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하산 (2)
내가 요리사로서 만드는 요리들.
그 효과는 엄청나지만, 가장 근본적인 페널티가 하나 있었다.
‘일단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거지.’
요리를 통한 버프를 주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
일단 요리를 만들어서 먹여야 한다는 것.
그 자체다.
그나마 부대에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나도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만.
그렇다고 식당에서 요리할 시간도 없던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상에 내려가면 생각보다 문제가 커진다.
‘요리하는 데 필요한 환경 자체가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야전에서의 취사는 언제나 큰 위험을 동반한다.
냄새나 연기로 인해 적에게 위치를 노출할 가능성이 큰 것은 물론.
지금처럼 언제 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요리를 위한 장비를 펼칠 수도 없는 일.
산 아래에 안정적인 거점을 마련하기 전까지.
안심하고 요리를 만들기는 힘들다.
그러면 도시락이라도 싸 줄까 싶다가도 도시락은 금방 상해 버리기 마련.
그리고 이건 비단 괴물과의 전투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
예로부터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는 많은 군주가 골머리를 싸게 만든 부분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하나 있다.
‘전투식량.’
[스킬 - 전투식량 (new)]
[전투용 보존 식량의 제조가 가능해집니다.]
[전투식량은 일반 식사에 비하면 능력치가 다소 떨어집니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길고, 작은 크기의 음식으로도 높은 열량을 섭취하는 것이 가능해 휴대에 용이합니다. 보장된 맛은 물론이구요!]
김 중위의 일을 해결한 뒤.
레벨이 10에 도달하면서 얻은 스킬.
이 스킬을 적용해 만든 음식은 기본적인 효과가 소폭 감소한다.
하지만 그런 페널티는 우습게 여겨질 정도의 강점이 있으니.
유통기한이 사라진다는 것.
[하급 요리사의 용기가 담긴 리자드 고기 육포]
이 스킬을 통해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바로 이것이다.
고기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드는 육포.
먼 옛날.
통조림이라는 획기적인 발명이 생기기 전까지.
전 세계의 군대에서 애용하던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형태의 전투식량.
‘나중에 가면 아예 도시락도 전투식량화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겠지.’
그럼에도 효과는 훌륭했다.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섭취 시, 요리에 담긴 ‘강철 리자드’의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물리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고정 스탯 상승.
재료로 사용한 리자드의 영향을 받아 물리 저항력의 상승까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김 중위님.”
“크흠. 전원, 전투태세로!”
모든 부대원이 내 음식을 먹은 것을 확인한 뒤 김 중위에게 눈치를 주자.
고개를 끄덕인 김 중위가 소리쳤다.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아군의 전투 능력이 1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아군들에게 특성 - 전투태세가 부여됩니다.]
[특성 - 전투태세]
[일정 규모 이상의 아군과 진형을 구축해 전투에 임할 시, 전투 효율이 증가하며 전투로 인한 혼란에 면역을 지닌다.]
김 중위의 직업은 ‘신입 지휘관’.
나와 비슷한 후방 지원.
버퍼 계열의 직업이다.
김 중위의 버프는 아군의 능력치를 일정 비율 상승시켜 준다.
그리고 퍼센트 상승 계열의 버프의 특징.
‘고정 수치 상승 계열의 버프와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거지.’
내 요리의 버프와 김 중위의 버프가 시너지를 일으켜 더욱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
거기에, 요리에 담긴 ‘용기’의 효과까지.
“큭큭, 재밌는 싸움이 되겠어.”
“와라, 버러지들아!”
아군 진형 내로 뛰어든 괴물들.
녀석들은 죽을 장소를 찾아온 셈이다.
* * *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며 펼쳐진 첫 전투가 끝났다.
“부상자는 열 명 정도입니다만, 충분히 치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불리한 지형에서의 싸움.
당연히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두 명의 힐러 계열의 각성자들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는 수준.
부상자 쪽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신 병장님의 요리 효과가 컸습니다.”
의무병, 사의준 일병이 말했다.
자신의 건빵 주머니에서 내가 만든 육포를 꺼내 들며 신기하게 바라보는 녀석.
“솔직히 부대를 떠나면 신 병장님의 요리 효과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런 작은 육포로 이 정도 효과라니.”
“칭찬은 고맙다만. 아직 개량할 점이 많아. 내가 숙련도가 모자라서 당장은 육포 정도로 그쳤지만, 더 개량해 나가야지.”
전투식량으로 만든 육포.
이번 전투에서는 충분히 활약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육포 정도로도 요리의 버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파격적인 효과다.
‘하지만. 육포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전투식량에 불과해.’
통조림 같은 것이 생기기 전에나 이용되던 전투식량.
이후에 대체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기껏해야 육포인 만큼 본격적으로 만든 요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스킬의 숙련도를 늘리면서 좀 더 효과를 높여 나가야겠지.
“진심이십니까?”
“응?”
내 대답을 들은 사의준 일병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만 해도 대단한데. 더 대단해질 여지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아.”
“그 정도면 무서울 지경입니다.”
“큼.”
요리사란 직업의 효율은 나도 날이 갈수록 놀라는 부분이긴 하다.
전투 능력이 모자란 편이니 그 반대급부로 버프 효과가 좋아지는 건 이해 가는 부분.
‘운이 좋기도 했지.’
내 요리는 기본적으로 먹는 사람의 숫자에 비례해 효과가 늘어나는 것과 다름없다.
일종의 광역 버프란 말이지.
100명 넘는 부대원들이 이 버프의 효과를 받기에 내 능력이 그만큼 빛을 발하는 셈이다.
나 혼자, 아니.
일행이 열 명에서 스무 명 가까이 된다고 해도 이만큼 빛을 보진 못했겠지.
취사병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병사들의 부상은 그렇게 사제와 치료사가 전담 가능한 수준이었다만.
사의준 일병과의 대화가 끝나자, 기다리던 병사 한 명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차들은 못 살리겠습니다.”
차량을 조사하던 공병 각성자.
이공우 상병이었다.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만.”
“이걸로 증명됐군요. 일반 차량은 괴물들 상대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장벽으로 쓰던 차량은 그나마 큰 승합차나, 소형 트럭 등이었다.
하지만 그 차들의 외벽은 리자드들이 발톱으로 찢고, 뜯어내 완전히 걸레가 되어 버린 상태.
방호 능력은 크게 기대하긴 힘들겠지.
“일반 차들은 그렇다 치고. 군용 차량들은 어때. 비슷한가?”
“확실히 군용 차량들이 튼튼하긴 합니다. 발톱에 완전히 뜯겨 나가는 건 버틴 것 같습니다.”
처참하게 뜯겨 나간 승합차 등과는 달리, 군용 차량들은 그래도 형체를 꽤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합차들이 저렇게 된 걸 보면. 군용 차량들도 완전히 믿기는 힘들 겁니다.”
“더 강한 괴물이 나오면 군용이어도 파괴당할 수 있다는 건가.”
“장갑차도 아니고, 결국 군용 레토나일 뿐이니까요.”
말을 마친 이공우 상병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자재만 충분히 있었으면 저희가 어떻게든 했을 텐데.”
이공우 상병의 직업은 ‘공병’.
그 이름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강화하는 데 특화된 직업이다.
재료만 갖춰진다면 차량의 방어력을 보강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잖냐. 우리 부대가 대형 부대도 아니고. 괴물에 대응하기 위한 자재 같은 게 많을 수가 없으니.”
“상황이 이러니 이해는 합니다만…… 후, 역시 아쉽군요.”
하지만 산속의 작은 부대에는 자재가 충분하지는 못한 편이다 보니.
공병으로 각성한 부대원들이 직업에 걸맞은 활약을 한 것은 부대의 방어 시설 보강 정도에 그쳤다.
지금은 ‘망치 숙련’ 스킬을 가진 점을 이용해 전사직처럼 활동하는 녀석들.
‘지상에 내려간다면 쓸 만한 자재들을 확보해 봐야겠네.’
내 요리도 그렇고.
‘재봉사’ 각성자인 이상아가 만들어 준 장비들의 효과도 그렇고.
이 ‘게임’에서 생산직들은 생각보다 강력한 편이다.
이 녀석들도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주지 않을까.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 *
그렇게 전투 현장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
우리는 전열을 다시 세우고 진군을 개시했다.
“잠깐 정지!”
“응?”
그런데 그렇게 이동을 개시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두에서 정지 명령이 내려왔다.
몬스터의 습격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충성, 신 병장님?”
“어. 무슨 일이야.”
“잠깐, 봐 주셔야 할 게 생겼습니다.”
가장 앞에서 이동하던 병사들이 나를 찾아와 보고했다.
“뭔가 발견한 거냐?”
“옙.”
“안내해.”
병사들의 안내를 따라 행렬의 선두로 이동하자.
그들이 발견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부대를 향하는 길에 깔린 몇 안 되는 가드레일.
그리고 그 가드레일은…….
“끊겨 있군.”
큰 사고라도 난 듯 거칠게 뜯겨 나가 있었다.
“원래도 이러진 않았겠지?”
“예. 괴물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멀쩡했던 가드레일입니다.”
순간적으로 괴물이 뜯어 버린 건가 했으나.
끊겨 있는 가드레일의 형체도 그렇고.
괴물이 가드레일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이거 설마.”
부서진 가드레일의 모양.
그건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며 뜯겨 나간 것 같은 형체를 하고 있었다.
‘가드레일이 깔린 곳은 특히나 떨어지면 위험한 절벽 구간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절벽 가까이 몸을 옮겼다.
“신 병장님! 조심하십쇼!”
“안 떨어져, 걱정 말고.”
아찔하기까지 한 절벽.
그 아래로 고개를 내밀자.
저 멀리 바닥 근처에 굴러떨어져 있는 레토나 한 대가 보였다.
눈에 익은 차량이었다.
‘재민이, 승호…….’
괴물들이 나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상위 부대에 연락하러 떠난 병사들.
그들이 타고 떠난 차량이었다
* * *
“운전병들이 타고 나간 차량이군요.”
가드레일 너머에는 부대에서 사용하던 레토나 한 대가 전복된 채 떨어져 있었다.
저 차량을 타고 이동한 운전병 두 명도 아마 몸 성히 살아남지는 못했겠지.
“김재민 상병님이랑, 곽승호 상병님…….”
“상위 부대에 연락하러 간다더니, 살아서 산에 내려가지도 못했을 줄은.”
외부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다른 부대원들은 반대했지만.
김 중위가 밀어붙인 안건이 있다.
유무선 망이 무력화된 지금.
상위 부대와 연락하기 위해 운전병들을 보내 보자는 것.
비록 자원자를 뽑아서 보낸 것이기는 했지만.
결국은 산에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여기서 죽은 모양이었다.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했을지도 몰랐는데.”
“…….”
둘은 각성자도 아니었으니 괴물의 습격에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허겁지겁 도망가다가 무력하게 사냥당하고 말았겠지.
그런데.
보다 보니 조금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시체가 안 보이는군.”
“예?”
“재민이랑 승호. 죽었다면 시체가 남아 있을 텐데 안 보여.”
절벽 아래에 떨어져 있는 레토나.
반쯤 박살 난 승합차의 문은 뜯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병사들이 앉았을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운 좋게 살아서 어딘가로 이동한 걸까요?”
“이 높이에서? 각성한 지금의 우리라도 저기까지 떨어지면 최소 중상일걸.”
부대로 향하는 길 중에서 가드레일이 깔린 곳은 정말로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가파른 절벽뿐이다.
각성도 하지 못했던 두 운전병이 저 낙하에서 살아남아 자력으로 이동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괴물들이 식량으로 삼으려고 가져갔다든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추측이 그쪽이겠지.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은 분명 인간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뜯어먹고 있었다.
녀석들도 뭔가를 먹고 살긴 해야 하는 생명체라는 뜻.
다만.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었다.
‘두 녀석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차라리 괴물에게 먹힌 것이길 빌어야 할지도.’
물론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는 해 놔야겠지.
“민재 형, 김 중위님. 지휘는 좀 맡기겠습니다.”
“음?”
“잠깐 할 일이 생겨서.”
두 사람에게 지휘를 맡긴 뒤.
나는 후방의 소형 트럭으로 몸을 옮겼다.
끼이익…….
트럭 안에는 방금 우리가 사냥한 리자드들.
그 사체들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