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하산 (4)
“케엥…….”
나를 향해 엄청난 살의를 뿜으며 달려들던 괴물들.
그 괴물들의 눈에서 열의가 사라지고, 몸도 축 늘어진다.
그저 달려오던 관성에 따라 달리는 차량에 따라붙을 뿐.
나는 그 괴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급 요리 비결 - 가벼운 발 슬레이파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깨달음에 따라.
가장 가까이 붙은 녀석을 향해 식칼을 휘둘렀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뭐, 뭐야?”
차량의 옆을 달리며 그 모습을 지켜본 병사들이 소리쳤다.
“방금 그거. 신 병장님이 하신 겁니까?”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 괴물이 급격하게 온순해지고, 무력하게 죽었으니 무슨 일인가 싶을 법도 하지.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급한 불부터 끄자. 저 녀석 약점은-.”
나는 병사들에게 내가 본 ‘손질법’을 알려 주었다.
진영 안쪽으로 들어왔던 괴물 중 나머지 두 마리는 그렇게 병사들에 의해 처리됐다.
난 거기서 그치지 않고 트레일러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트레일러 안에 가득 쌓여 있는 손질된 고기들.
나는 그것들을 두 손 가득 들고나온 뒤.
“으라차!”
사방으로 던져 버렸다.
“크륵?”
그러자,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괴물들.
그중에서도 가까이 붙어 있던 괴물들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고깃덩어리를 베어 물었다.
“역시!”
그 모습을 보고서야 확신이 들었다.
‘몬스터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건, 딱히 인간을 죽이려는 게 아니야.’
지상에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의문이 든 것이 하나 있었다.
괴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
내가 방금 본 것이 그 정답이다.
‘먹잇감을 사냥하려는 거야.’
저 산맥에서 우리와 싸웠던 리자드는 다를지도 모른다.
전략을 짜고 지속적으로 산맥의 부대를 공격해 왔던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녀석들조차 우리 병사들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잡아먹으려 들었다.
기괴한 형태.
평범한 동물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함.
그렇기에 뭔가 대단한 존재들처럼 느껴졌지만.
녀석들의 행동 원리는 기본적으로 야생 동물과 비슷한 것.
나는 야생 동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하나를 떠올렸다.
굶주린 짐승의 행동 원리에 대해 다뤘던 다큐멘터리.
굶주린 짐승은, 위험한 사냥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호전적이다.
하지만 그 짐승 앞에 안전한 식량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안전한 식량을 선택하는 법이거든.’
눈앞의 괴물들도 마찬가지.
‘아니, 이 녀석들은 어지간한 짐승보다 더 호전적인 것 같긴 하군.’
대부분의 괴물은 내가 던진 고기를 입에 물고도 계속해서 달리는 차량에 따라붙고 있었다.
식량이 확보된 상황이라도 사냥을 계속할 정도로 호전적이라는 것.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사냥감으로 선정된 시점에서 떨쳐 낼 방법이 없을 테지.
하지만.
내가 던진 생고기들을 입에 문 시점에서 다른 걱정은 의미가 없다.
[하급 요리사의 매우 대충 만들어진 나른한 감정의 시즈닝 된 생고기]
내가 녀석들에게 던진 생고기.
그것도 역시 하나의 요리였으니까.
[정성이라곤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요리입니다.]
[차마 요리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의 음식입니다!]
[요리사로서 부끄러워함이 마땅한 요리입니다.]
물론,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그걸 넘어서, 요리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요리.
‘이렇게 신랄한 메시지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능력치 상승 효과는 전무합니다.]
[경험치가 소폭 감소합니다.]
심지어 경험치까지 줄어들었다.
저거 줄어들 수도 있는거였구나.
이해는 간다.
고기를 손질하고, 두드려서 육질을 연하게 한 뒤, [주방장의 특별 소스]를 뿌렸을 뿐.
내가 봐도 요리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니까.
손질이 끝난 재료, 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당연히 요리로서의 버프 효과 등은 전무하다.
하지만.
[섭취 시, 나른한 감정이 듭니다.]
그럼에도.
특별 소스로 인한 효과는 발동된다.
“요리의 질이 낮은 만큼 효과도 적지만!”
추가로 꺼내 온 고기를 달라붙으려 하는 괴물들에게 던졌다.
[주방장의 특별 소스]
‘몬스터에게도 이 스킬이 먹힌다는 건 이미 확인했지!’
내가 실험해 본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요리의 질이 높을수록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하지. 대충 만든 요리라도 그 효과는 확실하다는 것!’
아무리 대충 만든 요리라고 한들.
[특별 소스]의 효과가 0이 되지는 않는다.
최소한 1의 효과는 무조건 발동한다는 것.
이 스킬의 무서움은 효과를 극대화한 경우가 아니다.
이 최소한의 보정치야말로.
이 스킬의, 가장 사기적인 부분!
“카아아악…… 악?”
또 다른 살기를 품고 달려오는 몬스터에게 생고기를 던진다.
그러자 몬스터의 기세가 확연히 줄어들고.
그렇게 기세가 줄어든 몬스터를 차분히 관찰한 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재료 분석 중.]
“그 녀석의 약점은 다리다!”
요리사의 눈을 통해, 그 괴물에 대한 손질법의 깨달음.
즉, 약점을 파악한 뒤, 전사들에게 알리면…….
“죽어라!”
“다들, 신 병장님이 말해 준 약점을 찔러라!”
나머지는 다른 각성자들이 해결해 줬다.
한바탕 그렇게 고기를 던지고 나니.
달라붙었던 몬스터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손이 비는 녀석들은 지금 전투식량 취식해!”
“예!”
“김 중위님, 버프 안 주고 뭐 하십니까?”
“어, 어어! 다들 전력 질주!”
나른해짐으로써 기세가 크게 꺾이고.
내 눈에 의해 약점도 속속들이 드러나는 몬스터들.
반면 아군은 [용기]가 담긴 요리와 김 중위의 버프를 통해 강화된다.
[당신의 식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전황이 순식간에 압도적으로 유리해졌다.
물론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만들어 둔 [나른함]의 고기가 많지는 않아. 이 상태도 오래가지는 못하겠지.’
산맥에서 사냥한 리자드들의 고기는 대부분 전투식량으로 만들었다.
내가 지금 던지는 고기들의 재료는, 바로 오늘 사냥한 괴물들을 그 자리에서 손질한 것.
양이 적지는 않지만 많다고 하기도 어렵다.
‘요리가 다 떨어지기 전에 산맥을 탈출해야 한다.’
전 병력이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괴물들을 피해 전진했다.
전투가 쉽지만은 않았다.
“정면에 도로를 막고 있는 괴물이 있습니다!”
“뭔 괴물이 덩치가……!”
코끼리같이 생긴 거대한 괴물이 도로를 막아선다.
[‘하급 요리 비결 – 냄새 맡는 알라투르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코를 공격해라! 몸보다 그쪽에 장기가 집중된 녀석이야!”
“충성!”
쿠웅.
아군 최고의 전사인 전광일 상병이 달려가 거대한 코끼리의 코를 거칠게 쥐어 터트렸다.
거대한 괴물이 쓰러지며 길옆으로 도로 떨어져 나갔다.
“옆으로 벌레 같은 괴물이 접근 중이다!”
“저 녀석, 신 병장님 고기도 안 먹힙니다!”
아군 진형의 옆으로 거대한 지네 같은 괴물이 달라붙는다.
다른 괴물들과 달리 던진 고기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사냥을 목표로 하는 듯한 괴물.
[‘하급 요리 비결- 독충 크론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몸통 가운데 붉은 마디가 약점이다! 생긴 거랑 다르게 무를 테니까, 그쪽만 노려!”
타아아앙-!
사수조장, 서수혁의 총알이 거대한 지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간다.
아군을 물어뜯기 직전이었던 거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 외에도.
엿듣는 알라후르, 거완 메투스.
온갖 이름의 괴물들이 계속해서 몰아친다.
“제기랄, 괴물이라곤 리자드만 상대해 봤지……!”
“동물원도 아니고 뭐 이리 다양하답니까!”
리자드와의 전투로 각성하고, 훈련해 온 우리 부대다.
리자드와 모든 부분에서 다른 괴물들.
당연히 상대법도 달라져야 했다.
우리로서는 그 상대법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본래라면 상당히 고전했어야 했을 적들이었다.
“신 병장님의 눈이 없었다면…….”
“약점만이 아니지. 요리만 해도.”
괴물을 처치하던 병사들이 나를 묘한 눈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내가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요리사의 눈이.]
[요리사의 눈…….]
‘크윽…….’
요리사의 눈은 엄연히 하나의 스킬.
사용할수록 몸 안에서 어떤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스탯창에 자리 잡고 있는 마력이라는 녀석이겠지.
마찬가지로 스킬인 주방장의 특별 소스로 대량의 요리를 제작한 직후.
본래도 마력이 많이 남지 않았던 탓일까.
[요리사의…….]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올수록, 눈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머릿속에 밀려오는 ‘손질법의 깨달음’들의 파도에, 두통이 몰려오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지만 내 정보 전달이 없어지는 순간.
상대법을 모르는 몬스터의 처치로 부대의 전진이 늦춰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따라잡은 몬스터들 역시 상대법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
전투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될 터.
“그 녀석의 약점은!”
그걸 알기에, 나는 고통을 참으며 계속해서 외쳤다.
양손으로는 고기를 던져 대면서.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지났다.
계속해서 쫓아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어느 정도 따돌렸다 싶었을 때쯤.
“앞에 보십쇼!”
병사 중 하나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산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모습이야.’
차량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그 산을 지나자.
‘드디어.’
지긋지긋하던 산맥과 나무가 아닌, 문명의 흔적.
길게 쭉 뻗은 길이 보였다.
아침 일찍, 새벽안개와 함께 출발한 산맥 탈출 작전.
산맥을 내려온 우리를 반긴 것은, 노을 진 지상의 풍경이었다.
마침 더 이상 던질 고기도 남지 않은 상황.
“하하…… 제길. 뒈지게 반갑네.”
쿵.
“신 병장님!?”
반가운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트레일러 안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 * *
강원도를 크게 가로지르는 산맥.
그 산맥의 기준으로 춘천, 원주 등의 대도시가 있는 서쪽을 영서지방.
강릉과 속초 등의 대도시가 있는 동쪽을 영동지방이라 한다.
그리고 산맥에 난 작은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오면.
그곳엔, 오래된 농가가 하나 있다.
내가 눈을 뜬 곳이었다.
‘으, 두통.’
마력이 고갈된 탓인지 두통이 몰려온다.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자, 근처에 있던 병사가 나를 눈치채고 소리쳤다.
“시, 신 병장님이 깨어나셨습니다!”
“미안한데 조용히 좀 말해 줄래? 두통 때문에 머리가 울려서.”
“앗. 죄송합니다!”
그 병사의 소리를 듣고 다른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영준아! 괜찮냐?”
“아니. 죽을 거 같은데.”
“멀쩡한 모양이군. 다행이다.”
엄살은 안 통하는구만.
“민재 형. 내가 쓰러지고 어떻게 된 거야?”
“네 덕분에 괴물들의 추격은 이미 대부분 떨쳐 낸 상태였으니. 그 후에는 다시 넓은 장소로 나가서 추가로 따라붙는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어마어마하게 몰려왔을 텐데.”
“산맥에서의 싸움에 비하면 편했지.”
그 외에도 민재 형의 보고가 이어졌다.
부상자는 몇 명이고, 차량 몇 대가 전복되었다느니 하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피해가 그렇게 크진 않은 모양.
“다 네 덕이다.”
“난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는데 무슨.”
“보고는 여기까지다. 당장은 안전하니, 편히 쉬어 두도록 해.”
“예입.”
그렇게 보고를 마친 민재 형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
민재 형과 같이 방에 들어왔던 병사들은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뭐지?’
쟤네는 왜 저러고 있는 건가 싶을 때쯤.
병사들 사이에서 한 명이 나오더니 입술을 우물쭈물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냐?”
“그게…….”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이는 병사.
“죄송합니다!”
녀석이 크게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