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하나로 합치자는 말입니다.
“심각한 것은 세 번째 무리입니다.”
“네? 어째서요?”
“그놈들은 배후가 있는 것으로 우리 정보부서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배후요? 김정은이 죽은 지 10시간밖에 안 되었는데요?”
“그만큼 무서운 놈들이지요.”
“설마….”
“아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회장님이 그렇게 우려하시는 중국입니다.”
“허어….”
환장하겠네.
또 중국이야?
대체 그놈들은 우리 민족하고 무슨 원한이 그리도 많길래 이러는 것이지?
“북한이 지금과 같은 급변사태를 맞이했을 경우에 중국이 개입하리라는 것은 익히 예상하던 바였습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당혹스럽습니다. 우리가 중국의 개입에 대응한다고 생각한 것은 고작 제2 신속대응사단의 창설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손을 써버리면 우리가 개입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렇지요.”
“…….”
제2 신속대응사단.
유사시 여단급 부대를 항공기로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국군의 유일한 공정부대로, 과거의 제2작전사령부 산하의 201과 203 특공여단을 배속받아 창설한 특수임무 부대이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의식하여 중국에 대응하는 목적은 밝힌 적이 없지만, 북한의 급변사태에 압록강으로 넘어가 중국의 개입을 방어하는 것은 이 부대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처럼 북한군 내부에서 중국의 후원을 받고 뒤집기라도 한다면, 그 방법도 소용없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은 사태를 지켜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현재 말씀드린 것도 우리 국정원에서 오래전에 심어 놓은 휴민트로부터 간신히 들은 겁니다.”
“그래도 국정원에서 제대로 일했군요.”
“하하하!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관여했던 과거 문제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도 있지만, 대북 정보, 특히 휴민트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입니다. 이건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미국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우린 같은 민족이니까요.”
“휴우! 맞습니다. 우린 같은 민족이지요.”
대통령의 말 중의 끝부분이 정말 안타깝게 다가왔다.
우린 같은 민족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개떡 같은 경우냐?
오래전에 그렇게 서로 상잔하고도 이 모양이라니.
“회장님을 부른 것은 워낙 우리 국방에 지분이 많으시고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워낙 가까우시잖습니까? 잘 좀 상의해 주세요. 물론 우리도 따로 미국에 통보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도 미력이나마 돕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염주만 계속 쳐다보고 이리저리 계시를 주지 않을까 해서 궁리했는데, 이상하게 염주는 이런 일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외신을 시작으로 김정은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우리 언론에서도 서서히 떠들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저녁에 그런 첩보가 있기는 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발표하고 말았다.
김정은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가끔 심심하면 한 번씩 돌았던 터라, 여론은 금세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관심을 끊었다.
***
사흘 후, 청와대에서 급하게 나를 다시 찾았다.
“무슨 소식이 있습니까?”
“급보가 있었습니다. 리설주 측이 비밀리에 우리에게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아!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북한 상황은 리설주와 중국의 후원을 받는 일부 군부 세력의 2파전으로 가는 양상입니다.”
“음? 김여정은요?”
“김정은 사후 초기에 잠시 김여정 섭정론이 대두되었지만,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팽배한 북한 사회의 벽을 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바로 리설주 측에게 흡수되었습니다.”
“아니, 그럼 김주애는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김주애도 마찬가지잖습니까?”
“김주애는 일종의 방패였던 모양입니다.”
“방패요?”
“네, 베일 속에 있었던 장남이 본격적으로 후계자로 오를 때까지 얼굴마담 역할을 맡긴 것이지요. 이거 어린 여자아이에게 얼굴마담이란 말을 써서 좀 민망하기는 합니다만….”
“장남이요? 김정은 장남은 문제가 있다고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일부러 그런 모양입니다. 과거에 김정은이 깜짝 등장한 것과 같은 행태입니다.”
“허어….”
정말 어렵게도 산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런데 왜 특사를 보낸다는 겁니까?”
“그것을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그리 불리하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거든요. 어쨌든 김정은 유족이 백두혈통이라는 명분을 쥐고 있는 데다가 김여정 측이 가세하면서 주도권까지는 아니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세해질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허! 거참!”
“일단 특사를 봐야지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따 저녁에 같이 보시지요.”
“네? 제가요? 제가 왜….”
“그쪽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회장님과 같이 뵙기를 희망한다고요.”
“…….”
대체 왜 내가 자꾸 이런 일에 말려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쪽에서 보자고 했으면 봐야 한다.
어쨌든 다른 나랏일도 아닌 우리나라 일이니까.
저녁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특사가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했다.
특사는 예상보다도 거물이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바로 조용원 조선로동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몰랐는데, 국정원 관계자의 말로는 김정은의 복심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실세 중의 실세라고 했다.
“반갑습니다. 어려운 길을 오셨습니다. 이분은 귀측의 요구대로 참석해 주신 강철식 회장님이고, 여기는 우리 국가정보원 원장님입니다.”
대통령이 배석한 나와 국정원장을 소개했다.
“저는 조용원입니다. 제 신상에 대하여는 잘 아실터이니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서거하신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오신 겁니까?”
“상황인 상황이니만큼,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귀측에서도 솔직 담백하게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지도자 동지께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군부 내의 일부 반동 새끼들이 중국의 후원을 받아서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흐음….”
“여전히 군부 핵심은 우리가 쥐고 있지만, 놈들은 중국 놈들의 북부전구 군대를 거론하면서 위협하기에 상황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자들의 수장이 누구입니까?”
“리태섭 사회 안전상입니다.”
“아, 그 사람이로군.”
“역시 그렇군요.”
대통령과 국정원장은 누군지 아는 것 같았으나,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하여간 조용원이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군부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이런 소릴 늘어놓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그자들의 요구 사항이 뭡니까?”
“놈들은 지도자 동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자신들이 집단적으로 공화국을 통치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 동지의 자제들이 너무 어리다는 것이 명분이지요.”
“그럼 김여정 부부장도 있잖습니까?”
“그놈들은 백두혈통이라도 애미나이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 저런….”
“여하튼 전부 개소리고, 그저 놈들이 권력을 잡고 공화국을 통치하겠다는 겁니다. 망할 중국놈들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군부 핵심이 여전히 충성한다면 군대를 동원하여 쓸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휴우! 우리가 군대를 동원하면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지도자 동지의 장례식을 마친 후에, 이제까지 후계자로 공개되었던 김주애 영애를 그대로 후계자로 내세우되 자신들이 주축이 된 자문 위원회를 조직하여 섭정하겠다고 합니다. 글자 그대로 김주애 영애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실질적인 통치는 자신들이 하겠다는 거지요. 그러다가 몇 년 후에는 그마저도 내려 앉힐 심산이고요.”
“상황이 좋지 않군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조용원의 말을 들어보면 좋게 봐주어도 현재 세력 대결은 백중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죽음이 발표되고 그놈의 어린 애들이 후계자로 올라서도 과연 그럴까?
김정은이 20대 후반에 후계자로 설 때도 초기에는 여러 말이 나왔는데?
아무리 북한이라도 현재의 백중세 구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오신 용건은 무엇입니까?”
“우리 존경하는 리설주 여사께서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놈들을 쓸었다가는 공화국에 내전이 발발할 수 있을 것이고, 잘못하면 공화국 전체가 중국놈들의 수중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조 선생님”
“네?”
“우리 처음에 솔직하게 대화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핵심을 바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아….”
대통령에게 바로 지적당한 조용원은 한숨을 쉬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우리 존경하는 리설주 여사의 뜻을 말씀드리지요. 우리 리설주 여사께서는 자제분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은?”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언젠가는 그놈들에게 영식과 영애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것을 우려하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군요.”
이제야 왜 특사가 내려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리설주는 아이들의 엄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아이들의 안전과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아니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사님의 전언입니다. 이제 우리 남북한이 하나가 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허어!”
“흐음!”
“쎄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쎄다.
이렇게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올 줄이야.
“아주 까놓고 말씀드리지요.”
“그, 그러시지요.”
“리설주 여사께서는 결국에는 중국놈들에게 공화국이 넘어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되었을 때의 자제분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요?”
“중국 놈들을 경계한 것은 지도자 동지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리설주 여사를 포함한 우리 공화국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남조선에 손을 내밀기로 말입니다.”
“아….”
“우리 통일합시다. 하나로 합치자는 말입니다.”
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게나 원했던 통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정원장도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이었다.
“그럼 조건은요?”
“조건은 지도자 동지 일가족은 철저한 신변 보장입니다. 거기에 우리가 지정하는 간부들과 가족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음….”
“그리고 이것을 남조선 정부뿐만이 아니라 강철식 회장님께서 보증하시기를 원합니다.”
“내가요?”
“네, 그렇습니다.”
“…….”
결국, 날 부른 이유가 이거였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