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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4화 (24/227)

24화 강철 군단

부대를 버리고 이동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안전한 부대를 떠나 위험한 지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견에, 예상대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반박은 하지 않더라도,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이는 병사들도 있었고.

“까짓거 가 봅시다!”

“끼에에에엑!”

고맙게도, 용기가 듬뿍 담긴 요리를 먹여 주니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불가피한 일인 만큼 어쩔 수 없지.

“부대를 떠나기 전에, 먼저 정리하고 가자.”

지상으로 원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마지막으로, 모든 부대원과 생존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후 회의를 진행했다.

“우선, 우리의 각성자가 100인이 되면서 길드로 성장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무려 국내 최초란다. 다들 박수.”

“와아아.”

짝짝짝.

별 의미는 없는 작은 박수가 지나가고.

“그리고, 길드로 성장하면서 얻게 된 효과로 부관 지정이라는 게 생겼다.”

“부관……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시스템창을 켜 길드의 정보로 들어갔다.

[부관 : 0명(0/5)]

[부관은 길드 마스터를 도와 길드를 운영하는 핵심 간부들입니다.]

[부관으로 지정될 시, [증표] 스킬의 버프 효과가 상승합니다. 부관급부터는 메시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증표 스킬의 버프 효과 상승은 이미 나는 누리고 있는 부분이다.

증표 스킬로 주어지는 증표의 버프양은 착용자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며, 이미 나는 리더로서 남들보다 높은 버프를 누리고 있던 상황.

이번에 길드 마스터로 상승하며 버프양도 증가했다.

부관들도 그런 식의 버프양 증가가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그다음 문구다.

“부관으로 지정된 이들은, 다른 부관이나, 길드 마스터인 나와 원거리 통신이 가능해.”

“원거리 통신…….”

그 말에,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괴물이 나타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핸드폰이나 라디오 등, 기존의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다.

그런 원거리 통신이 다시금 가능해진다는 것.

그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겠지.

“그러므로 여기서, 부관을 정해 놓고 가려고 한다.”

부대에 뭉쳐 있을 때는, 100인이라는 인원을 통솔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대를 떠나 좀비와 괴물이 넘쳐 나는 지상으로 나가면, 100인이 한곳에 뭉쳐서 행동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 나뉘어진 부대를 지휘 가능한 부관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터.

“우선, 이민재 병장.”

“예.”

나보다 형이고, 평상시에도 서로 반말을 하고 지내는 사이지만.

공적인 자리임을 의식했는지 존대를 하는 민재 형.

“이민재 병장은 나와 함께 부대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유사시에는 부대를 나누어 지휘하게 될 거다.”

민재 형은 기본적으로 머리도 좋고, 부대에서도 일 잘하는 걸로 유명했다.

다소 깐깐한 성격 탓에 싫어하는 부대원들도 있었지만, 괴물들이 나타난 후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덕분에 부대에서의 평판도 꽤 좋아졌다.

부대원들도 이민재 병장이라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

아마 가장 기본적인 부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민재 형이 될 것이다.

“다음은 전광일 상병, 서수혁 상병.”

“예!”

“옙.”

각각 기존에도 전사조장, 사수조장의 역할을 맡았던 이들.

각 직업군의 최고참으로서 잘 활약해 왔으니, 부관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리라 기대할 만하겠지.

“다음은, 이상아 씨.”

“네.”

얼마 전 부대에 합류한 생존자 집단의 리더, 이상아 씨.

지금은 생존자들도 천천히 각성자들로 만들고 있는 상황.

그들의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질 터.

“이상아 씨…… 라는 말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군. 앞으로는 다른 부대원들과 똑같이 대우하겠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이제는 부대의 일원이 된 상아와 생존자들.

지휘관으로서, 더 이상의 존대는 불필요하다.

그녀도 자신이 부대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한 듯, 더욱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이상아는 앞으로 추가로 합류하게 될 생존자들과 우리 부대와의 조율을 담당하게 될 거다.”

생존자 집단에서 가장 큰 입지를 지닌 그녀가 부관을 맡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거기에 지상으로 나간다면 또 다른 생존자 그룹들이 합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이미 생존자 그룹을 이끌어 본 그녀라면, 그들과의 조율 역시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4명의 부관이 선출되었다.

나름대로 이유가 확실한 만큼, 부대원들 역시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부관은.

“마지막으로, 박태준 병장.”

“예.”

그 이름을 부른 순간.

웅성웅성.

웅성웅성.

부대원들 사이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박태준 병장님이?’

‘병장님도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분을 부관으로 삼아도 되는 건가?’

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부관이라 함은 길드 마스터를 대신해 부대원들을 지휘하고, 때로는 일선에서 싸워야 하기도 하는 직위.

태준이 녀석의 부대에서의 평판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다리가 다친 녀석이 지상에서의 부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태준이 녀석을 부관으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박태준 병장은, 부대를 떠나지 않는다.”

“……예?”

웅성웅성.

별다른 이의 없이 얘기를 듣던 병사들 사이에, 처음으로 파문이 인다.

우리는 부대를 떠나, 지상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태준이를 비롯한 몇 명의 부대원들은, 이곳에 남는다.

“이 산맥은 우리의 유일한 점령지. 모든 부대원이 이곳을 떠나면 점령 효과 또한 사라질 테니까.”

“아…….”

우리가 처음, 이 산맥의 지배권을 얻었을 때.

나타난 문구가 있다.

[영토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동안, ‘점령 포인트’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지배권을 유지하는 동안, 점령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는 문구.

[점령 포인트]

[점령지를 지배함으로써 얻어지는 포인트입니다. 더 많은 점령지를 더 오래 지배할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 점령 포인트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현시점에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게임은, 어째서인지 점령전의 형태를 띠고 있어.’

점령을 유지하는 것으로 벌 수 있는 포인트가, 아무 의미도 없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일한 점령지, 산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다.

“……다들 알겠지만, 내 직업은 천문관이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일수록 능력을 사용하기가 쉽지. 우리 부대만큼 별이 잘 보이는 곳도 드물고.”

태준이 녀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이 산에 남아 산맥의 점령을 유지하면서, 내 능력으로 얻게 되는 정보를 전달하게 될 거다.”

레이더반 최고참, 박태준.

녀석은, 지상에 내려간 우리가 나아갈 길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레이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렇게 태준이를 비롯해, 녀석과 친한 레이더반 병사 7명은 부대에 남기로 했다.

계속해서 부대를 관리하면서 점령을 유지하고, 태준이 녀석의 능력으로 알게 된 정보를 전달하기도 쉽기 때문.

식량 사정도, 부대에 남아 있는 전투식량과 비상식량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터.

‘혹시나 적들이 침공한다고 해도 문제없겠지.’

산맥에 남는 것은 고작 7명밖에 안 되는 병력.

지금 같은 소규모 교전이라면 모를까, 대규모 침공에는 무력할 것이다.

그러나 태준이 녀석의 천문 능력이라면 침공을 사전에 감지하고, 지상에 내려간 우리 본대에 지원을 청하는 식으로 대처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태준이 녀석을 부관으로 지정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부관은 이렇게 다섯으로 하는 걸로. 그럼 마지막으로…….”

다음으로 정해야 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

[길드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길드명을 지정해 주세요.]

“길드명. 제안할 거 있는 사람?”

파티나, 클랜 같은 작은 단위의 집단일 때는, 이름을 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100인의 각성자가 모이고 길드급으로 성장한 지금.

대외적으로 우리를 표현하는 데 쓰일, 길드명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거 굳이 바꿀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처럼 423대대로 이용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병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의견은 기각이었다.

“며칠 전이었다면 모를까.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했잖아?”

“아. 그렇군요.”

423대대의 병사들과 간부들.

그게 우리 집단의 전부였다면 기존의 대대명을 이용해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아 씨를 비롯한 생존자들이 부대에 합류한 지금.

423대대라는 이름은 대대 출신의 병사들을 이어 주는 데는 유용하지만, 나중에 부대에 합류한 이들에게는 벽으로 느껴지겠지.

“특히, 지상에서 활동하기로 결정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합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대명이 아니라, 우리를 대표할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

앞으로 부대에 합류할 이들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우리의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이름.

“강원도 인류 해방 전선, 같은 거 어떻습니까?”

“강원도에만 머무를 건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부대원 중에는 강원도 사람이 더 적고.”

“원탁의 기사단!”

“김 상병님…… 그건 좀…….”

병사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여러 의견이 오갔지만, 이거다 싶은 길드명은 잘 나오지 않았다.

“애매하다 싶으면, 키워드를 정하는 건 어때.”

“키워드?”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니, 민재 형이 말을 꺼냈다.

“단체명부터 정하는 게 어렵다면, 차근차근 단계별로 정하는 거지.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합류했을 때도 어색하지 않을 키워드부터.”

“특색이라…….”

우리들의 특색이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군부대 출신이라는 거?”

“출신이라고 할까. 아직 다들 군인이긴 합니다만.”

하긴.

부대를 떠나 이동할 뿐이지, 전역 허가를 받지 않은 이상 우리는 여전히 군인이다.

그렇다면 군인.

아니, 군대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정하는 게 낫겠지.

군대라…….

“강철…….”

“강철?”

별생각 없이 중얼거린 단어.

그 단어에, 다른 사람들이 반응했다.

“아니, 나는 군대 하면 떠오르는 게 그거라서. 총도 그렇고, 장갑차 같은 것도 그렇고. 철이잖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실제로는 강철이 아닌 합성 금속 같은 걸 쓰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단단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군대를 떠올릴 때 연상하는 이미지는 강철이였다.

“강철이라……. 나쁘지 않네.”

“으응? 그런가?”

단순히 내가 군대에 대해서 연상하는 단어가 그것일 뿐인데, 이렇게 정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강철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굳건함도 있고.”

“우리가 처음 상대한 괴물도 강철 리자드였잖습니까?”

부대원들의 반응은, 이미 이걸로 정해진 듯한 분위기.

“무엇보다, 우리의 대장인 네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거니까.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고 본다.”

“……그런가.”

슬쩍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니, 불만이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좋아. 그러면 강철을 키워드로 두고, 단체명을 어떻게 할까인데.”

여기서도 다시 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다.

기사단…… 형제단…… 전우회…… 향우회…….

“강철부대 같은 건 어떻습니까?”

“……아니, 그건 하지 말자.”

“어, 그렇게 별로입니까?”

별로인 건 아닌데, 왠지 그건 쓰면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약간의 회의를 걸쳐.

다수결로 정해진 이름은 이것이다.

[강철 군단]

“우리는, 군단이다.”

“군단치고는 많이 작기는 하네요.”

구석에서 들려온 병사의 목소리에, 소소한 웃음이 퍼져 나갔다.

[길드의 체계를 정립하였습니다.]

[길드 : 강철 군단]

[군단장 : 신영준]

[부관 : 이민재, 박태준, 전광일, 서수혁, 이상아]

[군단원 : 100인]

[설명]

[ROK. 17 지역, ‘산맥’의 깊은 곳에서부터 발족한 무력 집단.]

[강철 리자드 일족과 ‘산맥’의 지배권을 두고 짧은 시간 동안 경쟁했으나, 지휘관급 개체의 공격에서 비롯된 대규모 교전에서 승리. 리자드 세력을 몰아낸 뒤 산맥의 온전한 지배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산맥의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세력을 키운 끝에, 군단의 발족에 이르렀다.]

[군부대에 뿌리를 둔 세력으로 다수의 군용 화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낸 강력한 각성자 집단. 국가에 소속된 군부대에서부터 비롯되었으나, 민간 생존자 집단의 합류로 인해 세력의 정체성을 재확립한 뒤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고 있다.]

“허. 자세하기도 해라.”

그야말로 게임의 세력을 설명해 주는 듯한 문구의 등장.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지는 한편,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뿌듯해지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

이제 우리는 산맥을 떠나, 외부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한다.

‘문제는, 어디로 향하는가.’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에 위치한 우리 부대.

부대를 떠나 내려간다고 한다면, 갈 곳은 동쪽 아니면 서쪽.

서쪽, 영서지방에는 춘천 같은 큰 도시가 있고, 땅도 넓다.

지역이 넓은 만큼 다른 군부대도 많이 있고, 우리 부대의 관사가 위치한 곳도 서쪽.

반대로 동쪽, 영동 지방에는 강릉 같은 도시가 있고, 바로 근처에 바다가 있다.

우리 부대의 상위 부대인 12군단이 위치한 장소기도 하고.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느냐, 상위 부대가 위치한 곳으로 가서 합류를 노려 보느냐군요.”

“어느 쪽이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니…….”

그렇다면…….

“점쟁이한테 맡겨 볼까.”

“……점쟁이가 아니라 천문관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끼이이익…….

안개 낀 산맥 깊은 곳에 위치한, 작은 군부대.

그 부대의, 오랜 시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이.

“가자.”

드디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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