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가끔은 독재자가 이래서 좋다.
USGS 애플게이트 국장은 약속대로 산하기관인 콜로라도 국립지진정보센터의 보고를 기반으로 하여, 조만간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대규모 지진 발생이 우려된다고 발표했다.
지진 예상 지역은 아라비아판ㆍ아나톨리아판ㆍ아프리카판 등 세 개의 지각판이 충돌하는 곳으로 원래부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이런 경고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튀르키예 반응은 역시나였다.
지금 튀르키예…. 에이, 이거 자꾸 짜증 나네.
터키에서 쓸데없이 튀르키예로 영문 국호를 바꿔 가지고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있어.
작년 초에 에르도안이 뜬금없이 영문 국호를 터키(Turkey)에서 튀르키예(Turkiye)로 변경했는데, 사실 바뀐 국호는 진짜 형제국인 아제르바이잔 정도 이외에는 변경하여 부르는 나라가 없었다.
우리나라야 원래 해당 국가가 불러달란 대로 불러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서 바로 변경했지만, 거의 모든 서방 국가들은 에르도안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에 불만이 많아서 여전히 터키라고 부른다.
귀찮은데 그냥 터키로 하자.
튀르키예는 터키 사람들 앞에서나 불러주고.
하여간 지금 터키의 에르도안은 이슬람 경제니 뭐니 하면서 경제를 작살 내놓고서는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하여 열심히 대국 놀이를 하는 중이다.
경제가 개판이니 대외적인 치적이라도 쌓아서 이번 5월 조기 대선에서 지지도를 높여 보자는 개수작이다.
그런 와중에 바이든이 집권한 이후로 데면데면한 미국에서 대지진 경고를 하자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속셈이 있다고 우기면서.
아, 진짜 등신.
정말 에르도안 노인네가 하는 짓을 보면 지진이고 형제의 나라고 간에 다 때려치우고 죽든 살든 내버려 두고 싶었는데, 그래도 엄한 국민이 희생되니 내가 참자.
결국, 1월 25일에 터키 측에 통보하고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에르도안하고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하여.
내가 간다고 하니까 터키는 난리가 났단다.
경제가 박살이 난 와중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가진 내가 투자 건으로 방문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처음에는 무슨 의장대 사열까지 준비한다고 하여 뜯어 말리느라고 혼이 났다.
“안녕하십니까? 튀르키예 외교부 장관인 메블륫 차부쉬오울루입니다. 알렉스 강 회장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메부…. 메블루….”
“…….”
거 이름 한번 더럽게 어렵네.
앙카라 에센보아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영접을 나온 외교부 장관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여 한참을 고생하다가 결국은 그냥 장관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저희가 따로 영빈관을 준비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번잡한 것을 싫어해서요.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그냥 예약한 숙소에서 지냈겠습니다.”
“이거 섭섭합니다만, 그러시다면 호텔 측에는 저희가 각별하게 모시라고 협조 요청을 하겠습니다. 예약하신 숙소가 JW 매리어트지요?”
“네, 대통령궁과 가까운 곳으로 예약하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호텔에 도착하자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외교부 장관 메 뭐시기가 이동하는 중에 지시한 것 같았는데, 이 정도 환대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터키 수도에서 보는 태극기는 내게 묘한 감동을 주었다.
가만 보면 나도 약간 국뽕기가 있단 말이지.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이 되어서 터키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대통령궁은 불과 5km도 되지 않았는데, 운동 삼아서 걸어가도 될 것 같았다.
제인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오빠, 나 그 사람 싫어.”
“…….”
어차피 나도 굳이 데려갈 생각도 없어서 그냥 형식적으로 물었는데 저리 대답하니 할 말이 없네.
하여간 도착한 대통령궁.
그야말로 입이 떠억 벌어졌다.
이 미친 인간은 국민 세금으로 대체 뭘 지은 거야?
“우워어어! 이게 대통령궁이에요?”
“그게…. 하하하!”
메 뭐시기 외교부 장관이 옆에서 겸연쩍게 웃었다.
이 양반은 그래도 해외를 많이 돌아다니니 아는 것이다.
이 호화판 대통령궁에 대하여 해외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국제 규격 축구장의 무려 40배 크기고, 베르사유 궁전보다도 4배가 더 크단다.
대통령궁을 크고 아름답게 지으면 국격이 올라가냐?
하여간 독재자들이란, 이러니까 나라 꼴이 개판이지.
이 돈으로 지진 대책을 세웠어 봐라.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허허! 어서 오세요, 미스터 강. 튀르키예 방문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알렉스 강입니다.”
“허어! 생각보다 훨씬 젊으시군요?”
“동양 사람들이 원래 서양인보다 좀 젊게 보입니다.”
이건 진짜다.
내가 지금도 미국에서 술을 마시려면 신분증을 보자는 소릴 들으니까.
나를 처음 보는 미국인들은 심지어 20대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건 그렇지요.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전에 식사를 같이하자는 것도 내가 극구 사양했다.
아무래도 체할 것 같아서인데, 그래서인지 종류를 알 수 없는 다과와 제법 향이 좋은 차가 나왔다.
처음에 서먹서먹할 법도 한데, 터키와 우리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한국전쟁과 2002년 월드컵이 있기 때문이다.
“허허허! 우리 튀르키예와 대한민국은 형제 국가입니다. 아시지요? 우리 튀르키예가 70여 년 전에….”
“으허허! 2002년! 한국은 정말 대단했었지요! 물론 우리 튀르키예 팀은 더 대단했고 말입니다!”
“…….”
잘났어요, 3.4위전에 터키가 이겨서.
“그래도 말입니다, 당시 저뿐만 아니라 우리 튀르키예 국민은 정말 감동을 했습니다. 한국 국민이 우리 튀르키예 팀을 그렇게나 환대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건 거의 홈구장이나 다름없었지 뭡니까? 진정한 형제애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결코 과거를 잊지 않습니다. 그것이 은혜든 원한이든 말입니다.”
“허어! 정말 대단한 국민입니다. 그 폐허 속에서 그렇게나 빨리 경제 대국이 된 이유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래요, 처음에 미스터 강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나 한 번 와주십사하고 초청을 했는데 말입니다.”
“이거 송구합니다. 온다 온다고 하다가 바빠서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럼 이번에 오신 것은?”
“사업하는 사람이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투자지요.”
“오오오! 투자! 으하하하! 그래 어느 정도나?”
“뭐, 소소하게….”
“소소하게?”
“한 500억 달러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어억! 500억 달러!”
에르도안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이 양반 나이도 있는데 심장마비라도 온 거 아니야?
하긴, 지금 터키 경제 상황에서 500억 달러가 투입되면 가뭄에 장대비가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만큼 외환 사정이 엉망이니까.
오다 보니까, 2013년에 1달러당 2리라 하던 것이 지금은 18리라가 넘는다고 한다.
대체 터키 돈값이 얼마나 떨어진 거야?
“저, 정말입니까? 500억 달러를 투자하신다는 것이?”
“저는 비즈니스로 허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튀르키예 경제는 너무 저평가되었어요.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하하하! 그렇지요! 우리 튀르키예만큼 투자 매력이 있는 나라는 흔하지 않지요!”
내 말은 사실이다.
원래 투자는 이렇게 망가졌을 때 하는 것이다.
막말로 우리나라가 IMF 시절에 투자한 외국 놈들이 얼마나 많이 벌었나?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튀르키예로 오기 전에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니요?”
“귀국의 동남부 지역에 대지진이 올 것이라는….”
“아니 어떤 망할 놈들이 그딴 소릴 한답니까!”
“어떤 망할 놈이 아니라 미국의 국립지진정보센터입니다. 지진에 관해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그거 다 헛소리입니다. 바이든 그 망할 영감이 우리 튀르키예를 음해하려는 수작이란 말입니다.”
“험험….”
“어디 불편하십니까?”
“저기,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제법 친한 사이입니다.”
“아! 미, 미안합니다.”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아마도 너무 흥분해서 광분한 모양이다.
이런 것은 넘어가 주자.
“하여간 그렇습니다. 저도 무작정 지진정보센터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소릴 들은 후 여러 다른 루트로 많이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들 같은 말을 하더군요.”
“뭐라고요?”
“콜로라도 지진정보센터만큼 조만간이라고 시기를 특정해서 지진을 경고할 자신은 없지만, 그 지역은 워낙 대규모 지진 위험에 노출된 곳이라 당장 지진이 발생하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아니 뭐 그런 놈들이….”
“그렇게 화를 내실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런 소릴 듣고서 투자를 강행하는 사업가가 있겠습니까? 처지를 바꿔서 미스터 프레지던트라시면 투자를 강행하시겠어요?”
“…….”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제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 시점에서 깔끔하게 손을 털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네, 그렇습니다. 좀 전에 우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 한국과 튀르키예는 형제의 나라가 아니겠어요? 형제는 조금 번거롭고 어렵더라도 결코 형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게 형제가 아닐까요?”
“예? 예?”
에르도안의 얼굴이 황당함이 떠올랐다.
아마 속으로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을 거였다.
형제의 나라.
그거 그냥 립서비스다.
뭐 친해져 보자는 슬로건이지.
그리고 그건 아까 떠들었던 에르도안도 알고 나도 알고 에브리바디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슬로건에 현혹되기에는 우리 둘 다 세상을 너무 아는 것이지.
그런데, 느닷없이 형제 타령을 하니 당황할 수밖에.
속으로 500억 달러는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오오오! 형제여! 진정한 형제입니다!”
에르도안은 환희에 넘쳐서 내버려 두면 나를 껴안을 기세였는데, 그건 절대 사양이지.
“일단 좀 떨어지시고, 무조건 투자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응? 그러면은요?”
“콜로라도 국립지진정보센터의 경고처럼 동남부 지역에 대진이 나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어 봐요. 수만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제가 투자하고 싶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조건은 별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미스터 프레지던트와 튀르키예에는 더 좋지요.”
“네?”
“제 조건은 이렇습니다. 지진정보센터의 말로는 대지진이 2월 초에 날 것이라더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 투자는 그 시기를 지켜보고 하겠습니다.”
“아니 언제까지요?”
“이건 제가 지금까지 거대한 부를 이룩한 감입니다만, 딱 열흘만 지켜보고 싶습니다.”
“열흘이요?”
“네, 그렇습니다. 2월 초라고 했으니, 우리 2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만 지켜보지요. 그 기간 동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으면 무조건 500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오오오!”
“그런데 만약에 지진이 나서 대규모 인명이 희생된다면? 저는 실망하고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런 법이….”
“이건 모두 튀르키예를 위함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야 그렇지만요.”
“거기에 정확하게 제 조건이 있습니다. 지진이 나서 희생자가 5만을 넘으면? 저는 단 1달러도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경고가 되었는데도 그만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은 국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니까요.”
“허어….”
“대신에 대규모 지진이 났는데도 희생자가 1만을 넘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투자금액이 늘어날 겁니다.”
“예?”
“5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말이지요.”
“오오!”
“그리고 5,000명 이하라면 1,000억 달러!”
“그 조건!”
에르도안의 눈에 달러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반드시 지키시는 겁니다?”
“콜!”
가끔은 독재자가 이래서 좋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조건이지만, 투자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였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강제적인 주민 소개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