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마곡 사옥에서 열린 정훈이 결혼식은 성대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알차게 진행되었다.
정훈이는 단순히 대유건설 기조실장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시에 의해서 카르마 홀딩스에도 이리저리 관련된 것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카르마 홀딩스나 정화재단의 고위층과도 모두 안면이 있었고, 특히 우리 부모님에게는 내 형제 정도로 인식되는 놈이다.
우리 집이 어려울 때 그놈이 나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는지 알고 계시니까.
당연히 부모님은 물론이고 정화재단과 카르마 홀딩스의 고위 간부들이 모두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정훈이 이놈, 참 빨리도 간다.”
“엇, 아버님하고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래, 잘 살아라.”
반대편에서 하객들을 맞는 세은 씨의 부모님은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유건설 사장이 직접 온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이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 재계의 최고 거물 남정원 부회장도 직접 신랑 측 하객으로 왔다.
거기다가 역시 정화재단을 대표하여 얼굴을 내밀다 보니 많이 알려진 아버지까지.
아마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렇지, 알았으면 뒤로 쓰러지셨을 것 같았다.
정훈이가 처음 인사하러 갔을 때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고서 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무시했다고 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하겠지.
하긴 나 같아도 애지중지 키운 의사 딸내미가 나이도 일곱 살이나 많은 평범한 회사원을 신랑감이라고 데려왔으면 약간은 섭섭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비난하기는 어려웠다.
뭐, 지금이야 최고의 신랑감이 되었으려나?
정훈이와 세은 씨는 식을 마친 후 곧장 공항으로 직행하여 회사 전용기를 타고서 하와이로 향했다.
평생 잊지 못할 신혼여행이겠지.
잘 살아라, 친구야.
***
“허허허! 어서들 오너라.”
“오랜만입니다, 조.”
“제인, 너는 볼 때마다 이뻐지네?”
“헤헤! 질도 여전히 이쁘신데요?”
“어! 얘는? 할머니를 놀리면 못 쓰는 법이야. 호호호!”
정훈이 결혼식을 보고서 며칠 후에 바로 워싱턴으로 직행하여 백악관에 들렀더니 조와 질이 반갑다고 난리다.
“질, 우리 아기 가졌어요.”
“어머나! 정말? 잘 됐다, 잘 됐어!”
“으허허! 드디어 손주가 태어나는구나!”
이 양반들, 진짜로 기뻐해 주네.
마치 자신들의 손주라도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부담스러웠다.
지금이야 반쯤은 가족처럼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시작은 비즈니스였으니까.
에이, 모르겠다.
바이든 대통령 내외와 즐겁게 식사를 한 후, 여느 때처럼 제인은 질과 함께 있고 나는 바이든 대통령과 서재에서 차를 마셨다.
“소식 들었지?”
“무슨 소식이요?”
“에르도안이 대선에서 떨어진 것 말이다.”
“네, 들었어요.”
“으하하하! 정말 앓던 이가 빠진 것 같구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며칠 전인 5월 14일에 있었던 터키 대선에서 이스탄불 시장인 에크렘 이맘오을루에게 패했다.
표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는데, 덕분에 나는 가슴이 쫄깃쫄깃하면서 터키 대선을 봐야 했었다.
아니 정말 그렇게나 개판을 치는데 어떻게 여전히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그리도 많냐고?
지방과 시골 지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더구먼, 그쪽에서는 에르도안 몰표가 쏟아져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겼을 된 거였고, 바이든은 정말 좋아했다.
하긴, 에르도안과 바이든은 상극도 그런 상극이 없었지.
“그렇게 좋아요?”
“그럼 안 좋냐? 에르도안 그놈은 터키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류를 위해서도 없어지는 것이 맞아.”
“흐흐흐, 뭘 인류씩이나.”
“인류 맞아. 정말 터키가 위치만 그런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골머릴 썩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휴!”
“이제 끝났잖아요? 새 대통령인 에크렘 이마…. 에이, 이름이 힘드네. 하여간 에크렘이 잘할 겁니다.”
“그래, 에르도안 놈보다는 훨씬 낫겠지. 고맙다, 알렉스.”
“응? 왜 내게 고마워요?”
“네가 지진 났을 때 에크렘을 많이 띄워주었잖아? 그리고 그것도 있었고.”
“그것이라니요?”
이 양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거 있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아 거 참, 그거 말이야. 네가 용돈 찔러준 거.”
“엉?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설마 날 감시….”
“워워! 무슨 소리야? 오해하지 마. 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에크렘을 ‘주시’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뿐이라고. 내가 널 감시해서 뭐하냐? 게다가 네 주변에는 보안 전문가들이 득실거려서 아무리 우리라도 못 해.”
“그럼 다행이지만요.”
“이놈이 날 어떻게 보고?”
“뭘 어떻게 봐요? 미국 대통령으로 보지.”
“끙!”
“그런데 에크렘은 왜 감시하고 있었어요?”
“그건 네가 알아서 뭐하게?”
“말이 나왔으니까 묻는 거죠.”
“별다른 이유가 있겠냐? 너랑 같은 거지.”
“응? 미국이 요즘도 다른 나라 대선에 관여해요?”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미쳤냐? 터키가 무슨 아프리카의 허섭스레기 나라도 아닌데? 그냥 주의 깊게 보는 정도야.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펄쩍 뛰니까 더 의심이 갔지만, 바이든의 말처럼 터키는 그저 그런 나라가 아니다.
혹시라도 작업하다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수습 불가의 대형 사고인 거다.
일단 믿어주자.
“그런데, 에르도안이 순순히 내려올까요? 그것도 걱정이네요.”
“좀 시끄럽겠지만 결국에는 내려올 거야. 그렇게까지 막장인 인간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아, 우크라이나는 요즘 어때요?”
우크라이나는 라스푸티차가 4월 말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받은 전차를 앞세워 대대적인 공세를 벌이는 중이다.
뉴스로는 꽤 선전하는 것 같던데, 그래도 바이든의 입으로 듣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정보가 많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니까.
“거긴 잘하고 있어. 전차를 지원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아. 잘하면 가을이 되기 전에 빼앗긴 땅의 절반 이상은 회복할 것 같더라.”
“그럼 슬슬 휴전 이야기가 나오겠네요.”
“아마도 그럴 거다. 100% 회복하기는 어려울 거야.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푸틴 놈에게는 치명타겠지만.”
“크림은 좀 힘들겠죠?”
“2014년에 빼앗긴 이후로 우크라이나계 사람들은 거의 모두 크림반도를 나가고 그 자릴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왔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거긴 좀 어려울 거다. 젤롄스키도 돈바스 지역을 회복하는 것에 만족해야 해. 알다시피 우리 여론도 점점 피로를 느끼고 있어서 내년부터는 지금처럼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깝네요.”
“세상이 그런 것이지.”
“결국, 승자는 미국인가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푸틴 녀석이 자충수를 두어서 그런 거잖아?”
“바보 같은 인간….”
“그러니까,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 하는 법이야. 크림으로 만족했으면 언젠가는 제재도 풀렸을 텐데.”
“누가 아니랍니까.”
푸틴 놈은 정말 자기 무덤을 판 거였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건 그렇고, 알렉스.”
“왜 그렇게 불러요?”
갑자기 은근해지는 말투에 뭔가 수상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 말이야, 이달 말에 재선 출마 선언을 할 거다.”
“오! 결심하신 겁니까?”
“그래, 올 초에 해군 병원에 받은 건강검진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지금 내 지지도도 괜찮은 편이잖아?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한번 나가기로 말이야.”
“잘하셨어요. 그 결심 지지합니다.”
“으하하하! 그래, 고맙다.”
솔직히 불안하기는 하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면 2기 임기가 2025년부터 시작인데, 그때는 바이든의 나이가 정말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그건 미국 시민들이 결정할 문제지.
나야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어쨌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속으로는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젊으니까 다음을 기약하라고 해야지 뭐.
“선거 자금은 걱정하지 마세요. 편하게 선거를 치르도록 해드릴게요.”
“하하하! 고맙다, 알렉스.”
“고맙기는요.”
제발 고마우면 보답을 하세요, 보답을.
“저기, 조.”
“왜? 알렉스?”
“우리 반도체 기업들 말입니다. 중국에 공장이 있어서 걱정이 태산이에요. 말미를 좀 더 주시지요.”
“아, 사성하고 TK 말이냐? 그거참 곤란하네….”
“왜요?”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중국에 대하여는 워낙 강경해서 내가 어떻게 할 여지가 많지 않아.”
“에이, 그래도요.”
“대체 중국에다 무슨 투자를 그리도 많이 해 가지고….”
“…….”
이건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투자를 결정할 시기에 아무리 중국과 사이가 좋았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대규모 투자를 할 일은 아니었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들이라면 약간의 가능성도 생각했어여 하는 건데.
“하여간 알았다. 빠져나갈 구석이 있는지 알아보마.”
“흐흐, 고마워요.”
“하지만 오래는 나도 어려워. 최대한 빨리 뽑아 먹을 만큼 뽑고 손 털어야 해.”
“그건 우리가 감수해야지요. 고마워요, 존.”
“고맙기는?”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이만 가 볼게요, 조.”
“음, 이거 하나만 더 듣고 가.”
“뭔데요?”
“네가 너희 나라 국방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잘 아는데, 가능하면 좀 더 신경을 써.”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결국은 중국이지 뭐가 있겠어?”
“흐음, 중국이 기어이 대만을 침공할 것 같습니까? 그런 거예요?”
“2025년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많은데, 2025년은 힘들 거다. 중국이 그때까지 전쟁 준비를 마치지 못하니까.”
“그럼 언제로 예상하시는 겁니까?”
“우리 정보부서에서는 2027년을 디데이로 보는 것 같아.”
“젠장….”
“너도 잘 알다시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국도 거의 자동으로 끌려갈 거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잘 알지?”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5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인데, 잘 사용하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거다.”
“고마워요, 조.”
“이건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네가 워낙 한국을 조국이라고 싸고도니까 하는 말이다. 그때까지는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해.”
“네, 알았어요.”
***
LA로 돌아오는 길.
제니는 옆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제기랄!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참으로 지랄 맞은 일이다.
70여 년 전에 한 번 처맞은 것도 모자라서 두 번을 처맞다니.
대체 왜 이렇게 중국과는 악연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북한도 거의 자동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한반도는 전쟁의 참화에 뒤덮일 것이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아니 대체 중국이 대만 먹는데 우리가 왜 딸려가냐고?
망할 놈의 중국.
아무래도 얼마 있다가 다시 한국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