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심문 (2)
“오셨습니까, 신 병장님.”
“어 그래, 고생이 많다. 특이 사항은 없고?”
“예. 혹시라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자기들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조용합니다.”
대충 ‘위협’의 정리가 끝난 후.
나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다섯 명의 남자를 가둬 둔 식당의 지하실에 도착했다.
얼마 전, 김 중위를 가두고 ‘설득’했던 공간.
나는 그중의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찬중 씨?”
그 방에는, 멍한 표정으로 결박된 한 남자가 있었다.
찬중이라는 이름의.
분명, 저들 5인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이라던 남자.
식당에서 내 손으로 직접 제압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히, 히익!!”
내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키는 찬중.
아무리 그래도 첫 인사가 히익이라니.
“사람 얼굴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살짝 불쾌하기도 하겠다, 기선제압도 할 겸 한마디 했더니, 금세 꼬리를 마는 모습.
벌벌벌 떨기까지 하는 꼴이, 누가 본다면 살해 협박이라도 받고 있다고 착각할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나를 두려워하는 모습.
‘뭐, 그럴 만도 한가?’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결과물이란 게, ‘죽이지만 않고 손질한다.’는 방법이어서 문제였지만.
‘……손질을 하는 입장인데도 좀 징그러웠으니까.’
내 입장에서도 그 정도였는데, 직접 손질을 당하는 입장에선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기절까지 했던 걸 보면 엄청 고통스럽긴 한가 보다, 싶었지.
설마 내 얼굴을 보기만 해도 입에 거품을 물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흠흠. 아무튼, 찬중 씨.”
“예, 예!”
“제가 찬중 씨를 찾아온 이유는, 몇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서인데…… 들어주실 겁니까?”
“뭐든지, 뭐든지 맡겨만 주십쇼! 그러니까,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쇼…….”
워낙에 트라우마가 크게 남았는지, 완벽할 정도로 내게 굴복한 모습.
역시 그건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에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부대를 위협했던 인물 중 하나가 심문에 순순히 응하는, 나름 괜찮은 상황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양심의 가책 따위는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이죠. 찬중 씨가 제 말만 잘 들어주신다면야, 다시 회 쳐질 일은 없을 겁니다.”
“히, 히익.”
“그럼 우선, 이것 좀 드시고.”
혹시나 싶어서 남겨 둔 자백용 아이스크림을 건네니,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릇을 받는 남자.
두려움에 떨다가도, 먹을 때는 맛이 있는지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완전히 굴복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꽤 맛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지나치게 솔직해진다는 부작용만 제외하면, 기쁘게 먹을 만하겠지.
“그럼 우선,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나는 찬중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사실 저번에 자백제를 먹였을 때 물어도 됐겠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한 것들을 몇 가지.
“저희가 부대를 점거하려고 한 이유는…… 저희의 직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직업?”
그 와중에 나온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저를 비롯한 동료들…… 형님들은, 각자 다른 직업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음? 다른 직업 간에 공통점이라니. 뭐길래…….”
“범죄자란 거죠.”
“범죄자?”
“권창 형님이나 저는 ‘방화범’입니다. 나머지 형님들은 ‘갱’, ‘사기꾼’ 같은 직업이죠.”
“하.”
그야, 이 세상이 게임으로 변했음을 고려하면, 있어서 이상할 건 없는 직업이긴 하지만.
이건 ‘사제’나 ‘마법사’ 같은 것과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대놓고 범죄와 관련된 직업까지 존재한다는 건.’
같은 인간이라고 한들.
믿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저희는, 강원도 근처에서 활동하는…… 그, 소위 말해서 깡패였습니다.”
찬중은 자신이 각성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강원도, 그중에서도 춘천 근처를 무대로 활동하는 깡패 조직의 일원이었던 찬중과 동료들.
깡패가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곤 하나, 나름 기업형으로 변화하며 잘나가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좀비가 나타나고……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찬중이 속했던 조직의 조직원들도 대부분이 사망.
그나마 그들 일행 다섯 명만이 겨우 살아남아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는 와중에 각성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전원 각성에는 성공했습니다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저희 직업이 직업인지라, 세력을 키우기가 힘들더군요.”
전원이 범죄자스러운 직업의 각성자.
각성자가 드물다고는 하나 각성 자체에 대한 정보는 생존자들 사이에 알음알음 퍼져 있던 상황.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다.
범죄자스러운 직업명을 숨긴 채로, 남들에게 신용을 얻거나 세력을 키우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겁니다.”
“뭘 말입니까.”
“저희가 세력을 키우기 힘들다면, 다른 세력을 먹어 버리자고요.”
그렇게, 그들은 상아의 생존자 그룹에 합류했다.
각성자란 사실까지 숨긴 채로.
“저 여자는 꽤 성실하기도 하고, 직업은 웃기지만 능력도 준수했으니까요. 금방 세력이 커질 거라 생각했죠. 그렇게 커진 세력을 나중에 저희가 그대로 꿀꺽하는, 뭐 그런 계획이었습니다.”
“남의 세력을 차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저희 형님 중에 ‘사기꾼’ 능력을 가진 형님이 있잖습니까. 그 능력을 잘 활용하면, 멀쩡한 리더도 엄청난 죄인처럼 선동하고 쫓아낼 수 있습죠. 그렇게 리더를 잃은 단체를 꿀꺽…….”
소름이 돋는다.
이 녀석들.
단체의 머리를 떼어 낸 뒤 몸만 차지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잖아.
“그럼, 우리 부대를 점거하려고 한 이유가?”
“이왕 다른 세력을 먹을 거라면, 더 큰 세력을 먹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생존자 그룹은 아무래도 작은 편이니까. 권창 형님의 능력이 있으면 화기가 위주인 군인들 상대로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그렇게 군인들을 제압하고 총을 얻기만 하면, 내부에서 암약할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합류한 생존자 그룹이 근처에 있는 군부대로 향하기로 결정한 상황.
그곳을 차지하고 강력한 화기들만 손에 넣는다면, 다음부터는 세력을 키우는 것도 힘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부대에 각성자가 있으면 어쩌려고?”
“그, 그래서 며칠 동안 시간을 들여서 조사한 겁니다. 혹시라도 우리보다 강한 각성자들이 있다면, 전면전보다는 시간을 들이려고 했죠. 몰래 숨어들어서, 사기꾼 형님의 선동 능력으로 조금씩 영향력을 넓히다가, 반란. 꿀꺽.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태준이 녀석이 말한 예언이 이해가 갔다.
‘이런 약한 녀석들한테 힘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했는데.’
이들은, 우리가 강한 세력이라는 걸 알았다면 생존자인 척 몰래 우리의 세력에 합류.
안쪽에서 조심스럽게 세력을 늘려 갔을 것이다.
몸 안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암세포처럼 말이다.
결국에는, 머리를 따고 몸을 차지했겠지.
‘……나중에 가서 눈치챈다고 해도, 안쪽에서부터 세력이 커진 녀석들을 제거하긴 힘들었겠지.’
태준이 녀석에게서 힘을 숨겨야 한다는 힌트를 얻지 못했더라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뻔했다.
“……하.”
이들의 의도를 알아낸 것은 좋다.
그 의도를 피해 없이 막아 낸 것 역시, 최고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괴물이니 좀비니 하는 걸 넘어서, 이제는 마주치는 인간들마저 경계해야 할 상황이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대에 생존자들을 들인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었어.’
그때는 모르니까 한 일이었지만…….
잘못하면 부대가 내부에서부터 붕괴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대충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남자를 남겨 두고 지하실을 나왔다.
녀석들의 정체나 의도에 대해서는 얼추 알았다.
문제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가만히 놔두면 식량을 축낼 뿐인 이들.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처리.
즉, 죽이는 것이겠지.
‘우리는 아직 인간을 죽여 본 경험이 없어.’
언젠가.
인간들끼리 죽여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대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경험은 아직은 이르다는 게 내 판단이다.
죽이지는 않는 선에서, 위협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여, 영준아!”
“김 중위님?”
고민하며 부대를 걷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김 중위.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네가 지시한 대로 생존자들을 안심시키고 왔어!”
생존자들은 갑작스럽게 목숨을 위협받은 상황.
게다가, 우리가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것을 숨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불안감이 커져 있을 거라 생각해, 김 중위를 보내 그들을 안심시키도록 명령했었다.
“문제는 없었습니까?”
“응! 좀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내가 또 말은 좀 잘하는 편이잖아. 잘 설득하니 마지막엔 웃으면서 넘어가더라고.”
이런 능력은 참 쓸 만하단 말이지.
“그, 그러니까.”
“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시킨 일, 잘 해결했잖아?”
“예, 잘하셨습니다.”
“그, 보상으로. 야식 같은 거 한 번만 만들어 줄 수 없겠니?”
“……아아.”
무슨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김 중위는, 내가 만든 요리에 중독된 상태.
시킨 일을 잘했으니 요리 하나만 더 해 주면 안 되겠냐는 얘기다.
“여, 역시 내가 좀 선 넘었나? 농담이고! 나는 세 끼 식사하는 걸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기어오르려는 건 절대 아니고!”
“아니, 뭐. 알겠습니다. 잘 해결하신 것 같으니, 하나 해 드리죠.”
식자재가 넉넉하진 않지만.
김 중위는 괴물을 재료로 한 음식을 좋아한다.
리자드 고기는 넘쳐 나는 편이니,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고맙다 영준아! 앞으로도 충성을 다할게!”
“……아.”
“으응? 무슨 할 말 있니?”
“아닙니다. 가 보십쇼.”
내 요리에 중독되어, 야식 하나로 충성을 다짐하는 김 중위.
그를 보니, 해결법이 떠올랐다.
“히, 히익!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정말이에요!”
“알아요, 알아. 하나만 더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요.”
나는 다시금 지하실로 들어가, 찬중을 찾았다.
“여기, 노트랑 펜 쥐시고.”
“이건 왜?”
“거기다 적으십쇼.”
이왕 해 주는 거.
좋아하는 걸 해 주는 게, 저들도 기쁘지 않겠어?
“당신이랑, 당신네 형님들. 좋아하는 요리, 싫어하는 요리. 싱겁게 먹는지 짜게 먹는지. 어떤 입맛이고 어떤 식습관이 있는지. 전부 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업적 달성 - 교화]
[악 속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파티를, 요리의 힘으로 완벽하게 굴복시켰습니다.]
[보상으로 칭호가 주어집니다.]
[칭호 - 교화의 요리사]
[악 속성의 몬스터, 직업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의 효과가 30% 증가합니다.]
범죄자들을 요리로 교화시킨 보상으로 주어진 업적과 칭호.
‘달다.’
부대에, 특이한 직업의 막내들이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