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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9화 (9/227)

9화 야습 (2)

급하게 식당을 나선 나는 생활관으로 달렸다.

“신영준 병장님!”

정전을 확인하고 위험을 예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평상시면 조용했을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상황은!”

“병사들 배치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정전되자마자 이민재 병장님이 다들 총 들고 뛰어나가라고 하셔서…….”

다행히, 민재 형이 위기를 눈치채고 빠르게 대처해 준 모양이었다.

“모아 둔 물자 중에 조명탄이 있어서, 가능한 한 주변에 뿌려 두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생활관 주변 건물 옥상에 배치된 병사들이 붉은색 조명탄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신속한, 최선의 대처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한계가 있겠지.”

평상시에는 밤이라도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부대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조명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리자드 무리가 밤에도 습격하지 못한 것은, 밤이라도 우리의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기껏해야 조명탄을 던지는 정도로는, 확보할 수 있는 시야 역시 기껏해야 생활관 주변 건물들까지.

지금쯤 부대에 괴물들이 진입했어도 이상하지 않으나,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각성자들은?”

“생활관 입구 쪽에 대기 중입니다. 괴물들이 어디로 쳐들어올지 모르니, 육안으로 보일 때까지 대기하다가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고…….”

“나도 그쪽으로 합류할게. 힘내라.”

“예! 병장님도 힘내십쇼!”

중간에 만난 병사가 말한 대로 생활관의 입구 쪽으로 향하니, 각성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건물 옥상에 배치된 사수 각성자들을 제외한 17인의 각성자들.

“신영준 병장님, 오셨습니까.”

“영준이 왔냐.”

각성자들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법사 계열들은 조용하게 주문을 외고 있었고, 전사 계열들은 부대 창고에서 가져온 슬레지 해머나 폭동 진압용 방패, 대검을 단 총알 없는 총검 등으로 무장한 상태.

오늘 저녁 식사에도 약하지만 ‘용기’가 섞인 요리를 먹였으니, 사기는 충분할 것이다.

나도 그들 옆에 가서 섰다.

내 무장은, 일식을 공부하던 후임이 두고 간 사시미칼 하나.

그리고 손에 든 봉투가 하나.

“생각해 보니까 넌 요리사잖아. 뒤로 빠져서 보급이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뭐래, 이 부대 퍼스트 킬이 나야. 형.”

“하하, 저는 신영준 병장님만 믿겠습니다!”

이민재 병장과 전광일 상병과 농을 나누며 합류한 나는, 손에 쥔 봉투를 열며 말을 꺼내려 했다.

“다들 잠깐 이것 좀…….”

“잠깐.”

내 말을 끊은 것은 이민재 병장이었다.

“왔다.”

멀리서, 조명탄의 붉은 빛에 뒤덮인 형체들이 나타났다.

리자드들이었다.

“사격 개시!”

옥상에서 ‘사수’들을 지휘하는 서수혁 상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다다다당.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사수’와 미각성 병사들의 사격음.

‘급박한 상황이지만, 대처는 완벽했다.’

비록 정전으로 인해 시야가 줄어들었으나, 조명탄을 통해 최소한의 시야는 회복했다.

사수들과 일반 병사들의 사격만으로도 서른 마리 정도는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저 녀석은?’

리자드의 선두에, 다른 리자드보다 1.5배는 거대한 리자드가 나타났다.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리자드 치프틴]

[리자드 치프틴은 리자드 중에서도 보기 드문 개체로, 희귀한 만큼 다른 리자드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맛을 자랑하…….]

‘치프틴. 그런 이름인가.’

치프틴, 대장.

괴물들의 지휘관.

하지만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지휘관급 개체가 앞에 나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저래서야 스스로 타깃이 되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자고로 지휘관은 뒤에서 지휘해야만 의미가…….

“크롸아아아아아아악!!!”

‘윽!’

앞으로 나선 치프틴이, 엄청난 크기의 괴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큰지 그 소리만으로 바닥의 돌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소리도 아니었다.

[강력한 피어에 노출되었습니다!]

[전장의 함성!]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의 힘, 민첩, 체력이 일시적으로 소폭 증가합니다.]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에게 일시적으로 ‘최하급 원거리 공격 저항’ 효과가 부여됩니다.]

[전장의 ‘강철 리자드 부족’ 외의 개체들에게 일시적으로 ‘최하급 혼란’, ‘최하급 명중 저하’, ‘최하급 집중 저하’ 효과가 부여됩니다.]

“이게 무슨……!”

눈앞에 나타난, 딱 봐도 우리한테는 좋지 않은 문구들의 나열.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그나마 각성자들은 상태가 괜찮은 듯했지만, 옥상에서 사격하던 병사들 대부분이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리자드들의 몸에는 정체불명의 회색빛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사격 재개해! 이 새끼들아!”

그나마 각성자 중 최선임인 서수혁 상병이 정신을 차리고 사격을 개시했지만…….

‘명중률이 낮아……!’

‘사수’ 각성자들이 강력한 이유는, 그 탄환 한 발 한 발의 화력도 화력이지만 그 화력을 모조리 적에게 맞추는 명중률에 있었다.

하지만 리자드 치프틴의 피어에 담긴 ‘최하급 명중 저하’ ‘최하급 집중 저하’의 힘인지, 사수 각성자들의 명중률은 평상시의 반도 안 나오는 듯했다.

그 정도라면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저 녀석들! 총알이 안 통합니다!”

“이런 씨…… 각성 안 한 새끼들은 총알 싹 다 각성자한테 넘겨!”

‘최하급 원거리 공격 저항……!’

리자드들의 몸을 맴도는 회색빛의 기운.

각성하지 않은 병사들의 탄환은 명중해도 그 기운에 막혀 흠집조차 내지 못했고.

사수 각성자들의 사격은 그나마 피해를 주긴 했으나, 단 두 발 만에 리자드들을 절명시키던 화력은 나오지 않았다.

명중률이 높지도 않은 사격을, 못 해도 다섯 발은 박아야 효과가 있는 수준.

그리고 리자드들은 단 셋밖에 되지 않는, ‘그럭저럭 버틸 만한’ 사수 각성자들의 포화를 뚫고 생활관 근처 건물들에 접근했다.

“미친,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서 왜 진즉에 습격 안 한 겁니까!?”

“……메시지를 봐, 대부분 효과에 일시적이라고 돼 있어. 평상시의 우리 부대였다면, 일시적으로 총알이 안 먹혀도 저 효과가 풀리는 순간 역전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인 효과라도 접근하기에 충분하지.”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겁니까? 저 괴물이……?”

광일이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저 정도의 지성을 가진 괴물이 있다니.

“각성자들 다 튀어나와!”

사수 각성자와 병사들의 총알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민재 형이 소리 질렀다.

건물 앞에 선 우리에게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괴물들의 숫자는 얼핏 봐도 많아 보였다.

정찰할 때 봤던 무리는 40마리 정도였으나, 지금 보니 ‘사수’ 각성자들에게 죽은 괴물들을 제외해도 50마리는 돼 보였다.

본래는 60마리에 가까웠다는 뜻.

‘우리가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무리의 숫자까지 속인 건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영악함이었다.

저기에 대항하기 위해선…….

나 역시, 요리사의 역할을 해야겠지.

“민재 형.”

“영준이? 너, 요리사니까 역시 빠져야겠다는 소리 할 거면…….”

“그런 거 아니고, 형은 커피 좋아한댔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 작은 덩어리를 하나 꺼내 민재 형에게 던졌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사이즈의 모카빵.

“……?”

“광일이는 닭가슴살 좋아한댔지? 닭가슴살 샌드위치. 한입에 먹어라.”

“예?”

그 외에도.

‘불 마법사’ 각성자인 홍수는 매운 것을 좋아하니 붉닭 소스로 만든 라면땅.

‘전사’ 각성자 한일이는 단 걸 좋아한다 했으니 물엿으로 만든 사탕.

17명의 각성자들의 취향을 조사해서 만든, 한입 사이즈의 요리들.

모두에게 요리를 건넨 후 빈 봉투를 대충 바닥에 버린 뒤, 사시미칼을 들고 말했다.

“자, 먹고 일들 합시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입에 넣었다.

먹을 때마다 주변에서 애늙은이 소리나 듣지만,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는, 녹차 맛 초콜릿.

‘리자드 치프틴이랬냐. 네 피어는 확실히 대단했어.’

일시적이지만 아군의 능력치를 소폭 상승시키고, 최하급 버프까지.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효과였다.

하지만……

“난 일류 셰프가 될 때까지 못 뒈지는 몸이라.”

입에 넣은 한입 요리의 효과가 퍼졌다.

[‘최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용맹함의 녹차 맛 초콜릿’을 섭취하였습니다!]

[특정인의 입맛을 조사해 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해당인이 섭취할 경우 요리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중급 품질 이상의 뛰어난 재료들로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매우 뛰어난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스탯이 하루 동안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특성이 하루 동안 1레벨 상승합니다.]

[하루 동안 ‘하급 물리 저항’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공격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지구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루 동안 ‘하급 마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특별한 소스의 힘으로, ‘중급 용맹’ 효과가 적용됩니다.]

[중급 용맹]

[전장의 지배자!]

[용맹한 전사들은 전장을 지배합니다.]

[적대적 대상들의 스탯과 사기가 소폭 감소합니다.]

모든 각성자의 취향을 조사하고.

좋아하는 요리를 꼬치꼬치 캐물어서 부대에 있는 재료들과 후임들이 사 놓은 재료들로 최선의 힘을 다해 만든 요리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이 [게임]에서…….’

요리사도 사수 못지않은 사기 직업인 것 같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끄르르륵…….”

내 옆에 서 있던, 신장 196cm의 거인, 전광일 상병의 입에서 거품이 새어 나왔다.

평상시엔 순박하고 성격 좋은 녀석이지만.

‘이 광전사 새끼……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 광기 도졌네.’

“끄르르르륵!!!! 가자 전우들이여……! 명예로운 죽음이 우릴 기다린다!! 우워어어어!!!”

기괴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던지는 광일이.

[동료가 새로운 특성을 개방합니다.]

[최하급 피어 : 전장의 광란]

[아군에게 최하급 혼란과 중급 능력치 상승이 적용됩니다.]

[‘중급 용맹’의 효과로 최하급 혼란을 무효화합니다.]

쿵!

앞서 나간 거인 전광일이.

2.5m의 거대 괴물 리자드 치프틴과 격돌했다.

그 뒤를 따라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우워어어어어어!’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가, 리자드들과 맞선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빛이 느껴져서 보니, 2미터에 달하는 번개의 창을 손에 쥔 민재 형이 보였다.

“이 정도 크기라니, 평상시의 두 배는 되겠어…….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맛있었으면 된 거지.”

“미친놈…….”

이윽고 번개의 창이 날아가 한 마리의 리자드를 그대로 구워 버렸다.

민재 형은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네가 우리 부대의 핵심이다.”

“그건 모르겠고. 이걸로 기껏해야 5:5야. 알지?”

“물론.”

버프의 수치는 우리가 압도적이다.

조합도, 전원 알보병 리자드인 저쪽과 달리 이쪽은 나름 전열과 후열이 충실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머릿수가 부족하다.

‘우리는 17명, 저쪽은 50마리.’

자그마치 3:1.

“나도 가세할게. 원거리 지원은 잘 부탁해, 형.”

“그래, 절대 죽지 마라. 너 없으면 우리 부대 망한다.”

병사들의 지원을 받아 리자드들과 싸워본 적은 많지만, 병사들의 총기가 완전히 무력화된 전투는 처음이다.

처음으로 치르는, 각성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괴물과의 전투.

절대 쉽지는 않았고, 오히려 죽음의 위기가 몇 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ROK. 17 지역, ‘산맥’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파티’ 수준의 인원입니다. ‘길드’ 수준의 세력을 일구기 전까지, 가칭 ‘423대대’가 적용됩니다.]

[월드 이벤트 - 점령전 현황.]

[소속 지역 - ROK. 17]

[지역 내 점령전 현황]

1. ???(??%)

2. ???(??%)

.

.

.

12. 423대대(가칭) (3%)

[대지역 - ROK 소속 인간의 첫 번째 ‘점령’입니다.]

[업적 달성! -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땅]

[1위 특전이 부여됩니다.]

우리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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