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야습 (1)
부대원들을 각성시키며, 우리는 부대의 경비 체계도 조금씩 손봐야만 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100명밖에 안 되는 병사들이 지키기엔 부대가 너무 넓었다.
“생활관에서부터 식당까지. 그 근처 건물로 자원하고 인력을 모으자.”
“저희 레이더 부대 아닙니까? 레이더를 방치해도 될지.”
“외부하고 모든 종류의 연락이 끊긴 상황이야. 레이더 정보도 다른 부대로 안 가는 상황이고. 적이 북한도 아니고 레이더를 노리겠냐 설마?”
물자를 생활관에 모아 놓고 병사들도 생활관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생활관을 감싼 주변 건물들 옥상에 병사들이 올라가 주변을 경계.
혹시 문제가 생기면 중앙의 생활관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이 각 건물로 지원을 하러 간다.
괴물들이 병사들이 생활하는 생활관까지 접근하기 전에 요격한다는 전략.
부대의 펜스가 멀쩡했으면 모를까, 괴물들의 이빨과 손톱으로 펜스는 이미 열린 문이나 다름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망원경으로 주변을 정찰하던 병사 중 한 명이 이변을 발견한 것이다.
“아! 병장님들 오셨습니까!”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고?”
“예! 생긴 것 자체는 지금까지 나타난 그 리자드라는 녀석하고 비슷합니다만, 보시면 알 겁니다.”
나는 병사에게서 망원경을 받았다.
“저기, 저쪽을 잘 보시면.”
우리 부대는 주변에 산밖에 보이지 않는 산맥의 깊은 곳,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해 있다.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주변 산의 지형이 훤히 보였는데, 병사가 가리킨 곳을 보니 확실히 무언가 보였다.
검은 비늘로 몸이 뒤덮인 괴물.
거기까지만 보면 지금까지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하고 다를 바 없지만.
“……엄청 큰데?”
우리 부대를 계속해서 습격해 오는, 도마뱀과 비슷한 괴물, 리자드.
그 괴물은 비늘도 단단하고 생명력도 질겼지만,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약간 작은 인간하고 비슷한, 160cm 정도가 평균.
“저건 2.5미터는 될 것 같군.”
“주변에 다른 리자드들도 보입니다. 아마 놈들의 대장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괴물들이 단체 생활까지 한다고?”
지금까지 부대를 습격한 리자드들은 보통 한 마리씩.
많아도 두세 마리가 같이 다니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 덩치 큰 대장 같은 놈과 그놈을 따르는 평범한 크기의 리자드는…….
얼핏 봐도 스무 마리 이상.
부대를 습격하던 녀석들과 달리, 명백하게 위험한 숫자다.
“총알이 좀 소비되긴 하겠지만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민재 형은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는 투였다.
확실히, 리자드들에겐 총알이 통한다.
스무 발 가까이 박혀야 쓰러지는 놈들이라지만, 부대 옥상에 총을 든 부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
총알이 많이 소비되긴 하겠지만, 스무 마리 정도야 부대에 접근하기도 전에 전멸시킬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저 녀석, 언제 발견한 거야?”
“오늘 새벽에 발견했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 어떻게 행동했지?”
“예? 그냥, 별거 없었습니다. 계속 부대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쳐들어올 기색은 안 보이더군요.”
지금도 한두 마리씩의 리자드들이 부대를 심심찮게 공격해 온다.
그리고 나름의 수비책을 정립한 우리 부대는,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다.
오히려 여유롭게 막아 내고 각성자들을 늘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저 녀석은 스무 마리에 달하는 무리를 이룰 때까지 부대를 습격하지 않았다.
저만한 숫자를 가지고도 습격하지 않고 부대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이유라고 한다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다.”
“예?”
“민재 형 말대로, 그냥 쳐들어오면 우리야 총알이 좀 소비되긴 하겠지만 문제없이 막을 수 있어. 하지만 저 녀석은 그러지 않았지.”
“그건…….”
2.5m에 달하는 덩치,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가진 저 괴물이 생긴 것과 달리 평화를 사랑하는 초식동물이 아니고서야,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평범한 습격은 통하지 않을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 부대 근처를 맴돌면서 정찰하고 있는 거다.”
“괴물들이 그 정도로 똑똑할까요?”
“늑대들이 사냥할 때 얼마나 영악하게 구는지 알면 놀랄걸? 이족 보행까지 하는 녀석들이니, 늑대보다 영리하다 해도 놀랍지도 않아.”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최소한 늑대만큼의 지능을 가진 괴물들의 사냥감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요? 저 괴물들이 기회를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아니, 우리가 유리한 건 부대에서 수비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거지. 숲 밖으로 나가면 더 처참하게 사냥당할 거야.”
“그럼 어떻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렇다 할 말을 꺼내는 병사는 없었다.
하긴,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일단 저 녀석 움직임은 계속 관찰해라. 교대할 병사들한테도 주의하라고 전하고.”
민재 형이 근처의 병사들에게 당부했다.
확실히 병사들로선 저게 최선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걸로 충분할 리가 없는 일.
그렇다면.
“생활관에 방송 하나만 해 줄래?”
“예?”
“각성자들, 각성한 순서대로 나랑 면담 좀 하자고 전해.”
병사가 아닌 요리사로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겠지.
* * *
대장 리자드가 부대 주변을 맴도는 것과 별개로, 부대원들의 각성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안전에 중점을 둔 만큼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부상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대원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줬으니까.
실제로 부대원들의 정신 상태는 첫날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진 상태.
물론 단지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주방장의 특별 소스 - 안심]
[안정이 찾아오는 초보 요리사의 콩나물무침]
“그래도 부대는 몬스터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고, 무기도 있어. 바깥에도 괴물이 나타났을 확률이 높다며? 부대에 있는 게 더 안심돼.”
[주방장의 특별 소스 - 편안]
[편안한 마음의 초보 요리사의 오징어젓갈]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괴물들도 상대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좀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주방장의 특별 소스 - 믿음]
[불안을 쫓아내는 초보 요리사의 제육볶음]
“가족들 말입니까?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저희 가족은 강해요. 가족 중에 가장 나약한 저도 살아 있으니, 가족들도 어떻게든 살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찌 됐든 병사들의 사기가 계속 유지된 덕분에, 부대의 수비가 흐트러질 일은 없었다.
각성자도 무난하게 늘어나, 일주일간 10명이나 증가하여 총 20명이 각성에 성공했다.
부대 전체 인원 중 5분의 1에 달하는 인원수.
“그 덩치 녀석, 특별히 변화는 없지?”
“예. 여전히 부대를 맴돌기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래, 또 숫자가 늘었구먼.”
부대에 빈틈이 생기지 않는 만큼, 부대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노리는 거대 리자드의 습격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각성자를 늘리고 있을 때, 녀석도 한두 마리씩 따로 돌아다니는 리자드를 모으고 있는 듯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20마리가량이었던 무리는 어느새 40마리를 넘긴 상황.
“아직까진 문제가 없습니다만, 100마리가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100마리여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우리도 ‘사수’ 각성자가 꽤 늘었으니까.”
부대의 첫 각성자 5인은 모두 직업이 달랐다.
직업명도 말 못 하고 기절한 태준이를 제외하면, 각각 요리사, 광전사, 마법사, 사수.
그 후로도 다양한 직업들이 등장했다.
시설반 녀석들이 공병으로 각성한다든가, 헌병들이 수비대원으로 각성한다든가.
그렇게 각성한 병사들은 서로 비슷한 능력을 지닌 직업군들끼리 모여, 서로의 직업에 대해 연구하고, 갈고닦게 되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 중 하나.
‘사수 개사기.’
‘사수’ 각성자는 단 두 발의 탄환으로 리자드를 무력화시키거나 죽일 수 있다.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리자드와 근접해서 위험한 전투를 해야 하고, 마법사 계열 직업들이 주문을 외워야만 위력적인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것과는 천지 차이.
총알이라는 자원이 소비되고, 총알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총알이 있다는 가정하에, 사수는 평범한 K2 라이플로 대물 저격 총급의 탄환을 연사로 당기면서도 대부분의 탄환을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는, 미친 직업이었다.
거의 걸어 다니는 기관포 수준.
20명의 각성자 중 사수 각성자는 3명.
이들 3명만 있더라도, 리자드 100마리 정도의 습격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리자드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다가 사수들의 유효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포화가 빗발칠 테니까.
생활관 근처에 도달할 때쯤이면 10마리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부대원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큼 총알이 중요해지는 셈이지만.’
사수들의 화력이 그만큼 강력하단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충분한 숫자의 사수와 그들을 지켜 줄 전사 계열 각성자들로 저 괴물의 토벌에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숲이라는 엄폐물이 있는 만큼 사수의 화력도 제한되긴 할 테지만, 약간의 제한 정도는 문제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이었으니까.
“이대로 여유롭게 성장하면 이기는 건 우리야.”
혹시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 나름 이런저런 준비도 해 놨지만.
아무래도 그런 상황 자체가 오지 않고 끝날 것 같았다.
‘다음 주면 부대의 일반 식량도 거의 떨어지겠지만, 부대원의 반 정도는 각성시킬 수 있을 거야. 그쯤 되면 내 음식의 버프가 없어도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테니까. 일반식의 필요도 줄어들 거고.’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와 아침 식사 준비도 다 끝난 한산한 밤의 식당.
남은 식자재의 재고량도 확인하고, 그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지 정리해야 했다.
지금이 10시니까 대충 11시까지 끝내고 생활관에 가서 자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재고 정리용 노트를 꺼내던 참이었다.
두웅.
“어?”
무언가 울리는 소리 같은 게 나더니, 식당의 불이 꺼졌다.
잔잔하게 울리던 냉장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전인가?”
생각해 보니, 오히려 지금까지 전기가 멀쩡하게 들어온 게 신기한 일인 듯싶었다.
바깥에도 괴물들이 나타났을 테니, 전기가 멀쩡하게 들어오던 게 이상한 일.
그래도 이곳은 군대인 만큼, 전시에 대비한 발전기들도 있으니 시설병들이 출동해서 곧 해결하겠지.
“아니, 잠깐.”
지금은 밤.
전기가 나간 부대는 어둠 속에 잠겼다.
“이런 씨…….”
‘사수’ 각성자들이 있다면 멀리서부터 쳐들어오는 괴물들을 모조리 요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수 각성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격할 수 있을 때의 경우.
‘사수 각성자들의 특성 중에, 밤눈이 밝아지는 특성은 없었어.’
나는 들고 있던 펜과 노트를 집어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 잠긴 부대.
괴물들이 엿보던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