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개표 볼 것도 없네요.
그날 저녁에 대통령이 보자고 해서 급히 청와대로 들어갔다.
“정말 대선에 나오시는 겁니까?”
“네, 그래서 직접 기자회견까지 한 겁니다.”
“아니 이쪽으로는 전혀 관심도 없으셨던 것 같더니만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뭐, 관심이 생긴 것으로 하지요. 솔직히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좀 지쳤고요.”
“그럼 정당은?”
“무소속으로 할 겁니다. 어차피 이번 임기만 마치면 이쪽 동네는 쳐다도 안 볼 생각이라서요.”
“그래도 원활하게 국정 운영을 하려면 필요하실 텐데요?”
대통령이나 나나 내가 당선된다는 것은 일단 기정사실로 여겼다.
“제 뜻에 반기를 드는 국회의원은 없을 겁니다.”
“하기는…. 그랬다가는 바로 매장당할 테니까요.”
“어차피 내년에 총선이 있으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겁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대신에 여야 후보들에게 회장님의 이번 출마는 저와 상관없다고 말씀 좀 해주시지요. 아주 그냥 양쪽에서 모두 제가 부채질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어서, 제가 많이 곤란합니다.”
“그거야 뭐,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회장님이 당선되는 것은 워낙 명확하니까요.”
“그렇게 하지요.”
“하하! 어쨌든 한시름 놓았습니다. 워낙 복잡한 상황에서 임기를 마치게 생겨서 불안했는데 말입니다. 회장님이라면 걱정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는 한다고 했는데, 눈치를 보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 같아서 입맛이 씁쓸했다.
임기 막판의 대통령이니 아무래도 대한민국 역사상 최강의 대통령이 될 것이 뻔한 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이미 대통령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럴 것이고.
그나마 난 다행인 것이 내가 임기를 마치더라도 다른 대통령과는 달리 세계 최고 부자의 타이틀은 계속 달고 있을 것이니 내게는 레임덕 같은 것이 없겠지만.
다음 날.
여러 여론기관에서 긴급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하나 같이 내 지지율이 90%를 넘어섰다고 한다.
사실상 선거는 해보나 마나인 셈이지.
그래도 형식적인 요건은 갖추어야 하기에 각 시·도별 700명 이상, 5개 이상의 시·도에 걸쳐서 총 3,500명 이상의 추천인을 만들어 중앙 선관위에 제출했다.
그리고 장영동 이사장을 장으로 선거 캠프를 만들었는데, 이게 전부였다.
어차피 내가 당선될 것이 뻔한데, 선거 유세 같은 것도 필요 없으니까.
그저 법정 TV토론에 나가서 몇 마디 떠들었는데, 여야 후보 모두 이번 선거는 포기하고 다음 선거를 기약하러 나왔기에 두 사람만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내 재산 신고였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다 신고하냐고?
“뭐래요? 중앙 선관위에서는?”
“그쪽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우리보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요?”
“결국, 예외를 인정하여 작년 12월 31일 자의 추정재산만 얼마인지 신고해 달라고 합니다. 어차피 시비 걸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면서요.”
“그럼 그냥 10조 달러 이상이라고 하세요.”
“네….”
내 재산을 검증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니, 그냥 이렇게 퉁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별다른 선거운동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내 일만 묵묵히 하는 사이에 대선일인 2027년 3월 3일이 되었다.
“준비됐어?”
“응, 오빠.”
제인은 이제 한국인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될 것이 틀림없는 사람을 외국인으로 놓아둔 채 선거를 치를 수가 없어서 대통령 특별 명령으로 국적취득을 신청한 지 딱 하루 만에 한국인이 되었는데, 이걸 가지고 시비 걸 간 큰 용자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있기는 했지만, 내가 선거운동을 하지 않으니 언론에 노출될 일도 없었고.
하지만 선거일까지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오늘 처음으로 나와 함께 판교의 투표소에 투표하러 가는 것이다.
즉, 제인은 오늘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다.
경호원에 둘러싸여서 투표소로 가니, 우리 부부가 투표하는 것을 중계하거나 취재하기 위하여 구름 같은 기자들과 지지자들이 몰려와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인, 그냥 살짝 웃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응, 오빠.”
제인과 내가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엄청난 플래시가 터졌다.
파파파파파파팟!
“회장님! 여기 좀 봐주세요!”
“이쪽입니다, 이쪽! 영부인께서도 같이 돌아서 주시고요!”
“…….”
이 사람들이 아직 대통령도 안 되었는데, 무슨 영부인이야?
“우와와와! 선녀다! 선녀!”
“무슨 선녀야? 엘프잖아! 엘프!”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 세계 최고 부자에, 세계 최고 미녀까지!”
한국에 처음 선을 보이는 제인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제인의 나이는 아직 서른을 넘지 않았고, 관리야 쌓인 것이 돈인데 오죽할까?
그러니 유진이를 출산했지만, 여전히 외관상으로 20대 초반의 극강 미모를 자랑했다.
“사모님! 여깁니다! 여기!”
“허허!”
“이쪽 좀 봐주세요!”
“하하!”
“회장님! 사모님 가리지 마시고 좀 옆으로 비켜주세요!”
“…….”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아주 나는 뒷전이었다.
결국, 간신히 투표함에 투표하는 모습까지 억지로 웃으며 버티고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힘들지? 제인?”
“아니, 재밌는데?”
“그래? 은근히 사진 체질인가 보네?”
“호호호!”
“하하하!”
저녁 6시.
마곡 사옥의 내 방에서 장영동 이사장님과 남정원 부회장을 비롯한 측근들과 같이 출구조사 발표를 기다렸다.
내가 되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이건 봐주어야지.
“다섯! 네! 셋! 둘! 하나!”
아나운서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TV 화면에 내 얼굴이 크게 나오면 출구조사 지지도가 나았다.
“오오! 93.5%!”
“이거 뭐, 개표 볼 것도 없네요. 예상은 했지만 말입니다.”
“허허허! 축하하네, 강 회장.”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선거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청와대 경호실에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제부터 당선자 신분이 된 것이다.
초장부터 내 경호원들과 청와대 경호원들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법률상 지금부터는 자신들이 나에 대한 모든 경호를 인수하겠다는 청와대 경호실과 아직은 당선자 신분이니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겠다는 내 경호팀이 충돌했기에, 내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아직은 외부 경호만 청와대 경호실이 하고, 내부 경호는 내 경호팀이 하는 것으로 말이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청와대 경호실을 믿지 못하는 이유도 컸는데, 나중에는 내 최측근 경호원들만 청와대 경호실에서 특채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장영동 이사장님을 위원장으로 발족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지역 안배고 뭐고 말입니다. 그냥 전적으로 실력만 보시고 인선해 주세요.”
“알았네.”
“다만 국방부 장관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이상철 장군을 데려가려고?”
“네, 능력이나 인품도 그렇고, 적어도 국방부 장관은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을 모시려고요.”
“원스타 출신이라 반발이 제법 있을 건데 괜찮을까? 특히 별들의 모임 같은 곳 말이네.”
“에이, 그깟 퇴역 장성들은 신경 안 씁니다. 어디서 비리 장성들이 회장단이 되고 쓸데없는 개소리나 하던데요?”
“하하하! 하긴, 자네가 그딴 걸 신경 쓸 리가 없지. 알았네.”
중국과의 대전쟁을 앞두고 그런 단체 따위는 내 안중에 없었다.
어디서 꼰대질이나 하고 말이야.
인수위원회는 장영동 이사장님에게 맡겨 두고 나는 철저히 국방력 증강에만 힘을 쏟았다.
공식적으로 취임식이 있을 때까지는 두 달이 남았지만, 대통령의 양해하에 국방은 직접 챙겼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결국에는 내 마곡 사옥 집무실이 마치 청와대 벙커처럼 되었다.
“전쟁이 코앞입니다! 아직까지 준비가 왜 이 모양입니까!”
“송구합니다.”
“훈련! 또 훈련입니다! 제발 그 망할 ‘했다 치고’ 좀 하지 말란 말입니다!”
우리나라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 ‘했다 치고’가 내 신경을 거슬렀다.
“실전 같은 훈련을 하세요! 실전 같은 훈련 말입니다!”
“네, 당선자님!”
“이건 또 뭐야? 세종대왕급 3번함 서래 류성룡함이 왜 아직까지 조선소에 있는 겁니까?”
“그게 조선소 사정으로….”
“아, 무슨 소리예요?”
“신규 함정들 건조가 막바지라 도크 사정이 여의치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정보다 늦게 도크에 들어갔습니다.”
7월부터는 주요 함정은 모든 창정비를 마치고 전력에서 빠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최고 주요 전력 중의 하나인 세종대왕급 3번함이 묶여 있다니.
“류성룡함 지금 어디 있어요?”
“건조사인 현도 중공업에 있습니다.”
“에이!”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아, 장 회장님, 저 카르마의 강철식…. 대통령 당선인 강철식입니다. 아니 다른 것이 아니라, 왜 우리 함정들 창정비가 늦어지는 겁니까? 뭐요! 이거 왜 이러세요! 내가 내려갈까요? 알았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일정에 맞추어 주세요. 지금은 전시나 다름이 없단 말입니다.”
“…….”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않던 갑질도 서슴지 않았다.
당선자 신분으로 국방 태세를 점검하니, 외부에서 지원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말 바이든 대통령 말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참의장! 지금 내가 원스타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뭡니까? 내가 당선자님의 의중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이래요?”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이상철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장군들을 지근지근 밟아나갔다.
한 번은 휘어잡아야 하기도 했고, 이상철 장군에 눈에 거스르는 것이 꽤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거 뭡니까! 우리 회장님이…. 아니 당선자님이 그렇게나 막대한 돈을 지원했는데, 이게 뭡니까? 이거 누구 책임이에요?”
“제, 제가….”
“당신 해군 참모총장! 당신 내 성질 알면서 일을 이따구로 해!”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대로 하란 말이야! 제대로!”
다른 사람들은 전쟁에 대하여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면이 있지만, 이상철 장군은 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다.
중국과의 대전쟁이 다가오는데 여기저기 허술한 부분이 보이자, 마구 쑤셔대면서 뒤집고 다녔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나나 이상철 장군이나 공식 취임을 하지 않았기에 월권이나 다름없는 행위지만, 시간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혹시라도 반발하는 자가 나오면 대통령에게 말해서 가차 없이 모가지를 날려버렸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국방부와 방사청, 그리고 방산 업체를 닦달하자 여기저기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금 고생하는 것이 나중에 피를 흘리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정신없이 난리를 쳐대다 보니, 어느덧 내 대통령 취임일인 5월 9일이 되었다.
취임식에는 내 위상을 반영하듯이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이고 G7의 모든 정상, 그리고 유럽에서만 20여 개국 대통령이나 총리는 물론이고 나비올리나 러시아연방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수 치 미얀마 대통령 등이 모두 참석하여서, 급이 떨어지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가능하면 오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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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5월 9일.
나는 여의도에서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