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3화 (23/227)

23화 입대자들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네?”

“저희도, 정식으로 부대에 합류시켜 주셨으면 해요.”

부대에 합류시켜 달라.

“이미 합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름 잘 보호해 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그야, 뭐.”

20여 명의 생존자.

그들은 우리 부대를 찾아와, 우리의 보호 아래에 들어왔지만…….

‘엄밀히 말해, 부대의 일원이 된 건 아니지.’

이들은 어디까지나 보호를 받는 입장에 불과하다.

그나마 보호받는 대신 부대의 자잘한 일거리를 나눠서 해 주고는 있다고 하나, 그뿐.

저들은.

우리의 전우가 아니다.

“군인 여러분께 보호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겠죠.”

“음. 열심히 보호해 드릴 생각은 있습니다만?”

“아뇨, 이런 세상이니까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싸우지 않는 한, 언젠가 위기가 찾아왔을 때. 도태되어 죽을 뿐이겠죠.”

“의미는 알겠습니다만, 조금 갑작스럽군요.”

“권창 씨 일행이 배신한 그날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에요.”

범죄자들.

그나마 우리 부대가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부대였기에 그들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지만, 본래 그들은 이상아의 생존자 무리에 속해 있던 이들.

우리가 아니었다면, 유일한 각성자인 이상아만으로는 그들을 막아 낼 수 없었겠지.

‘생각해 보면 이들은, 운이 좋았을 뿐.’

자칫하면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 와중에, 우리가 안정적으로 각성자를 늘려 가는 모습을 보았고.

생존을 위해 괴물을 먹는 모습까지 본 뒤, 생존자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전시의 민간인 징용.

보호받는 처지에서 벗어나.

우리와 함께, 괴물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다른 생존자분들의 의견은, 들어 보신 겁니까?”

“충분히 회의를 거치고 하는 얘기예요. 저희도 스스로 살아남을 힘이 필요하다고. 즉.”

“저희 부대에, 각성자로서 합류하고 싶으시다고.”

“네.”

“저희와 함께한다는 건, 부대원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김 중위님은 괜찮은 지휘관으로 보였어요. 큰 문제는 없겠죠.”

그 말에, 우리의 대화를 멀리서 지켜보던 병사들이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아직도 김 중위를 우리 지휘관으로 알고 있구나.

‘음. 뭐 그런 거야 나중에 알려 주면 될 일이고.’

여러모로 대화해 본 결과, 각오는 충분한 걸로 보이고.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딱히 꺼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면야…….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나는 상아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희 부대에 합류하신 걸 환영합니다.”

“……! 고마워요.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 * *

놀랍게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 고기들, 괴물 고기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비늘이나 가죽도 손질하셨겠네요?”

“네?”

내가 스킬을 통해 익힌 ‘리자드 손질법의 깨달음’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대상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방법이었다.

덕분에, 요리하고 살코기를 얻어 내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나.

리자드들의 가죽이나 비늘은, 꽤 깔끔하게 손질된 상태였다.

“가죽도 질기고 두껍지만…… 이 비늘, 말도 안 되게 단단하네요.”

“리자드라는 괴물입니다. 말씀하신 비늘과 가죽은 총알로도 잘 뚫리지 않는 수준이죠. 총이 없는 상태라면 약점을 공략하는 것 외에는 상대할 방법이 없는 괴물들입니다.”

지금은 한두 마리씩, 길 잃은 리자드들이 흘러 들어오는 수준이라 그나마 상대할 만하다지만.

그냥 평야에서 같은 숫자로 맞붙는다고 쳤을 때.

약점을 모른다면 아마도 절대 이기지 못했을 괴물들.

“좋네요!”

“네?”

“부대에 안 입는 옷들 있죠? 그것들 좀 빌릴게요.”

그렇게 말한 상아 씨는, 리자드의 부산물들과 죽은 병사들이 사용하던 의류를 챙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치프틴의 부산물들까지.

그리고 다음 날.

“이거, 한번 봐 주시겠어요?”

“……이건!”

[강철 가죽 지휘 전투복]

[강철 가죽 전투복]

그녀가 가져온 것은, 군복이었다.

베레모와 군복, 군화.

거기에 야전 상의까지 모두 갖춘, 전투복 세트.

우리가 아는 군복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국방색이 아닌 검은색, 회색의 패턴이 그려져 있다는 것.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그 이름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군복 세트예요.”

“……맙소사.”

“리자드들의 가죽, 말씀하신 대로 방어력이 엄청나더라고요? 각성자인 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다룰 수도 없을 정도로……. 리자드의 비늘은 방어력은 높지만 조금 두꺼워서, 움직임에 제한이 없는 부위나 급소 쪽에만 안감에 채워 넣는 방식으로 방어력을 보강했어요.”

[강철 가죽 지휘 전투복]

[초보 재봉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가죽 갑옷 세트.]

[강력한 방어력으로 유명한 강철 리자드, 그중에서도 치프틴급 개체의 부산물들로 만들어진 의상. 다방면으로 굉장히 높은 저항력을 지니며, 치프틴의 마력이 미세하게 남아 있어 다양한 효과를 부여한다.]

[착용 시, 물리 저항력 대폭 증가.]

[착용 시, 마법, 속성 저항력 증가.]

[착용 시, 특성 [하급 카리스마] 부여.]

[착용 시, 힘, 민첩 스탯 증가.]

지휘 전투복은 치프틴의 가죽으로.

일반 전투복은 리자드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특수 전투복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반 전투복 역시, 효과들이 한 단계씩 내려가거나 특성 부여 등의 효과는 없다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상당히 훌륭한 물건이었다.

이상아.

전 직업, 양복점 의상 디자이너.

현 직업, 재봉사.

‘생산 계열……!’

왜 직업을 듣고도 바로 이런 쪽으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리자드의 부산물로 요리를 만든 것처럼.

이상아는 방어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스탯이 증가하는 아이템은, 집단 스킬을 통해 얻은 [클랜의 증표]뿐이었는데.’

군번줄의 형태를 한 증표.

그로 인해 증가한 능력치만 해도, 우리 부대원들의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장비 역시 마찬가지.

능력치 증가는 물론, 저항력을 상승시켜 준다는 문구.

아직까지 몬스터 상대로는 별 의미도 없는 군복을 입고 활동하던 우리가, 제대로 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원래 의상 디자이너였던 탓인지.

디자인도 꽤 세련된 게 느껴진다.

다만.

“군복, 같이 생겼군요?”

“아무래도 여러분들은 군인이시잖아요? 그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했어요.”

“…….”

그야,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이만한 디자인이 없긴 하겠다만.

‘가만 보니, 차이가 없진 않네.’

디지털 패턴의 군복이지만, 일단 검은색과 회색 베이스란 게 가장 큰 차이.

육군보단, 도시에서 활동하는 전경들을 연상시키는 색 배치다.

야전 상의 같은 경우에는, 익숙한 물건보다 길이가 길어졌다.

허벅지를 반쯤 가릴 정도의, 거의 롱코트에 가까운 길이.

“방어구는 면적이 넓을수록 유용하니까요.”

디지털 패턴의 군복은, 위장의 효과는 뛰어날지언정, 괴물과의 전면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전투복은, 몬스터와의 싸움을 가정해도 충분히 훌륭해 보였다.

“일단 장교용하고 병사용은 성능을 좀 다르게 했어요. 치프틴 가죽으로 만든 지휘 전투복이 장교용인데, 지휘관인 김 중위님이나 다른 조장급 분들이 착용하시면.”

“아, 그거 말인데. 지금 저희 부대 지휘관은 접니다.”

“네에?”

그렇게, 조금 늦었지만.

내가 지휘관이라는 사실까지 공유하며, 완벽하게 클랜에 합류하게 된 이상아 씨.

그리고 그녀의 주도하에.

부대의 무장이 시작됐다.

“무슨 옷에 능력치 증가가……!”

“만져 봐. 이거 가죽이야.”

“가죽 군복인데 이렇게 편하게 움직여져도 되는 건가……?”

각성한 병사들에게, [강철 가죽 전투복]이 지급됐다.

단순히 옷만 준 게 아니다.

“전사조 분들은 아무래도 방어력이 더 필요할 테니. 안쪽에 방어구를 덧입을 수 있게 해 놨어요.”

“사수 각성자 분들은 여기. 탄창을 넣을 수 있게 탄창 주머니들을 달아 놓은 버전이에요.”

“영준 씨는 칼을 쓴다고 하셨죠? 벨트에 칼집을 걸 수 있게 해 놨어요.”

디자인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각성자들의 유형에 따라서 조금씩의 차이를 줬다.

의상을 받는 각성자가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반영하기까지.

덕분에, 모든 부대원이 착용하는 제식 복장임에도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커스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제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광일이, 네가 전사조장이잖아. 너 말고 누가 입냐.”

나나 김 중위를 비롯.

조장급 각성자들에게 [지휘 전투복]이 지급됐다.

지휘복은 치프틴의 부산물들로 만들어진 장비.

지금도 소규모로 부대를 습격해 오는 리자드들과 달리, 당장은 재료의 수급처가 없는 만큼 희귀한 장비기도 했다.

그 마지막 한 벌은.

“상아 씨, 당신한테 맞춰서 만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부대원들과 상의한 결과.

이상아 씨의 몫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왜 저한테…….”

“생존자들의 대표니까요. 어떻게 말하면 조장급이나 다름없죠.”

“……부대에 합류한 시점에서는 큰 의미 없는 직함 아닌가요?”

“아뇨.”

생존자들의 대표.

확실히, 이들이 우리 부대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똑같은 병사로서 대우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희는 곧, 부대를 떠날 겁니다.”

“그게 무슨…….”

“바깥에 나가면, 다른 생존자들이 합류하는 일도 있겠죠.”

“…….”

“상아 씨는, 그 생존자들을 맡아 주셔야 합니다.”

바깥에서 만나게 될 생존자들을 대하는 일.

부대원들도 하려면 못 할 건 없겠지만, 우리는 생존자로서의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생존자들의 리더로서,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 봤던 인물.

그녀야말로 적임이다.

“거기에, 장비를 보급하는 생산계 각성자이기도 하시니까요.”

“……생각보다 중요한 위치가 돼 버렸네요.”

“저도 겪어 봐서 압니다만, 좀 신경 쓰이긴 해도 금방 적응되실 겁니다.”

나도 하루아침에 클랜 리더로 지목받은 입장.

그래도 뭐, 인간이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금방 익숙해지더라고.

“그 답례라고 하긴 뭐 하지만, 저희 측에서 하나.”

나는 품 안에 가지고 왔던 물건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일반적인 병사의 경우, 부대에 전입한 뒤 개인 화기로 M16, K2 같은 돌격 소총을 보급받는다.

대부분의 장교 역시, 특수부대 같은 경우가 아닌 한 마찬가지.

그러나 소수의 예외가 있으니.

“권총……인가요?”

“K5입니다.”

영관급 장교나 주임원사 같은 특별한 경우.

돌격 소총이 아닌, 권총을 보급받는다는 것.

‘우리 부대의 경우엔, 대대장님과 주임원사님, 군의관님까지. 세 명.’

주인을 잃은 세 자루의 권총들.

지휘통제실 구석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던 녀석들이다.

‘아깝게 버리고 갈 수는 없지.’

그중 한 정은, 일단은 우리 부대의 최고 계급자.

[초보 지휘관]으로 각성한 김 중위에게 지급했다.

명목상이지만 대대장이나 다름없는 위치인 데다가, 지휘 계열 특성과 스킬에 치중된 김 중위는 전투 계열 스킬이 빈약했기 때문.

‘또 다른 한 정은, 내가 사용할 예정이고.’

내가 사용 중인 무기는, 죽은 후임 녀석의 것이었던 긴 회칼.

내 특성인 ‘단도 숙련’에 적합한 무기인 데다가, 묘하게 손에 익었다는 점도 있어서, 지금까지는 이 칼만을 무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어.’

그걸 처음 느낀 것은, 리자드 치프틴과의 싸움 때였다.

리자드라는 종족의 약점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의 리자드 치프틴은, 내가 온 힘을 다해 칼을 뻗어도 그 약점에 칼이 닿지도 못하는 수준이었지.

전사나, 마법사 등.

전투 계열의 각성자들은 그런 상황에 대응할 만한 스킬이나,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산 계열 각성자.

전투 계열의 특성이 부족한 만큼, 부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나와 같은, 생산계 각성자인 이상아 씨 역시 마찬가지.

“……열심히 해야겠네요.”

보통이라면 반출이 불가능한 권총까지 지급받았단 사실이 꽤 크게 다가오는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총을 받아 드는 그녀.

그렇게, 부대원들의 무장이 어느 정도 끝났다.

* * *

며칠 뒤.

“민철이, 따라와.”

“예…… 옙!”

“자식, 쫄았네. 내가 붙어 있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이미 각성한 선임 병사 한 명이 이병을 데리고 죽어 가는 괴물에게 접근한다.

“야, 쫄지 마, 쫄지 마!”

“막상 해 보면 별거 없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 역시, 소리를 지르면서 이병을 독려해 주었다.

그리고.

푹!

“해, 해냈습니다!”

“축하한다. 너도 이제 각성자야.”

이병 장민철.

우리 부대의 전 막내가 각성에 성공했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100인 이상의 인원(100/100)]

[과반수의 인원에게서 인정받는 리더(1/1)]

[길드(100인)]를 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길드는 임시 단체인 파티나, 집단의 초기 형태인 클랜과는 달리,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본격적인 사회 집단입니다.]

[직위를 정하고, 규율을 만들고, 질서를 정립하십시오.]

[세상에 당신들이 만든 질서를 강요하십시오.]

[부관 지정이 가능해집니다.]

[길드의 업무를 분담할 부관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부관들은 길드의 내정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으며, 길드 메시지를 통해 원거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길드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길드명을 지정해 주세요.]

[대지역 - ROK의 첫 번째 길드입니다.]

[소지역 - ROK. 17의 첫 번째 길드입니다.]

[업적 달성 - 조합 결성.]

[앞서가는 이들을 위해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용의 이빨]

준비는 모두 갖춰졌다.

이제, 떠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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