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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2화 (12/227)

12화 생존자들 (2)

괴물들이 부대를 습격한 지 11일째의 새벽 아침.

부대는 난리가 나 있었다.

“신 병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사람들을 발견했다고?”

“예.”

괴물들의 습격과 함께.

우리 부대는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차단됐다.

외부와 연락을 하고자 떠났던 병사 두 명은 행방불명.

여기서 부대원들의 머릿속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바깥은 어떻게 된 거지?’

업적 시스템을 통해,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사회도 괴물의 습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괴물의 습격을 받은 사회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군부대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고작 100명의 군인도 버텨 낸 공격이야.’

100명의 군인이 버텨 낸 공격.

바깥에는 군인은 물론 경찰도 있다.

평범한 사람은 이기기 힘든 괴물이라고는 하나.

바깥에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군인과 경찰, 많은 사람들까지.

시설 면에서나, 인원 면에서나.

100명밖에 남지 않은 우리 부대보다는 사정이 훨씬 괜찮았을 확률이 높다.

부대 병사들의 주 의견은, 어떻게든 막아 냈을 것이라는 쪽.

‘이렇다 할 근거는 없는, 낙관적인 관측이지만.’

사회에는 부대원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다.

당장에 확인할 수 있거나 갈 방법이 없는 이상에야.

‘다들 안전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의 짐이 줄어드니까.

“처음 발견한 병사 말로는, 스무 명 정도의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들 추레한 차림이었고…… 위치를 생각해 보면, 한두 시간 내로 부대에 도착할 것 같답니다.”

산 정상에 있는 우리 부대는, 산으로 올라오는 길목을 관찰할 수 있다.

다른 몬스터가 부대를 습격할 것을 우려해 관측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괴물이 아니라 애꿎은 사람들을 발견한 것.

추레한 차림을 한 채.

본래라면 볼 일 없을 이 산을 걸어 올라오는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

그들이 군사 지역 출입 금지 표지판도 무시하고 산을 오르는 열성적인 등산객이 아니고서야.

부대에 접근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겠지.

‘도망쳐 온 거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대가 위치한 강원도는.

괴물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공간이 됐다는 사실을.

“……20인분 더 요리해야겠네.”

도착할 때쯤이면 아침 식사 시간.

저들과의 조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밥은 먹이는 게 좋겠지.

* * *

“지, 진짜야! 군부대가 있어!”

“거, 내가 뭐랬소! 저기 보쇼! 군인들도 있잖소!”

“엄마아아아”

“수진아, 우리 이제 살았어…….”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상황이다.

“자, 자. 다들 진정하십쇼!”

나를 비롯한 병사들은 생존자들이 부대 근처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

곧바로 마중을 나갔다.

“……많군요.”

“그러게 말이다.”

처음 발견했던 병사의 말로는 스무 명 정도라고 했는데.

정확히 세어 보니 스물다섯 명이었다.

현재 우리 부대의 생존자들은, 101명 중 행방불명된 2명을 제외한 99명.

생존자들의 숫자가 부대원들의 4분의 1 이상인 셈.

‘나이도, 성별도 다 가지각색이야.’

딱 봐도 깐깐해 보이는 할아버지부터.

아저씨 아줌마.

학생에,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까지.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들이 모여서 단체를 이루고 있었다.

“일단은 아까 대충 얘기 나눴던 것처럼, 3층 생활관 인원은 2층으로 보내고. 저분들을 3층 생활관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식사부터 할 수 있도록 조치하면 되겠죠?”

“그래, 당장은 그 정도면…….”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병사들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와 병사들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저는 현재 이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김현석 중위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안전하니, 안심하시고 병사들의 안내를 따라 주십시오!”

“기, 김 중위님?”

우리 부대의 유일한 간부.

김 중위였다.

‘저 양반이 갑자기 왜?’

괴물이 나타나고.

정전을 노려 괴물들의 대장이 부대를 습격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구석에 숨어만 있던 김 중위.

당연히 이번에 발견된 생존자들에 대한 대처도 마찬가지.

병사들에게 넘기고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따로 보고도 안 했는데.’

그런 김 중위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는지.

생존자들을 상대하던 모든 병사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김 중위를 바라보았다.

“뭣들 해! 어서 안내해 드려! 이민재 병장?”

그러자.

오히려 우리를 보며 고함을 치는 김 중위.

“예? 아니. 예! 병장 이민재.”

“생활관에 이분들이 지내실 만한 여유는 있겠지?”

“그, 네. 그렇습니다.”

“쯧, 대답이 시원치 않군. 책임지고 안내해 드리도록 해. 제대로 안내했는지 나중에 확인할 테니.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보고하고.”

생활관에 생존자들이 생활할 만한 공간.

있기는 하다.

생존자들이 발견되자마자.

새벽부터 깨어난 병사들이 3층을 통째로 비워 주느라 고생했으니까.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안내할 생각이었고.

“그리고, 신영준 병장!”

“병장 신영준.”

“다들 배가 고프실 테니, 생활관 안내가 끝나는 대로 식사 가능할 수 있게 준비해 두도록. 25인분 정도 추가는 문제없겠지?”

“……예.”

“그럼 가 보도록 해.”

문제가 없기는 하다.

본래 부대의 식수 인원은 100인.

거기서 25인이 추가된다.

‘전체 인수의 4분의 1만큼의 추가 식사를 준비하는 게 바로 될 리가 있나.’

생존자들이 발견되자마자 식당에 향한 뒤.

추가적으로 식사 준비를 해 뒀다.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식당으로 안내해 밥부터 먹일 생각이었고.

‘……김 중위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건 맞는데, 뭔가.’

거북하다.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

“그, 그렇구만. 알겠소!”

“자, 자. 다들 진정하고, 이 군인분 말대로 합시다! 우린 이제 안전해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간부는 간부란걸까.

우리 병사들이 안내하려 할 땐 군인들을 발견한 흥분 탓인지 제대로 따르지 않던 이들이였다만.

김 중위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는지.

안내에 잘 따르는 모습.

김 중위가 일은 못하고.

욕심도 더럽게 많기는 하다만.

‘말 하나는 잘하지.’

키도 큰 편에 어깨도 딱 벌어진.

남자답게 생긴 호남.

딱 그림에 그린 것 같은 군인상이다.

거기다가 말도 잘하는 편에.

부대의 남은 유일한 간부.

거기에 중위라는.

군인들 입장에선 별거 아니지만, 남들이 볼 땐 꽤 그럴듯한 직책.

병사들보다 말에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사실 병사들의 입장에선 그게 더 화나는 부분이었다.

부대의 일을 하다가 분명 김 중위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그 참군인스러운 분위기와 말발로 넘어가거나.

오히려 병사의 탓이 되는 경우도 잦았으니까.

‘아니. 그래도 덕분에 생존자들 안내는 무난하게 될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부대원들이 김 중위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 김 중위는 자기 할 일을 잘한 셈이다.

그러니까 좋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

맞겠지만.

“중위님, 저, 정말 고마워요…….”

“하하, 뭘요. 시민분들을 지키는 것이 군인의 의무! 저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 중위님…….”

“여러분은 이제 안전합니다. 다들 지치셨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우선 피로를 푸는 것부터 생각하시면 됩니다!”

상황이 꽤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했다.

* * *

“생활관은 3층을 쓰시면 됩니다. 그쪽에 있던 병사들도 다 1, 2층으로 이동했으니, 침대 숫자는 모자라지 않을 겁니다.”

“3층이라니, 가장 높은 층 아녀? 군인이란 양반들이 지친 사람들한테 올라가는 것도 힘든 곳을…….”

“박씨 할아버지!”

“쯧, 나 같은 노인은 계단 오르는 것도 힘들어. 산 타는 것도 죽을 뻔했는데 군인이란 양반들이 배려란 게 있어야지…….”

안 그래도 묘하게 그림자 져 있던 병사들의 표정이.

노인의 말에 대놓고 찡그려졌다.

다른 생존자 몇 명이 노인에게 눈치를 주는 듯했지만.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듯 계속해서 툴툴거리는 노인.

병사들의 시선도 안 좋아지려는 찰나.

그나마 온화한 성격의 광일이가 앞으로 나섰다.

“하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괴물들은 보통 1층부터 들어옵니다. 아직까지 날개가 달린 괴물은 없었거든요.”

“음.”

“저희 부대에 괴물이 쳐들어온 첫날, 죽은 병사들 모두가 1층 생활관에 있었던 병사들이었죠.”

“허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불만이 가신 듯한 노인.

“밖에서 고생이 많으셨을 테니 이해는 합니다만, 저희를 좀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안전은 보장할 테니까요.”

“크흠, 거, 그런 거면 먼저 설명을 할 것이지…….”

“아이고, 할아버지, 그만하시고 들어가요.”

어떻게든 노인을 설득하고.

생활관별로 생존자들을 안내했다.

의외로 생존자들이 크게 반응한 부분은 침대 같은 게 아니였다.

화장실과 샤워실.

“드디어 씻을 수 있어…….”

“찝찝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참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기가 끊긴 후.

부대의 발전기에 의존하게 되며 전기 절약에는 다들 신경 쓰고 있었지만.

물은 애초에 산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

펑펑 써도 큰 문제가 없었다.

‘따뜻한 물은 안 나오지만.’

생존자들에겐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모양이다.

“식사는 이미 준비되었으니, 대충 정리가 끝나시면 바로 식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오오! 식사까지.”

“나중에 병사들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대충 생활관의 안내가 끝난 것을 확인한 후.

식사에 대해서도 일단 안내는 해야겠다 싶어 말했다.

그렇게 식당으로 향하려던 찰나.

“저, 저기요.”

한 여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20대 중후반 정도가 아닐까 싶은 여인.

“예? 왜 그러십니까?”

“그, 저희를 맞아 줬던 분 성함이. 김 중위님?”

“예에.”

“그분이 이 부대 최고 계급자 맞으시죠?”

글쎄요.

저희도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 예. 뭐. 그렇습니다.”

“그분이랑 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언제쯤 대화가 가능할까요?”

“…….”

여인의 말투는 노인과 달리 정중했다.

그 내용에도 문제는 없고.

충분히 꺼낼 만한 이야기다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의 표정은, 오히려 노인을 대할 때보다도 굳어 있었다.

“저, 저기. 제가 무슨 실례라도……?”

여인도 그 분위기를 읽은 듯.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모습.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화.

대화라.

“곧 가능할 겁니다. 준비되면 알려 드리도록 하죠.”

“아, 네. 꼭 전해 드려야 할 얘기들이 있어서요. 정말 고마워요.”

“그럼, 쉬고 계십쇼.”

그렇게 사람들의 안내를 맡은 몇몇 병사를 제외.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생활관을 나섰다.

“하. 김 중위랑 대화를 해 봐야겠답니다. 진짜 미치겠네.”

생활관을 나서자마자 나오는 이야기.

“난 그 할아버지가 3층이라고 따질 때보다 그 소리 들었을 때 더 화나더라, 딱히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라,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이해합니다. 다들 그랬을 겁니다.”

그 여인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묘하게 화가 났다는 얘기.

솔직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이민재 병장에게 ‘지휘관답게’ 명령을 내리던 김 중위의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얼굴이 찡그려졌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민재 형이 안 보인다?”

“이민재 병장 말씀이십니까? 시민분들 안내 끝나자마자 씩씩거리면서 어디로 가던데요.”

“뭐?”

“아마 김 중위한테 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지간히 화났나 보네, 그 형.

“……솔직히, 저는 전쟁이 나거나 하면 병사들끼리 문제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응?”

그 말을 꺼낸 것은.

민재 형과 같은 통신반 출신의 일병이었다.

“신영준 병장님은 이민재 병장보다 선임이라 모르시겠지만요.”

“무슨 소리야?”

“그게. 통신반에서는 전쟁 나면 일단 이민재 병장 뒤통수에 오발 사격부터 갈기겠다든가. 뭐 그런 얘기를 좀 자주 했었습니다.”

아아.

무슨 얘긴가 했더니.

“큭큭, 민재 형이 많이 빡세긴 하지.”

“빡세다 뿐입니까? 진짜 뭐 하나 잘못했다 하면 죽으라고 까대는데…….”

그런 경우가 한두 명이 아니긴 할 거다.

선임이 후임을 너무 풀어 주면 오히려 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도 아마 취사병 후임들 사이에선 비슷한 소리 들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까, 이민재 병장처럼 일 처리 확실한 사람이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까요.”

“맞습니다. 그런 일들을 같이 겪어서인지, 묘하게 전우애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흠. 전우애라.”

그래.

전우애.

지난 2주간, 부대원들은 괴물들을 상대로 함께 싸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각성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같이 공유하기도 했고.

부대에 갇힌 상태로 괴물에게 습격당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운 게 그 시작이었을지언정.

이제 부대원들 사이에는.

확실한 전우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

난 그제야.

오늘 김 중위를 보며 느낀 거북함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전우.

그 단어에.

‘김 중위는 포함되지 않아.’

김 중위는.

우리와 함께 싸우지 않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으며.

각성이라는 경험을 공유하지도 않았다.

전우는커녕.

동료라고 불러도 될지조차 망설여지는 위치의 인간.

그런 자가.

우리의 최고 지휘관을 자처하고 있다.

이건.

‘조치를 취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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