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생존자들 (1)
당장 우리가 얻은 특전을 소환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뒤.
우리는 일단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당장은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고.
이미 점심시간은 지난 지 오래..
이제라도 식당으로 복귀해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긴 했지만.
“다른 병사들도 힘들어서 식당까지 갈 생각도 잘 안 하고 있을걸.”
“그런가?”
“대충 전투식량이나 꺼내서 먹는 게 낫지. 너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냐.”
라는 민재 형의 말에 따라.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 나도 하루 정도는 쉬어야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그동안 너무 빡세게 일했다.
취사병이 나밖에 안 남아서 모든 요리를 혼자 한 것만 해도 미칠 일인데.
각성자들 버프 요리까지 만드랴.
멘탈 약한 병사들한테 먹일 특식 만드랴.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다.
‘그 보람이 그냥 기분 탓도 아니고.’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신입 요리사 Lv. 9]
[능력치 : 힘 12, 민첩 13, 마력 10, 행운 10]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요리 숙련, 최하급 재료 감별, 최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 소스]
[포인트 : 1,032pt]
수치로도 보이는 보람.
‘레벨이 9!’
경험치는 그간 꾸준하게 쌓아 왔다.
괴물을 사냥했을 때나, 요리를 완성했을 때.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또 하나의 수급처.
[당신의 식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내 요리를 먹은 사람이 그 버프로 활약하면.
그게 또 경험치가 된다는 것!
‘저것 덕에 어제 전투로 엄청나게 벌었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탯도 하나씩 오르더니.
이제는 레벨 1 때의 내가 버프 요리를 먹어야 가능했던 수치까지 도달해 버렸다.
혹시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사용하지 않고 아껴 두고 있다만.
포인트도 상당히 많이 쌓였다.
다른 각성자들한테 물어본 바에 따르면.
현재 포인트든 레벨이든 나보다 높은 사람은 부대에 없다던가.
“내 성장도 좋고. 어제 싸움 이후로 부대를 습격하는 리자드의 숫자도 반 정도로 줄었다고 하고, 부대원들 각성도 잘 진행되고 있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처음 괴물한테 죽어 나갈 때만 해도, 나만큼은 죽기 싫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이지만 여유까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을 생각하면.
보람이 안 느껴지려야 안 느껴질 수가 없다.
비록 짧은 평화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잘 대처해 나간다면…….
“이야, 영준아!”
이런저런 생각에 흐뭇해하던 찰나.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부대에 나를 이름으로 부를 사람은 몇 명 남지 않은 상황.
민재 형인가 싶어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오셨습니까……?”
나는.
표정이 썩는 것을 기적적으로 참을 수 있었다.
“김 중위님…….”
“너 고생 많이 했다며! 수고했어!”
날 부른 것은 김 중위.
우리 부대의 중대장이자.
현재 부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부.
즉.
현재 최고 지휘관이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그 당연한 걸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은 번지르르하다.
실제로 저 입에서 내뱉는 말이 칭찬이기는 하다.
아마 나도 저 말을 한 게 김 중위가 아니었다면 기분 좋게 들었겠지.
‘그 당연한 걸 못 하는 사람.’
괴물이 나타난 지도 벌써 열흘 이상이 지났다.
병사들이 모여서 괴물과 싸우고.
각성자를 늘리고.
각성 열외자들은 어떻게든 각성시키고.
생활관 주변에 방어망을 만들고.
주변을 정찰하고.
리자드 치프틴과 싸우기까지 한.
그 열흘 동안.
김 중위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
무슨 의미인지 풀어서 설명하자면.
없다.
그냥, 없다.
김 중위는, 지난 열흘 동안.
정말 놀랍게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각성자를 늘려야 한다고 결정했을 때도.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물자를 생활관 근처로 모으고 방어망을 만들 때도.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리자드 치프틴이 처음으로 발견됐을 때도.
‘그런 괴물이 있다고? 조심해야겠네. 난 혹시 올지 모르는 상급 부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니. 그쪽은 너희한테 맡길게.’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을 병사들한테만 떠넘긴 셈.
아니.
차라리 그냥 하는 일 없이 병사들한테 모든 일을 일임하고 끝이라면.
오히려 나았겠지.
처음 괴물이 나타난 후.
우리 부대는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실종자가 두 명 있었다.
‘김 중위가 상위 부대와 연락해 봐야 한다고 우겨서 내보낸. 운전병 두 명.’
유선, 무선을 통한 통신이 되지 않으니.
사람을 보내 연락을 해 봐야 한다는 이유로 나간 운전병들.
그들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못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 두 명과 친했던 몇몇 병사들은 분노.
김 중위가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식의 말도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 정도면 그래도 양반이지.
지휘관이라는 건지 부대 순찰은 엄청나게 하는데.
그때마다 호감 작업을 엄청나게 한다.
내 경우에는 대충 이런 식이다.
‘영준아, 고생한다. 오늘 점심도 잘 먹을게! 아 오늘 점심 고순튀야……? 고순튀는 쫌…… 나 파스타 해 줄래?’
없는 식량 아끼고 계산해 가면서 내놓은 식사를 거절하고 요리를 주문.
사람이 눈치가 있으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짓을 거리낌 없이 한다.
덕분에 안 그래도 모자란 고급 재료인 올리브유와 다진 마늘을 사용.
알리오 올리오를 해서 바쳐야 했지.
이러한 일들로 부대 내에서 현재 김 중위의 평가는 최하.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도 좋지 않았던 평가였다만.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매일 같이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왔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보니까 식당 안 하고 전투식량으로 때운다던데, 우리끼리만 뭐 해 먹으면 안 될까?”
역시나 이런 의도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좀 힘들기도 하고, 또 식재료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저희끼리만 요리해 먹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에이, 무슨 눈치를 보고 그래. 뭐라 하는 놈 있으면 나오라 해. 내가 간부인데.”
내가 뭐라 하고 싶어져서 그러는 건데.
“그리고 너 웃긴다? 너희끼리 가끔 요리해 먹고 그런다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아냐?”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있는 재료도 아끼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그 뭐냐, 각성할 차례 된 애들한테 요리해 주고 그러고 있잖아. 저번에는 각성자들끼리 먹으려고 아주 제대로 요리하고 있더만.”
맙소사.
설마 이런 거로 트집을 잡을 줄이야.
“그건 각성 과정이 위험한 만큼, 긴장도 덜어 줄 겸 특식으로 해 준 겁니다. 김 중위님도 각성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그럼 이미 각성한 애들한테 해 준 건 뭔데?”
“그건, 저번에 보고드렸던 괴물이 공격해 올 거에 대비해서…….”
“그 뭐, 음식으로 능력을 올린다느니 하는 거? 그래 봤자 음식이 얼마나 올려 준다고…….”
내 말은 그저 다 핑계고.
그냥 친한 애들끼리 먹은 거 아니냐며 중얼거리는 김 중위.
‘이걸 진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일단은 이래 보여도 우리 부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부.
지금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
바깥세상의 군대가 남아 있고.
언젠가 그들과 접촉하게 된다면.
엄청나게 중요해질 사람이다.
“그 버프란 게 생각보다 큽니다.”
“야, 됐어. 더러워서 안 먹는다.”
어이가 없는 건 나인데.
오히려 화가 난 듯 말하는 모습의 김 중위.
“너 그렇게 친한 사람만 챙기고, 그러는 거 아니다.”
김 중위는 그렇게 내뱉듯 말하더니.
아예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역으로 화를 내는 그 모습에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
‘생전 안 펴 본 담배가 이렇게 마려울 수가 있나.’
편두 부분이 이상하게 아파서 머리를 쥐어 잡고 있자니.
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똑똑.
“신영준 병장님?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김 중위 왔다 갔다…….”
“아…….”
전광일 상병이었다.
“하하, 그것참. 무슨 얘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도 마라. 하…… 진짜.”
“그래도 뭐, 새옹지마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응?”
영 두통이 가시질 않아서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더니.
대뜸 웃음 지으며 그리 말하는 녀석.
“박태준 병장, 깨어났다고 합니다.”
“……!”
내 동기가 눈을 떴다.
* * *
“건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걷는 데에는 조금 지장이 있을 겁니다.”
“치료사랑 사제가 붙어도 힘들었나?”
“예……. 다치고 바로 치료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열흘이나 지난 상처까지 완벽하게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네가 죄송할 건 없지, 고맙다. 수고했어.”
태준이 녀석이 눈을 떴다는 소식에.
나는 다급히 부대의 의무실을 찾아갔다.
‘내 유일한 동기.’
레이더반 박태준 병장.
나와 함께 이 부대 병사 중 최고선임이자.
말년 휴가같이 나가기로 날짜까지 맞췄다가.
휴가 전날에 괴물에게 습격당한 동지.
내가 괴물을 죽이면 각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가장 먼저 각성에 임하고자 한 사람이기도 하다.
운이 나쁘게도 그때는 괴물, 리자드의 생명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몰랐을 때라.
아직 힘이 남아 있던 괴물에게 다리를 물어 뜯겨 중상을 입고 기절.
이제야 눈을 뜬 것이다.
‘뼈가 보일 정도의 중상이었지.’
그 후로도 의무병인 사의준 일병이 계속해서 붕대를 갈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케어는 했지만.
의준이는 물리치료학 전공.
뼈가 시리다거나 하는 거면 모를까.
뼈가 훤히 보이는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결국 악화되지 않게 막는 게 한계였고.
그러다가 지난 싸움에서 의준이가 치료사로 각성.
사제로 각성한 군종병 중수와 함께 치료에 들어갔고.
그 결과.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걷는 건 힘들어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도록.
‘그 정도만 해도 최선을 다해 준 셈이지.’
“여어, 박태준이. 오랜만이야?”
“왔냐. 나는 바로 어제 만난 느낌이긴 하다만.”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핼쑥해진 태준이 녀석이 나를 반겼다.
“제대로 나은 건 맞냐? 손가락 몇 갠지 보여?”
나는 검지 손가락을 태준이 녀석의 눈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한 개.”
“두 갠데? 너 이 새끼, 머리는 덜 나았구나.”
“신영준 병장님…… 환자는 놀리는 거 아닙니다.”
“킥킥. 미친놈.”
대충 인사를 마친 뒤.
나는 태준이에게 그동안 부대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 줬다.
녀석이 기절한 날부터.
현재 부대의 상황까지.
“이거저거 많았지만, 당장은 꽤 안정된 상황이란 거네.”
산맥이 우리의 점령지가 된 후로.
괴물들의 공격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리자드 치프틴을 치워 버렸는데도 여전히 공격이 들어온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명령을 받으며 움직이는 것 같진 않은 모습.
우리는 패잔병 같은 녀석들이 남아서 공격해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군 각성자도 꽤 늘어난 지금.
한 마리씩 쳐들어오는 리자드들은 상당히 쉽게 제압할 수 있었기에.
지금은 들어오는 족족 각성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말마따나 매우 안정적인 상황.
“그래. 너 누워 있는 동안 우리가 개고생 다 했다.”
“하하.”
“넌 이제 꿀 빨 일밖에 안 남았다는 거지. 부러운 자식.”
“영준아. 그렇게 배려해 줄 필요 없다.”
…….
“배려해 주는 게 아니라, 이제 진짜로…….”
“아니.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된 친구 배려한답시고 그렇게 가벼운 말투로 말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큼.”
제기랄.
하여튼 이 녀석은 눈치가 너무 빨라서 문제야.
“괴물 좀 줄었다고 문제가 없을 리가 없지.”
결국 외부랑은 연락도 안 되고 있고.
전기가 나가서 발전기나 돌리고 있는 상황.
“발전기 전력도 무한하진 않을 테고. 식량 문제도 있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 나 혼자 밥만 축내고 있어도 될 리가 있나.”
“그거야 뭐, 어떻게든…….”
“그러니까 배려해 줄 필요 없다고.”
박태준 병장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잊었냐? 나도 각성했다는 거.”
“잊었을 리가 있나.”
이 녀석은 괴물에게 다리를 물어 뜯기면서도 괴물을 마무리.
각성을 한 상태로 기절했다.
그 얘기를 안 꺼낸 건.
걷지 못하는 각성자 한 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바뀔 리가 없으니까.
하아.
“그래, 그러면 물어나 보자. 뭐로 각성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안 그래도 궁금했던 점이나 물어보기로 했다.
“전사? 아니지. 네 성격을 생각하면 마법사 쪽일 것 같은데.”
“마법사라. 비슷한데 좀 틀려.”
마법사가 아니면 역시 전사 계열이라는 건가.
다리를 다친 녀석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직업-
“천문관이란다.”
“천문관?”
천문관이라.
으음.
“그게 뭔데?”
“설명을 보면, 별의 운행을 읽어서 천기를 엿보고 여로의 흥망을 점치는-”
뭔가 중얼중얼 설명을 시작하는 태준이였으나.
처음부터 도통 알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됐다. 복잡하니까 넘어가. 당사자인 나도 못 알아먹겠더라.”
“크흠.”
“대신. 나 좀 밖에 데려다줘라.”
“밖에?”
태준이 녀석의 부탁에.
나는 병실 구석에 있던 휠체어를 가지고 와 태준이를 앉힌 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 부대가 이건 참 좋아.”
깊은 밤.
하늘에는 달과 별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주변에 불빛도 없고 높은 산에 있으니. 별이 참 잘 보이거든.”
“뭐, 우리 부대 풍경들이 참 예쁘긴 하지.”
“덕분에 두 가지나 알게 됐다.”
응?
두 가지?
“내일, 손님이 찾아올 거다.”
손님이라니.
갑자기 무슨-
“그리고…… 발톱은 숨기는 게 좋을 거다.”
* * *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지만.
다음 날 아침, 바로 알 수 있었다.
“지, 진짜야! 군부대가 있어!”
“거, 내가 뭐랬소! 저기 보쇼! 군인들도 있잖소!”
“엄마아아아.”
“수진아, 우리 이제 살았어…….”
괴물들이 부대를 습격한 지, 11일째.
생존자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