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경영상의 필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길로 머스크에게 쳐들어갔다.
머스크와 나는 이제 엄격히 따지면 동급이 아니다.
나는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부자지만, 머스크는 한때 3,000억 달러를 돌파했던 재산도 이제는 1,300억 달러 정도로 줄어든 데다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벌인 막장 행보로 위상이 많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르면 뛰어오겠지만, 일단 내가 성질이 나서 그걸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일론 이놈의 자식 어디 있어요!”
“회, 회장님….”
머스크의 비서가 나를 알아보고 황당해했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나갔다.
“어딨냐고요?”
“사무실에 있지만 지금은….”
“그래? 아, 됐어요!”
“아니 저기 지금은….”
비서가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벌컥!
“야! 일론!”
“엉? 아, 알렉스?”
“어머나!”
일론의 사무실에는 일론과 웬 아줌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 중이었다.
누구지?
어디서 본 얼굴인데?
“뭐야? 너?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시끄럽고, 너 우크라이나 스타링크 서비스 어떻게 된 거야?”
“어? 그, 그거?”
“방금 젤롄스키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네가 서비스를 제한한다고 했다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야, 야. 일단 흥분하지 말고, 앉아서….”
“네가 감히 내 일을 방해해? 내가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그윈, 일단 나가 있어요.”
“아, 알았어요.”
“그윈? 아! 그윈 쇼트웰? 잠깐만! 이제 생각났네. 당신이 스페이스X CEO지?”
“예?”
“당신이 그랬나?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한하겠다고? 누구 맘대로!”
“아니 저기….”
금발의 아줌마는 내가 펄펄 날뛰자 사색이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 아는 거다.
“야! 알렉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 이 자식아! 내가 널 친구랍시고 그렇게나 도와줬는데, 내 뒤통수를 쳐? 너 미친 거냐?”
“내가 지시한 거니까, 내게 말해! 그윈 나가 봐!”
“…….”
후다닥!
그윈 쇼트웰이 도망치듯이 나가버리자 이젠 머스크 놈과 나, 둘만 남았다.
그러자 머스크는 위스키 잔 두 개를 꺼내더니 가득 따라서 내게 주었다.
“일단 진정하자. 이거 마시고 이야기하자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해야 할 거다.”
일단 마시자.
벌컥! 벌컥!
“크으!”
이 술 이거 뭐야?
뭐가 이리 독하지?
“야, 알렉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이렇게 남의 사무실에 막 쳐들어오는 법이 어딨어?”
“너였으면 문짝 부수고 들어왔을 텐데?”
“…….”
나보다 성질이 더 지랄 맞은 놈이 머스크다.
저놈이라면 아마 총이라도 들고 오고도 남았을 것이고, 그건 본인도 부인하지 못할 터였다.
“하아, 그래 경영상 필요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라고 내가 지시했다. 뭐 어쩌라고? 아무리 너라도 경영상 필요한 일에 대하여 이렇게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뭐? 경영상 필요해? 뭐가 경영상 필요한데?”
“우리 스타링크는 어디까지나 민간용이야. 그런데 우크라이나처럼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안 되잖아? 앞으로 다른 나라가 그걸 보고 따라 하려고 할 텐데, 누군 되고 누군 안 되고 하면 되겠냐?”
“놀고 있네. 애초에 침공당하여 결딴이 난 나라에 스타링크를 지원하면서, 그걸 순수하게 민간용으로만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지금 나랑 장난치냐?”
“아니 그게 말이지….”
“그리고 뭐? 군사적인 이용을 제한한다고? 네가 지금 미국 국방부와 협업하는 것은 그럼 뭐냐? 국방부가 스타링크 위성을 GPS 위성 보조 위성으로 지정한 것은? 또, 미국 공군에서 F-35 전투기 통신 지원용으로 테스트 중인 것은?”
“…….”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너?”
“하, 핫바지?”
“시끄럽고,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올래? 경영상 필요하셨어요? 그럼 나도 경영상 필요한데, 테슬라 주식 가지고 제대로 장난쳐볼까? 내가 어디까지 망가뜨리는지 한번 볼래? 아니, 스타링크 말고 아마존이 하는 프로젝트 카이퍼나 원웹과 에어버스에서 진행하는 원웹 프로젝트에 한 5,000억 달러 정도 투자해볼까?”
“허억!”
“내가 장담하는데 스타링크? 그거 바로 따라잡을 텐데? 너 나보다 돈 많아? 나랑 돈질로 경쟁이라고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
정말 맘먹고 해봐?
대체 머스크 이 미친놈을 믿을 수가 있나?
카이퍼 프로젝트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스타링크의 독주를 막으려고 오래전부터 비슷한 시도를 했다.
애초 사용하려던 러시아 로켓 엔진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제재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딜레이가 되었지만,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여 조만간 첫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내가 돈을 댄다고 해봐?
막말로 5,000억 달러도 필요 없다.
1,000억 달러만 투자해도 몇 년 안에 스타링크를 추월하거나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아는 놈도 머스크다.
“휴우….”
“말해 봐 임마! 왜 그랬어?”
“아니 그냥, 우리 스타링크가 너무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싫었을 뿐이야. 결국에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질 테니까.”
“정말 그거뿐이야?”
“응, 난 솔직히 네 일을 방해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내가 그렇게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데도?”
“그거야 뭐, 네 일시적인 충동으로 생각했거든….”
이 망할 놈이 내가 자기 같은 놈인 줄 아나?
즉흥적으로 이랬다저랬다 하게?
“내가 너냐? 내가 하는 일이 무슨 부자의 일시적인 유흥인 줄 알아?”
“아니 나도 가끔 그러니까 너도 그런 줄 알았지.”
“시끄럽고, 당장 제한 풀어!”
“알았다. 그리고 원래 그렇게 제한하지도 않았어. 젤롄스키 그 인간은 그런 걸 다 이르고 난리냐?”
“하아….”
대체 사고방식이 애초부터 이상하게 형성된 놈이다.
원래 혁신적인 사고방식이 이상한 것인가?
“나 갈 테니까, 다시는 이러지 마. 나랑 친구 하기 싫고 적이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래도 되지만 말이다. 이거 마지막이다.”
“알았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는 머스크 놈을 보니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머스크의 사무실에서 나가서,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스페이스X CEO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안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오니까 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모양이다.
에이, 괜히 애꿎은 사람에게 화는 내 가지고.
나이도 나보다 한참 많은 사람이구먼.
“저기요.”
“네? 저, 저요?”
“내가 누군지는 알지요?”
“네, 알고 있습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회장님….”
“스페이스 X 대표 되시지요? 이름이?”
“그윈, 그윈 쇼트웰입니다. 회장님.”
“휴우! 그래로 미세스 쇼트웰. 아, 미세스 맞지요?”
“네, 그냥 이름을 부르셔도 됩니다.”
“그건 아직 아니고. 하여간 아까는 미안했어요. 제가 좀 많이 흥분해서 무례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일론 저 망할 놈이 지시한 것이 뻔한데, 엉뚱한 분에게 화를 냈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중에 같이 식사라도 하지요.”
“네? 식사요?”
“…….”
이게 문제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 든 버릇을 못 고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이게 그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언제 밥이나 먹지?’, ‘그래 시간 나면 소주나 한잔하자.’ 같은 말을 무심코 하게 되는데, 이게 미국에서는 종종 오해를 산다는 거였다.
하여간 내 입 밖으로 나갔으니 수습해야 한다.
“네, 점심이나 하시지요. 이거 내 명함입니다. 전화하면 비서가 받을 테니 시간 정하세요. 명색이 스페이스 X 대주주인데 서로 모르고 사는 것도 좀 웃기네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이제야 그윈 쇼트웰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이 아줌마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니까.
이 아줌마도 나름 거물이지만, 나 같은 초특급 거물과 안면을 익힌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인 것이다.
“그럼….”
“네, 회장님.”
그윈 아줌마와 인사라고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머스크가 마음에 걸렸다.
진짜 미운 놈이지만, 어쨌든 친구인 것이다.
한바탕 퍼붓고 일론 놈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구겨버리고 가려니 영 불편했다.
그래도 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안 볼 놈도 아니고.
“하아, 제기랄….”
나는 걸음을 돌려서 다시 머스크의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다시 머스크의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자, 비서가 또 무슨 난동을 부릴까 싶어서 울상을 짓는 것이 보였다.
“쉿! 이번에는 달래러 왔으니 안심해요.”
“네….”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이놈은 위스키를 병째로 꺼내 놓고 소파에 앉아서 혼자 청승을 떨고 있었는데, 머스크의 횅한 정수리가 나를 슬프게 했다.
“아이고, 등신! 뭐하냐?”
“억! 에이 깜짝이야! 또 왜?”
“왜긴 뭐가 왜야? 보나 마나 청승 떨고 있을 것이 뻔해서 왔지? 내 잔도 내놔!”
“그, 그래?”
“바보 같은 놈….”
“…….”
그렇게 대낮부터 술판이 시작되었다.
“알렉스야, 너 나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시끄러워! 나니까 이 정도로 그치는 거야!”
“흐흐흐! 그건 그래.”
“지랄! 그건 그렇고, 나 곧 아버지 된다.”
“엉? 진짜? 이야야! 드디어 알렉스가 어른이 되는구나? 크하하하!”
“원래도 너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고 생각되는데?”
“닥쳐라! 적어도 나 정도는 낳아야 어른이라고? 으하하하!”
“으윽! 이건 완패다.”
“크하하하!”
머스크 이놈은 자식을 무려 열이나 낳았다.
요절한 장남을 빼면 아홉이지만, 하여간 엄청나게 여기저기 씨를 뿌려댄 거다.
게다가, 저출산 추세에 대하여도 관심이 많아서, 일본과 한국의 저출산 상황에 대하여도 몇 차례 경고하기도 한 대단한 사랑꾼이니, 내가 이걸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이놈도 최근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대낮부터 시작한 술판은 결국 자정이 다 되어서 끝났는데 이놈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결국은 빌려 간 돈 이자 0.5%를 깎아주었다.
젠장, 이놈의 술이 원수지.
400억 달러의 0.5%면 연리 2억 달러다.
졸지에 2억 달러짜리 술판을 벌인 셈이다.
***
다음 날, 오전에는 숙취로 나오지 못하고 오후에나 간신히 출근했다.
“아이고, 머리야.”
“그냥 오늘은 쉬시지 뭐하러 나오셨습니까? 어지간히 마신 것 같은데요?”
“에이, 그래도 그럼 되나요? 하여간 존.”
“네, 보스.”
“아마존에서 진행하는 카이퍼 프로젝트라고 아시지요?”
“카이퍼 프로젝트요? 네,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왜요?”
“그거 지분 좀 확보하세요.”
“예? 스타링크가 있는데요? 게다가 머스크가 싫어할 텐데요? 어제 잘 푸시고 온 것이 아닙니까?”
“잘 풀긴 풀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 하는 짓이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많이는 말고, 한 30% 정도만 머스크 모르게 확보해 주세요. 시달리긴 싫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친구는 친구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그리고 좋은 말도 들었잖아?
경영상의 필요?
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