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7화 (27/227)

27화 하산 (3)

쿠웅……!

트럭 밖에서 큰 흔들림이 느껴졌다.

“……! ……!!!”

그와 함께 병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트레일러 칸 안에 앉아 있는 나로서도 무슨 일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또 전투인가.’

이번 걸로 4번째다.

내가 트럭에 들어온 뒤 전투가 일어난 횟수가.

시간이 조금 지나 소란이 잦아든 뒤.

누군가가 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전투 끝났다. 괴물의 사체는 이쪽으로 옮기면 되는 거겠지?”

“수고했어.”

이민재 병장이었다.

민재 형의 옆으로 몇몇 병사들이 다가와, 사냥한 괴물의 사체를 트레일러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다섯. 한 명은 상처가 심해서 의무병 차량으로 옮겨서 집중 치료에 들어갔다.”

덤덤하게 말하는 민재 형.

바깥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한 보고였다.

‘역시, 피해가 적지는 않구만.’

내 요리와, 김 중위의 지휘 버프.

덕분에 부대원들의 능력치는 엄청나게 뻥튀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습격받는 상황인 것은 변하지 않은 채다.

계속된 교전 속에서 부상자는 물론 중상자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민재 형에게 신경 쓰였던 점을 물었다.

“교전이 점점 잦아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실제로 그럴 거다. 전투가 계속되다 보니 소리를 듣고 주변에 몰린 몬스터들이 많은 것 같아. 이럴까 봐 총기의 사용도 자제한 거였다만…….”

한숨을 푹 내쉬는 민재 형.

“큰 의미는 없었나 보군.”

“총기를 아꼈으니 이 정도로 그친 거라 생각해야지. 뭐, 내 도움이 필요한 건 없지?”

“아직은 전투식량만으로도 충분해. 뭔가 이상이 있으면 보고하마.”

그때쯤 괴물들의 사체를 안으로 옮겨 넣는 작업이 끝났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형에게 물었다.

“병사들 반응은 어때?”

“당연히 좋지만은 않다.”

민재 형은 잠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만든 전투식량의 덕은 톡톡히 보고 있다만…….”

“그래도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지.”

“그래. 아무리 전투식량을 만들어 줬다고 해도, 혼자 전투에서 쏙 빠져 버리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얘기가 많아.”

괴물들과의 전투.

거기서 혼자 빠져 있는 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많은 게 당연하지.’

전투식량은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직접 싸우는 다른 병사들과 비교하면 느낌이 많이 달랐다.

후방 계열이라고 대놓고 안전한 길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민재 형은 내가 있는 트레일러를 슥 둘러보고 말했다.

“네가 하는 일이니까, 이유가 있겠지. 병사들 불만은 내가 정리할 테니 걱정 마라.”

나도 부대에서의 전투에서는 나름 일선에 섰던 몸이었다.

전투에 함께 나설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내 전투력은 아무리 잘 쳐 줘도 전사조 기준으로 중하 정도.

‘요리사’로서의 나는 전투식량을 통해 전투에 공헌하고 있다만…….

전투 인원으로서의 나는 그렇게까지 활약하진 못한다.

‘그럴 바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지.’

민재 형이 떠난 뒤.

피 냄새가 꽉 들어찬 트레일러 안에서.

나는 괴물들의 사체를 계속해서 손질했다.

가죽과 살점을 분리하고.

손잡이로 두들겨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마지막으로 소스를 약간 뿌려 주는 단순 행위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전투가 더 있었을까.

끼익…….

내가 탑승한 트럭이 갑자기 정차하는 것이 느껴졌다.

트레일러 바깥에선 웅성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습격을 당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일이 생긴 건가.

나는 트레일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병사들이 한 곳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깐만, 비켜 줘라.”

“시, 신 병장님?”

나는 모여 있는 병사들을 헤치고 무리의 가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병사들이 무엇을 보고 놀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도로 근처를 걸어 다니고 있는 존재.

“그어어…….”

썩어 내린 피부.

크게 부러졌는지 절뚝거리는 다리.

그리고 몸에 걸친 익숙한 군복.

“이러지 않길 바랐는데…….”

산에서 내려가다가 사망한 두 운전병.

김재민, 곽승호 상병.

그들이 좀비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기, 아까 그 절벽 근처인가?’

산을 크게 돌아 내려와야 했기에 오래 걸렸지만.

위치상으로 전복된 차량을 발견한 절벽에서 아주 멀지 않은 장소 같았다.

“저게 좀비…….”

한때 같은 부대에서 한솥밥 먹던 병사가 좀비가 된 모습에, 많은 병사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넋 놓고 지켜보고 있어선 안 됐다.

“그어……. 어?”

병사들 사이에 퍼진 소란을 느꼈는지.

좀비가 된 부대원의 얼굴이 우리 쪽을 향했다.

그리고.

철컥.

‘……철컥?’

당연히.

그들에게는 총과 총알이 보급되었다.

괴물들이 나타나 상위 부대와 연락을 하기 위해 보낸 병사들은 우릴 향해 총을 꺼내 들었다.

미친.

“다들 조심해!”

좀비는 짐승처럼 달려들기만 하는 게 클리셰일 텐데!

저 좀비들은 우리를 향해 총구를 내밀었다.

타다다다다다당-

두 좀비의 총구에서 총알이 빗발쳤다.

* * *

“방패병!”

“예!”

방패를 든 전사들이 급하게 전열 앞으로 나섰다.

투두두두둥-

“후읍……!”

방어 계열의 특성을 타고난 각성자들.

그들 능력으로 인해 강화된 철제 방패가 좀비의 사격을 튕겨 냈다.

하지만 일부는 병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크악!”

“민철아!”

총알에 맞은 듯 휘청거리는 병사가 있었다.

나는 급하게 녀석에게 다가갔다.

“박민철 이병! 괜찮냐!?”

“끄윽…….”

“제기랄. 조금만 기다려, 의무병을-”

총알에 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있나.

급하게 치료 계열의 각성자를 부르려던 찰나.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던 병사가 입을 열었다.

“괘, 괜찮습니다.”

“뭐?”

총알에 맞은 부위를 매만지고 있는 병사.

하지만.

그 손에서 출혈은 보이지 않았다.

“군복, 덕에 산 것 같습니다. 아프긴 뒈지게 아픕니다만…… 커허.”

[강철 가죽 전투복.]

일반적인 총알은 한 탄창을 쏟아부어야 하고, 각성한 사수의 사격조차 몇 발은 버텨 내는 괴물.

리자드의 가죽을 가공해 만든 물건이다.

좀비들의 사격은 결국 강화되지 않은 일반 사격.

충격은 컸지만, 총알이 관통해 치명상을 당한 병사는 없었다.

‘다행이다.’

같은 부대 병사가 좀비가 됐다는 사실에 당황했던 병사들이었지만.

당황보다는 아군을 향해 발포한 적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이 새끼가 민철이를!”

“상병이고 뭐고……!”

몇몇 분노한 병사들이 달려들어 두 마리의 좀비를 제거했다.

총을 쏘긴 했지만, 탄창을 갈아 끼울 지능은 없는 것일까.

총알이 다 떨어진 좀비들은 비교적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병사들의 망치에 터져 나가는 것은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처리했습니다!”

“일단 해결한 것 같습-”

“아니.”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지.’

좀비들이 우리를 향해 발포한 뒤.

산맥 전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까악…….

총성에 놀라 달아나는 까마귀의 소리.

그리고.

스스스스슥.

부스럭.

카아아아아악.

산맥 안에서 기괴한 괴성과 함께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생명체들의 소리.

“신 병장님……. 이 소리는…….”

“아마 네가 예상한 대로일 거다.”

안 그래도 전투의 소음으로 인해 주변에 몬스터가 몰려 있던 상황.

그 와중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각성자들의 전투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소음이.

“이 일대의 몬스터들이 전부 우리를 향해 몰려오고 있을 거다.”

“기껏 총을 아꼈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

나름 몬스터의 어그로를 줄이려고 조심스럽게 이동했지만.

저 총성으로 인해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 버렸다.

잠깐 고민한 나는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건 여기까지다.”

“예?”

“사수들은 조정간 변경하고, 마법사들도 화력 제한 풀어.”

몇몇 병사들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전투의 소음을 듣고 원래보다 더 많은 괴물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지.”

산맥에서의 전투는 우리가 너무 불리하다.

하지만 산맥만 빠져나간다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나름대로 길의 모양이 익숙했다.

“운전병!”

“예!”

“산맥을 완전히 빠져나가려면 얼마나 남았지?”

“거의 다 도착하긴 했습니다! 괴물만 없다면 30분 내로 탈출 가능할 겁니다.”

산맥을 빠져나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상에 가까운 길.

여기서부터는 도로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

“원거리 계열 각성자들은 전부 두돈반 탑승하고 차량에서 지원 사격해! 전사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붙는 괴물들만 처리한다!”

“예!”

망설일 시간도 아깝다.

명령을 내린 나는 곧바로 내가 있던 트럭의 트레일러에 매달렸다.

전사들 수준의 신체 능력이 없는 각성자들 역시 주변의 차량에 다급히 올라탔다.

“전원 탑승 완료!”

“출발! 전속력으로 밟아!”

부아아앙…….

차량들이 출발하고.

전사들이 전속력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측에서! 옵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 곳을 보니.

열댓 마리의 괴물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사수조, 요격 개시!”

“다 쓸어버려라!”

사수조장 서수혁과, 마법조장 이민재의 명령이 떨어진다.

이미 강력하기로 유명했던 사수들의 총알.

거기에 화력 제한을 푼 마법사들의 광역 공격이 산맥에 퍼부어졌다.

타다다다당-

콰광, 퍼엉…….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뒤쪽에서도…….”

“정면에…….”

“사방에서 몰려옵니다!”

탁 트여 있던 부대와는 다르다.

커다란 나무와 돌이 우거진 산맥.

원거리 화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제길, 너무 많아!”

저 강력한 리자드가 접근하기도 전에 화력으로 빈사를 만들던 부대와는 사정이 다르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

사수와 마법사들이 녀석들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붙는 녀석들이 생긴다.’

준비해 놓은 걸 써야 할 것 같네.

나는 매달려 있던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캬아아악.

코앞까지 들려오는 괴물의 소리.

“막아라!”

“떨쳐 내!”

차량 옆에서 달리던 전사들이 가까워진 괴물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괴물들이 차량에 붙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전사들이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그들이 떨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적들이 우리가 숱하게 상대해 왔던 리자드였다면 모를까.

산맥을 반쯤 내려온 시점.

어느샌가 리자드가 아닌 처음 보는 괴물들이 더 많아졌다.

‘여기서부턴 리자드들의 영역이 아니다. 이거겠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특성을 짐작하기 힘든 괴물 역시 넘쳐 났으니.

크아아악!

전사들은 계속해서 차량에 붙은 괴물들을 떨쳐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몇 마리가 이상을 보였다.

전사들이 휘두른 무기를 밟고, 높이 뛰어오른 것.

“제기랄!”

“뭐야, 저건!?

다리가 기괴할 정도로 길고 여섯 개나 달린 괴물.

생긴 대로 각력이 심상치 않은 걸까.

전사가 휘두른 무기를 밟고 뛰어오른 녀석들이, 아군 진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신 병장님!”

괴물이 내 근처로 떨어진 것을 본 병사들이 당황한 듯 소리친다.

“카아아아악!”

달리는 소형 트럭의 트레일러 안에 앉아 있던 나는, 날아오는 괴물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녹색 털의 짐승처럼 생긴 괴물.

얼핏 보면 피부색이 좀 이상한 늑대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리가 기괴할 정도로 길고, 6개나 되는 모습의 괴물.

며칠 굶기라도 한 것일까.

덤벼드는 괴물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전사들과 달리 진형도 없이 혼자 있었다.

이건 아마도 엄청난 위기 상황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옜다.”

휙, 하고.

녀석들에게, 손질해 놓은 고깃덩어리를 던졌다.

“카아아…… 악?”

덤벼들던 괴물들이 내가 던진 고기를 입에 물었다.

눈앞의 사냥감을 물어뜯을 생각에 날뛰던 괴물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카아…….”

그 괴물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뭐, 뭐야.”

“괴물들의 기세가, 누그러들었어?”

확연하게 보이는 변화.

나를 돕기 위해 달려오던 병사들이 변화를 눈치채고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재료 분석 중.]

[‘하급 요리 비결 - 가벼운 발 슬레이파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깨달음.

내 눈에는 녀석들의 ‘손질법’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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