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복마전이 따로 없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났다.
2차대전 이후로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전쟁은 양측에 상처만 가득 안겨 주었다.
피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십수만의 전사자와 그보다 많은 부상자, 그리고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고, 전 국토는 누더기가 되어서 그 피해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인구 유출이다.
1990년대 초반에 5,0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던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그런데 혼란을 거듭하고 저출산 기조가 확산하여 4,000만으로 줄어들더니, 이번 전쟁으로 수백만의 피난민이 발생하면서 거의 3,000만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런 피난민이 전쟁이 끝났다고 환호하면서 바로 귀국할까?
이미 폴란드는 물론이고 세계 4위의 경제 대국 독일까지 흘러가서 적응하며 살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전시 피난이라는 명목으로 평소 같았으면 입국조차 힘들었을 나라에서 간신히 자릴 잡고 사는데, 기본적인 인프라마저 파괴된 고국으로 몇 명이나 돌아가겠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우크라이나가 이번에 유출된 인구를 다시 찾으려면 정말 긴 세월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거였다.
러시아도 만만치 않았다.
초기에 3일 컷을 외치면서 전투 식량조차 제대로 안 챙기고 호기롭게 침공했지만, 전쟁은 무려 2년이나 끌었다.
러시아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병폐를 보여주면서.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은?
푸틴의 추락과 암살, 서방의 제재로 인하여 사실상 중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경제,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하여 갈아버린 미래만 남았을 뿐이다.
2014년에 손쉽게 획득한 크림반도를 도로 토해낸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서방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변변한 제조업이 없는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던 것이 가스와 석유 등을 비롯한 천연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 천연자원의 최대 소비자는 당연히 서방 국가들이었는데, 이제 누가 러시아에 자원을 의존할까?
언제든지 '잠가라 밸브!'를 외치면서 협박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이러다 보니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깊어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나비올리나가 나를 악착같이 개입시키려고 했던 것도 잃어버린 신뢰를 나를 통하여 어떻게든 커버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카르마 인베스트먼트가 러시아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다고 하자 여러 경제 지표는 바로 반등하는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쨌든 아무리 나비올리나라도 당분간은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치러야 할 당연한 업보이기도 한 것이고.
국민은 괜찮았는데 지도자가 나빴다?
전부 개소리다.
푸틴을 지도자로 선택한 것은 러시아 국민이다.
합산 투표율 140%라는 엽기적인 선거를 통하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푸틴이 절대다수의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억울해하지 마라.
당신들의 선택으로 뽑은 지도자였으니 그 결과도 그들이 받아야겠지.
***
며칠 후,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젤롄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전쟁은 끝났지만,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네,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젤렌스키의 말처럼 수도 키이우는 여기저기가 파괴되어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젤롄스키 대통령,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네?”
“건물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어도, 사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는 나은 편이에요.”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여기저기 많이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산업 기반이 살아 있잖습니까? 거기다가 광대한 옥토와 자원도 제법 있는 편이고요? 우린 그런 것도 없었어요.”
“아, 한국 전쟁을 말씀하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우리나란 정말 철저하게 파괴되었지요. 전 국토가 말입니다. 게다가 좁은 땅덩어리에 팔아먹을 지하자원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은 그 잿더미 속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그만큼 고통을 감수하면서 노력한 덕분이지요. 먹을 것도 없는 와중에도 미래를 위하여 자식들을 교육 시켰고요.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아시겠습니까?”
“결론은 사람이라는 것이잖습니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전방위적으로 개혁하시고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나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대통령께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잘하신다면 나도 계속 지원할 겁니다. 하지만 전쟁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나는 손을 뗄 것이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지요.”
“그래요.”
젤롄스키는 전쟁으로 적어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힘을 가지고서도 개혁에 실패한다면 그건 아마도 의지가 없었다는 말일 것이다.
앞으로 이전처럼 미녀들이나 서방에 공급하면서 살지, 아니면 개혁에 성공하여서 선진적인 나라로 다시 태어날지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려 있으니, 잘 해보기를 기원한다.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하여도 나는 할 만큼 한 것이니까.
***
2024년 8월에 한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기에 냉큼 달려갔다.
“드디어 완성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3일 후에 비밀리에서 진수할 예정입니다.”
“하하하! 정말 기분 좋군요.”
“모두가 회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원자력추진 공격 잠수함이 드디어 건조되어 진수식을 한다고 한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건조한 것이다.
트럼프 시절부터 비밀리에 추진했으니 상당히 오래 걸렸지만, 해군 함정 프로젝트가 대체로 10년을 잡는 것이 보통이고 게다가 우리나라가 여태껏 건조한 적이 없었던 원자력 잠수함 프로젝트임을 생각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건조한 것이다.
일단 철저하게 내 돈으로 만들다 보니 번거로운 행정적인 절차 따위가 없었고, 그야말로 돈 폭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돈을 들이부은 결과였다.
역시 돈이 최고다.
“하나! 둘! 셋!”
뿌아아앙!
스폰서인 제인이 힘차게 작은 도끼를 내려쳐 진수선을 끊자, 웅장한 자태의 한국 최초의 원자력 공격 잠수함이 함번과 함명을 얻으면서 태어났다.
SSN-101 장보고.
올해 초 30년 전에 취역했던 209급 장보고함이 한국 해군에서 퇴역하여 필리핀으로 공여되자, 그 함명을 이어받았다.
수중 배수량 8,000톤의 매끈하게 빠진 검은 거체를 바라보자 정말 가슴이 뛰었다.
“해군에서 인수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원래는 원자력추진이 처음이라 3년은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 주변 정세가 너무 좋지 않아서 2년 내로 마칠 생각입니다.”
“서두르세요. 2번함은요?”
“곧바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초도함에서 별문제가 없으면 바로 3번함도 건조에 착수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습근평의 뒤통수를 후려칠 무기체계다.
2027년이 되기 전에 한 척이라도 더 만들어야 했다.
***
2024년 8월 29일.
원자력 공격 잠수함의 진수식을 마치고 열흘 정도 한국에 있으면서 조만간 다시 미국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저녁에 유진이와 놀고 있는데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누구지?
유진이가 태어난 후로는 퇴근하면 무조건 집으로 직행했기에 주변 사람들도 웬만하면 저녁에는 전화하지 않는데?
“음?”
발신자 표시를 보니 청와대 비상 연락망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여보세요?”
- 회장님. 대통령실 조만기입니다.
“아, 조 수석님 무슨 일이십니까?”
- 전화상으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긴급한 일로 NSC가 소집되었습니다. 대통령 님께서는 회장님도 꼭 참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 수석의 음성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러면 갈 수밖에.
청와대 헬기장을 개방해 주겠다고 하여 전용 헬기를 타고 날아가니 금방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로 지하 벙커로 가니, 이미 나만 빼고 거의 모든 NSC 위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 회장님.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김정은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네? 누구요?”
“북한 김정은 말입니다. 10시간 전에 사망했다는 첩보가 있었는데, 현재로서는 99% 사실 같습니다.”
김정은이 죽다니?
아무리 건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벌써 죽어?
그것도 북한 최고의 의료 케어를 받고 살 텐데 말이다.
“아니 저와 동년배인 사람인데 죽어요?”
“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죽을 줄은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암살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병사했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조금 전의 첩보로는 급작스러운 심정지가 왔다고 합니다. 의료진이 달라붙어서 살려내려고 했지만, 소생시키는 데에 실패했다고 하고요.”
“허어!”
“문제는 김정은이 어떻게 죽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후계 구도 때문에 지금 평양이 몹시 소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너무 빨리 죽었으니까요.”
“…….”
작년에 2013년생인 장녀 김주애를 연초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후계자 작업에 들어간 것처럼 보여서 실소를 자아냈는데, 그 김주애는 이제 고작 우리 나이로 12살이다.
진짜 왕조라면 누군가가 섭정을 하면서 왕조를 이어가겠지만, 북한은 어디까지나 유사 왕조다.
아무리 대를 이어 충성한다지만, 12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충성하겠냐는 것이지.
이거 엄청 복잡해지는데?
“그럼 김여정이?”
“김여정이 수령 자리를 노리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우리 나이로 12살짜리가 수령 자리에 오를 수는 없을 거잖습니까? 아무리 북한이라도 말이지요?”
“그게 그렇지도 않아요. 지금 북한은 권좌를 놓고서 3파전이 벌어지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파전씩이나요?”
“네,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김여정을 수령으로 추대하자는 무리입니다. 원래는 세력 자체가 미미했는데, 김정은의 죽음이 수뇌부에 알려지면서 급격하게 세를 불린 모양입니다.”
“그렇겠지요.”
김정은이 권좌를 이어받을 때도 20대 후반이었지만 불안 불안했는데, 이제 12살?
나라도 싫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그래도 김주애를 추대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리설주가 섭정하자는 무리입니다.”
“진짜 왕조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쪽은 뭐랄까, 말이 리설주가 섭정하자는 것이지 사실상 다른 무리가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주애를 내세워서 뒤에서 조종하다가 기회를 노리려는 것이지요.”
“야심이 있는 놈들이네요.”
“마지막으로는 일단 김정은의 죽음으로 백두혈통은 끊어졌다고 보는 무리입니다.”
“그럼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부 군부의 고위장성들로 추정되는데, 아예 군부 중심의 집단 지도체제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허어….”
진짜 복마전이 따로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