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조금 과하여도 됩니다.
출산율을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 어리석을지 모르겠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았다가는 정말 나라가 없어질 형편이었다.
시골이나 지방 지역의 초중고등학교가 폐교되기 시작한 지는 한참되었고, 이제는 대학교도 폐교 행렬에 가세 중이다.
물론 현재 폐교되는 대학교 대부분은 폐교돼도 하나도 아쉽지 않은 곳 같았지만, 이게 점점 속도가 빨라져서 심지어는 지방거점 국립대학이나 지방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교까지 위험할 지경이다.
이러니 기업체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난리고.
이거만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주둥이로만 호들갑을 떨고서 막상 제대로 일하는 꼴을 보지 못하였다.
왜냐고?
출산율 대책이라는 것은 최소한 5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라 당장 애를 써봤자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돈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니, 대충 시늉만 하다가 임기가 끝나거나 자리를 옮겨버리면 나 몰라라 하는 거였다.
표로 연결되지 않는 일에 신경 쓰기도 싫을 테고 말이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데, 이래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5년 단임제 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임기 5년?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이지만, 어떤 정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처음 1년은 국정 파악하고 어쩌고 한다고 보내고, 2년 차부터 본격적으로 뭔가 하려고 하면 이리저리 충돌하다가 3년이 지난다.
그러면 인기 없는 대통령의 경우는 레임덕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4년 차가 넘으면 공무원도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단다.
이래서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 임기의 5년 단임제부터가 독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나온 과도기적 절충안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리 빌어먹을 정권이라도 장기 독재를 획책할 시기는 진작 지났는데, 왜 아직도 4년 연임제나 5년 연임제로 바꾸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야 첫 번째 임기에서는 좀 소극적으로 재선을 위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어느 정도 장기 플랜을 가지고 국정에 임하다가 두 번째 임기부터는 제대로 일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쪽에도 신경을 써서 바꾸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건 그거고, 일단 눈앞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중인 출산율은 미봉책이기는 하지만, 돈으로 도배를 해서라도 막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장관님의 생각이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일단 하늘을 봐야지 별을 따는 법이지요. 당최 결혼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애가 나옵니까? 그런데 지금 30대는 물론이고 40대도 노총각과 노처녀가 수두룩한 판국이니….”
“아니 까대지만 마시고 대책을 말씀해 보세요. 왜 결혼을 안 하는 겁니까?”
“그저 인생을 혼자서 편하게 즐기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대체 집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 천정부지로 올라가던 집값과 전셋값이 내림세이기는 해도, 20대는 물론이고 30대에 서울 기준으로 3억이나 4억이나 하는 전셋값을 어떻게 마련하란 말입니까? 그것도 변두리 지역인데요?”
“그럼 일단 신혼집을 구하기가 수월해지면 좀 나아지려나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획기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확실히 효과는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신혼부부에게 20년 정도 1% 이자로 2억 정도 대출해 주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1, 1%요? 그렇게 싸게 말입니까?”
“변동이 아니라 고정입니다. 그러면 연리로 따져서 200만 원 정도니 부담이 없을 겁니다.”
“당연하지요.”
“거기다가 별도로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자로 신혼부부에게 대출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둘을 합치면 간단하게 3억이나 4억 정도의 전세자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부담은 월에 50만 원 내외가 될 것이고요. 그 정도면 지금 자기들 살고 있는 원룸의 월세 정도나 될 거잖아요? 자기 저축이 있으면 막말로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면 번듯한 신혼집 전세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아, 뭐 나는 죽어도 강남에서 살고 싶다? 그럼 자기가 부모에게 졸라서 더 뜯어내든, 아니면 시중은행에서 조달하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말이지요.”
내가 아무리 호구 짓을 한다고 하지만, 강남의 십몇억이나 하는 전세자금을 대출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도움이 될까요?”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담이….”
“에이, 그 정도는 내게 부담도 아닙니다. 어제는 국방부에 200조나 질러 줬는데요.”
“200억?”
“하하! 200조입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세요.”
“허억!”
나에 대해 들었다면서 왜 이렇게 놀라지?
“그리고 효과가 있든 없든 출산 축하금을 내놓겠습니다. 첫 아이는 3,000만 원! 둘째는 6,000만 원! 셋째는 1억!”
“크허억!”
“이 정도면 급전이 필요한 부부들이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 물론입니다! 정말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출산하는 부부들도 나올 겁니다.”
“…….”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기는 한데, 급전이 필요해서 배추도사 무도사를 찾아가느니 이게 나을 것이다.
돈이 필요해?
열심히 사랑하면 열 달 후에 거액이 입금되는 거다.
“대신에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세금 문제는 정부에서 알아서 하세요. 여기다가 증여세라도 뜯는 날에는 정말 폭동이라도 일어날 겁니다.”
“당연하지요! 그건 제가 관계 장관들 멱살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정부에서도 내놓으세요. 적어도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기 전에는 부모 부담이 크지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게다가 이건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전방위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천문학적인 재원이 들 텐데요?”
“작년 기준으로 25만 명이 태어났지요? 첫째인지 둘째인지 셋째인지 모르니까 어바웃으로 1인당 5,000만 원을 잡아 봅시다. 30만 명이 태어나봤자 1년에 15조 원밖에 안 들어요. 그 정도면 지금 가진 돈으로도 100년이든 200년이든 낼 수 있어요. 물론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면 중단해야겠지만 말입니다.”
“허어….”
젠장, 내가 진짜 우리나라니까 이렇게 극약처방까지 내놓는 거다.
잘 좀 하란 말이다.
***
어쩌다 보니 출산 축하금까지 내놓는 엄청난 호구 짓을 하고서 며칠이 지났을 때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사무실에 있는데 개인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왔다.
보니까는 기동이 형이다.
뭐지?
옆 건물에 있으면 그냥 사무실로 올 것이지.
“여보세요? 기동이 형?”
- 어, 나다.
“왜요? 저녁에 술이라도 한잔하시게?”
- 그게 아니라, 너 서경일이 소식 들었냐?
“누구?”
- 경일이 말이야. 우리 막내.
“아! 경일이! 그럼, 소식 들었지. 얼마 전에도 통화했는걸요?”
서경일.
내가 군대 말년쯤 되었을 때 해군 특전병을 지원하여 우리 팀에 들어왔던 막내 녀석이다.
애가 빠릿빠릿하면서도 유난할 정도로 마음이 착하여 나를 비롯한 선임들에게 굉장히 귀여움을 받았었다.
한국에 오면 기동이 형과 신호 형과 함께 술 한 잔씩 하곤 했는데, 현재 소방관을 하고 있다기에 내가 우리 회사로 오라고 하였는데도 거절하더라.
자기는 지금 일이 너무 보람되고 좋다고 하면서.
“그런데 경일이는 왜? 걔가 술 먹자고 해요? 그럼 이따가 저녁에….”
- 경일이가 죽었다.
“뭐, 뭐요? 경일이가 죽다니? 아니 무슨 소리야? 경일이가 왜 죽어?”
-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려 동료들이 만류하는데도 뛰어들었다가 그만….
“…….”
경일이가 죽다니.
그렇게 착한 아이가 죽다니.
얼마 전에 통화했을 때 늦었지만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좋아했었는데….
‘철식이 형! 나 결혼할 것 같아요.’
‘네가? 진짜루?’
‘에이, 진짜루는 중국집 이름이고! 흐흐흐!’
‘지랄한다. 하여간 축하한다. 언제 제수씨 데리고 놀러와. 형이 맛있는 거 쏜다.’
‘알았어요. 다음에 데리고 갈게.’
‘그리고 너 신혼여행은 계획 잡지 마.’
‘왜요?’
‘네 신혼여행은 내가 최고로 챙겨줄 테니까, 그리 알아.’
‘우와아!’
‘하하하! 자식!’
이렇게 통화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경일이가 죽어?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지?
저녁에 기동이 형과 신호 형과 함께 전용 헬기를 타고서 장례식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절을 하고 영정을 바라보았다.
망할 새끼, 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먼저 저세상으로 간단 말이냐.
부모님과 약혼녀를 놔두고서.
“경일이 군대 선임입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크흐흑!”
봉제 공장을 하신다는 경일이 아버지의 거친 손을 잡았다.
하아, 빌어먹을.
염주는 대체 뭐한 거야?
대지진을 알려주고 전쟁을 알려주면서 왜 이런 것은 알려주지 않는 것인지.
빈소에서 사고 상황을 물어보니, 주택에 불이 났는데 집 안에 사람이 남았다는 말을 듣고서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들어갔단다.
참, 경일이 녀석다운 행동이었다.
왜 하늘은 착한 놈부터 먼저 데리고 가는지 원망스러웠다.
진작에 죽어버려야 할 놈들이 수두룩한데.
***
다음 날 아침에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이야기 들었다. 방송에 계속 나오는 순직 소방관이 네가 아는 사람이라며?”
“네, 군대에 있을 때 막내였어요.”
“허 참, 한창 젊은 나이에 어쩌다가? 하여간 소방관들의 희생이 너무 크네.”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뭐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알았다. 내가 알아볼게.”
“네.”
오후에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다시 자리를 하였다.
“내가 이리저리 알아보았는데, 일단 소방관 처우는 몇 년 전에 국가공무원으로 전환되면서 좋아지기는 하였는데, 아직 많이 부족해 보였어.”
“그래요?”
“응, 인원도 부족하고 장비도 아직 많이 부실하다고 하더라.”
“인원 추가로 채용하는 비용은 우리가 모두 댄다고 하세요. 장비도 마찬가지고요.”
“알았다. 그리고 현안 중의 하나가 경찰청 소속의 경찰병원처럼 소방병원을 설립하고 싶어 하였는데, 이제야 짓고 있더라고. 그것도 충북 맹동에 말이야.”
“이제야? 그것도 웬 충북 맹동?”
“뭐 이유야 돈이지. 경찰병원이 매년 300억씩 적자가 난다고 그동안 못 지어주었다더라고. 아무튼 결국 짓기로 하였는데, 현실적으로 전국에 하나밖에 못 지으니 전국의 중앙인 충북 맹동에 자리를 선정한 것이지.”
“아오! 진짜!”
경일이 이 녀석은 이런 일이 있었으면 나나 기동이 형에게라도 말을 할 것이지!
“아버지, 서울과 광주, 대구와 부산까지 더 짓자고요.”
“알았다.”
“그리고 운영비도 보조해 주세요. 이상한 정치인이 튀어나와서 폐지한다는 소리 안 나오게요.”
“그래.”
“또, 별도로 1조를 추가로 드릴 테니까, 그 기금으로 소방관들 복지와 아이들 장학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좀 과한 것 같은데?”
“소방관은 조금 과해도 됩니다.”
“원 녀석, 알았다.”
이렇게 해서 정화재단 산하로 ‘서경일 소방관 복지 재단’이 설립되었다.
경일이 이놈아!
천국에 가서는 불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라.
남은 동료 소방관들과 네 가족은 내가 알아서 잘 돌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