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화 (18/227)

18화 위협 (2)

우리 부대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확실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며칠 전.

이 일에 대해, 민재 형과 상의하기도 했다.

“가장 큰 단서는, 영준이 네게 말을 걸었던 그 남자인데. 일단 몇 호실인지는 파악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도.”

해당 호실은 다섯 명의 남자가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은근슬쩍 생존자들과 나눠 가며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이라는 듯했다.

“하지만 친하다고 전부 공범이라고 볼 수도 없지.”

“그래. 반대로 그 다섯 명 모두가 그 위협일 수도 있지만.”

용의선상이 좁혀지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냅다 가서 ‘너희들이 우리한테 위협이 될지도 모르니, 잠깐 따라와 줘야겠다.’ 하고 연행해 갈 수도 없는 노릇.

다른 생존자들이 반발할 것은 물론이고, 그들 중 몇 명이 그 위협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일인 만큼 애꿎은 피해자만 늘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식의 위협이 될지도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그 위협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우리 부대에 대한 위협이 실현된 뒤에, 뒤늦게 범인들을 잡아 봐야 늦는다.

어떤 형태의 위협인지 모르는 만큼, 생각보다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일.

일어나지 않은 지금 해결해야만 한다.

“……방법이 없지는 않아.”

범인을 찾을 방법이, 없지는 않다.

지금까지 숱하게 사용한 방법이 있으니까.

“앞으로 생존자들이 부대의 업무를 돕게 한다고 했지?”

“그래. 생활관이나 식당의 청소, 그런 민간인도 가능한 작업에 한정되긴 하겠지만.”

“그럼, 내가 말한 그 남자는 식당 쪽에 배정되도록 해 줘.”

부탁 자체는, 위협을 찾아내는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내용이었다.

보통이라면 이쯤에서 ‘어떤 방법을 쓰려는 거냐’는 질문이 나오겠지만.

“……하아. 네가 말하는, ‘설득’을 할 셈이냐.”

“음. 그렇지 뭐.”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이민재 병장.

괴물이 무서워서 못 움직이겠다고 버티던 광일이가, 괴물의 약점을 물어뜯게 만들고.

불안감에 떠는 병사들을 모조리 각성의 장으로 보내 버린, 그 ‘설득’.

‘……이 정도로 대놓고 썼으니. 알아채도 이상할 건 없지.’

그 모든 설득을 직접 지켜본 민재 형은, 이미 내게 모종의 특별한 수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힘이 필요한 상황인 건 확실하니까 별말은 안 하마. 그래도, 너무 그 능력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알고 있어. 나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주방장의 특별 소스]

음식을 먹은 대상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

확실히 강력한 능력이긴 하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무도 내 요리를 먹으려 하지 않겠지.’

민재 형이 이미 어렴풋이 눈치챈 것처럼.

이 능력은, 남발하다 보면 그 정체를 들킬 확률도 높아진다.

‘필요할 때 아껴서도 안 되겠지만, 사용할 땐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초보 요리사의 심혈을 기울인 솔직한 마음의 미숫가루 아이스크림]

열심히 만든 이 요리 역시 마찬가지.

중요한 것은 들키지 않는 것이다.

“냅다 그 남자를 데려와서, 입에 강제로 쑤셔 넣어도 되기야 하겠지만.”

잘 먹겠습니다, 하고 내 요리를 먹은 사내가 갑자기 ‘지나치게 솔직한’ 상태가 돼 버린다?

그 이변을 본 모두가, 이변의 직전에 입에 들어간 음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생존자들은 물론, 병사들까지 내 음식을 꺼림칙하게 여기게 되겠지.

그래서 준비한 방법이 바로.

‘설거지 지원.’

식당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간식을 건네준다.

부대가 정상이었을 때도 해 왔던 일이고, 음식을 건네주는 이유로도 자연스럽다.

그렇게 몇 번씩 나눠 주다 보면, 소문도 날 것이다.

‘식당 일을 도와주면 간식을 챙겨 주더라.’

그렇게만 되면 충분하다.

‘남들도 다 먹은 요리인 만큼, 이상이 생긴다 해도 요리를 의심하진 않을 테니까.’

거기에, 혹시라도 ‘위협’이 되는 적들이 우리 부대원들을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남들 다 먹은 간식을 주겠다는데 그것까지 경계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간식 하나 만들어 놨는데, 드시고 가시죠.”

“아, 이게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이군요.”

바로, 이 남자처럼.

“소문이 다 났습니까?”

“하하, 생활관 청소 지원으로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를 겁니다. 식당에 지원 갔다 온 사람들이 전부 싱글벙글 웃으면서 돌아오니까요.”

생활관 쪽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아……. 이런, 생활관 지원으로 가신 분들한테 미안하게 됐네요. 그쪽에도 뭐라도 해 드려야 했는데…….”

“안 그러셔도 될 겁니다. 어차피 교대로 로테이션이 도니까요. 그쪽 사람들도 식당 지원 쪽으로 가는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건 정말 모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생활관 청소 쪽으로 빠진 사람들의 불만이 크진 않나 보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입에 담는 사내.

“으음!”

상당히 입맛에 잘 맞았는지.

‘으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숟가락을 놀리는 사내.

그야 엄청 열심히 만들었으니, 맛있기도 하겠지.

특히 당신을 위한 메뉴는 특제라서, 재료를 아끼지 않았거든.

“잘 먹었습니다! 이야, 진짜 맛있네요! 이렇게 달달한 음식은 얼마 만인지.”

그렇게 금방 그릇을 비운 사내.

그릇을 반납하면서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 이제…….’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제가 더 고맙죠.”

시작해 볼까.

“그런데 혹시,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음? 저한테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뭐든지 물어보십쇼.”

달달한 것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절하기도 하다.

그 친절함에 힘입어, 나는 거리낌 없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번에 저한테 직업을 물어보셨잖습니까.”

“예?”

“그거. 왜 물어본 겁니까?”

“…….”

만약에 이 남자가 그 ‘위협’이 아니고, 그 질문도 그저 가벼운 대화를 위한 질문이었다면.

별생각 없었다는 대답이 나오겠지.

그러면 그 대답만 듣고 보내 주면 그만이다.

그럴 경우 이 남자는 평범한 생존자 중 한 명이었을 뿐.

당사자도 그냥 별거 아닌 질문이었네, 하고 넘어가고 말 테지.

하지만…….

“아, 이 부대에 각성자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총이 있는 군부대라면 각성에 성공한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 그런 경우엔 작전을 달리해야 했겠죠. 아니라는 말을 들어서 참 안……심……했는, 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주다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는 듯 말꼬리를 늘이는 사내.

“…….”

“뭐, 그럴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하하, 하고 웃으며.

밝은 척, 친근한 척 접근하던 사내.

“……이런.”

그의 표정이, 저렇게까지 일그러질 수 있을 줄이야.

놀라울 정도였다.

“이건 호기심에 묻는 건데, 만약 저희 부대에 각성자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나왔을 겁니까?”

“……일단 규모를 확인했을 겁니다. 각성자들이 많은 부대라면 전면전에선 승산이 없으니, 조용히 잠입한 상태에서 기회를 노렸겠죠. 젠장, 나한테 무슨 짓을……!”

“음, 우리의 각성자 전력이 강하단 걸 확인했다면 더 철저하게 숨었을 거란 뜻이군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탓에, 경계가 좀 허술해지신 거고?”

각성자들은 종류도 많고,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남자가, 우리가 각성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부대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가볍게 내가 건네는 음식을 먹지도 않았겠지.

각성자들이 다양한 능력을 지닌 만큼, 어떤 부분에서도 경계를 가볍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잡아내는 데에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테지.

‘능력을 숨기는 편이 좋다는 건 이런 거였나.’

무언가 위협이 있다는 걸 알아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다면 잡아낼 방법이 없을 테니.

“제기랄……!”

“어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하게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사내.

하지만…….

“잠시만요, 물어볼 게 있습니다.”

“…….”

아무런 강압적인 태도도 섞이지 않은.

가벼운 ‘물어볼 게 있다.’라는 말.

그 말에, 당장에라도 뒤돌아 도망치려던 사내의 발걸음이 우뚝, 하고 멈췄다.

그러고는.

끼기긱.

하며 돌아가는 고개.

“무엇이든…… 물어보시죠.”

그렇게 나와 얼굴이 마주친 그는, 식은땀이 뻘뻘 흐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효과 제대로네.’

[주방장의 특별 소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그중 하나는, 요리 자체의 효과가 극대화될수록 특별 소스의 능력도 극대화된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준 아이스크림은 미숫가루와 설탕, 물엿 정도로 만들었지만.

[초보 요리사의 심혈을 기울인 솔직한 마음의 미숫가루 아이스크림]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건 부대에도 얼마 안 남은 연유까지 써 가며, 수제작이나마 안에 공기가 들어가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이성적으로는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시겠죠?”

“……예.”

“그것도 뭐,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지금, 세상 그 누구보다 ‘솔직한’ 성격이 되었다.

물어볼 게 있다는 말만 들어도 대답하기 위해 몸이 절로 움직일 정도로.

‘지나친 용기가 광일이를 광전사로 만든 것과 비슷한 현상.’

차이가 있다면.

의도하지 않았던 광일이의 경우와 달리.

이번의 경우엔 철저하게 내 의도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러면 계속 묻겠습니다만. 동료는 있습니까? 그중 각성자 숫자랑 대장이라 할 만한 사람은?”

“같은 호실을 쓰는 다섯 명이, 모두 동료고, 각성자입니다. 대장은, 호실의 대표를 맡았던 박권창 형님…….”

“와, 혹시나 했는데 다섯 명 다?”

대장 역할을 맡았다는 박권창은, 생존자들과 대화의 장에서 왜 김 중위가 나오지 않았냐 따지려 들었던 그 중년 사내.

이 녀석들, 생존자 그룹 내에서도 나름대로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섯 명씩이나 모여서, 뭘 하려고 한 겁니까?”

“……이 부대를 점거하려고 했습니다.”

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방법.

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100명이 넘는 이 부대를, 어떻게 점거한다는 것인지.

“우선,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 각성자나, 다른 위협이 없는지 확인…….”

이 부분은 걱정 없다.

부대원들에게 각성자로서의 모습을 들키지 말라고 당부해 놨으니까.

혹시 나중에라도 각성자가 나타났다면, 위협이라고 판단한 이 녀석들이 더 은밀하게 활동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이 부대에는 각성자나, 그에 준하는 위협은 없다고 판단. 작전을 결행한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작전을 누설하는 녀석

그런데.

‘……응?’

뭔가 이상한데.

“‘판단한 후에 결행한다.’가 아니라, ‘판단. 결행한다’라고 하신 겁니까?”

“……예. 각성자는 없다고 판단됐으니, 작전 결행은 오늘 저녁.”

그 말을 듣고, 식당의 창문으로 바깥을 보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사 후 정리하는 시간.

해가 지고, 어두워진 부대의 풍경이 보였다.

저녁.

……지금 아닌가?

“제가 돌아가는 대로, 작전이 시행될 겁니다.”

“미친.”

“그리고 저도.”

그러더니, 긴장된 표정은 어디 갔냐는 듯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키는 사내.

“아니, 나도. 약간은 틀어지긴 했지만, 돌아가서 작전을 시행할 셈이었고.”

그 순간.

화르르르르륵.

“……불?”

사내의 몸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스스로에게 방화라도 한 건가 했지만.

“크큭…….”

사내는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는 듯, 오히려 비열한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무슨 짓을 당한 건지 몰라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당황할 필요도 없었군.”

이제는 친근한 척 굴 필요도 없다는 걸까.

말투가 상당히 건방져진 녀석.

“당황할 필요가 없다? 이유는?”

“정황상, 이 부대에도 각성자가 꽤 많은 것 같긴 한데…… 그래 봐야 눈앞에 있는 건, 기껏해야 요리나 할 줄 아는 취사병 한 명 아닌가?”

“음? 뭐. 그렇지?”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솔직함’은 유지되고 있다.

‘솔직하다고 해서 얌전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만화나 영화 같은 거에도 가끔 있잖은가.

상대가 궁금한 건 다 대답해 주면서도, 계속해서 공격하는 설명충 악당.

딱 그런 느낌이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점차 사내의 몸 전체를 향해 뻗어 나갔다.

머지않아, 그 모든 불길이 사내의 오른손으로 옮겨 가고.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가볍게 태워 버리면 될 뿐! 정체를 들키게 되는 건 뼈아프지만, 동료들과 합류하고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돼!”

그러더니, ‘죽어라!’ 하고 외치며, 오른손에 모인 거대한 불덩어리를 나를 향해 던지는 녀석.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하고 거대한 불길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은, 확실히 엄청난 위압감이 있었지만.

‘흠.’

그 열기가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요리사란 게, 불과는 꽤 친근한 직업이란 말이지.’

왜, 식당 아줌마들은 뜨거운 냄비를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잡지 않던가.

그거랑 비슷한 거다.

쿠우웅.

픽.

“……넌 진짜 안 되겠다.”

내 몸에 닿은 그 거대한 불덩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하급 화염 친화]

[요리란, 그 기원에서부터 이미 불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불길 앞에서, 강철의 팬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요리사의 숙명!]

“미안한데, 좀 맞자.”

“뭐, 뭣……!”

믿고 있었던 불덩이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고 사라지자.

크게 당황한 듯 뒷걸음질 치는 녀석.

스릉.

그러거나 말거나.

사시미칼을 잡아 든 내 [요리사의 눈]에는.

[하급 요리 비결 - ‘영장류 손질법의 깨달음’]

녀석을 ‘효과적으로 손질하는 법’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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