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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7화 (7/227)

7화 각성자 늘리기 (4)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 그냥 맛있는 거 해 주고! 얘기 좀 들어 주고! 그게 다라니까?”

광일이를 성공적으로 각성시킨 건 좋았지만, 효과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

이민재 병장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너한테 그런 설득의 재능이 있었다고…….”

“형, 사람의 마음이란 게 다 그런 거야. 좀 기운 없고 무섭고 해도. 맛있는 밥 먹고, 속에 쌓인 것들 속 시원하게 뱉어 내고. 그러면 다 풀리는 거라니까? 경청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되지.”

“그, 그런 거냐?”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주방장의 특별 소스]라는 내 스킬의 효과다.

‘……하지만 밝힐 수는 없지.’

사람들한테 보여 줬던 [최하급 단도 숙련]하고는 다르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는 사람의 감정을 조종한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약간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 전광일 상병의 모습을 보니,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인격 개조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잘못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어.’

일단은 숨기는 게 좋겠지.

“……너, 전광일 그 녀석이 무슨 직업 얻었는지 아냐?”

“뭔데?”

“광전사란다. 이성을 대가로 전투력이 강해지는 특성도 생겼다더라.”

“…….”

내가 의도한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용기, 용기였잖아…….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짐작 가는 이유라고 하면, 약발이 너무 강하게 든 게 아닌가 하는 것.

[특정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하는 대상이 요리를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광일이 녀석에게 먹인 요리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병사들을 안심하게 만들 때는 100인분이었고, 이번엔 1인분이었으니.’

100배까진 아니라고 해도, 효과가 배가된 게 아닐까?

게임에서도 광역 버프보다는 대인 버프가 효과가 강한 게 상식이니까.

광일이가 보여 준 모습은, 용기를 너무 심하게 얻은 탓이었고.

“……광일이는 원래 덩치도 크고 싸움 잘할 것처럼 생겼잖아. 그런 쪽 재능이 있었나 보지.”

“그 순한 녀석이?”

이민재 병장은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무튼, 앞으로도 각성할 차례가 된 병사들은 나한테 보내 줘. 위험한 일인 건 맞으니까 특식 정도는 먹여 줘야지.”

“괜찮은 거냐? 식량에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잖아?”

“어차피 남은 식량 대부분이 비상용 보존식들이야. 나머지 식자재들은 썩기 전에 빠르게 소비해야 하고. 죽은 사람이 많아서 먹을 입이 줄었잖아? 신선 재료들 썩기 전에 쓰려면 오히려 엄청 먹여야 할걸.”

군대의 식량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주에 2~3회씩 들어오는 식재료로 만드는 일반 식사.

야전 등에서 취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투식량.

식자재를 보관하는 1종 창고에 쌓여 있는 비상용 식량.

비상용 식량은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보급이 끊겼을 때를 대비한 식량으로, 쌓여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양이 많다.

단점이라면 비상용인 만큼 아무래도 메뉴가 단조롭고 한정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까.

보통 캔에 담긴 카레나 짜장, 탕류가 주가 된다.

전투식량의 퀄리티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상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반식뿐인데, 보급이 끊긴 상황.

‘제대로 된 식사를 내놓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

그렇다면 아끼지 말고 먹일 수 있는 만큼 먹이는 게 나았다.

거기에 비상용 식량이나 전투식량은 딱히 조리라고 할 과정이 없는 음식들.

내 직업인 ‘요리사’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까.

* * *

그렇게, 부대의 각성자 늘리기가 시작됐다.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냥 죽인 거냐?”

“예. 저항이 너무 거세서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뭘, 잘한 거지.”

괴물들은 계속해서 부대를 습격했고, 병사들이 막아 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병사들이 다가가 ‘막타’만 칠 정도로 몰아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명력이 너무 질겨.’

태준이 녀석이 괜히 괴물의 반격에 당한 것이 아니다.

총을 열 발 가까이 박아 넣어도 죽기 직전까지 발악하며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괴물이 부지기수.

태준이처럼 또 병사가 괴물에게 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부대의 사기가 급감할 것은 뻔한 일.

각성은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진행해야 했기에, 각성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변이라고 해야 하나, 변화는 있었다.

광일이 다음으로 각성을 하기로 한 것은, 수송반의 서수혁 상병.

전광일 상병과 달리, 서수혁 상병은 순순히 각성에 응했다.

그리고…….

“직업은 사수라고 뜹니다. 그런데…… 이거 뭡니까?”

눈앞에, 또다시 문구가 나타났다.

[파티 결성!]

[전투의 최소 단위, [파티(5인)]를 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지역 - ROK의 세 번째 파티입니다.]

[소지역 - ROK. 17의 첫 번째 파티입니다.]

[업적 달성 - 일단 모여!]

[남들보다 빠르게 파티를 결성하는 데 성공한 당신들!]

[앞서가는 이들을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3위 보상 - 성장의 비약x10]

보상이라는 것은 곧바로 주어졌다.

각성한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인당 10개씩의 알약.

[성장의 비약]

[일정 시간 동안 경험치 습득률이 500%가 됩니다.]

“……점점 더 게임 같아지네.”

파티.

게임에서 인스턴트 던전을 공략하거나 하는데 동원되는 최소한의 기준.

게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5인은 정확히 ‘파티’ 수준의 인원수이기는 하다.

“5인이라……. 나, 영준이 너, 그리고 태준이, 광일이, 수혁이. 이렇게 다섯 명인가?”

“그렇겠지? 아직 기절해서 병실에 누워 있는 태준이도 포함된 게 신기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문구를 지켜보던 광일이가 말했다.

“저는 저 3위라는 문구가 더 신경 쓰이는데요.”

“그게 왜?”

“저희가 3위면, 1, 2위가 있다는 거고. 저희랑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더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마 부대 밖에도 괴물들이…….”

“그건…….”

그렇긴 하지.

“하아, 부모님들은 어떻게 됐을지.”

부대 내에는 아직도 ‘괴물들이 우리 부대만 습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병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최소한 부대 바깥에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지역이 더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최악의 경우, 부대원들의 가족들도 괴물들의 습격에 휩쓸렸을지도 모르는 상황.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진 말자. 바깥 사정도 걱정되긴 하지만, 걱정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일단은 우리 안전이 먼저잖냐.”

“그렇습니다만…….”

“모르긴 몰라도, 업적 보상이라는 것까지 줄 정도면 우리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는 뜻일 거야. 우리 안전이 먼저 확보된다면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때,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서수혁 상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좀 마음에 안 드는데요.”

“음?”

“5인이라니, 살아남은 부대원이 100명이 넘는데?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원으로 치지도 않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

“각성자만 사람 취급? 살아남으려고 각성하긴 했지만, 좀 짜증 나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이 갑자기 변해 버린 것만 해도 당황스럽지만.

그 변한 세상은, 각성자가 아닌 인간은 인간으로 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각성한 직업이 사수라고 했지? 특성 같은 건 어때?”

“음, 초보 사수. 특성은 사격할 때 정확도와 위력이 강화된다고 돼 있네요.”

그러고 보니 서수혁 상병은 부대에서도 항상 사격 능력자로 유명했던 거 같다.

“근데 사격이라니? 우리는 총알이 모자라게 될까 봐 각성을 하고 있는 건데?”

“어, 그러게 말입니다?”

“…….”

“…….”

다행히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저 괴물들, 그냥 총알은 10발을 맞아도 살아서 날뛰었습니다만. 서수혁 상병님 총알은 두 발만 맞아도 빈사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괴물 한 마리를 제압하는 데 드는 총알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총알을 아낄 수 있다는 것.

한동안 괴물을 제압하는 역할은 서수혁 상병이 맡기로 결정됐다.

그 후로도 각성자 늘리기는 계속됐다.

“제 차례입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서수혁 상병처럼 큰 불만 없이 각성에 응하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흐으윽…… 난 못 해……. 우린 다 죽고 말 거라고…….”

광일이처럼, 두려움에 떨며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워, 워. 진정하고. 밥 좀 먹고 얘기하자.”

“큭큭, 가자! 영광스러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용기를 조금 담은 특식을 제공해 주는 거로 해결.

“너…….”

내가 설득하겠다고 데려갈 때마다 용기 충만해져서 돌아오는 병사들.

그 모습을 본 이민재 병장의 시선이 조금은 따가웠지만…….

‘부대의 결속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신입 요리사 Lv. 1]

[능력치 : 힘 9, 민첩 10, 마력 8, 행운 9]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요리 숙련, 최하급 재료 감별, 최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 소스]

[포인트 : 82pt]

[재능 : 대규모 조리]

그렇게 부대원들을 각성시키는 동안, 나도 내 능력을 점검했다.

우선은, 포인트.

“82? 언제 이렇게 쌓였지?”

괴물을 사냥하거나, 요리를 만들어 먹일 때마다 포인트가 상승한다는 문구가 보였던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포인트가 꽤 쌓인 모양.

게임에서 포인트라고 하면, 사용처는…….

“……포인트 상점?”

[포인트 상점]

[딱딱한 호밀빵 - 10pt]

[평범한 강철검 - 30pt]

[평범한 방패 – 30pt]

.

.

.

혹시나 해서 이름을 부르자, 눈앞에 나타나는 포인트 상점.

상점이라는 이름에 맞게,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는 듯했으나, 내게 쓸모있는 물건은 없어 보였다.

전사나 마법사 같은 전투직으로 각성한 이들이라면 쓸 만할지도.

‘호밀빵……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건가?’

그나마 빵 같은 식량이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으나, 가격이 꽤 있는 편이라.

만약에 삼시 세끼를 저 호밀빵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꽤 성실하게 포인트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려, 다른 물건들이 무엇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총알이 있냐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총과 총알 같은 것은 판매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듯싶었다.

그나마 가장 아래쪽에 이런 게 있었다.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민첩)]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마력)] - 1,000pt

[랜덤 스킬북] - 3,000pt

“성능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비싸구먼…….”

능력치를 상승시키거나,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물건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쳐다보기도 불가능한 가격이었다.

언젠가는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다음으로는, 스킬과 특성들.’

먹은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주방장의 특별 소스]는 이미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상의 손질법과 조리법을 알게 되는 [요리사의 눈]도, 어떤 효과인지는 대충 확인했으니 넘어가고.

[최하급 단도 숙련]

실험해 본 결과, 사시미칼로 단단한 원목 정도는 가볍게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광전사’로 각성한 광일이와 약간의 스파링을 해 본 결과.

“혹시 밖에서 조폭 일 하다 오신 거 아닙니까?”

“뭔 소리래.”

칼질은커녕 주먹다짐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나임에도, 단도를 사용한 전투 자체가 몸에 익은 듯이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이게 최하급이라면, 상급쯤 되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조금은 무서워졌다.

[최하급 화염 친화]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만졌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불길에 손을 넣어 보기도 했는데, 30초쯤 지나자 뜨거워져서 급하게 손을 뺐다.

[최하급 재료 감별]

[최하급 파 : 신선도와 질이 떨어지는 평범한 파다.]

말 그대로 식재료의 설명을 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이걸로 보고 알았는데, 식당에 보급되는 재료는 죄다 최하급이었다.

‘이게 나라냐?’

취사병들이 따로 사 놓은 재료들은 대부분이 중급, 드물게 상급 재료도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최하급 요리 숙련]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영준아, 너 요리에 무슨 짓 했냐?”

“민재 형? 왜? 맛없어?”

“아니, 오히려 맛은 엄청 좋아졌고. 그것보다도 묘하게 힘이 난다고 해야 하나……. 까놓고 말해서 스탯이 올랐는데.”

“아.”

완성된 요리에 붙어 있던 힘 +3이니 뭐니 하던 스탯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

“다른 사람들은 못 느끼는 거 같던데.”

“문구에 특정 스탯을 올려 준다고 돼 있다며? 각성하지 못한 병사들은 스탯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아, 그런 건가.

스탯을 올려 준다고 적혀 있는 효과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애초에 ‘스탯’을 가지고 있는 상대여야만 한다는 것.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 요리밖에 없더군.”

거기에 더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먹은 요리의 효과가 따로 시스템 메시지로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민재 형도 요리를 먹자마자 묘하게 힘이 세진 느낌이 들길래.

상태창을 확인해 본 뒤에야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내가 가진 ‘식재료 감별’ 특성처럼 특별한 능력이 없는 한. 시스템 메시지가 요리의 효과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는 거겠지.‘

하긴.

그랬으면 ‘특별 소스’를 사용한 시점에서 병사들한테서 얘기가 나왔을 테니까.

“그럼 체감은 어때?”

“솔직히, 엄청 크다. 내 원래 힘 스탯이 9였는데 3이 올랐으니까. 수치로만 쳐도 30%고, 체감상으론 훨씬 커.”

요리를 먹으면 버프가 들어오는 게임은 많다.

하지만, 그 버프의 양은 게임에 따라 다르다.

민재 형의 감상을 들어본 바로는, 적어도 우리가 처한 이 게임의 요리사는 성능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이 정도의 버프가 부대 전체에 적용된다면…… 영준이 네가 우리 부대의 핵심이 될지도?”

“에이, 취사병이 무슨.”

그렇게 내 능력도 어느 정도 확인하고.

부대원들도 순조롭게 각성을 계속해 10명이 넘어갔을 때쯤.

“병장님들. 잠깐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괴,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리자드들? 이제 익숙해질 만도…….”

“아니, 그 녀석들하고는, 격이 다른 괴물입니다!”

이변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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