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줬다 뺏어가는 것이 어딨어요?
엄마와 아버지는 보름을 미국에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제인, 알지? 최소한 12주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는 거?”
“네, 엄마.”
“철식이 너도 그래.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뭘 조심해? 내가?”
“이놈의 자식아! 엄마가 그걸 말로 해야겠어? 그거 조심하란 말이야! 당분간 참아!”
“…….”
그게 뭐냐고?
그게 그거라면 조심하게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2시간을 할 것을 1시간으로 줄인다는지 하면서 말이다.
3월 말이 되자, 미얀마 해방전쟁의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갔다.
“쏘아!”
쾅! 콰쾅! 콰앙!
KH-179 한국산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포탄이 떨어진 곳은 초토화가 되었다.
이 곡사포는 1월과 2월에 한국에서 지원받은 것들인데, 자국에서 테러를 기획한 것에 열이 받은 한국 정부가 점차 예비 물량으로 치장 중이던 KH-179 155mm 견인 곡사포 200문을 미얀마 국민 통합정부 연방군에 공여한 것이다.
더불어 M101 계열 105mm 견인 곡사포 300문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포탄 기근 현상이 벌어졌지만, 대한민국은 다른 세계였다.
한국전쟁 이후로 무려 70여 년간 대규모 전쟁 준비를 한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적으로 120mm 박격포로 대체되어 일부 경보병이나 공수사단용을 제외하면 도태 추세인 105mm 고폭탄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군 WRSA 탄까지 떠안아 넘쳐서 처치 곤란일 정도였고, 155mm 탄약도 넉넉했다.
그 대단한 미국이 155mm 고폭탄을 월 2만 발 정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고작인데, 우리 대한민국은 서방 세계 최대 규모라는 풍산의 안강 공장에서만 풀로 돌리면 월 20만 발까지 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러니 미국 사용용도라고 제한을 두어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포탄을 공급하는 와중에서 한국은 여유가 있었고, 제한 따위는 없는 미얀마 연방군에는 넘치도록 공급했다.
중국도 지은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물론 돈은 내가 냈지만.
***
“회장님, 전쟁 상황이 예상보다 순조롭습니다.”
3월 30일, 나는 회사에서 헨리와 화상회의를 하는 중이다.
“오오! 그래요?”
“네, 회장님. 한국에서 지원한 야포들 덕이 컸습니다. 탄약도 넉넉히 주어서 아낌없이 퍼붓는 중이지요. 하하하!”
“정말 다행입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 지원도 지난번 테러 시도 이후로 엄청나게 다양해지고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이젠 제공권은 우리가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입니다.”
“놈들이 도끼로 제 발을 찍은 거지요.”
“현재 북부의 사가잉과 카친, 그리고 동부의 샨주, 카야, 카인, 몬, 타닌타리는 국민 통합정부 지배하에 있습니다. 미얀마 최대의 경제 도시인 양곤도 5월까지는 우리 손에 넘어올 것 같습니다.”
“이제 멀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양곤만 우리에게 넘어오면 놈들은 수도 네피도를 중심으로 중부에 갇힌 신세가 될 것니다. 종전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해 줘요. 전쟁이 길어져서 일반 국민의 고통이 엄청날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조심하고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세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수고해요.”
미얀마 전쟁은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군부 놈들, 감히 나와 내 가족을 노렸지?
아주 모조리 목을 따주마.
그리고 네놈들 가족들은 알거지로 만들어 그동안 호의호식한 세월을 그립게 해줄 생각이었다.
가족들이 무슨 죄냐고?
그건 미얀마 군부가 어떤 놈들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얀마 군부는 하나의 지배계층이다.
결혼도 자기들끼리 하고 이익사업도 군부에서 군인 가족들에게만 좋은 일자리를 주어 호의호식하게 해준다.
한마디로 공범이라는 말.
이제 어린아이들은 예외겠지만, 적어도 성인들은 앞으로 살아나가려면 상당히 고달플 것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최종 보스인 중국.
이놈들은 워낙 거물이 된 터라, 솔직히 보복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생기겠지.
청산이 남아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잖은가?
기다리는 거다.
기회가 올 때까지 말이다.
소강 상태였던 우크라이나 전선도 4월 중순이 되어 슬슬 라스푸티차가 없어지기 시작하자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내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나토 국가에서 제공한 전차로 훈련한 우크라이나군이 일제히 진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4월 말이 되자 우크라이나 기갑 세력은 점차적으로 러시아군을 그들의 땅으로 밀어내었다.
물론 러시아군이 추가 동원까지 시행하면서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기본적으로 양측의 병사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한쪽은 나라를 지키려 하고 다른 쪽은 명분도 없이 이웃 나라를 침공하는 거다.
그것도 한때는 같은 나라로 한 다리 건너면 우크라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데 말이다.
싸우려는 의욕이 생길 리가 없었다.
간혹 러뽕이 들어서 러시아를 옹호하는 놈들은 툭하면 나치 타령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시키려는데,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극단적인 꼴통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꼴통이 있다고 옆 나라에서 침공해대면 남아나는 나라가 있으려나?
우리나란 꼴통이 없어? 없냐고?
막말로 꼴통들 몇 명이 작당해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림동 같은 곳에서 테러를 저지르면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해서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하면 되겠네?
한마디로 개소리다.
어쨌든 우크라이나 전선도 올해 내까지는 아니라도 내년에는 끝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조지야, 조금만 더 고생해라.
***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회장님, 신수가 날이 갈수록 훤해지십니다!”
“하하하! 다들 반갑습니다.”
4월 말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조만간 정훈이의 결혼식이 있어서 겸사겸사해서 들어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이정룡 회장이 연락하여 간만에 현도의 장우성 회장, 은성의 구정모 회장, 화나의 김종건 부회장과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사람들과 레벨이 이젠 엄청나게 벌어져서, 어째 좀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전처럼 편하게들 하세요. 제가 돈 좀 벌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하하! 그 ‘돈 좀’이 어디 웬만해야 말이죠?”
“하하하!”
“하하하!”
그나마 이정룡 회장이 너스레를 떨어서 분위기는 많이 좋아졌고, 술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자 다시 이전처럼 편해졌다.
“요즘들 어떠세요?”
“아이고, 죽을 맛입니다. 이건 뭐 여기도 전쟁, 저기도 전쟁에다가 중국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니 말입니다.”
이정룡 회장이 정말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순수하게 비즈니스 생각만 할 때가 참 좋았습니다. 이젠 어떤 나라에 투자하려면 겁부터 날 지경입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우리 사성이 중국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만 30조를 박았어요. 그런데 인제 와서 중국에서 손을 털고 나오라고 하면 어쩌라는 말입니까? 차라리 사이가 이렇게 되려면 좀 진작부터 중국을 견제하던가요? 우리나라만 따진다면 딱 2년 전에만 사드 사태가 벌어졌어도 중국에 공장을 안 지었지요. 삽 다 뜨고 장비가 한창 들어가는 상황에서 틀어져 버리면 죽으라는 말입니까? 게다가 이젠 미국까지 나서서 중국을 손절매하라고 하니…. 하아!”
“우리 현도도 마찬가지예요.”
“야! 우성아! 뭐가 마찬가지야? 너흰 그전부터 중국 시장에서 맛이 가기 시작했잖아?”
“무슨 소리예요? 결정타는 한한령이었다고?”
“시끄러워! 하여간 너흰 우리보다 나은 거야.”
“에이, 우리 러시아 때문에 환장하잖아요. 강 회장님 덕분에 사전에 부품을 왕창 몰아넣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이거 올해 말부터는 정말 손가락을 빨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 사이에는 중국 차들이 우리 시장 다 가져가는 중이고요.”
“종건아.”
“네, 정룡 형님.”
“넌 좋겠다?”
“왜요?”
“나한테 방산 가져가서 대박 터뜨리고 있잖아? 도로 내놔 임마!”
“에이! 줬다 뺏어가는 것이 어딨어요? 요즘은 맨날 그 소리야?”
“뭐 이 자식아?”
정말 힘들기는 힘든가 보다.
하긴, 기업하는 사람들이 비즈니스 말고 국제 정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말이다.
그나마 전쟁으로 인한 방산 특수를 누리는 화나는 괜찮은 것 같다만.
“그렇게나 힘들어요?”
“아유! 정말 말도 마십시오. 우리 사성이나 TK이나 미국하고 중국 사이에 껴서 죽을 지경이에요. 뭐, 말들은 중간에서 현명하게 처신하라고 하지만, 그게 됩니까? 중립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일본처럼 내수시장이 크던가 말이지요. 이건 뭐 나라가 힘이 없으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정말 동네북도 아니고 말입니다. 뭐?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수준을 제한한다고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정룡 회장의 말처럼, 중립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다.
아니면 인도처럼 대가리 수라도 많던가.
“그나마도 미국에 투자를 해서 그 정도로 그친 겁니다.”
“그러니 더 화가 나는 겁니다. 이건 몸주고 마음 주고 싸다구까지 맞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우리 현도도 마찬가지라니까요? 바이든이 내한해서 미국에 공장을 짓게 만들고서 뒤통수를 쳐요?”
“넌 왜 자꾸 끼어드는 거야?”
“아니 경우가 그렇잖아요?”
“…….”
이거 참, 내가 봐도 큰일 나게 생겼다.
그런데 은성은 구정모 회장이 묵묵히 술만 마시는 것이 보였다.
“구 회장님은 힘들지 않아요?”
“네? 저요? 하아,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기껏 시장을 개척하면 정치적인 이유로 날아가는데요. 그래도 형님들보단 조금 낫습니다. 괜히 저까지 끼어들면 난장판이 될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그리고 우리는 정말 나은 겁니다. 중소는 물론이고 중견까지 난리도 아니에요. 특히나 작년 하반기에 그 망할 도지사가 헛짓거리를 하는 자금 조달이 여전히 힘들거든요. 그나마 카르마에서 열심히 구제해서 이 정도인 겁니다.”
“아! 그 도지사? 그 인간은 사과했어요?”
“사과는 무슨 사과입니까? 왜 자기만 가지고 뭐라고 하냐면서 안 한답니다.”
“야?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참 나, 이 어려운 와중에 별 미친놈까지 설치는 바람에 이게 대체 뭐냐?
“일단 중견이나 중소기업들 자금난은 좀 더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풀어야 겠습니다.”
“아, 여기서 더 말입니까?”
“뭐, 한 200조 정도 더 풀면 되겠지요.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도 이익입니다.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 경색을 풀어줄 생각이니까요. 싫다면 할 수 없는 것이고요.”
“200조요?”
“200조!”
“대,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바이든은 내가 따로 만나서 시간을 좀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하하하! 이래서 제가 회장님만을 학수고대하면 기다렸다니까요?”
“대신에 중국 공장은 최대한 빨리 어떻게든 뽑아낼 대로 뽑아내세요. 아무리 바이든 대통령이라도 오래 기다릴 순 없을 겁니다. 대중국에 대한 강경 정책은 정파와 당을 초월한 것이니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이지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이유는 역시 나라 체급이 워낙 작기 때문이다.
정말 정은이 놈은 빨리 안 죽나?
통일이라도 되면 좀 나을 텐데.
아, 4대를 잇겠다고 이젠 10살짜리 딸내미를 내세우고 있지?
하여간 대단하다,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