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고맙다, 형제들이여.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제일 불편한 것은 바로 집 문제였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였다.
뭐, 다른 대통령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들어갔겠지만, 나는 청와대쯤은 찜쪄먹을 시설과 안락함을 자랑하는 내 판교 집이 있었다.
물론 제인도 청와대로 들어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고, 아버지가 평양에 계시는 바람에 왔다 갔다 하는 엄마나 소미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대통령실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중간에서 접점을 찾기로 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는 하는데,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자고 금·토·일은 판교의 우리 집에서 자는 것으로 말이다.
이에 따라서 판교 집에 추가로 비상시 통신 시설 등을 설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건 내가 돈을 대서 설치하면 되는 문제였다.
교통 통제를 하면서 오가면 시민들이 불편해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 역시 헬기를 타고 오가면 되는 문제였고.
돈이 더 든다고?
그거 역시 내 돈으로 하면 그만이다.
어쨌든 별로 정이 안 들 것 같은 청와대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첫날부터 엄청나게 바빴다.
내 취임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회담하고 밤에는 따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야 했으니까.
“알렉스, 취임 축하한다.”
“에이, 낮에도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공식적인 멘트라 정이 없었잖아?”
“흐흐흐! 그건 그렇지요.”
“넌 잘할 거다.”
“고마워요, 조.”
차를 마시며 가벼운 대화를 하다가 이내 국정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졌다.
“준비는 잘되고 있는 거냐?”
“휴우! 아시잖아요? 국방에 한정해서는 사실상 출마 선언한 후부터 내가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요.”
“잘 알고 있지.”
“몇 달 동안 죽어라 일했지만 아쉬운 것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나 몇 년 전부터 돈을 들이부었는데도 여전히 중국을 상대로는 부족한 것투성이고요.”
“그럴 거다. 상대가 중국이니까.”
“조가 좀 더 도와주세요. 우리가 전쟁에 말려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미국 책임도 반 이상은 되잖아요?”
“이 녀석아, 우리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최선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최선 맞아. 말이 총력전이 아니지, 나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중이라고. 차라리 2차대전처럼 중국이 괌이라도 침공하면 모를까, 대만 침공으로 우리가 나설 수 있는 것은 전부 하고 있어. 당장 해병대 예비역들 소집도 있을 예정이고 말이야.”
“해병대 예비역들을 소집하시게요?”
“응, 지금 병력으로는 너무 모자라. 그렇다고 육군을 추가로 한반도에 투입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고….”
“젠장!”
미국의 여론에 의하여 움직이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 여론이 미국의 대만 개입에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최근 여론조사로도 대만 사태 개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고작 과반을 살짝 넘기는 정도였는데, 이런 지지율 정도로는 바이든도 움직임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이 전쟁에 끌려들어 가면 미국 여론도 바뀌겠지만, 그때는 때가 늦는다.
무슨 2차대전 때처럼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치는 수준도 아닐 것이고.
“공군과 해군, 그리고 해병대와 주한미군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야. 물론 특수작전사령부 산하 병력과 공수사단들을 포함해서.”
“해병대는 얼마나 더 늘리시게요?”
“5만 정도?”
“그럼 25만이 되는 건가요?”
“그렇지. 지금 그나마 늘려서 20만이니까.”
“…….”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낫다.
“지상군은 어떻게든 우리가 맡을 테니까, 무기나 좀 더 주세요.”
“뭐가 부족한데?”
“사드(THAAD) 미사일이 더 필요해요.”
“이미 8개 포대나 주었잖아? 그리고 너희 L-SAM도 거의 공장에서 찍어내는 수준으로 알고 있다만?”
“그거 가지고 됩니까? 8개 포대라고 해봤자 1개 포대에 48발이니까, 384발밖에 더 되어요? 중국은 반드시 우리에게 미사일 세례를 퍼부을 거라고요. 턱도 없어요.”
“끄응! 얼마나 더 달라는 거야?”
“6개 포대 더 주세요.”
“뭐? 그건 곤란한데? 일본도 요구하고 있고, 우리 괌이나 사이판, 하와이, 그리고 우리 본토도 지켜야 하고….”
“더 주시지요?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하아, 내가 여기는 괜히 와 가지고….”
“더 주실 거죠? 아니 산다는 겁니다. 돈을 주고 말이죠.”
“알았다.”
사실 천궁과 L-SAM으로 한반도 전역을 도배해 놓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봤듯이 방공 미사일은 정말 소중하다.
특히나 특유의 생산력으로 얼마나 많은 대지상 미사일을 중국이 숨기고 있는지 모르기에 더욱 그렇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각종 방공 미사일을 수입했다.
우리가 생산하는 것과는 별도로 말이다.
이스라엘로부터 애로우 미사일과 다비드 슬링 미사일을 발주하여 속속 들어오고 있었고, 프랑스로부터는 SAMP-T 미사일도 구매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각국의 군비가 증강하면서 원하는 만큼 미사일을 구매할 수 없었다는 거지.
어쨌든 할만큼은 했다.
이상철 장관이 좀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릴 정도였는데, 염주가 보여준 장면을 본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솔직히 옆에서 지켜본 내가 질릴 정도로 한국의 국방력은 강해졌어. 대체 네가 퍼부은 돈이 얼마인데?”
“그래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이젠 무기보다 병력 정예도를 높일 때야. 중국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이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하긴….”
염주가 보여준 영상으로 판단하면 한여름이었다.
시민들이 모두 반소매를 입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미국 정보부가 판단하는 것도 비슷했다.
인민해방군 창건일인 8월 1일 2주 전 정도를 D-Day로 예상했는데, 그러면 얼추 염주의 영상과도 맞아떨어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두 달.
무기는 무기대로 생산과 수입에 박차를 가하고 고생스럽더라도 장병들의 훈련에 더 매진하는 수밖에.
이후 이틀 정도를 취임식 하객으로 온 각국 정상들과 회담했다.
“알렉스, 미안. 우리는 알다시피 줄 만한 무기가 없어.”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러시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나비올리나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날 보자 먼저 무기 없다고 선수를 쳤는데, 아무리 궁해도 러시아에 뭘 바라냐?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 민낯이 철저하게 까발려져서 세계 무기 시장에서도 그 존재감을 상실하는 판국에.
“아이, 몰라! 바보 멍청이들이 나라를 망쳐 놓은 거지. 하여간 내가 해줄 건 없어?”
“왜 없어요? 그래도 러시아인데?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라고요.”
“내가 다시 살려내고 있잖아! 자꾸 망했다는 소리 할래?”
“알았어요. 그럼 중국이 핵으로 위협하지 못하게만 해주세요.”
“그건 미국이 하는 거 아니야? 실제로 너희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안에 들어가 있고 말이야.”
“그거랑은 다르잖아요. 러시아가 누님이 집권한 후에 중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역사적인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그렇지 않잖아?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전쟁으로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핵무기 한정해서는 초강대국이고?”
“어째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리가요? 그냥 팩트를 말했을 뿐이라고요.”
“휴우! 알았다. 적당히 경고할게. 그럼 되었지?”
“러시아는 그 정도만 해줘도 충분해요.”
자기 앞길이 구만리인 러시아에 뭘 바라나?
다만 러시아는 여전히 핵무기 숫자에서 미국보다 앞서는 핵무기 강대국이다.
그중에 얼마나 제대로 작동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혹시라도 중국이 핵을 만지작거리기라도 한다면 나비올리나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후에도 내가 거의 만들다시피 한 동맹 국가의 대통령들과 계속 회담을 이어나갔다.
내가 동맹으로 만든 나라들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터키, 미얀마,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인데,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별 볼 일이 없어도 군사적으로 대국인 나라들이다.
특히 지상군 방면으로는 모두 상위 10위 안에 있거나 10위 안팎에 있었다.
“강 대통령님, 만약에 귀국에 전쟁이 난다면 우리 미얀마도 바로 참전하겠습니다.”
“수 치 여사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미얀마는 남쪽에서 중국 남부 전구와 서부 전구 군을 잡아주기만 하여도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단지 국경 쪽에 병력을 집결시키기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제가 별도로 사례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미얀마 수 치 여사가 나가자 젤렌스키가 들어왔다.
우크라이나는 젤렌스키가 전쟁 후에도 계속 집권하면서 부정부패 뿌리를 뽑으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도와준 덕분이기도 하고.
“회장님! 대통령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젤렌스키 대통령.”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국도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우크라이나가 도울 것은 없겠습니까?”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우크라이나도 아직 힘들잖아요?”
“그래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30만 병력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파병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해보겠습니다. 우리 한국군은 강합니다.”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말씀만 하세요. 슬라바 꼬레아! 영웅들에게 영광을!”
“그래요, 영웅들에게 영광을!”
젤렌스키와 만나면 항상 이 철 지나고 감성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다음은 에크렘 이맘오을루 대통령이었다.
이 양반은 거의 내가 대통령에 올려 놓다시피 했고, 이후로도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나만 보면 거의 상전 대하듯이 한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에크렘.”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간악한 중국이 우리 형제의 나라 한국을 위협한다고요?”
“에,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우리 튀르키 전사들은 제2의 한국 전쟁에도 기꺼이 참전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필요하면 요청하겠습니다.”
내가 파병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지상군은 어떻게든 우리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항상 같이 훈련한 미군이라면 모를까, 인제 와서 다른 병력이 섞이면 괜히 혼동만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바이락타르 무인기라도?”
“오! 바이락타르 무인기라면 사야지요.”
“하하하! 터키와 대한민국은 형제입니다!”
“맞습니다, 형제입니다.”
솔직히 바이락타르 무인기는 어중간한 나라에는 여포지만, 중국 레벨 정도면 큰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으니 사주기로 한 것이다.
역시 터키는 장사를 참 잘한단 말이야?
형제의 나라를 외치면서 결국은 바이락타르 무인기를 팔았으니까.
그래도 파병 제안은 그의 진심이었다.
고맙다, 형제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