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나비 이모였다.
제인이 출산한 것을 부모님에게 알리자 바로 날아오셨고, 어디선가 여행 중이던 여동생 소미도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으허허허! 이놈 장군감이구나!”
“이 양반이? 요즘 세상에 무슨 장군감이에요?”
“아, 그런가?”
나보다도 부모님이 더 난리 치셨다.
하긴, 내가 원체 늦은 편이기는 하지.
친구분들은 대부분 진작에 손주를 얻은 모양이던데.
그렇게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 모두가 미국에서 2024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진이, 강유진이 어떠냐?”
“유진이요?”
“그래, 미국 이름으로도 되고 한국 이름으로도 되잖아? 한자 이름도 되고?”
“살짝 여자 이름삘이 나는데 괜찮을까요?”
“무슨 소리야? 남자 이름도 만만치 않게 쓴다고?”
“흐음, 유진이라….”
어차피 아버지가 지은 이상 결정이 난 것이지만, 그래도 제인에게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유진? 그거 미국 이름인데?”
“한국에도 많은 이름이야.”
“유진, 유진…. 오빠, 난 찬성! 너무 좋다. 사실 영어 이름을 미들로 따로 넣자고 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겠는걸?”
“그렇지?”
“웅!”
그렇게 강씨 집안 장손 이름은 강유진이 되었다.
내 아들이다.
집안에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축복이었다.
나와 제인은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과 소미, 그리고 장인과 장모님인 존과 에이미까지 모든 가족이 유진이를 중심으로 생활이 바뀌었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응애! 응애! 응애!”
“이봐, 존! 그렇게 잡으니까 울잖아?”
“미국에서는 이렇게 합니다만?”
“이리 건네봐요.”
아버지와 존은 원래 상당히 어려운 관계였는데, 서로 유진이를 가운데 두고 옥신각신하다 보니 상당히 친해졌다.
물론 우리 엄마와 에이미도 마찬가지였고.
“으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워낙 큰 집이라 약간 썰렁했던 우리 집이 꽉 찬 것 같았다.
그런데, 2월이 되는 첫날.
- 알렉스.
“아, 조. 웬일이세요?”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유진이가 태어났을 때 축하 전화는 이미 받았는데?
무슨 일이지?
- 아무래도 러시아에 변고가 생긴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전화했다.
“네? 러시아에요?”
- 그래, 푸틴이 죽은 것 같아.
“푸, 푸틴이 죽어요?”
푸틴이 죽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 조만간 확실해질 듯한데, 아무래도 프리고진이 일을 저지른 것 같아.
“프리고진 그놈이요? 그게 말이 됩니까?”
- 그게 말이지, 푸틴이 최근에는 프리고진을 부담스러워해서 좀 멀리했거든. 그것 때문에 프리고진이 사고를 친 모양이더라. 전세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 푸틴이 흔들리든 차에 후계 문제가 불거진 것 같더라고.
“아….”
- 하여간 그리 알고 있어라.
“네, 고마워요.”
- 아기는 잘 크지? 언제 백악관으로 데리고 와. 질이 몹시 보고 싶어 해. 나도 그렇고.
“알겠어요.”
세상에나.
정말 인생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하더니만, 푸틴이 최측근인 프리고진 놈의 손에 죽을 줄을 누가 알았겠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누군가?
악질적인 범죄자 출신에다 핫도그로 성공한 요식업자.
그러다 푸틴과 인연이 되어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던 놈.
용병인 바그너 그룹을 창업하여 푸틴의 청소부가 되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후계자 소리까지 나왔던, 그야말로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결국 사이가 틀어지더니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이거 그럼 전쟁은 어떻게 되는 거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미 돈바스 지역의 대부분을 수복했고, 크림반도에 대한 공세도 강화 중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크렘린도 어수선했던 것이고.
어쨌든 느낌이 종전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푸틴이 죽은 이상 누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더는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럼 푸틴의 후계자는?
일단 사태가 어떻게 되든 간에 프리고진이 뒤를 이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알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국방부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현재 국방부 장관이 세르게이 쇼이구?
이 인간도 전쟁에서 민심을 너무 잃어서 어려울 것 같다.
쇼이구도 아니면 전임 대통령 메드베데프?
이게 되려나?
에이, 모르겠다.
전쟁만 끝나면 그만이다.
***
2024년 2월 5일.
크렘린궁에서는 공식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이 말은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었다는 말인데, 과연 누가 이겼을까?
역시나 이어지는 발표에서 프리고진은 푸틴 살해범으로 지목하고, 도피 중인 그를 반드시 잡아서 처단하겠다고 했다.
장례위원장으로 발표된 사람은 메드베데프였다.
역시 바지였지만 대통령이었던 그가 뒤를 이를 모양이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위한 휴전을 제의했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곧 수락했다.
비록 휴전이지만 거의 2년 만에 총성이 멎은 것이다.
“제프리 형, 어떻게 될까?”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결국 크림반도가 관건인데, 그거 양쪽 다 포기하기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크림은 이미 러시아 이주자들이 전부 장악했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전부 쫓겨났고.”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크림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돈바스를 수복하기는 했지만, 거기는 이미 콩가루가 되어버렸어요. 그것만 받고서는 유리한 전쟁에서 잃어버린 실지 회복을 눈앞에 두고서 포기할 수는 없어. 아가 그랬다가는 젤롄스키 입지도 흔들릴 것이고 말이야.”
“결론은 러시아가 종전하려는 의지가 얼마가 되느냐일 것 같은데….”
“그러게요.”
러시아 상황은 좀 이상하게 흘러갔다.
푸틴의 장례가 끝난 후, 현재의 총리인 미하일 미슈스틴이 현재 전쟁의 좋지 않은 상황과 푸틴의 살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리에 오른 이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직 총리이자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총리 자리에 다시 오른 메드베데프는 바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고, 1년 이내에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깜짝쇼는 그다음이다.
공석인 총리에 엘비라 나비올리나가 지명된 것이다.
“오! 나비 누님이?”
“어째서 나비올리나가 네 누님인 거냐?”
“흐흐흐! 한국의 인터넷에서 다 그렇게 부른다고요.”
“놀고 있네. 하여간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나비올리나가 총리라, 상당히 실권을 가질 것 같지 않냐?”
“그렇지 않겠어요? 러시아의 경제 사령관으로 사실상 지금까지 러시아 경제를 멱살 잡고 지탱한 여자인데? 러시아 국민의 호감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어쨌든 러시아 진용도 새로 짜졌으니 종전 협상이 탄력받겠다.”
“그렇겠지요. 어서 끝나야지.”
“그러게.”
***
3월 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종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원인은 역시 크림반도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양쪽 모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띠리링! 띠리리링!
“음? 블링컨?”
앤서니 존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바이든 소개로 안면이 있었고 개인 전번도 교환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서로 연락할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 앤서니.”
- 알렉스, 앤서니입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우리 본 적이 오래되었죠?”
- 하하하! 그렇습니다. 한 1년은 된 것 같습니다.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맛있는 거나 먹읍시다.”
한국인의 종특, ‘언제 한번 밥 먹읍시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거 정말 고쳐야 하는데 고쳐지지 않네.
- 네, 그러시지요. 30분 이내로 알렉스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엉? 하하하! 앤서니, 농담이 많이 늘었어요.”
- 농담이 아니라 10분 후에 LA 공항에 도착합니다.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뭐, 뭐? 아니 앤서니 무슨 소리예요?”
- 자리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하하!
“아니, 앤서니? 앤서니? 여보세요? 야!”
뭐냐 이 사람?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블링컨 국무장관은 진짜로 30분도 채 되지 않아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니, 앤서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하하하! 저는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됩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일단 차라도 한잔 주시지요?”
“위스키?”
“좋지요.”
위스키 한 잔씩을 따라 마신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짜 무슨 일이에요?”
“부탁이 있어서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음? 부탁? 앤서니가?”
“네, 알렉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내게 부탁할 일이 있을까?
“무슨 부탁인데요?”
“알렉스가 러시아에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러시아? 그 러시아? 전쟁 중인?”
“네, 그 러시아 말입니다.”
“하하하! 무슨 농담을 그리 진지하게 하시나?”
“하하! 농담이 아닙니다만?”
“…….”
어이가 없어서 블링컨을 뻔히 쳐다보았다.
“아니 내가 거길 왜 가요? 중국만큼은 아니어도, 러시아도 내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을 알아서 날 얼마나 싫어하는데요?”
“알렉스도 알다시피, 지금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하잖습니까?”
“그런데 그게 왜요?”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크림반도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재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누굴 내세워도 어느 한 편에서는 믿질 못하니까요. 협상만 벌어지면 서로 꼬투리나 잡다가 끝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와중에 러시아가 의외의 제안을 했습니다. 바로 알렉스를 협상의 중재자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지요.”
“나, 날? 아니 날 왜요? 러시아 입장에서는 원수 같은 놈인데?”
“하여간 상황이 그렇고, 우크라이나야 당연히 흔쾌히 찬성했습니다. 알렉스 말이라면 무조건 듣겠다는 입장입니다.”
“이거 미치겠네. 아니 대체 어떤 망할 인간이 나를 지목한 거예요?”
“협상의 전권을 맡고 있는 러시아 총리입니다.”
“누구요?”
“러시아 총리, 엘비라 나비올리나 말입니다, 잘 아시지요?”
“헐! 아유! 싫어요. 내가 거길 왜 갑니까?”
“정말 부탁드립니다.”
“이거 바이든 대통령은 알고 있어요?”
“당연하지요? 가서 잘 꼬셔보라고 격려까지 받았습니다만?”
“…….”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했으나,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까지 전화로 압박하는 바람에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인류 평화까지 들먹이면서 무조건 가달라는데, 이걸 어떻게 거절하냐고.
젤롄스키는 심지어 우크라이나 국민 불쌍하지도 않냐면서 매달렸고 말이다,
아웅, 하여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
다음날 전용기를 타고서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먼저 날 지목한 나비올리나 총리를 만나야 했기에.
“어서 오세요, 회장님. 저는 엘비라 나비올리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알렉스 강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의 전쟁경제 총사령관.
서방의 온갖 제재에도 신기에 가까운 통화정책으로 그나마 러시아를 지탱하고 있는 강철의 여전사.
그녀의 첫인상은 예상대로….
“호호호! 그냥 엘비라라고 불러요. 나도 알렉스라고 부를게요. 어머! 훤칠한 것좀 봐봐!”
“…….”
나비 이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