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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5화 (5/227)

5화 각성자 늘리기 (2)

태준이 녀석까지 각성에 성공했다.

비록 녀석은 다쳐 버린 탓에 어떤 능력으로 각성했는지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다들 집중!”

파지지직-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민재 형의 몸에 푸른빛 전류가 흐른다.

심지어는 유형화한 전기를 한 손에 모아 쥐는 모습까지.

“마, 마법…….”

“각성이란 게 진짜였다니.”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각성한 요리사라는 직업도 충분히 신기하긴 하지만.

칼로 테이블을 써는 묘기 정도를 제외하면 겉으로 봤을 때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 주기는 힘들었다.

반면 민재 형의 마법은, 얼핏 보기에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각성이라는 현상을 믿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무려 현실에 나타난 마법사니까.’

괴물을 가까이에서 죽이면 각성할 수 있다.

이 사실이 확인된 이상, 더 이상 미룰 것은 없다.

예정된 순서대로 병사들을 차근차근 각성시키다 보면.

언젠가 총 없이도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완성될 터.

“다음으로 각성해야 하는 게…… 시설반 광일이. 맞지?”

그렇기에 나는, 다음으로 각성하기로 한 병사를 찾았다.

전광일 상병.

지난 회의에도 참여한, 어쩌다 보니까 시설반 최고참이 된 녀석.

그런데, 녀석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나, 나는, 못 해…….”

“뭐?”

……이 새끼가?

* * *

“나, 아니, 저, 저는 못 하겠습니다. 절대 못 합니다.”

두려움에 떨리는 눈으로 말하는 전광일 상병.

“야, 나랑 태준이는 안 무서웠을 것 같냐? 나도 살면서 죽여 본 거 모기밖에 없는 사람이야.”

전광일 상병이 자기는 못 하겠다고 벋대자.

설득을 위해 나선 것은 이민재 병장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잖냐, 지금 사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 다 같이 살려면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지.”

“그, 그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저는 못 하겠습니다.”

“야 이…….”

파지직.

분노한 이민재 병장의 얼굴 주변에 푸른 전기가 파지직거렸다.

화나면 전기가 흐른다니.

피X츄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건 넘어가고.

“뭐, 뭐라고 하신들 저는 못 합니다! 무서운 걸 어떻게 합니까!”

본래 시설반의 최선임이였던 병사가 죽은 지금.

녀석은 현 시설반 최선임으로, 당연히 회의에도 참여했었다.

각성자를 늘리자는 얘기를 할 때만 해도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던 녀석.

갑자기 저러니 당황스러울 따름.

이유라고 한다면.

‘태준이 녀석이 괴물한테 공격당한 것 때문인가?’

죽기 직전까지 힘을 빼놨다고 생각했던 괴물에게 태준이가 발을 물어뜯긴 일.

‘다른 사람이라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

아니.

어쩌면 다치는 정도로 끝난 태준이가 운이 좋은 걸 수도 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다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추한데…….”

못 하겠다, 못 하겠다. 소리를 지르던 전광일 상병은 이제 아예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한 상태.

다 큰 어른이 드러누워서 징징대는 꼴은 상상 이상으로 추했다.

‘저 녀석, 저 정도로 폐급은 아니지 않았나?’

오히려 반대였다.

전광일 상병은 190cm가 넘는 큰 키에, 근육도 우락부락한 덩치.

몸 크기에 비해 성격은 유순한 편이라, 시설반에서 힘든 작업이 있어도 내색도 안 하고 도맡아 한다고 들었다.

시설반장의 총애를 받아 상병 달자마자 전문하사 권유를 끊임없이 받고 있을 정도로.

오히려 에이스에 가까운 녀석이, 대체 왜?

“전광일 상병, 덩치에 비해 겁이 많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그때.

뒤에서 얘기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예. 그냥 힘든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높이 올라가야 하는 일은 못 하고, 공포 영화도 못 보고…… 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허, 괴물도 그냥 때려죽일 것처럼 생겨서는.”

어이가 없었다.

신장 190cm 중반에 3대 500을 거뜬히 치는 남자가 바닥에 드러누워서 못 한다고 뒹굴거리는 모습이란.

‘저게 진짜 그냥 무서워서, 겁이 많아서 저러는 거라고?’

이민재 병장 역시 그런 전광일 상병의 모습에 질린 듯.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그래. 못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너 좋을 대로 해라.”

“가, 감사합-”

“대신!”

“예?”

“너. 앞으로 부대에서 선임 대우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병이니 병장이니 하는 계급이 전부는 아니다.

서열에 민감한 남자들만 모여 있는 장소가 바로 군대.

그 특성상, 자신 위에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사 개인 간의 문제라면 서로 사이가 나쁘고 말 일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그 병사가 계급에 맞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있을 때.

부대 단위에서 계급에 맞는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수열외.

‘아니, 그런 경우도 있다고 듣기만 한 거지. 우리 부대엔 그 정도로 심한 녀석은 한 명도 없었는데.’

정말로 문제가 있어 군 생활을 못 하던 병사면 모를까.

전광일 상병은 시설반장의 총애를 받던 에이스에, 계급도 부대의 실세나 다름없는 상병.

이제 와서 계급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간 노력해 온 군 생활을 모두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이민재 병장은, 각성을 피할 거라면 그 정도 굴욕은 감수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광일 상병이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공포가 앞선다는 것일까.

자기도 자신이 추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잠자코 치욕을 받아들이려는 녀석.

하지만…….

“민재 형, 그리고 광일이, 잠깐만.”

내가 봤을 때.

이 일은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나는 한창 대화하고 있는 둘의 사이에 끼어들기로 했다.

“영준아?”

“신영준 병장님? 병장님이 뭐라 하셔도 저는 못 합니…….”

“아,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잠깐 식당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민재 형이랑 얘기 좀 하게.”

“……알겠습니다.”

일단 광일이를 식당의 취사병 휴게실에 보내 놓은 뒤, 이민재 병장을 따로 불렀다.

“하…… 무슨 얘기를 하려고.”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담배에 불부터 붙이는 이민재 병장.

나는 그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내뱉을 때까지 기다려 준 뒤 입을 열었다.

“민재 형, 화나는 건 이해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마무리하면 안 돼.”

“……야, 영준아. 너 착한 건 알겠는데, 광일이 저 새끼는 그만한 X신 짓을 한 거야. 그러면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지. 그냥 다 봐주고 넘어가면…….”

“아, 그런 거 아니라고.”

애초에 난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

남들한테 요리해 주는 건 좋지만, 후임들한테는 잔소리도 자주 하고 욕도 꽤 한다.

애초에 군대에서 착하게만 굴어서는 일이 돌아가질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별개였다.

“다른 일이었으면 나도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야. 광일이 녀석이랑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녀석이 잘못한 것도 맞으니까. 근데 지금 상황에선 달라.”

“……계속 말해 봐.”

“내 예상이긴 한데, 지금 탈영 생각하는 애들 많을걸.”

“뭐?”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며 놀라는 이민재 병장.

“생각해 봐. 부대에 괴물이 막 나오고, 장교랑 병사들이 죽어 나갔어. 외부랑은 연락도 안 되고.”

부대에 나타난 것이 북한군이 아니라 괴물이란 것만 제외하면.

사실상 전쟁 같은 분위기.

“형도 진짜 전쟁이 나면 탈영해야지, 이런 생각 해 본 적은 있을 것 아냐. 당장은 사건 터지고 시간이 얼마 안 지났으니 얌전한 거지, 멘탈 갈려서 탈영 생각하는 애들 많을 거야.”

“야, 우리 부대는 차 타고도 한 시간이 걸리는 산속에 있는데 어떻게 탈영을 하냐. 괴물이 우리 부대만 습격할 리도 없고, 바깥에도 괴물이 있다 치면 군인들끼리 모인 여기가 더 안전할 수도 있는데.”

“그게 당장 탈영자가 안 나온 이유지. 그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바깥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녀석들도 나올 거야. 바깥에 있을 가족도 걱정될 거고.”

사실 이건 남 얘기도 아니다.

당장 나도 바깥의 가족들이 걱정되니까.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형.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부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해.”

“……그렇지.”

“병사들이 탈영하면 부대는 약해져. 반대로 부대가 강해지면,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병사들이 늘어날 테니 탈영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질 거고.”

당연한 얘기다.

전쟁이 나면 탈영하겠다느니 하는 얘기도, 전쟁이 나면 군인들이 위험하기 때문이지.

군대가 더 안전하다고 한다면 누가 탈영하겠는가.

“그래, 그래서 각성을 시키려고 했는데, 광일이 녀석이 난리를 쳐서 이 사달이 난 거잖냐.”

“형. 내가 그래선 안 된다고 한 건, 광일이한테 계급 대우를 안 해 주겠다느니 한 게 아니야.”

“뭐?”

“문제는, 각성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 거지.”

각성 과정이 무난하게 흘러갔다면 문제는 없었겠지.

하지만 그 와중에 태준이가 크게 다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많은 병사가 그 모습을 봤다.

공포가 퍼지고 있을 것이다.

“광일이만 그런 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도 빠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많을 거야. 계급 대우 좀 못 받는다? 죽는 거보다는 낫잖아?”

“…….”

“한 명이라도 이렇게 넘어간 사례가 생기면, 자기도 못 하겠다고 우기는 놈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올걸. 각성한 병사들하고 안 한 병사 간에 마찰도 생길 수 있고.”

“하…….”

“지금은 우리를 통제할 만한 간부도 없는 상황이야. 이럴 때 그런 불화가 생기면, 결국 분열로 이어지고…….”

“부대가 약해지겠군.”

“맞아.”

차라리 내 직업이 다른 것이었으면.

부대 따위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나갔을 수도 있겠지.

왜, 검사라든지, 암살자라든지.

그런 직업들은 게임에서도 솔플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비슷한 느낌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직업은 레벨 1짜리 신입 요리사.

이름만 봐도 서포터 직군.

솔플에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내 직업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결국 누군가에게 요리를 먹이는 게 중요하겠지.

그리고 취사병인 나한테 고객들은 이 부대의 병사들.

이 부대가 망하면 내 요리를 먹어 줄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 부대가 망할 일 없게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길.

“총원 각성. 열외는 용납할 수 없어.”

이민재 병장은 두통이 오는 듯 머리를 매만지다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치자. 근데 그러면 광일이 저 녀석을 설득해야 하는데, 어쩌려고?”

결국, 문제는 이거다.

이민재 병장이라고 해서 광일이를 빼 주고 싶어서 빼 준 건 아니었으니까.

“계급 대우 못 받는 것만 해도 굴욕적인 건데, 다 감수하고 못 하겠다고 한 녀석이다. 어지간한 설득은 통하지도 않을 거야.”

“나한테 생각이 있어. 한 번만 믿어 줘.”

“네가 그렇다면 그러겠다만…… 쉽지는 않을 거다.”

이민재 병장은 정말 가능할지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어려운 일은 맞다.

하지만 내게도 믿는 구석은 있거든.

이민재 병장을 생활관으로 보낸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신영준 병장님…….”

취사병 휴게실의 문을 여니.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전광일 상병의 모습이 보였다.

“야, 야.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거든? 그냥 앉아 있어.”

“예? 아, 알겠습니다…….”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다시 앉는 녀석.

상병 단 지도 꽤 된 녀석이 얼타는 모습.

어지간히 미안하긴 하나 보다 싶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뭐 별건 아니고.”

“…….”

나는 녀석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좋아하는 음식 없냐?”

“……예?”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아니 됐다, 눈치 보여서 말하기도 힘들 테니. 그냥 간단하게 볶음밥으로 가자.”

내 직업은 요리사.

그런 내가 믿는 구석이라 봐야 당연히…….

‘요리지.’

내가 널, 진짜 군인으로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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