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중국이 시작하였습니다.
거의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려 대충 씻고 침실로 들어갔더니, 제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깨어 있었다.
“안 잤어?”
“아니, 아까 유진이 재우면서 좀 잤어. 그런데 내가 문제가 아니라 오빠가 문제잖아.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해?”
“괜찮아. 당신도 알잖아? 내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피이! 요즘 그 체력 구경한 지도 오래되었거든요?”
“그, 그런가?”
그러고 보니 대통령에 취임한 후로는 제인과 사랑을 나눈 것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전에는 특별히 따로 출장을 가지 않는 이상 주 5일은 사랑했는데.
“미안해, 제인.”
“뭐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너무 제인에게 소홀한 것 같아서. 거기다 원래라면 미국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오빠, 그런 말 하지 마. 난 항상 오빠 옆에 있을 거야. 그리고 이젠 나도 한국 사람인걸? 한국 사람이 위험하다고 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란 말이야?”
“넌 정말….”
제인이 너무 사랑스러워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나는 전생에 이순신 장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위나 나대용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얼른 자, 오빠. 또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야 할 거잖아?”
“이야기 들었어?”
“응, 들었어. 내가 이래 봬도 영부인이랍니다.”
“안 무서워?”
“쪼금. 하지만 오빠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오빠는 항상 이겼잖아?”
“하하하! 그래, 맞다. 나는 항상 이겼지. 그리고 이번에도 이길 거야.”
“응, 믿어요.”
“자자.”
“웅.”
3시간이나 잤을까?
그래도 제인의 품에 안겨 잠들어서 참 잘 잤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가니 얼추 8시 반이 되었는데, 이미 청와대 벙커는 정신없이 분주한 상태였고 이상철 장관과 김인호 합참의장 등이 나와서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이거 제가 좀 늦었나 봅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조금 더 주무셔도 되는데 뭐하러 일찍 나오셨습니까?”
이상철 장관은 내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로는 언제나 내게 깍듯하게 대했다.
“그래도 제가 대통령인데 나와야지요. 장관님이나 다들 조금이라도 자고 오시지 그랬어요?”
“옆방에서 다들 조금씩이라도 잤습니다. 우리야 평생 이러고 산 사람들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다들 쉬면서 하세요. 어차피 전쟁은 장기전이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데프콘 3을 발령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데프콘 2에 준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탄약도 지급하겠네요?”
“네, 동원예비군 소집만 빼고는 데프콘 2라고 보셔도 될 것입니다.”
이건 어제에 협의한 것인데, 원래는 데프콘 2를 발령할 상황이나 혼란을 방지하고 중국 놈들에게 혼선을 주기 위하여 일단은 데프콘 3을 발령하되, 실제로는 데프콘 2에 준하여 행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오후에는 데프콘 2로 격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데프콘 2 화스트 페이스(Fast Pace)가 발령 나면 실질적으로 전시 상태에 들어간다.
실탄이 지급되고 동원이 지정된 예비군 소집이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군부대는 주둔지를 이탈하여 OP(Operation Point)로 이동하게 된다.
그야말로 전쟁 직전이라는 말이다.
“이 실장님, 여론은 어떻습니까?”
“뭐, 난리지요. 벌써 인천공항은 북새통이라고 합니다.”
“허, 참! 지금은 입영대상자들과 예비군은 못 나가지요?”
“네,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조사하여 비행기에 절대로 못 태우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쿨한 나지만, 현역 입영대상자와 예비군은 아니지.
당신들까지 나가버리면 전쟁은 누가 하라고?
“잘하셨습니다.”
“저, 그리고 오전 중에 대통령님께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후우! 취임하자마자 첫 대국민 성명이 이런 것이라니….”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몇 시에 할까요?”
“성명문도 준비하셔야 하니까, 11시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네.”
11시가 되자 청와대 내 집무실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 강철식입니다. 주말 오전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 어젯밤 9시, 저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나는 미국의 정보와 우리 정보부의 판단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우리 대한민국도 중국의 공격 대상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국군은 강하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시고 국군을 성원해 달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오후 2시에는 전군에 데프콘 2를 발령했다.
이제 자동으로 동원예비군 대상자들에게 끊임없이 전화가 갈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에게 말이다.
그리고 압록강 접경 도시에도 대피령을 내렸다.
“아버지, 준비는 되었죠?”
“그래,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압록강 변 50km 이내로는 모든 주민을 내일까지 소개할 수 있어.”
“고생 좀 해주세요.”
“뭐, 내가 할 일이잖니. 그나저나 네 엄마가 걱정이다.”
“엄마가 왜요?”
“오지 말라고 해도 자꾸 평양으로 온다고 하더구나. 네가 좀 말려 봐라.”
“하아, 알겠어요.”
대체 엄마는 왜 이 시국에 자꾸 평양을 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어차피 당분간 집에도 못 들를 것이기에, 저녁에 잠시 짬을 내어 전용 헬기를 타고 판교 집에 들렀다.
제인과 유진이를 데리고.
“아이고, 내 새끼! 유진이 왔구나! 할미 안 보고 싶었어?”
“함미, 함미….”
“오호호! 내 새끼! 이쁘기도 하지!”
“…….”
오랜만에 아버지를 제외한 전 식구가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엄마!”
“응? 왜?”
“아버지에게 평양에 가신다고 했다면서요?”
“응, 내일 낮에는 가려고.”
“에이, 엄마! 그냥 여기 계세요. 왜 평양에는 가세요? 아빠가 엄마 때문에 싱숭생숭한가 보더라고.”
“이놈아! 엄마가 아빠 옆으로 간다는데 네가 왜 난리야?”
“가지 마세요.”
“시끄럽다! 난 네 아빠 혼자 평양에 있게 할 생각 따위는 없어.”
“엄마!”
“쓰읍! 얘가 왜 이래? 어디서 큰 소릴 내!”
“아니 그게 아니라….”
“철식아! 너는 네 처와 유진이를 청와대에 있게 하면서 왜 나는 안된다는 거야?”
“에이, 제인은 공적으로 영부인이니까….”
“헛소리하지 말아.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듯이 나도 네 아빠를 사…. 하여간 나는 갈 거야. 그러니까 밥이나 먹어.”
“…….”
졌다.
이러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전쟁 기간 동안 아버지 혼자서 평양에 계시는 것이 나도 좀 그랬고.
“하아, 알았어요. 대신에 우리 경호원들을 좀 많이 붙일 거니까, 그건 사양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소미야.”
“응, 오빠.”
“넌 청와대에 들어와 있어. 집에 혼자 있지 말고.”
“엥? 내가 왜? 오빠! 나도 이젠 계란 한 판이야! 애가 아니라고!”
“닥쳐!”
“시끄러워!”
“아니 뭐 이런….”
엄마와 내가 동시에 소리치는데 지가 어찌할 거야?
결국, 엄마는 평양의 아버지 공관으로 다음 날 출발했는데, 경호원들을 잔뜩 붙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전선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부모님 좀 잘 부탁할게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차하면 바로 모시고 남쪽으로 날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소미는 청와대로 끌고 왔다.
아무래도 내 곁에 두어야 안심이니까.
일요일 내내 TV에서는 징집되는 동원예비군을 보도했는데, 가족들이나 연인이 울고불고하는 것을 보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역시 전쟁이란 못 할 짓이네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정치가들이지만, 그 대가는 젊은이들이 치르게 마련이지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이상철 장관이 나를 위로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후우! 망할 놈들이 21세기에 강제 영토 병합을 시도하다니….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권위주의 정부의 특징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국의 젊은이들이 희생하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우리 부대의 배치는 잘 진행되고 있지요?”
“네, 그렇습니다. 압록강 변에 있던 국경 경비여단도 모두 후방으로 돌렸고, 대신에 포병 여단들을 전진 배치했습니다.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놈들이 도발을 시작하면 곧장 방어하면서 반격을 진행할 겁니다.”
“그럼 기동군단들은요?”
“5기동군단, 7기동군단, 9기동군단 등 3개 기동군단이 압록강 후방 70여 km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독립 포병 여단들의 반격이 끝나면 바로 북진을 시작할 겁니다.”
“문제는 없지요?”
“그동안 좀 고생했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 기동군단들은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무기와 장비는 물론이고 정예도를 따져도 말이지요.”
이상철 장관이 호기롭게 장담했는데, 이건 객관적으로도 사실일 것이다.
기동군단은 K2 전차 300대를 가지고 있는 기갑사단 2개와 역시 K2 전차 150대를 가지고 있는 정규사단 3개, 총 5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기동군단 하나에만 K2 전차 1,050대를 가지고 있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그 외에 K-21 보병전투차는 물론이고 호주 수출 버전으로 만든 중장갑 AS -21 레드백 보병전투차의 국군 버전인 K-31 보병전투차, 그리고 K9자주포, 천무 다연장까지.
막말로 기동군단 하나만 다른 대륙에 풀어 놓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지랄 맞게도 상대가 중국이라 문제인 거지.
그래도 중국을 상대하기 위하여 기동군단을 3개까지 조직했고, 엄청난 돈을 들이부은 보람이 있어서 전쟁이 나기 전까지 무사히 완전히 편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의 이름으로 경고가 날아들었다.
내용이 좀 길었는데, 한마디로 한국은 지금이라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뭐, 불바다로 만들어 주겠다나?
대체 공산당 딱지가 붙으면 왜 이렇게 불바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예전엔 북한이 뻑 하면 불바다 타령을 하더니만.
그래서 나도 간단히 답변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한국을 침공하면 북경을 불바다로 만들어 주겠다고.
결국,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외교 단절을 하겠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당연히 우리도 반사의 개념으로 깔끔하게 외교 관계 단절을 통보했다.
그리고 우리만 이런 것도 아니고, 미국은 물론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과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뭐, 시쳇말로 이젠 갈 데까지 간 것이다.
2027년 7월 19일 새벽 5시.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3시간이 잤을 때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리릭!
침대 옆의 인터폰이 울려서 잠에서 깼다.
“네, 말씀하세요.”
- 대통령님, 저 이 장관입니다.
“네, 장관님.”
- 중국이 시작했습니다. 방금 대만에 대한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내려가겠습니다.”
결국은 중국이 일을 저질렀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