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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6화 (6/227)

6화 각성자 늘리기 (3)

다른 군인들이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취사병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일이 하나 있다.

일개 군인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군대의 자산이자 국민의 혈세를 불법적으로 착복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

“저기, 신 병장님? 그 닭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겁니까?”

“엉? 아, 이거? 괜찮아. 우리끼리 먹을 거니까 다리랑 날개만 빼자.”

“아, 저는 가슴살을 더 좋아합니다.”

“뭐? 아, 운동 좋아하니까 그런 건가?”

식재료 빼돌려서 자기들만 맛있는 거 해 먹기.

“취사병들이 자기들끼리 맛있는 거 해 먹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우리끼리만 해 먹는 건 아니고, 간부들한테도 자주 해 줘.”

“네? 간부들도 알고 있는 겁니까?”

“어. 보급반장님은 가끔 같이 먹을 때 소주도 가져오시고, 김 중위는 아예 주문까지 하거든? 그 양반, 면 종류 엄청나게 좋아해.”

나는 말을 하면서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닭가슴살하고, 양파, 당근, 파, 계란…….’

화로에 가스를 켜고 주방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냄비에 물을 담아 올린다.

‘잡내도 좀 빼고 싶은데, 준혁이가 사 왔던 청주 쓰면 되려나.’

취사병끼리 요리를 해서 먹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부대에 있는 재료만으로는 맛있는 요리가 나오기 힘들다.

당장 조미료라고 해 봐야 소금, 후추, 고춧가루, 간장, 된장…….

그 외에는 표고버섯 가루 같은 자연산 조미료밖에 못 쓰는 게 군대니까.

그래서 우리는 휴가를 나갈 때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에 맞는 재료나 조미료를 사서 보관했다.

나와 막내는 사회에서는 요리를 안 했던 사람이라 그런 일에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지금은 죽은 준혁이와 휴가 나가 있는 셋째는 요리를 하다 온 애들이라 그런지 고집이 있는 편이라.

취사병 휴게실의 관물대에는 군대 식당에 안 어울리는 재료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다른 취사병 애들이 산 건데…… 괜찮겠지 뭐.”

그렇게 끓는 물에 청주를 넣고 닭가슴살을 익히고 있자니.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광일이가 말을 걸어왔다.

“저, 신영준 병장님.”

“어.”

“그, 죄송합니다.”

익힌 닭가슴살을 빼내, 뼈와 분리하고 얇게 찢는다.

피식

“미안한 건 알고?”

“저, 정말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인마. 태준이도 그 꼴 났는데, 무서울 수도 있는 거지. 넌 좀 심하긴 한데 아무튼.”

대충 살을 발라낸 후 화로에 불을 붙여 웍을 달군 뒤 기름을 부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습니다……. 덩칫값 좀 하라는 말도 자주 들었고요.”

손질해 놓은 파를 가져와 파기름을 내려던 참.

자기보다 계급도 높은 사람이 요리하는데 뒤에서 보고만 있자니 무안했는지,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들어서 운동도 하고 격투기도 시작했는데…… 이 성격은 안 고쳐졌습니다.”

그래서 저 근육 덩치가 완성된 건가.

파기름에 달걀을 풀면서 듣자 하니, 그 성격 탓에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늘처럼, 이성적으로는 해야 한다고 아는 일인데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래서 입대할 때도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는 싫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했습니다.”

그 위에 밥을 넣어 달걀과 섞어 준 후, 손질한 야채들과 고기를 넣고 밥알이 풀릴 때까지 볶아 준다.

“궂은일도 빼지 않고 도맡아 하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

간은 소금과 후추,

그리고 후임이 사놓은 고급 굴 소스로 맞춘다.

“신 병장님은 후임들이 죽는 걸 보고서도 괴물하고 맞서 싸웠다고 들었는데, 저란 놈은…….”

“야.”

“예?”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말을 끊게 된 건 좀 미안하지만.

음식이 완성됐다.

“특식이다.”

건조기에 들어가 있던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온 뒤 음식을 담아서 녀석에게 밀어 넘겼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는 뭐, 별거 없고. 이거나 먹어.”

“신 병장님…….”

덩치가 곰만 한 녀석이 울먹이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진 않았다.

[‘용기를 품은 초보 요리사의 닭가슴살 볶음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재료-육류의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저하됩니다.]

[보조재료-조미료의 품질의 뛰어납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입니다! 요리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정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하는 대상이 요리를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섭취 시 일정 시간 동안 힘+ 3, 민첩 +3, 특정 대상이 섭취할 경우 요리의 모든 효과 30% 증가.]

[주방장의 특별 소스가 첨가되었습니다.]

전광일 상병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요리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맛있냐?”

“마, 맛있습니다. 신 병장님, 밖에서 요리하다 오셨습니까? 무슨 맛이…….”

“새끼, 입에 발린 소리는 잘하네.”

“지, 진짠데…….”

먹을 만한 건 사실인지, 빠르게 그릇을 비워 가는 녀석.

‘……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겠다만.’

겁이 많다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타고난 성격.

그런 타고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애초에 개인의 성격을 가지고 그걸 비판하거나, 고치게 만드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이 녀석의 열외가 용납되는 건 아니야.’

이곳은 군대.

바깥의 상식과 달리, 개인의 성향을 마냥 존중해 주진 못한다.

각성 과정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부대 모두가 알게 됐다.

이 녀석이 각성에서 제외되는 것을 용납해 버린다면, 다른 이들도 열외로 해 달라고 하게 되겠지.

위험한 일을 나서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열외자가 생기면, 열외로 하지 않은 각성자들과는 나눠서 구분될 수밖에 없다.

구분이 생기면 분열이 생기게 되고, 분열은 약화를 불러온다.

이 녀석을 용납하는 일이, 부대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야.”

이 정도는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고생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그릇을 다 비운 녀석이 나를 보며 말했다.

“신 병장님……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허, 음식 잘 먹었으면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거야.”

“자, 잘 먹었습니다.”

“그려.”

녀석은 그러고도 할 말이 남았는지,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병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냐. 아, 이런 특식 같은 건 자주는 못 해 준다? 알지? 우리 부대 지금 식량 위기야.”

“저도 압니다. 요리도 맛있었습니다만, 그거 말고도…… 뭐랄까.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걸 병장님한테 털어놓고 나니까 좀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묘하게 자신감도 생겨나는 것 같고요.”

“다행이네.”

자신감이라.

녀석은 요리가 아니라 나한테 털어놓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거 아마 요리 때문에 그런 게 맞을 텐데.’

짐작 가는 구석이랄까.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신 병장님. 다음 괴물 마무리 짓는 일.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괜찮겠냐?”

“예.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됐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속으로는 ‘예쓰!’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잘 생각했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병장님.”

“은혜는 무슨. 이제 복귀해. 계속 붙잡아 두기도 미안하네.”

그렇게 광일이를 보낸 뒤.

식당에 혼자 남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효과가 있었어…….”

군인으로서 전광일 상병은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큰 키와 근육량에서 나오는 운동 능력과, 격투기 경험에서 쌓은 전투 수행 능력.

성격도 온순해서 선, 후임과의 관계도 좋고, 명령도 잘 듣는다.

유일한 단점이 바로, 겁이 많다는 것.

“그럼 고쳐 주면 되지.”

일반적인 군대였다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정신 개조를 해야겠지만.

운이 좋게도.

대체할 만한 방법이 있었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훌륭한 주방장은, 그 마음의 방향성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별 소스를 통해, 음식을 섭취한 이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각성하면서 얻게 된 이상한 능력 중 하나.

이미 대충 실험도 마쳤다.

‘병사들을 안심시키려고 사용했을 때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

불안으로 술렁거리던 병사들의 분위기가, 식사 후에는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쓸모가 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

그렇다면 안 쓸 이유가 없잖냐.

전광일 상병의 단점이 겁이 많다는 것이라면.

그걸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포를 이겨 내는 힘은, 용기.’

[용기를 품은 초보 요리사의 닭가슴살 볶음밥]

녀석을 냅다 끌고 와 밥을 먹인 것도, 당연히 이 능력을 쓰기 위해서다.

최대한 약발이 잘 받으라고 요리도 나름 힘써서 만들었다.

“무난하게 잘 풀린 거 같네.”

광일이 녀석이 용기를 얻었으니.

다음 괴물이 나타났을 때 무난하게 각성에 성공하고 넘어가면 되겠지.

물론 태준이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면 안 된다.

총으로 괴물의 힘이 확실히 빼놓고 각성을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 * *

한 시간 뒤.

일이 마냥 무난하게 풀리지만은 않았단 걸 알게 됐다.

“전광일 상병님! 아직 가시면 안 됩니다!”

“미친, 야, 야! 다들 광일이 말려!”

병사들이 전광일 상병의 양팔을 붙잡은 채 소리 질렀다.

정작 붙들린 광일이 녀석은 어땠냐면…….

“나를 막지 마라! 내 용기를 시험할 기회가 왔으니!”

야밤에 부대에 나타난 괴물.

우선 총으로 최대한 체력을 빼놓은 뒤 광일이가 마무리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광일이 녀석이 총알을 몇 발 맞지도 않은 괴물을 보더니, 저딴 말을 내뱉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크하하! 죽어라! 괴물! 나의 제물이 되어라!”

“크륵…….”

총알을 10발 이상 맞았으니 어느 정도 힘이 빠지긴 했겠지만.

그래도 질긴 생명력 탓에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괴물.

끝내 말리던 병사들을 모두 뿌리친 전광일 상병은 그 괴물에게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카학!”

당연히 괴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놈의 두 손이 광일이를 덮쳤다.

“크큭!”

광일이 녀석은 거기에 맞서 자기 손을 내뻗더니.

자신을 덮치던 괴물의 손을 붙잡고 힘 대결에 들어갔다.

두 손으로는 괴물을 붙잡은 채로, 무릎을 들어 괴물의 복부를 가격하는 전광일 상병.

턱! 턱!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괴물의 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매우 단단하다.

총으로 쏴야 겨우 뚫리는 비늘을 무릎으로 부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광일이의 군복 무릎이 찢어지고, 안쪽에 있던 무릎에선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크하하, 도마뱀 새끼! 제법 튼튼하구나!”

소리친 녀석은 복부를 차던 무릎을 돌려 괴물의 발에 걸었다.

동시에 손에 힘을 주던 방향을 바꾸니.

괴물의 몸이 크게 출렁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전광일 상병의 거체가 그 위를 덮쳤다.

괴물을 바닥에 쓰러트린 녀석은 한쪽 발로 괴물의 오른팔을 짓밟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괴물의 머리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괴물의 왼팔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그 사이의 겨드랑이가 노출되었다.

비늘이 없고, 심장과 가까운 부위.

‘……내가 알려 준 약점!’

미쳐 버린 것처럼 보였는데, 그 와중에 괴물의 약점은 기억하고 있었나?

그러나 겨드랑이에 비늘이 없다고 해서 가죽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관절부인 만큼 부드러운 편이긴 했으나.

대검 하나 안 들고 덤벼든 전광일 상병이 그 가죽을 뜯고 심장부를 공격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콰직.

공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괴물의 겨드랑이 부분을 물어뜯었다.

괴물의 살점 일부가 전광일 상병의 입에서 덜렁거렸다.

“퉷, 더럽게 맛없군.”

괴물의 겨드랑이의 가죽을 뜯어낸 녀석은 괴물의 머리를 짓누르던 팔을 가져오더니.

손날을 세워 그 겨드랑이 부위에 쑤셔 박았다.

찌걱, 찌걱.

“크라하…… 학!”

얼굴이 자유로워진 괴물이 전광일 상병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심장 근처, 혈관이 모여 있는 몸 안을 헤집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

잠시 뒤.

괴물의 속살을 거칠게 헤집다 보니 혈관이 터져버렸는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몸속의 피가 급격하게 빠져나가자.

고통에 몸부림 치던 괴물은, 날뛰던 기력조차 잃고 점점 얌전해졌다.

툭.

괴물이 목숨을 잃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괴물의 죽음을 확인한 전광일 상병이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눈앞에 무언가 있기라도 한 듯 잠시 바라보더니.

곧이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신 병장님! 저도 각성했습니다!”

온몸을 괴물의 피로 물들이고.

한 손에는 괴물의 심장을 든 채.

입가에는 아직도 괴물의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모두 신 병장님 덕분입니다!”

“…….”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라고 생각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들.

“……약발이 좀 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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