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별을 따려면 하늘을 봐야 하는 법이지.
재벌 총수들과 만나고 난 다음 날, 남정원 부회장과 어제 나온 이야기들의 후속 조치에 대하여 논의했다.
“며칠 내로 1,000억 달러를 보내고 하반기에 추가로 1,000억 달러를 보내드릴 테니까, 자금 경색에 시달리는 회사들에 투자하세요.”
“2,000억 달러면 200조가 아니라 250조 정도가 될 텐데요? 너무 많지 않습니까?”
“말이 200조라고 한 거지, 딱 잘라서 200조만 투자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으면 남는 대로 가지고 계세요.”
“하하하! 저야 그러면 좋지요. 투자 기준은 어떻게 할까요? 무조건 어렵다고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한데요.”
“당연하지요. 내가 자선사업을 많이 하지만, 기업들에까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제대로 평가하셔야 합니다. 펀더멘털은 충실한데, 최근의 자금 경색으로 곤란한 기업들 위주로 하시라는 겁니다. 거기에 오너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도 확인하셔야 하고요. 개떡 같은 인간들에게까지 구세주 노릇을 하면 안 되잖아요?”
“맞는 말씀입니다.”
“평가해서 회사가 괜찮아 보이면 지분 100% 인수도 고려하시고, 적어도 최대 주주를 확보하는 것으로 하여서 우리가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돈 대주고 뒤통수 처맞는 것은 사양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업 규모는 상관없습니까?”
“성장 가능성이 있으면 너무 규모에 연연하지 마세요.”
“하하하! 기업 평가와 인수합병 팀을 대대적으로 충원해야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수준 미달인 놈들이 들어와서 남을 평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까요. 일차적으로는 외주를 주어서 거른 다음에 2차부터 우리가 평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네, 회장님.”
***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이 지나고 난 다음 날, 카르마 홀딩스에서는 남정원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서 어제 나와 상의했던 기준에 따라 2,000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발표장은 뒤집어졌다.
“속보다! 속보! 카르마 홀딩스 250조를 투자! 그것도 자금 경색에 시달리는 기업들 우선으로! 단독으로 빨리 기사 올려!”
“저 인간은 맨날 단독이래! 야! 대동일보 김 기자! 이게 어떻게 단독이야!”
“시끄러워 내가 단독이라면 단독인 거야!”
“조 기자, 저 인간은 그냥 내버려 둬. 또 댓글로 욕 처먹고 내리겠지.”
“…….”
신문이고 방송이고 난리가 난 다음 날, 나는 출근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저 많은 차량들은?”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경호팀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어제 250조를 투자하겠다고 발표가 난 후에 밤부터 몰려든 기업체 관계자들이라고 합니다.”
“아니 저렇게나 많이?”
“그만큼 돈이 절실하다는 것이겠지요.”
“허어….”
이건 무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아니고, 아니 모 지사가 쏘아 올린 공이라고 해야 하나?
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것도 지난번에 100조를 풀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그 지사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영향을 덜 받았다고는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그게 아닌 것이다.
무려 3년 가까이 지속한 코로나 사태는 그만큼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유발했으니, 당연히 수출 경제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달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엎친 데 덮친 형국을 만든 터라, 빈말이라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지방자치단체장이 치명타를 가한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망할 인간이 그걸 깨버린 것이다.
사실상 국채 취급을 받는 지방정부의 보증을 스스로 부인했으니, 이젠 누가 국채고 지방채고를 떠나서 정부를 신뢰할까?
진짜 그 인간은 나쁜 사람이다.
그런 짓을 해놓고서는 처음에는 초큼 미안하고 하다가, 이젠 사과조차도 안 한다고?
북새통인 회사 입구에는 내 경호팀과 보안 요원들이 이미 나와서 내가 들어갈 동선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 차량 행렬이 너무 눈에 띄었나 보다.
하긴 육중한 방탄 벤츠 풀만 차량에 앞뒤로 경호팀 차량이 에스코트하고 하고 있으니 눈에 안 띄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아마도 사람들 눈에는 나인지는 몰라도 남정원 부회장이나 최소한 카르마 홀딩스의 최고위급 인사의 차량으로 보였을 거다.
“저거 남정원 부회장 차량 아니야?”
“비슷한 차량 행렬이 아까 들어갔는데?”
“그럼 저건 누구야?”
“혹시 알렉스 강 회장 차량 아닌가?”
“강 회장은 미국에 있다면서?”
“이 사람아! 그 양반이 미국에만 있나?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럼 설마?”
“에이! 일단 불러나 보자고!”
“강 회장님! 급합니다! 우리 회사는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건실한 회사인데, 그 빌어먹을 도지사 새끼가….”
“회장님! 우리 직원들이 전부 실직하게 생겼습니다! 도와주세요!”
하마터면 통제선이 무너질 뻔했는데 용케 경호팀에서 버텨 주어서 간신히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후아!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난리가 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저도 생각 못 했습니다. 별일은 없으셨지요?”
먼저 난리를 겪은 남정원 부회장도 황당하기는 했나 보다.
“아니 이렇게나 돈이 막혔어요?”
“알려진 것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아니 정부는 대체 뭐 하고 있답니까? 이건 사기업이나 개인이 해결할 일이 아니잖아요?”
“정부라고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책을 세운다고는 하는 모양인데, 정부 재정도 코로나를 거치면서 좋지 않은 상황이라 대책을 세우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회장님이 개인이나 사기업 레벨은 아니지요. 막말로 우리나라 정부보다 회장님이 훨씬 부자잖습니까? 현금 동원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
“그래도 우리나라는 회장님 보유국이라서 다행인 겁니다. 하하하!”
“회장님 보유국은 또 뭐예요?”
“모르셨어요?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알렉스 강 보유국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요?”
“…….”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방탄돌격단 보유국은 들어봤어도, 알렉스 강 보유국이라니.
“하여간 좀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1,000억 달러는 지금 바로 쏘라고 존에게 말해 놓을게요.”
“흐흐흐! 역시!”
“왜 웃어요?”
“그렇잖습니까? 무려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무슨 1,000달러 송금하듯이 말씀하시니까요.”
“…….”
듣고 보니 그러네.
“하여간 서두르세요. 일단 기존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선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으차! 그럼 본격적으로 일해 볼까요?”
“당분간 수고하세요.”
존에게 말해서 1,000억 달러를 쏘라고 하자, 30분도 되지 않아서 입금되었다.
진짜로 1,000달러 보내는 것처럼 보내는구나.
그리고 남정원 부회장은 역시나 일을 잘했다.
즉시 패스트 트랙(fast track) 팀을 조직하여서 정말 급한 회사들은 별도로 심사를 받게 한 것이다.
물론 누구나 패스트 트랙을 지원한다면 전부 패스트 트랙에 몰릴 것이 뻔하니 조건을 두었다.
정상적인 경로로 제대로 평가하여 투자받는 것보다는 투자 조건이 좋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고, 실사를 거치지 않고 기존의 신용평가사 자료와 회계 장부를 신뢰하는 대신에 회계 장부에 어떠한 거짓도 없음을 대표이사와 실제로 오너인 최대 주주가 연대하여 보증을 서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단 이미 있는 자료들을 보고 서류 평가만 하여 투자 적격 심사를 할 수 있기에 제대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투자가 결정되고 자금을 집행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급전을 쓰는 대신에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불이익도 받으라는 말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남 부회장의 말에 따르면 10일 이내로 결정이 나서 자금이 집행될 것이라고 하니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사이에 부도가 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급한 회사들은 패스트 트랙보다고 더 투자 조건이 좋지 않음을 알리고, 심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임시로 보증을 서거나 긴급 수혈을 해주는 것으로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도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정말 급한 회사들은 지원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조차도 쇄도하여서 나와 남정원 부회장을 놀라게 했다.
“장 비서.”
“네, 회장님.”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조용히 장 비서를 불렀다.
“그놈 있잖아요, 그놈.”
“그놈이라고 하시면….”
“아니 그놈! 헛소리를 지껄여서 상황을 이렇게 만든….”
“아! 그놈이요!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놈은 어째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놈 좀 제대로 털어봐요. 내가 웬만하면 정치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싫은데, 도저히 그놈은 용서가 안 돼요.”
“흐음, 소속당 내에서도 혐오 대상입니다만, 그래도 도지사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지사가 아니라 도지사 할아버지라도 그런 인간은 벌을 받아야 해요.”
“하하하! 그건 맞습니다. 캬아! 이래서 제가 회장님을 존경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존경심이….”
“솔직히 말해 봐요. 연봉을 많이 주어서 존경하는 것은 아니고?”
“흐흐흐! 그렇게 대놓고 물으시면 곤란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흐흐흐!”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마도 절반은 차지할 거다.
“하여간 탈탈 좀 털어요. 하는 짓을 보면 구린 구석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해서 여론도 좀 동원하고요.”
“물론이지요.”
“우리 장 비서가 일을 참 잘한단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
정훈이의 결혼을 앞두고서 저녁에 따로 정훈이 커플과 우리 부부만 식사를 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이쁠 수가 있어요?”
“이쁘죠? 우리 제인? 흐흐흐!”
역시나 정훈이 약혼녀 이세은은 우리 제인을 보고서 이쁘다고 난리가 났다.
아이, 우리 제인은 대체 왜 이렇게 이쁜 거야?
“진짜 철식 오빠 도독놈이다. 아니 15년이나 차이 난다면서요?”
“뭘 그 정도 가지고, 도독씩이나….”
“호호! 하여간 세상을 다 가지셨네요.”
“그건 인정. 아, 하나 모자란 것도 조만간 채울 예정이에요.”
“하나가 모자라다니요? 그런 것이 있을까?”
“있다니까 그러네? 정훈아.”
“왜, 임마!”
“형아가 곧 아빠가 된다.”
“무슨…. 응? 아빠?”
“어머나! 임신했어요?”
“빙고!”
“이야야야! 정말 축하한다! 하하하!”
“고맙다, 자식아! 열심히 하면 너희 가질 수 있을 거야.”
“열심히 하다니? 뭘?”
“정훈 오빠!”
“하하하!”
“하하하!”
뭘 열심히 하겠나?
별을 따려면 하늘을 봐야 하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