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그럼 도로 뺄까?
2027년 5월이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6월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는 미친 듯이 일했으니까.
덕분에 판교 집을 오가면서 일한다는 내 생각은 한참 전에 물 건너갔다.
아니 잠잘 시간도 제대로 못 챙기는 판국에 어딜 다녀가냐고?
“어이구! 죽겠다.”
“좀 쉬시지요? 이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인 이정길 실장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양반은 행정고시를 패스한 정통 공무원 출신으로 장영동 이사장님이 추천해서 곁에 두기 시작했는데, 사람됨이 원만하면서 강단도 있고, 무엇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라서 더 마음에 들었고.
“아닙니다, 실장님. 아직 젊어서 이 정도는 버틸 만합니다.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점점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출국이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뭐요? 사회지도층 인사? 그게 뭡니까?”
“예? 그게 뭐냐니요?”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놈들이 어떤 놈들이냐고요?”
“그, 그게 일반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층을 말합니다만….”
“그러니까 한마디로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해외로 튄다는 말이잖아요? 맞아요?”
“그렇습니다.”
“에이, 씨! 그게 무슨 사회지도층이야? 쥐새끼들이지?”
“…….”
제기랄, 너무 피곤해서 신경이 곤두섰는지 엄한 사람에게 성질을 내고 말았네.
이 양반은 큰아들이 장교로 복무 중이고, 둘째 아들은 방산 업체에서 멀쩡히 일 잘하고 있는데.
“하아, 미안합니다. 내가 엄한 실장님에게 성질을 냈네요.”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하여간 그 쥐새끼들 대체 어떤 놈들이에요?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일단은 어느 정도 있는 집들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꼽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기업인들이 제일 많고, 교수, 언론인, 정치인 등이 특히나 심한 편입니다.”
“교수? 아니 교수 놈들은 왜?”
“대통령님도 잘 아시겠지만, 교수 집단이….”
“저 고졸이잖아요?”
“아, 죄송….”
오늘따라 내가 왜 이렇게 까칠한지 모르겠다.
진짜 좀 쉬어야겠다.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진짜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정말 쉬셔야 합니다. 대통령님이 정말 젊기는 하지만, 그래도 40대예요.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네, 하루 정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최근 들어서는 덜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여전히 해외 유학파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래도 해외에 지인이 있기 마련이고, 자식들도 유학 중에 출산한 경우가 많아서 복수 국적도 많지요.”
“아하! 그래서 튀기에는 적절한 환경이라는 말씀이군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게다가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 중상 이상은 되고요.”
“그럼 언론인은?”
“주요 중앙 언론사 패밀리들의 출국이 심각합니다. 정치인은 현역들이야 눈치 봐서라도 어떻게 참는 모양인데, 현역이 아닌 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국하는 분위기고요.”
“그에 따르는 문제는 뭡니까?”
“외환 유출이 심각합니다. 공식적으로만 올해 5월의 유출이 작년 동월보다 20%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거뿐입니까?”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부 입영대상자들이 출국해서 돌아오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입영대상자가 어떻게 출국할 수 있습니까?”
“요즘은 입영대상자라고 해서 출국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거 참….”
비서실장 보고의 요지는 결국 내 말이 맞네.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전부 쥐새끼처럼 빠져나간다는 말이잖아.
“내버려 두세요.”
“네?”
“어차피 그런 놈들은 있어 봐야 도움도 안 됩니다. 잘 가라고 하세요.”
“…….”
“대신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면 되는 겁니다. 공직에 있는 자들은 다시는 공직 근처도 얼씬 못하게 하면 그만이고, 교수 놈들은 돌아와서 다시는 교직을 못 잡을 겁니다. 특별법 제정하라고 하고, 여야에 긴급히 처리해 달라고 하세요. 내 특별 지시라고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업인들? 그놈들은 법으로 안 되니 내가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우리 카르마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겠습니다.”
너희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면 나도 법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할 거다.
그럴 힘이야 넘치고도 남는다.
“외환 문제는 신경도 쓰지 마세요. 지금 외환 시장이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네, 대통령님. 키르마에서 계속 달러가 들어오니까요. 그래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내버려 두시라고요. 달러가 모자라면 더 박으면 됩니다. 아, 요즘 주식 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네, 외국 자본이야 당연하지만, 국내자본도 유출이 되고 있어서요.”
“그거 잘됐네.”
“네?”
“IMF 시절에 우리나라 주식이 대폭락했을 때 말입니다, 그 시절에도 선견지명이 있던 사람은 떼돈을 벌었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어느 종목에 투자했건, 회사만 망하지 않았으면 최소 수십 배씩은 벌었지요. 저도 그때 좀….”
“오! 실장님도?”
“하하하! 전 당시에 우리나라를 믿었습니다. 반드시 짧은 기간 내로 극복할 것으로 말이지요. 덕분에 공무원 생활 수십 년을 하는 동안 금전적인 유혹에 흔들려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하! 그거 잘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떨어질 대로 떨어지라고 하세요. 내가 전부 사들이면 되니까요.”
“허억!”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우리가 중국에 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전에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고, 대통령님을 모시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우리가 이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투자하세요. 돈 좀 버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경제는 정말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주식 시장은 우리 카르마가 붙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떨어지면 나로서는 더 좋다.
이번 전쟁에서 얼마나 피해를 볼지 몰라도, 내가 최단기간 내로 복구시킬 것이니까.
그래, 도망치려면 전부 도망치라고 해라.
대신에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현실이 되었다.
7월 1일이 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에 거주하는 주한미군 가족들을 철수시키고, 일반 민간인들에게도 한국에서 출국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것은 하루 전에 바이든이 내게 전화로 양해를 구했다.
- 미안하지만,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곧 전쟁이 일어나는 나라에 시민들을 계속 있게 할 수는 없어.
“이해합니다, 조. 그래도 이렇게 설명해 주니 고마워요.”
- 한국 사회에 충격이 클 것인데, 아무쪼록 대처 잘하기를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존에게 전화를 했다.
- 보스.
“네, 저예요.”
- 무슨 일이십니까?
“좀 전에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내일 미국 정부가 미국인들의 한국 출국을 지시할 거라고 하네요.”
- 후우!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그럼 제가 할 일은?
“뭐겠어요? 외국 자본과 국내자본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빠져나갈 겁니다. 금액에 제한을 두지 말고 대기하다가 지지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그래 봐야 2,000억 달러에서 3,000억 달러면 충분할 겁니다.
“내 생각도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 더 심할 거예요. 그것도 준비해 놓고 있으세요.”
- 하하하! 이번에도 우리가 돈을 벌겠군요, 보스.
“하하하! 맞아요. 결국, 승자는 우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존.”
- 네, 보스, 말씀하세요.
“미안해요.”
- 뭐가 말입니까?
“제인 말이에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요.”
원래는 제인과 유진이는 미국에 있게 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느닷없이 대통령이 되면서 모두 헛말이 되어버렸다.
영부인이 이런 시기에 나라를 떠날 수는 없으니까.
- 하하하! 아닙니다, 보스. 솔직히 조금 찜찜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보스를 믿습니다. 불패의 보스가 아닙니까?
“고마워요, 존.”
- 별말씀을요. 혹시라도 더 지원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렇게 한결같이 내게 헌신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존은 내가 자신과 가족을 지옥에서 꺼내준 사람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아니, 그래서라기보다는 중독자 시절을 거친 것이 일종의 ‘각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때로는 내게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니까.
하여간 고맙습니다, 장인어른.
역시나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은 난리가 났다.
거의 패닉에 가까운 투매 현상이 벌어졌는데,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단 며칠 사이에 달러 당 원화 환율이 1,000에서 1,500까지 떨어졌고, 카르마 홀딩스에서 단 한 주도 팔지 않는데도 증시 역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로 뒤집어졌다.
“이렇게 나를 못 믿나?”
생각보다 더한 패닉에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쟁의 공포란 것이 이런 겁니다. 대통령님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요.”
긴급히 청와대로 불려 들어와 있던 남정원 회장이 대답했다.
아, 존과 남정원 부회장은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모두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래도 좀 서운한데요? 아니 분명히 재산 신고할 때 10조 달러 이상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부족해 보였나 보지요?”
“하하하! 조만간 잠잠해질 겁니다. 뭐, 전쟁이 터지면 또 뒤집히겠지만요.”
“이거 갑자기 도와주기 싫어지는데요?”
“워워! 왜 그러세요?”
“에이, 그냥 푸념 한번 해본 겁니다.”
“그럼 언제부터 개입할까요?”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가, 수요일부터 개입하세요.”
“알겠습니다.”
7월 7일 수요일.
장이 열리기도 전에 엄청난 매도량이 쌓인다고 보고가 올라왔고, 환율은 더 나락으로 가서 1,700원까지 떨어진 상태.
그때 존이 한방에 3,000억 달러를 투입하고 동시에 카르마 홀딩스에서 무차별적으로 쌓인 주식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일체의 발표도 없이 말이다.
그러자 오전 10시부터 매도 물량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오후 들어서는 오히려 사자로 돌아섰고, 이번에는 폭등으로 인한 서킷 브레이커가 걸렸다.
진짜 널뛰기 한번 징하게 하네.
어쨌든 오후 늦게 공식적으로 카르마에서 개입한 것을 밝히면서 이 난리는 진정이 되었는데, 덕분에 나만 더 돈을 벌게 되었다.
일각에서 대통령 지위를 악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기에 한마디만 던졌다.
“그럼 도로 뺄까?”
“…….”
꼭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하지.
***
7월 16일 저녁 9시.
미국에서 급하게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와서 영상회의 시스템을 가동했다.
“알렉스, 나다.”
“조, 무슨 일로 찾으신 겁니까?”
“중국이 곧 일을 저지를 것 같구나.”
“…….”
드디어인가?
“언제입니까?”
“중국 베이징 시각으로 7월 19일 04시.”
“후우! 그렇다면 우리나라 시각으로 05시겠군요. 확실한 겁니까?”
“안타깝지만 99%다.”
뭐, 100%란 소리다.
“알겠습니다. 준비하지요.”
“그래.”
바이든과 연락을 끊고서 바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을 불렀다.
그리고, 7월 16일 23시.
데프콘 3 Round House가 발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