽었다.
사랑하는 제인이 죽었다.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 잘 가시오, 부자 양반.”
“지옥에 가서라도 네놈을 죽일 거다!”
“그러시든가. 그럼 잘 가시오.”
차가운 총구가 내 이마에 닿았다.
이렇게나 허망하게 모든 것이 끝나다니.
타앙!
세상이 어두워졌다.
“끄아아악! 제인! 제인!”
“오빠! 오빠!”
내가 비명을 지르는데, 누군가가 나를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오빠! 일어나요! 대체 또 무슨 악몽을….”
“제인! 제인!”
눈을 뜨니 제인이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제인을 외치며 끌어안았다.
“제인! 제인! 사랑하는 제인!”
“오빠, 나 여기 있어. 아유! 이 땀 좀 봐?”
“허억! 허억! 허억!”
제인의 품에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세상에나, 꿈이었구나.
꿈이었어.
다행이다, 너무나 다행이다.
“오빠, 또 나쁜 꿈꿨어?”
“하아, 제인. 잠시만…. 잠시만 더 안고 있을게.”
“웅, 오빠. 얼마든지….”
한참 후에 완전히 안정되자, 나는 제인의 품에서 벗어나 거실로 홀로 나가서 위스키를 따랐다.
“크으….”
단숨에 독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연거푸 마시자 정신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오늘은 12월 20일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염주가 꿈으로 내 앞날을 보여준 것이었다.
나날이 성능이 좋아지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아주 생생하게 말이다.
“12월 24일이란 말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놈들은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습격한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심지어 나를 죽이기 위하여 갱단까지 동원하고 LA 전체를 마비시켜 버린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되냐고?
최강대국 미국 LA에서?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드론을 이용한 습격에 우리 경호팀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쳐들어올지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염주가 미리 알려준 이상, 당할 일은 없었다.
“개새끼들! 얼마든지 와라! 모조리 죽여주마!”
나는 이번에 습격하는 놈들은 물론이고, 연루된 놈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릴 것을 다짐했다.
나와 제인을,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소미를 죽이려는 놈들이니까.
미얀마든 중국이든 지옥까지 쫓아가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특히, 나와 제인을 직접 죽인 그놈은 아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