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거 괴물 고기야
“새로운 막내 녀석들은, 어때?”
“나름 잘 적응하는 거 같습니다. 대체로 나이가 좀 많긴 합니다만. 나이 많은 후임 들어오는 일이야 비교적 흔하니까요.”
“완전히 개과천선했다고 생각될 때까진, 녀석들은 계속 막내다.”
“옙.”
이렇게.
우리 부대에 찾아온 위협은, 새로운 막내가 늘어나는 식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부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대에 남아 있는 기름은 최대한 모아 봤습니다만…… 이제 한계입니다. 차량용 기름을 제외하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건 앞으로 일주일 정도일 겁니다.”
“……그래.”
식량 문제.
전기 문제.
그 외에도, 보급이 끊긴 시점에서 발생한 온갖 문제들.
‘안 그래도 한정된 자원이었는데. 소비하는 인원만 늘어났으니까.’
그 문제들은 생존자들의 합류로 인해 더 가속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마도 하나뿐.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하겠지.”
지난번.
리자드 치프틴이 부대를 습격했을 때를 떠올린다.
수십 마리의 리자드 부대를 상대로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수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
산발적인 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황준산 대대의 시설을 이용하며 유리한 수성전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켜 주던, 안전하고 따뜻한 요람.
그러나, 모든 아이는 언젠가 요람을 떠나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마쳐야지.”
부대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떠나진 않을 것이다.
‘만전의 준비를 한 뒤.’
부대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룬 후.
우리는 요람을 벗어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오늘 사냥한 리자드들이 몇 마리지?”
“예? 열 마리 정도 될 겁니다.”
“전부 식당 앞으로 가져다줘.”
부대 급식을, 다음 단계로 끌어 올려야겠지.
* * *
그날,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부대의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식당으로 불렀다.
가장 먼저 각성에 성공해, 지금은 각각 마법사, 전사, 사수들의 장을 맡은 민재 형, 광일이, 수혁이.
그리고 천문관의 능력으로 부대의 일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태준이까지.
“저녁도 먹지 말고 오라니, 무슨 일이야?”
“식당 일 도와드릴 거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
갑작스러운 호출에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들을 식탁에 앉힌 후.
주방에 들어가, 준비했던 요리들을 내왔다.
“이거 좀 먹어 보라고.”
“오.”
칼국수, 꼬치, 튀김 등.
다양한 종류의 요리들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기분 좋게 변했다.
“맛있는데? 갑자기 뭐야?”
“식재료 모자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고기까지 듬뿍 들어간 요리를…….”
부대에 보급이 끊긴 상황.
맛이야 나름 힘을 줬으니 좋은 게 당연하지만, 재료의 출처가 궁금해질 만도 하다.
출처가 궁금하다면 말해 줘야지.
“그거 리자드 고기야.”
“푸훕!”
“시, 신 병장님?”
리자드.
우리가 싸우고 있는 바로 그 몬스터들.
자신들이 먹은 게 그 괴물이라는 걸 안 사람들의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다행히 구역질하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나는 구역질하는 사람이 나오는 수준까지 예상했는데.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괴물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크지는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우리를 골리려고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이유나 들어 보자.”
당연히 나라고 아무 이유 없이 먹인 건 아니다.
괴물의 고기를 먹자고 한 계기.
“지금 막내가 된 그 녀석들.”
같은 인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적이었던 이들.
“우리는 지금까지 리자드랑만 싸워 왔지. 운 좋게도 약점이 뚜렷한 녀석들이었고.”
“…….”
“하지만 생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바깥에는 좀비를 비롯해 다양한 괴물들이 존재해. 심지어 그중에는 인간도 있고.”
리자드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처음 보는 적들에, 안심할 수 없는 인간들.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괴물들의 고기에는 마력이 함유되어 있어서, 효과가 좋은 편이야.”
우리 부대의 식량은 이제 최소한의 전투식량을 제외하고 모두 고갈됐다.
상점에서 호밀빵의 구매가 가능하니 굶어 죽을 일은 없다지만, 포인트를 소모하는 데다가 요리로 사용될 구석이 없는 음식.
지상에서 식량을 구해야 하지만, 사태가 터지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오랫동안 보관 가능한 요리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육류와 같은 신선식은 구하기 힘들어졌겠지.’
그러니.
“괴물을 먹어야만 해.”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싫어하는 녀석들도 많을 거다.”
“특히 리자드는, 거부감이 심할 겁니다.”
주말에 우리 부대에 머무르는 인원은 본래 200여 명가량.
그중 절반 정도가 리자드들에게 잡아먹혔다.
바로 옆에서 자던 사람이나, 친한 동기가 잡아먹히는 걸 눈앞에서 본 사람들도 부지기수.
내가 요리의 효과를 통해 부대원들의 멘탈을 관리하고 있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심각한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게다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사냥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다.
하지만, 그 괴물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면.
‘사람을 먹은 괴물을 다시 사람이 먹는다?’
심지어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인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이들도 분명하게 나온다.
윤리적인 문제든, 기분적인 문제든.
거부감이 상당할 테지.
하지만.
“거부감은 무슨.”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은, 솔직히 말해 없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 부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취사병.
병사들의 편식을 두고 넘길 생각은 없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우리의 제1 목표는 생존이야.”
“…….”
“그러니까 확실히 하자.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될지…….”
아니면.
“괴물을 잡아먹고 살아남을지.”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
내가 말해 놓고 이런 말은 뭐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는 상황.
“……애들을 설득하는 건 우리한테 맡겨 줘라.”
“형?”
“요리사인 네가 직접 말하는 것보단, 조장인 우리가 설득하는 게 효과가 좋을 테니까.”
민재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이견은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언젠가,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
“세상이 이 지경이 됐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괴물을 먹는다는 정도의 선택은 오히려 쉽게 생각될 정도야.”
태준이 녀석은 오히려 그런 게 대수냐는 듯 말하기까지.
나처럼 괴물을 먹는다는 일을 큰일로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태준이 녀석처럼 ‘그런 게 뭐 어때서?’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겠지.
심지어 그게 생존을 위한 일이라면.
부대원들도 꺼림칙할지언정 이해해 주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럼 설득은 맡길게. 대신.”
“음?”
“설득이 되든 안 되든, 내일 저녁에 식당 뒤뜰로 모여 달라고 해 줘.”
“그거야 뭐 어렵진 않은데. 왜?”
“대상이 괴물이라고 해도, 먹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즐거워야 하는 일이니까.”
괴물로 만든 음식이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 봐야겠지.
* * *
군대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을 기회란 게, 사실 자주 있지는 않다.
우리 부대는 그래도 규율이 꽤 느슨한 편이라 병사들끼리 회식을 가지는 경우도 잦다지만, 그래 봐야 부서별 왕고가 전역할 때 종종 회식을 가지는 정도.
빡센 부대는 운동회 같은 행사라도 있지 않은 이상에야, 회식 자체가 드문 경우도 많다고.
그리고 오늘.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모든 부대원이 식당 뒤편 뜰로 모였다.
오랜만의, 회식이다.
“와, 이건……!”
[정성이 들어간 하급 요리사의 리자드 슈프림 튀김]
[정성이 들어간 하급 요리사의 리자드 고추장 볶음]
[정성이 들어간 하급 요리사의 리자드 칼국수]
[정성이 들어간 하급 요리사의 리자드 꼬치구이]
[정성이 들어간 하급 요리사의 리자드 스테이크]
.
.
.
“뭡니까, 이 진수성찬은?”
“뭐긴. 힘 좀 써 본 거지.”
내가 가진 스킬 중 하나인, [요리사의 눈].
전투에 활용되는 ‘손질법의 깨달음’ 덕에 약간 묻힌 편이긴 하지만, 그 효과 중에는 분명 ‘조리법의 깨달음’을 얻게 해 주는 효과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조리법 몇 가지를 알려 주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 능력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점 하나.
‘리자드 고기는 기본적으로 닭고기에 가깝다는 것.’
기본적으로 파충류에 가까운 모습을 한 리자드.
닭도 먼 선조는 공룡이었던 탓에, 뱀고기 등도 닭고기와 유사한 맛이 난다고 한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리자드의 맛도 닭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닭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 중 하나.
“아는 닭 레시피는 다 써 봤다.”
치킨, 닭볶음, 닭칼국수, 닭꼬치 등등.
그나마 소스류는 재고가 꽤 많은 점을 이용.
주재료는 리자드뿐이라고 해도 최대한 질리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봤다.
“이건…… 카레입니까?”
“어. 카레는 부대 비상식량 중 하나라서 양도 꽤 많거든.”
“와! 치킨!”
“다양한 맛으로 준비했으니까. 골라 먹어.”
신선한 재료가 그나마 넉넉했던 초반과 달리, 최근에는 식재료를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던 경우도 많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진수성찬인 셈.
한 마리 한 마리가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인 리자드.
덕분에, 고기는 썩어 날 정도로 많다.
다행히도, 부대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 이게 괴물의 고기라니.”
“맛있는데……?”
“맛도 맛인데, 스탯 올라가는 것 좀 보십쇼. 지금까지 먹었던 요리 버프랑 비교가 안 되는 수준…….”
사람에 따라서는, 익히 아는 식재료라도 꺼림칙해서 먹지 못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개고기라든가, 그런 게 대표적이겠지.
리자드의 고기는 심지어 처음 먹어 보는 재료에, 몬스터에서 비롯된 것.
그럼에도 다들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요리한 사람으로서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병사들은 있었다.
“괴물을 먹는다는 게 많이 꺼림칙하고, 기분상 쉽지는 않다는 거, 나도 안다.”
“신 병장님…….”
“그래도 한번 맡겨 줘라. 내가 기깔 나게 맛있게 해 줄 테니.”
그런 이들에게 다가가, 나름 진심을 담아서 말하니.
“뭐…… 신 병장님 요리 실력, 누가 모르겠습니까.”
“재료가 되는 몬스터가 인간형이거나 그러면 좀 꺼림칙하겠지만. 리자드 정도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태워 버렸던 리자드들이 생각나서 아쉬울 정돈데요?”
괴물을 먹는단 것에 거부감을 보이던 병사들도, 표정이 누그러지는 게 보였다.
맛도 맛이지만, 필요에 의한 일.
결국.
모든 병사가, 괴물을 먹는다는 것에 찬성하게 되었다.
“기분이다! 숨겨 놨던 소주랑 맥주도 오늘 다 까!”
“아니, 술을 숨겨 놓으셨습니까?”
“부서별 회식할 때 남는 술들. 다 어디 갔다고 생각했냐?”
“가끔 취사병들 몸에서 술 냄새가 나더라니!”
괴물이 부대를 덮치고, 어떻게든 부대원들 멘탈 관리를 해 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부대 분위기 자체가 조금씩 경직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가 부대를 떠나게 될 테니.’
그 전에, 이렇게 긴장을 풀어 줄 만한 회식 자리를 한 번쯤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우웨엑.”
“아! 김 일병님 토하려고 합니다!”
“술도 약한 놈이 뭐가 그리 신나서……!”
……좀 과하게 풀렸나? 싶기도 한 풍경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들 신나게 먹고, 마시고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이건, 오늘의 메인 요리, 리자드 치프틴 요리다!”
“뭐, 뭡니까. 죽인 지가 언제인 녀석인데……!”
“이런 날이 올까 봐. 몰래 손질해 놨지.”
“세상에…….”
김 중위에게도 먹여 봤지만, 치프틴의 고기는 다른 리자드의 고기보다도 맛도 좋고, 요리의 효과도 높았다.
혹시 몰라 남겨 둔 양을 제외한 치프틴 고기도 오늘 모조리 풀어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재료는 썩을 정도로 넘쳐 나, 떨어진 음식을 계속해서 리필해 주며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게 꽤 재밌다.
한쪽 구석에서는, 생존자들의 대표인 이상아 씨도 꼬치 하나를 들고 둘러보는 모습이…….
“어?”
이상아 씨?
괴물을 먹어야 한다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 요리를 통한 버프가 필수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즉,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생존자들에게는 굳이 강요할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인 부대원들만 회식에 참가시킨 건데, 생존자 대표인 저 사람이 여긴 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생존자들은 소외시키고, 부대원들만 챙겨 준다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급하게 다가가 설명을 시도했다.
“상아 씨? 이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괴물을 먹는 건가요?”
“네? 아.”
아무래도, 이미 부대원들이 리자드 고기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
다행히 차별이라느니 하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것보다 괴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듯한 모습이다.
‘……하긴, 괴물을 먹고 좋아하는 모습도 보기에 영 이상하긴 하네.’
왜 영화 같은 걸 보면, 사이비 집단들이 마수의 고기를 먹으면서 광란의 축제를 즐기고 하지 않는가.
실상은 전혀 다르지만, 겉으로 봤을 때 우리도 비슷하게 보일지도.
“이게, 보기엔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내 말이 들리기는 하는 것인지.
혼잣말을 잠깐 중얼거리던 상아 씨가, 이내 고개를 들더니 말을 꺼냈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
“저희도, 부대에 정식으로 합류시켜 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