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제대로 설쳐볼까?
“바이든이 그런 식으로 말했을 정도면 정말 위험한 거야. 허 참, 진짜 한국은 왜 그렇게 위치가 안 좋냐?”
“그러게나 말이에요.”
LA로 돌아와서 출근하여 존과 제프리 형에게 바이든의 경고를 말해줬더니, 역시 제프리 형도 속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제프리 형은 이민 1.5세로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지만, 여전히 정체성 일부는 한국 사람이어서 속이 좋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스, 중국이 대만을 친다고 한국이 반드시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100%는 아니더라도 중립적인 처신을 한다면….”
“그건 존이 한미 관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면 미군은 반드시 개입할 것이고, 미군이 한 명이라도 죽는 순간에는 한국은 자동이에요.”
“그 뭐라고 하더라? 한미간의 조약 때문에 그런 겁니까?”
“존, 그건 내가 말해주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비슷한 조문은 있기는 한데, 자동은 아니야. 아니, 미국이 타국과 체결한 조약에서 자동개입을 규정한 것은 없네. 미국은 전쟁하려면 1973년에 제정된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에 따라서 미국 의회가 전쟁 선언을 하거나, 아니면 미국 영토와 소유물, 미군에 가해진 국가 긴급 상황으로 제한되지. 그 어떤 경우도 90일 내에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래? 내가 듣기로는 한국과는 그렇지 않다는데?”
“그건 주한미군의 존재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들이 인계 철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 사실상 자동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야. 그래서 역대로 주한미군의 존재는 양국 모두에게 민감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하지만 대만의 경우는 다르지 않나? 한국에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진 것도 아닌데?”
“조약은 항상 상호적인 것을 잊지 말라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군이 참전할 것이고, 주한미군도 반드시 참전할 것이야. 그런데 주한미군이 죽어 나가는데 한국이 계속 중립을 외쳐? 그건 배신이야, 배신.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고. 한국이 미국을 배신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허어….”
“게다가 중립도 힘이 있어야 외칠 수 있는 법이야. 지금 한국이 방구 좀 뀐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나 해당하는 말이고 거지 같은 동북아시아로 한정한다면 한국은 여전히 약소국가야. 정말 개떡 같은 지정학적 위치지.”
“그, 그렇군….”
정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거지 발싸개 같은 위치다.
“알렉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하기는요. 미우나 고우나 내 부모님과 동생이 사는 나라인데요. 몇 년 남지 않았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요.”
“그래, 잘 생각했다. 나도 유사시를 위해서라도 의회 쪽 로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러지 않아도 부탁하려고 했어요. 혹시라도 걸림돌 되는 것이 없도록 해주세요.”
“알았다.”
“저기, 보스….”
“네, 존.”
“이런 말은 좀 그렇습니다만, 유사시를 대비해서라도 일단 보스의 국적이라도 바꾸시지요? 부모님과 동생도 미국으로 거주를 옮기시고요.”
“존.”
“네, 보스.”
“장인으로서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난 그렇게 해서 속이 편하게 살 수 없는 성격이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부모님과 동생의 거주지 문제는 생각해 볼게요.”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보스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참….”
“잘 안다니까요, 존.”
존이 나를, 그리고 딸인 제인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내가 왜 모를까.
하지만 그건 아니다.
나란 놈은 원래 그런 놈이니까.
“보스, 제가 잘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아시다시피 투자와 경제입니다. 경제적으로 우리 돈을 이용하여 중국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고마워요, 존.”
“하하하!”
전쟁은 무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돈으로 하는 것이다.
돈, 더 많은 돈.
5월 동안은 LA에 있으면서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고 6월이 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입국한 다음 날 바로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과 독대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우려와 경고를 전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바로 대통령 특별안보보좌 고문으로 나를 위촉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내가 그래도 되냐고 했더니, 국가안전보장회의법에 위원회의 구성은 전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면 그만이란다.
그거 참 편리하네.
하여간 대통령은 내가 본격적으로 설쳐도 추후에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럼 제대로 설쳐볼까?
***
2023년 6월 7일.
마곡 사옥으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그리고 삼군 참모총장, 방위사업청장, 핵심 방위산업체 대표 등을 초대했다.
말이 초대고 소집이었지만, 내가 부르는데 오지 않을 간 큰 인사는 없었다.
“이거 자꾸 여기로 불러서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대통령께서 국방에 관하여서는 회장님의 말씀이 곧 자신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회장님이 우리 국군에 해주신 것이 대체 얼마인데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회장님께서 지시하시면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들라고 하여도….”
“…….”
하여간 꼭 오버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누군가 해서 봤더니 해병대 사령관이었다.
역시, 해병대는 여간 기합이 아니구나.
“네, 고맙습니다. 하여간 제가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나는 이들에게도 바이든의 우려와 경고를 설명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채 4년이 안 됩니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현대 무기는 그렇게 짧은 기간에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요.”
“네, 맞습니다. 특히 해군은 10년 이상을 생각하여 사업을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우리 방위사업청장이 말씀해 보세요.”
“네, 방위사업청장 강인호입니다.”
“하하! 우리 청장님은 참 오래 보아서 좋습니다.”
“모두가 회장님 덕분입니다.”
이 양반은 나랑 손발이 잘 맞아서 그런지, 다른 국방부 장관이나 장성들이 교체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가까운? 관계를 정부에서도 고려한 듯싶었다.
그러니 강 청장의 말은 아부는 아닌 셈이다.
“일단 우리 국군의 무기 획득시스템은 대단히 복잡하게 되어있습니다. 회장님도 잘 아시지만, 사전타당성 검토를 거치면 빨라야 1~2년이고 논란이라고 생기면 3~4년은 그냥 잡아먹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타당성 검토를 통과하면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또 어, 어 하다 보면 한 2년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당성 검토와 예산을 잡는 것에만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가 흐르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업체는 무조건 경쟁 입찰을 하게 되어 탐색 개발을 시작하고 기본 설계를 거쳐서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아야 하고, 이게 끝나야 체계 개발계획을 세워서 체계 개발을 마치게 됩니다.”
“한마디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타내다가 날이 샌다는 말이지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예산을 허투루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지만, 우리나라 국방 무기 획득시스템은 좀 지나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 정작 소요 군의 손에 무기가 들어갈 때쯤에는 구식이 되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시기, 그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강 청장님의 말대로입니다. 상당히 좋은 취지로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통제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 따위는 없어요. 그러다가 날 새고, 나라가 결딴이 납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해 버릴 생각입니다.”
“오오!”
“역시!”
이 양반들 이젠 척하면 척이다.
“강 청장님, 그리고 국방부 장관님.”
“네!”
“네!”
“내가 내 돈으로 업체에 다이렉트로 발주를 주고 국방부에 기부하는 것이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전혀 없습니다!”
“노 플라블럼! 전혀 없습니다!”
“그럼 타당성 검토고 의회 통과고 이런 것들은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앞으로 4년! 일반 국민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 계신 분들은 전시에 준하여 생각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내 돈 내 산의 진수를 보여줄 생각이다.
“그럼 합참의장님.”
“네, 회장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역시 장거리 포병 전력은 전장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장거리 포병 전력이 드론과 결합하면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확도를 확보했으니까요.”
“그리고?”
“방공망입니다. 우리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규모 전쟁이 될 것입니다. 막말로 중국과 북한에서 샐 수도 없는 엄청난 수량의 탄도미사일 세례가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방공 미사일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최종적으로 적을 돌파하기 위하여는 기갑 세력의 확충도 절실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초기에는 러시아가 잘못된 전술을 사용하여 전자 무용론까지 나왔었지만, 결국에는 전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여기다 부가하여 기갑 세력에게는 이스라엘의 트로피 시스템 같은 능동방어시스템(APS)의 탑재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재블린이나 현궁 같은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대당 100억 원 안팎의 고가인 전차와 병력들을 보호하려면 능동방어시스템은 필수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탄약! 또 탄약입니다. 우리가 상대할 적은 우리와 같이 70년 이상을 전쟁 준비로 광분한 북한과 엄청난 경제력의 뒷받침으로 그 끝을 모르고 성장 중인 중국입니다. 155mm 탄약? 그거 마음먹고 사용하면 하루에 100만 발도 가능합니다. 탄약 생산을 대규모로 늘려야 합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육군참모총장님.”
“네, 회장님.”
“우리 육군부터 먼저 따져 봅시다. 전차는 충분합니까?”
“충분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중국이라면 말입니다.”
“그럼 105mm 강선포를 사용하는 K1E 계열은 모두 보병지원으로 돌린다고 생각하시고, 모자라는 전차를 더 생산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이어서 K2 전차 500대를 추가로 생산하면 되겠습니까?”
“후, 훌륭합니다!”
“현도 로뎀 사장님!”
“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4년 이내에 가능하겠어요?”
“예산만 주신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내겠습니다.”
역시나 밤을 새운다는 말부터 나왔다.
“밤을 새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한 날 그렇게 하면 직원들 전부 도망갈 겁니다. 라인 증설하시고 인력 충원하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대체 현도 로뎀 사장은 거부할 줄을 몰랐다.
직원들이 죽어 나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