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미얀마 국민 통합정부의 연방군이 현재 미얀마 군부가 장악한 미얀마를….”
내가 인상을 박박 써대서 어쩔 수 없이 양쪽을 높여야 하다 보니 말이 꼬이나 보다.
그럼 내가 정리해 줘야지.
“깔끔하게 연방군, 현재 군부 놈들은 쿠데타군으로 합시다. 복잡하게 하지 말고요.”
“…….”
“이거 공식 석상 아닙니다. 잘 판단하세요.”
“끄응! 하여간 연방군이 쿠데타군을 이겨버리면, 우리 중국의 이익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현재 쿠데타군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업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협력이 아니라 수탈이겠지요.”
“어험, 하여간 우리 중국은 미얀마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건 비단 경제적인 협력 때문만은 아니에요.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이 이렇게 미얀마에 목을 매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친강 외교부장의 말처럼 중국의 안보 측면으로 봐도 엄청나게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미얀마가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접경국에서 완전히 친중 스탠스를 취한 나라 중 해안을 끼는 나라는 딱 두 나라, 파키스탄과 미얀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만약에 미 해군이 유사시 말라카 해협을 봉쇄해버리면 중국의 생명선은 파키스탄과 미얀마를 통할 수밖에 없는데, 파키스탄은 너무 멀었다.
천상 아라비아해에 있는 발루치스탄주의 과다르항이나 이도 아니면 신드주의 카라치항을 이용해야 하는데, 중국의 중심까지는 직선거리로 따져도 무려 5,000km가 넘는다.
이러니 어떻게 해도 중국의 윈난성과 국경을 접하는 미얀마와 비교 불가라는 말이다.
이래서 진작부터 중국은 송유관을 미얀마 짜욱퓨항에 연결하는 등의 작업을 별이는 등의 공이 들인 것이고.
“하여간 그래서요?”
“만약에 회장님께서 미얀마에서의 우리 중국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신다면, 우리 중국은 미얀마 쿠데타군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을 그만두겠습니다.”
“마음으로?”
“우리 중국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회장님이 미얀마에 대하여 가지는 독점적인 지위도 우리 중국이 인정하겠습니다. 이러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어….”
환장하겠다.
이놈들은 지금 나에 미얀마를 나눠 먹자고 제안하는 거다.
대체 무슨 약을 빨면 이런 개소릴 할 수 있는 거지?
아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놈들은 내가 무슨 미얀마에서 뭐라도 뜯어먹으려고 연방군에 무기를 지원하고 용병까지 투입하는 줄로 알고 있다는 말이잖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더니만.
“하하하!”
“아, 괜찮으신 겁니까?”
이젠 어이없어 웃는 것을 좋아서 웃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빠졌다.
“이봐요, 친강 외교부장님.”
“네, 말씀하시지요.”
“대체 중국은 나를 어떻게 보는 겁니까?”
“예? 어떻게 보다니요?”
“아니 내가 미얀마에서 뭐라도 뜯어먹으려고 연방군을 지원하는 줄 알아요?”
“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비즈니스잖습니까? 비즈니스! 회장님의 주력 투자 종목 중의 하나인 가스전도 있고 말입니다.”
“비즈니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보세요, 친강 외교부장! 나는 오직 선의로서 미얀마 시민을 도우려고 나선 겁니다! 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아니 사업가가 무슨 선의로 그런 천문학적인 돈을 미얀마에 쏟아붓는다는 말인가요?”
“하아….”
이놈들 머리통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어떻게 이리도 천박한 자본주의를 추종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에이! 그만합시다. 더 대화해 봤자 성질만 날 것 같네요. 하여간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요. 그런 제안을 하고 싶으면 미얀마 국민 통합정부로 가세요.”
“아니, 거긴 지금 반중 정서가 너무 심하여서 이렇게 회장님을 찾은 거잖습니까?”
“그들을 반중으로 만든 게 누군데요?”
“네?”
“그들을 누가 반중으로 만들었냐는 말입니다. 쿠테타 이전만 해도 미얀마인의 일반적인 정서가 친중 아니었나요? 군부나 민주 정부를 떠나서?”
미얀마는 원래 친중 정서가 강한 나라였다.
나라의 독립부터 같은 사회주의라는 동질감도 있었고, 혐성국인 영국과 인도에 부정적인 정서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이 만든 작품 중의 하나인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을 중국이 지지하기도 했고.
미얀마는 로힝야에 대하여는 이쪽이고 저쪽이고 할 것 없이 대동단결이다.
그만큼 영국 식민 시절에 당한 것도 많았고.
하여간 그런 나라를 대부분 시민이 중국에 악감정을 품게 한 것이 누구 탓이냐?
바로 본인들이잖아?
“군부가 쿠데타를 일을 켰을 때, 민주 정부 편을 들었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 안 그래요? 마음으로 응원하든 말든 간에, 당신네 중국이 미얀마란 나라가 마적 떼 같은 놈들이 지배하든 말든 중국의 이익만 보면 된다는 심보를 부렸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닙니까?”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말도 몰라요? 이거 미얀마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중국이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끝이 좋지 않을 겁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감히 우리 중국을?”
“협박은 당신들 장기고, 나는 그 예측을 했을 뿐이에요. 알지요? 내 예측이 얼마나 잘 맞는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좋지 않습니다! 강 회장! 전에도 말했듯이 한국도 생각해야지요!”
완전히 대화가 틀어지자 이젠 본색을 드러냈다.
“어떻게 안 좋은데? 왜? 우리 집을 폭격이라도 하려고? 아니면 한국에 경제보복이라도 하시게? 해 봐! 해보라고! 그만큼 했으면서도 아직 더 할 것이 남았나? 당신네 중국이 같잖은 이유로 한국에 보복한 것이 벌써 8년이야! 우리도 단련될 만큼 단련되었다고!”
“이익!”
“막말로 경제 보복해서 누가 더 아쉬운지 해볼까? 지금은 중국이 우리에게 더 수출을 많이 하는 상황이잖아? 희토류? 요소수? 뭐든 덤벼봐! 내가 놀고 있었던 줄 아나? 왜, 사성과 TK 반도체도 내쫓지 그래?”
“…….”
칼은 휘두르기 전이 무서운 법이지, 휘두르고 나면 무서울 것도 없었다.
이미 한국도 단련될 만큼 단련되었고, 14억 시장이라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툭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태클을 거는 거지 같은 중국 시장에 신경 쓰느니, 차라리 다른 곳에 하나를 더 파는 것이 낫다.
그리고 조만간 전쟁이 나면 적국이 될 판국에 무슨 협박질이란 말인가?
게다가 반도체는 자기네들이 아쉬워서라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럼 뭐가 남았는데?
“후회할 거요, 강 회장!”
“벌써 당신이랑 만난 것을 후회하는 중이니 꺼지기나 하세요. 내 앞에서 또 외교관 타령하지 마시고. 아! 하나만 더! 당신네가 미얀마 군부에 돈을 지원하여 나와 내 가족을 테러한 것은 내가 다 증거를 가지고 있거든?”
“무, 무슨 헛소리! 그런 증거 따위는 있을 수가 없소!”
“왜 없어? 돈의 흐름에 관해선 미국 정부도 우릴 못 따라오는데 무슨 소리야? 우리 존 스미스 부회장이 열 받아서 팀을 데리고 딱 3일만 추적하니까 다 나오던데?”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는 무슨 그럴 리가야? 이건 바이든 대통령과도 공유하고 있는 사실인데?”
“그럼 왜 우리 중국이 배후라고 밝히지 않는 거요?”
“바보세요? 바이든 대통령이 말리더라.”
“바이든 대통령이 왜?”
“이 답답한 사람들아! 테러를 저지르려면 좀 고급스럽게 하든가! 미국에 있는 나를 대상으로 하고, 그것도 모자라 LA 전 지역에 살바트루차 놈들이 난동을 피우게 만들었어! 이게 미국에 어떤 의미인지 몰라? 외교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
“…….”
“미국 본토에 대한 침공!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지? 왜 바이든 대통령이 일단 덮자고 한 것인지?”
“아아….”
미국 국민은 본토에 대한 침공에 극도로 예민하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당파를 떠나서 무섭게 단합한다.
이런 사실은 멀리 진주만까지도 갈 필요 없고, 가깝게 9.11 참사를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당시 눈이 완전히 돌아간 미국은 정말 무서웠다.
오죽했으면 그 북한 놈들이 참사 몇 시간도 안 되어 테러 반대와 희생자 애도의 성명을 냈을까?
제대로 걸리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일단 조지고 볼 때다.
파키스탄만 한 나라가 협조하지 않으면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협박을 받을 정도로.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단 중국 관련 부분을 덮은 것이다.
중국이 관련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여론은 일치단결해서 응징을 요구할 것인데, 그렇다면 바이든은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을 무력으로 응징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덮었다.
물론 나도 덮자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가 만난 보람이 있기는 하네요? 지금 중국군 남부전구가 미얀마 국경에서 간을 보는 모양인데, 그거 그만둬요. 만약에 미얀마에 무력으로 중국이 개입한다면….”
“개입한다면?”
“증거는 바이든 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우리가 찾은 증거라고. 그거 그냥 터뜨려 봐?”
“허억….”
“베이징으로 돌아가서 잘 생각하라고 전해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이요.”
“아, 알겠습니다.”
“…….”
친강 외교부장이 다시 고분고분해졌다.
“그리고 한국에도 헛수작 하지 말고. 보복해 봐요.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들고서 보복할 테니까. 아마 꽤 아플걸? 아무리 중국이라도?”
“…….”
“우리 이젠 그만 봅시다. 싸우다가 정들겠네.”
어떻게 보면 친강이 나를 방문하여 차라리 잘 되었다.
남부전구군이 미얀마에 개입하지는 못할 것이니까.
전쟁?
중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전쟁을 지금 벌이나?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기 위한,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연합함대와 싸우는 것에 필요한 무기체계들은 모두 2027년에 완성되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70년 이상을 참았는데, 고작 몇 년을 더 못 참을까?
친강 외교부장을 쫓아내듯이 내보낸 후, 미얀마의 헨리와 화상으로 연결했다.
“헨리.”
“네, 회장님.”
“중국군 남부전구군은 곧 제자리로 돌아갈 거예요.”
“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중국의 친강 외교부장이 날 찾아왔어요.”
난 헨리에게 친강과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허! 중국놈들이 미친 겁니까? 아니 대체 회장님을 뭐로 보고서?”
“돈만 아는 놈으로 봤나 보지요.”
“…….”
“여하튼 잘 알겠습니다. 이젠 부담 없이 군부 놈들을 칠 수 있겠습니다. 하하하!”
“조심하고요.”
“네, 회장님. 회장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중국이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걱정 마요.”
헨리와 영상 통화를 끝내고, 잠시 거울을 쳐다봤다.
정말 중국 놈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본 것인가?
정말 황당하네.
대체 나처럼 좋은 일 많이 하고 선량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역시 부처 눈에는 부처가,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