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4화 (4/227)

4화 각성자 늘리기 (1)

대충 회의를 끝낸 우리는, 우선 부대 정리에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괴물들은 사람이 있는 곳만을 습격했다.

모든 부대원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부대 내의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생각보다 생명력이 질기네.”

두꺼운 비늘에 둘러싸인 괴물.

리자드.

대형 삽으로 후려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던 괴물이었지만.

다행히 총을 쏘면 상처를 입기는 했다.

한두 발로는 끄떡도 안 한단 게 문제였지만.

“거의 한 탄창은 때려 박아야 죽는 것 같습니다.”

괴물 한 마리에 스무 발에서 서른 발.

오늘 부대를 습격한 괴물만 해도 열 마리가 넘었는데, 이래서야 총알이 남아날 리가 없다.

‘당장은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이대로는 안 돼.’

추가적인 보급이 없는 이상.

한계는 금방 올 것이다.

“부대원들 시체는 어떻게…….”

“부대 뒤편에 묘지 있어. 시신 운구용 백에 넣고, 거기 안치하자.”

대충 이런 식으로.

총을 든 병사들이 3인 1조로 순찰을 하면서, 나머지는 최대한 부대를 정리해 나갔다.

지난 회의가 끝난 후.

유의미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상위 부대에 사람을 보내 연락하는 것과 각성자를 늘리는 것.

전자는 부대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게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병사 두 명이 자원해서, 레토나를 타고 나가는 거로 해결이 됐지만.

후자의 경우.

부대를 정리하며 꽤 많은 괴물을 처치했음에도 나를 제외한 각성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총으로 죽여서 그런 거겠지.”

레이더 반의 박태준 병장이 말했다.

내 동기이자, 이번에 나타난 괴물 중 한 마리를 직접 쏴 죽인 녀석이다.

“역시 그거밖에 없겠지?”

“너는 직접 괴물이랑 부대끼면서 멱을 땄다며? 우리는 괴물들이 접근도 못 하게 멀리서 쏴 죽였으니까. 차이가 있다면 그 부분뿐이겠지.”

나는 괴물을 죽였을 때 내 몸 안에 차오르던 기운을 떠올렸다.

괴물이 죽으면서 그런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걸 가까이에서 흡수해야 한다든가.

뭐 그런 게 아닐까.

“뭐, 지금은 네가 알려 준 약점…… 겨드랑이랬지? 그걸 알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궁금해지네. 네가 처음 괴물을 죽였을 땐 약점도 몰랐을 것 아니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뭐, 끓는 기름 좀 뿌리고. 막내 녀석 시체를 뜯어 먹느라 바쁠 때 뒤통수에다가…….”

“끓는 기름? 무슨 공성전도 아니고.”

녀석은 내 경험담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더니, 다시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자. 이 녀석들, 총알 몇 발로는 죽이기 힘들어. 하지만 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괴로워하고 힘이 빠지는 게 보이거든. 총으로 최대한 죽기 직전까지 몰아간 다음, 숨통을 끊을 때만 접근해서 약점을 찌르면 되겠지.”

말하던 녀석은 내 손에 든 사시미칼을 흘깃 보았다.

“너랑은 다르게 우리는 총에 대검을 끼운 총검으로 찔러야겠지만.”

생활관 옆 창고에서는 시설반 병사들이 그라인더를 꺼내 와 대검을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총검은 총의 길이만큼 리치가 긴 무기니까.

내 사시미칼보단 안전하겠지.

“아직 살아 있는 괴물이 저항하면?”

“그땐 뭐, 명복을 빌어 줘야지.”

“미친놈.”

“킥. 뭐, 어차피 괴물이 더 나올 때 일이고. 더는 안 나올 수도 있는 건데 걱정해 봐야 뭐 하겠냐.”

태준이 녀석은 괴물이 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확실히,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이라고 안 일어나리란 보장도 없지.’

그렇다고는 해도, 태준이 녀석의 말대로.

지금 걱정해 봐야 의미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럼 이쪽은 너희가 잘 관리해. 난 밥하러 간다.”

그러자 녀석이 오히려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본다.

“이 상황에?”

“이 상황이니까 더 그렇지. 밥은 먹어야 일이 되지 않겠냐.”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점심은 이미 글렀고, 저녁은 지금부터 준비하면 될 것 같으니까 시간 맞춰서 오라 그래. 간다.”

그렇게 태준이 녀석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복귀했다.

“개판이네.”

괴물과 후임들의 시체는 일단 다른 병사들과 함께 치웠다만.

내가 뿌려 댄 기름은 아직도 바닥에서 번들거리고, 사방에 튀어 있는 피나 살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충 치우고 요리하자.”

막내 때 기억을 떠올리며 뜨거운 물로 취사장을 청소한 뒤,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최소 3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니 그만큼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왜 이렇게 쉽지?”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아니, 힘이 들기는커녕 편안하게까지 느껴진다.

‘[최하급 요리 숙련]의 힘인가?’

거기에 [최하급 화염 친화]의 힘인지, 언제나 더웠던 취사장도 편하게 느껴졌다.

하긴.

최하급 단도 숙련만 해도 식칼로 나무를 뎅강뎅강 썰어 버릴 수 있는 달인으로 만들어 줬으니.

후임 둘이 죽고 나 혼자 남아서 앞으로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렇게 저녁 메뉴를 완성했을 때였다.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재료의 질이 좋지 않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뛰어난 온도 조절로 인해, 요리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보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1, 민첩+1]

[스킬 - 주방장의 특별 소스를 첨가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흠.”

먹으면 일정 시간 능력치가 올라가는 요리라.

“뭐,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상태창.

각종 설명 문구들까지.

처음엔 당황해서 눈치 못 챘지만.

조금만 눈치가 있어도 이게 뭔지는 알 수 있었다.

‘게임 시스템.’

그리고 게임에서 요리사가 하는 일이 뭐겠는가.

버프 효과가 있는 요리의 제작.

“근데 힘 1, 민첩 1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네. 효과가 큰 거야, 작은 거야?”

게임의 요리사라고 해도 모두가 같지는 않다.

요리의 버프 효과가 엄청나게 커서 요리 스킬이 필수로 여겨지는 게임이 있는 반면, 효과가 너무 적어 사실상 없는 시스템 취급받는 게임도 존재한다.

내가 처한 이 ‘게임’이 어느 쪽일지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지겠지.

신경이 쓰이는 점은 또 하나 있었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

[주방장의 특별 소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훌륭한 주방장은, 그 마음의 방향성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별 소스를 통해, 음식을 섭취한 이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이 능력을 쓰면, 먹은 사람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그건데.

“굳이 쓸 데가 있냐 싶긴 하다만.”

오늘 사건이 터지고 봤던 부대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밥 먹고 좀 편해졌으면 좋겠네.”

[주방장의 특별 소스 - 편안함]을 첨가합니다.

[편안한 마음의 초보 요리사의 삼겹살볶음]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 +1, 민첩 +1]

[먹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내놓고 기다리니.

저녁 시간에 맞춰 병사들이 식당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신 병장님. 잘 먹겠습니다.”

“오냐.”

다들 기운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온 것 같았다.

나는 음식을 배식하며, 음식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슬쩍슬쩍 병사들을 엿봤다.

‘효과가 있긴 한 건가?’

힘이 세진다고 하면 뭐랄까, 근육이 커진다든가. 핏줄이 올라온다든가.

그런 외형 변화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효과가 있기는 한 건지 외형적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혹시 이거 쓰레기 능력 아니야?’

그렇게 불안해하던 찰나.

밥을 다 먹고 나가려던 병사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신 병장님. 감사합니다.”

“어? 뭐가.”

“밥해 주신 거요. 괴물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좀 예민해졌는데…… 배가 부르니까 좀 편안해지더라고요. 잘 먹었습니다.”

피식.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네.

“원래 배고프면 사람이 예민해지고 그런 거지 뭐.”

“그리고 오늘 메뉴 진짜 맛있었습니다.”

“맨날 하던 대로 한 건데 뭘.”

“그렇습니까? 평소보다도 맛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보니.

다른 병사들도 표정이 조금씩은 풀린 것 같았다.

능력치 부분은 잘 모르겠다만.

‘이렇게 애들 멘탈 관리라도 되면, 나름 괜찮은 능력일지도.’

스트레스 해소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최고라고 하지 않는가.

맛은 둘째 치더라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잘 먹었단 얘기는 몇 번을 들어도 좋네.”

흐뭇하게 식당을 둘러보던 때였다.

투다다다다다당!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약간은 기대했었다.

어쩌면 아까 부대를 덮쳤던 괴물들이 마지막이고.

다른 괴물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 * *

부대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진 뒤.

급하게 식당을 빠져나온 나는, 최대한 빠르게 소리가 들려온 장소로 향했다.

“왔냐.”

도착하고 나니.

레이더반 박태준 병장과 통신반 이민재 병장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총소리가 들렸다는 건, 역시.”

“그래.”

태준이 녀석이 고개를 슬쩍 까딱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두 마리다.”

태준이 녀석이 가리킨 곳에서는, 총을 든 병사들이 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두 놈 다 살아 있고?”

“그래. 그리고…….”

태준이가 대검이 박혀 있는 총을 보여 주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찔러 볼 거다.”

두 괴물 모두, 총을 스무 발 가까이 맞았는지 힘이 빠진 채 죽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와 싸울 때의 난폭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괴물들.

“후우.”

이민재 병장이 먼저 대검을 끼운 소총을 들고 피 흘리는 괴물에게 접근했다.

태준이 역시 총검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

이 둘이 가장 먼저 나선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각성하는 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자.’

‘왜?’

‘우리야 네가 테이블을 무처럼 써는 걸 봤으니까 각성이니 하는 걸 믿지만, 다른 병사들은 괴물한테 맨몸으로 접근하라고 하면 뭔 개소린가 싶을 테니까. 그렇다고 임무 분배받고 퍼져 있는 병사들을 다시 불러서 테이블 썰기 쇼를 보여 줄 수도 없으니. 우리도 각성해서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려 줘야지. 말 나온 김에 내가 먼저 할게.’

그 말을 꺼냈던 사람이 바로, 지금 괴물에게 다가가고 있는 이민재 병장이다.

총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서 몰려온 부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민재 병장은 피 흘리는 괴물에게 다가갔다.

콱.

혹시 녀석이 일어날까 봐 가슴팍을 발로 짓밟은 뒤.

총검을 아래로 겨눈다.

“후욱.”

약점은 내가 알려줬다.

왼쪽 겨드랑이.

숨을 고른 이민재 병장은, 단숨에 총검을 내리찍었다.

푸욱.

찔린 겨드랑이에 몰려 있던 혈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첫 각성 때 구차하게 달라붙어서 식칼로 서걱서걱 썰어 댔던 나와는 다른, 깔끔한 한 방이었다.

애초에 다 죽어 가던 녀석의 숨통만 끊는 역할이니 가능한 일이지만.

“큭. 기분 엿같네, 이거.”

돌아온 이민재 병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어때 형, 시스템창은 떴어?”

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이민재 병장은 씨익 웃으며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꼬나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는 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파지지직.

그 손가락에서 눈에 보이는 파란 전기가 번쩍이더니.

담배에 불이 붙었다.

“초보 마법사란다. 특성은 최하급 전기 친화. 스킬은 전격하고 기타 등등.”

“미친, 마법사도 있어?”

“가장 먼저 각성한 네가 놀라면 어쩌냐.”

어찌 됐든.

이걸로 가설은 확인됐다.

가까이서 직접 괴물을 죽이면, 각성할 수 있다는 것.

“다음은 나군.”

태준이 녀석도 그 모습을 보았는지.

총검을 꼬나 쥔 채 반대쪽 괴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괴물이 공격해 올까 조심하며, 왼쪽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발로 차 뒤집으려던 순간이었다.

“끄…… 라학!”

“태준아!”

다 죽어 가는 듯이 보였던 괴물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태준이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끄으으읍…….”

태준이 녀석은 종아리를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총검을 놓지 않았다.

푸욱!

그리고 괴물 녀석의 약점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약점을 찔린 괴물은 곧 힘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태준이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박태준 병장님!”

“미친, 야! 의무병 불러와!”

“저, 저희 의무병은 물리치료 학과라 저런 치료는 못 할 텐데요.”

“없는 것보단 낫지, 인마!”

종아리에 눈에 보일 정도의 구멍이 뚫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녀석.

곧 의무병이 달려와 다른 병사와 함께 태준이를 들쳐 멨다.

“야…….”

그렇게 끌려가던 태준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떴다……. 시스템창.”

“그래, 그래. 잘했어, 자식아!”

상처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됐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킥킥거리며 끌려가는 녀석.

‘상처가 걱정되긴 하지만…… 태준이도 각성했다.’

괴물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암울했지만, 이쪽도 전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뜻.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각성자를 늘려 나간다면, 곧.

‘총알 없이도,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완성된다.’

살아남기 위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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