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그렇게 전쟁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 물러나라고요?”
“우리도 성의 표시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서해 도발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하세요.”
“대외적으로만 하겠습니다.”
“웃기지 마쇼. 그러면 당신네 중국 인민들은 계속 우리 한국을 욕할 거 아니야?”
“그럼 대내적으로는 사고였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우리 시스템에서는 전적으로 우리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발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당신네 그런 거지 같은 시스템까지 봐줘야 하는 거지? 우리가 얻는 것이 뭐가 있다고?”
“시간이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뭐요? 시간?”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한국은 지금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지 않고 빠져나갈 시간, 한창 공사판인 북한 수복지역이 안정될 시간, 그리고 과거 남북한으로 나누어졌던 통일 한국군의 통합이 안정될 시간!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
“지금 당장 우리 중국과 한국이 충돌하면 서로 좋지 않습니다. 송구합니다만, 이 정도로 양해해 주시지요.”
빌어먹게도 친강 외교부장의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였으니까.
우리 한국의 모든 중국에 대한 대비는 2027년 상반기로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나 돈을 퍼붓고 독촉했지만 여전히 1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최소한 중국 국내에도 중국 측의 오해였다고 해요. 그 밑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저기, 회장님…….”
“그만! 이것도 우리가 양보할 만큼 한 겁니다. 적어도 화살을 우리 한국으로 돌리지 말라는 요구예요. 어쩌다가 내가 우리 한국을 대표하는 것처럼 당신과 이런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우리 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또한 우리 유학생들을 죽인 그 홍위병 놈들은 모두 제대로 처벌하세요.”
“그야 물론입니다.”
“유학생들이 죽을 때 있었던 시위대 전원입니다. 주동하고 한 대라도 때린 놈들은 살인죄로 처벌하고, 부회 뇌동하여 시위대에 참석했던 놈들도 모두 강력하게 처벌하세요.”
“예? 시위대가 수천 명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 처벌하란 말입니까?”
“이거 왜 이래요? 중국 시스템에서는 가능하잖아요? 14억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으면서 엄살은……. 그리고 수천 명? 중국은 대국이잖아요? 누가 그랬더라? 중국에서는 100만도 소수라고?”
“…….”
누군 누구야.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타령하던 등가 놈이 그랬지.
천안문 사태 당시에 말이다.
“이건 우리 정부고 뭐고 간에 내가 용납 못 합니다. 그 망할 소분홍인지 빨갱이인지 하는 등신들 모두 처벌하세요. 솔직히 이미 다 파악하고 있을 텐데? 스마트폰에 행적 다 나오잖아요? 그리고 그놈들은 당신들 통제도 벗어났다면서요?”
“아, 알겠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대충 처벌하면 알지요?”
“확실하게 하지요.”
“학생들의 유족은 물론이고 교민들, 한국 기업들에 대한 손해배상도 철저하게 하세요.”
“보상은 넉넉하게 하겠습니다.”
“배상이라니깐? 말은 바로 합시다.”
“네, 배상으로 하지요.”
보상과 배상은 확실하게 다르지.
어디서 수작을 부리고 있어.
“마지막으로 지금 중국에 가해지는 제재 모두를 철회하기는 어려워요.”
“회장님!”
“내 말 끝까지 들어요. 지금 가해지는 제재 중에서 각국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부 철회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막말로 미국 정부가 내 부하예요? 독일 정부가 내 부하입니까? 내가 이러라고 하니 이랬다가, 풀라고 지시하면 바로 풀게?”
“…….”
“게다가 정부 차원의 제재 중 절반 정도는 원래 예정되었던 것을 앞당긴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까지 철회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단 말입니다.”
“하아…….”
“대신에 우리 카르마가 진행하던 제재와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에서 하던 제재는 풀릴 겁니다. 그걸로 만족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하지요.”
“그럼 가보세요.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때는 승자와 패자로 만날 겁니다.”
“아마도요.”
친강 외교부장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 할 때 내가 다시 불렀다.
“친 부장님.”
“네?”
“그 소분홍들 말입니다.”
“네.”
“중국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그렇게 학습 효과가 없나?”
“무슨 말씀이신지…….”
“과거 문화대혁명 당시에 홍위병들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잘 알면서 그걸 또 만들어요? 중국 전역을 초토화하다시피 한 놈들을 말입니다.”
“…….”
“역사는 반복되는 법입니다. 이번에도 통제에서 벗어났듯이, 걔들이 계속 통제 가능할 것이란 망상은 하지 마세요. 당신들 수뇌부 상당수는 다시 조리돌림 당하는 날이 분명히 올 겁니다. 그나마 친 부장은 온건파라는 것은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당신이 조리돌림 당하는 것은 보기 싫거든요.”
“가보겠습니다.”
중국과의 이 어이없는 전초전은 이렇게 끝났다.
서로 조만간 제대로 붙을 것을 알면서 말이다.
존에게 연락하여 놈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제재를 풀기로 했는데, 참 애매하게 조건을 지키는 것을 보니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중국은 GPS 신호의 오류로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하여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라면서 사과했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지금 동아시아에서 수신할 수 있는 GPS만 무려 7개다.
전 지구를 커버하는 범지구적 위성 항법 시스템이 미국이 GPS, 러시아의 글로나스, EU의 갈릴레오, 중국의 베이더우까지 4개.
그리고 지역 한정 위성 항법 시스템이 인도의 IRNSS, 일본의 QZSS,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일정을 당겨서 서둘러 완성한 KPS까지 3개 해서 총 7개다.
거기다가 초계함이 한 척만 있었나?
중국 어선들은 GPS가 없었고?
뭐, 말도 되지 않는 개소리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에브리바디가 알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사과를 받는 것이 중요한 거였으니까.
물론 우리의 제재 철회도 그에 맞추어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었다.
당연히 항의가 들어왔지만, 너희들 수준에 맞춘 것이라 하니 입을 다물 수밖에.
다만, 우리 유학생들을 죽인 놈들에 대한 처벌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시위 주동자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을 때린 놈들 총 16명을 전격적으로 사형한 것이다.
그밖에 시위에 참여한 2,000여 명도 모두 징역을 선고했고.
“대체 저놈들은 사람을 뭐로 아는 겁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사람 소중한 것을 모르는 것인지.
주동자 몇 명 정도는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16명씩이나 죽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도 통제를 벗어난 것에 대한 경고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이거 참…….
입맛이 썼다.
어쨌든 중국 놈들이 애초에 목적한 것처럼 우리 통일 한국과 중국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지금은 서로 시기가 아니라 생각되어 서둘러 봉합했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이젠 중국과의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뜻밖의 효과가 생기게 되어서 이걸 습가 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나조차 헷갈렸다.
결국은 한국과 중국 양쪽의 온건론자들은 한 방에 정리된 셈이니까.
이에 따라서 한국 기업들의 탈 중국과 교민 및 유학생의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그렇게 빨리 정리하라고 독촉해도 말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반대로 중국인들의 한국 탈출도 가속화되었다.
원래 이쪽은 중국 정부나 중국인들이나 서로 신경도 쓰지 않다가 이번 사태로 도저히 한국에 있기 어렵게 되었으니 전부 빠져나가기 시작한 거였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 법무부 공식 명칭으로는 한국계 중국인들이었다.
한국 국적 취득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
한국 내의 혐오 정서 때문에 국적 취득을 망설이던 사람들이 문제가 된 거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는 어쨌든 중국 국적자이기에 이들에 대한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정부는 한시적인 특별법을 시행하여 조선족임이 확인되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취득 조건을 풀고 국적 취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원래라면 어쨌든 중국 국적자를 자국인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외교적인 마찰로 시행하기 어려운 조치였으나 지금이야 알 바 아니었다.
이제 공은 한국계 중국인에게 넘어간 것이기에 그들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한국을 선택할까, 아니면 중국을 선택할까?
솔직히 나조차도 중국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우리 통일 한국이 조만간 중국과 붙을 것을 아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력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한국을 선택할 수 있을까?
통일이 되면서 덜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90% 이상이 한국을 선택한 거였다.
“오잉? 이거 의외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반 이상이 중국을 선택하여 한국을 떠날 줄 알았는데요?”
“뭐, 어쨌든 잘된 일이네요. 한국 사회에서 잘 섞이지 못하고 서로 디스하는 정서가 많아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동족이니 동포니 하는 감상적인 면 때문이 아니라, 지금은 인구가 소중한 세상이에요.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되자 중국에 거주하는 재중동포들의 위치가 또 이상해졌다.
한마디로 중국 당국이나 일반인들이나 우리 한국계 중국인들을 못 믿을 소수 민족으로 여기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니 견디다 못한 재중동포들의 한국행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우리 정부로서는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일은 없었다.
지금은 남이나 북이나 사람이 소중한 세상이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만 하세요! 간단한 증빙만 있으면 뭐든지 사드리겠습니다!”
이후로 나는 거의 한국에서 거주했다.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 이상, 한국은 알게 모르게 거의 전시 체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고 말이다.
어쨌든 돈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납기, 그리고 또 납기이다.
이런 상황이 되니, 왜 폴란드가 그 난리를 치면서 우리 무기를 구매해 갔는지 알겠더라.
여하튼 국내 생산이 어렵거나 납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무조건 해외 구매로 돌렸다.
지금은 국산 우선 원칙을 따질 때가 아닌 것이다.
2026년 가을이 되자, 이젠 방위사업청 직원들이 우리 마곡 사옥에 상주하는 지경까지 되었고, 우리 직원들과 협의하여 필요성이 인정되면 바로 발주했다.
“필요하면 발주부터 해요! 삽질했다고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언제 들어온다고? 내후년? 에이! 내년 안으로 당겨! 돈 더 준다고 하란 말입니다!”
“어디? 어떤 놈이 우리 사이에 껴들었어!”
그렇게 전쟁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