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관사 (1)
“죄송합니다!”
크게 소리치며 고개를 숙이는 녀석.
뒤에 서 있는 병사들도 녀석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얘들 나 몰래 사고라도 쳤나?
영문을 몰라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고개를 숙인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 신 병장님이 트레일러에 들어가 있으실 때…….”
“어어.”
“저희들. 신 병장님의 험담을 했습니다.”
아.
무슨 얘긴가 했더니.
“전투식량으로 공헌한 건 알지만, 그래도 전투에서 빠지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투식량의 성능을 생각하면 그 시점에서도 가장 공헌 중이셨는데도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신 병장님이 괴물들이 몰려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 트레일러에 들어가 계셨다는 사실을요.”
개중에서도 마법사로 보이는 병사 한 명이 말을 이었다.
약간 동경이 담긴 눈빛.
“신 병장님이 쓰러지신 거, 마력 고갈 현상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럴 것 같긴 하더라.”
“마력 고갈 현상 자체는 마법사들도 가끔 겪습니다만…… 대부분은 두통이 몰려오는 시점에서 더는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죠. 기절할 때까지 스킬을 사용한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우린 덕분에 산 거나 다름없었는데. 뒤에서 욕이나 하고 있었으니…….”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사과를 드리러 왔습니다.”
왜 이렇게 우르르 몰려 있나 했더니.
트레일러에서 민재 형이 말한, 불만을 가진 병사들이 이 녀석들이었던 모양이었다.
피식.
“뭐 이해한다.”
사실 나라도 그랬을걸?
아무리 실제로 공헌하는 게 크다고 해도, 정작 본인이 보이지 않으면 그렇게 와닿지는 못하는 법이다.
옆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전우들을 두고 혼자 뒤로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안 좋은 감정이 들 만도 하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식들이 선임 뒷담을 까!?”
“으악!”
가장 앞서 나온 병사에게 장난스럽게 헤드락을 걸었다.
뒷담을 한 건 사실이니 이 정도는 당해 줘야지.
“농담이고, 잘한 거야. 인마.”
“예?”
나는 헤드락을 풀어 주면서 말했다.
“사실 어쩌다 보니 길드장이 되어 버리긴 했다만, 나도 내가 그럴 그릇이 되는지 의심스럽거든.”
“아…….”
“니들이 무지성으로 날 찬양하고 그러면 오히려 못 했을 거다.”
진심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단한 놈은 아니거든.
‘얼마 전까지 전역 날만 기다리던 일개 병사가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번 경우엔 전투에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게 맞다.
내가 억울한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남들이 보내는 경계의 시선이 없다면.
어쩌면 나중에는 정말로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길드장이라는 지위에 심취해, 나 혼자 이득을 누리려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유혹이 다가왔을 때 거리낌 없이 뿌리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그러니까. 계속 의심해라.”
“……!”
“저 녀석이 잘하고 있는 건지. 잘못된 판단을 내리려는 건 아닌지. 계속 확인해 줬으면 해.”
그래야만 길드를 더 잘 이끌 수 있다.
그쪽이, 내가 살아남을 확률도 더 높을 테고.
“그래도. 거듭 죄송합니다.”
“아, 이미 용서했다니까? 계속 사과하니까 내가 다 미안해지네.”
장난스럽게 뒷담을 하니 뭐니 했지만.
선임 욕할 수도 있는 거지 뭐.
나 역시 막내일 땐 선임 욕 엄청 했다.
사실 나도 취사병 후임들한테는 욕 좀 먹었을 거야 아마.
‘아. 그러고 보니…….’
신경 쓰이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이왕 병사들이 모여 있으니.
“정말 미안하면. 부탁 하나 하자.”
“부탁 말입니까? 뭐든 말씀해 주십쇼!”
미안하단 말은 상당히 진심이었나 보다.
다행히 꽤 열정적으로 대답하는 녀석들.
“다들 지쳐 있을 텐데 미안하지만. 근처에서 사냥한 몬스터들의 사체를 좀 챙겨 줄 수 있냐?”
내가 신경 쓰이던 부분은 바로 이것.
몬스터의 사체는 곧 자원이다.
고기는 식량이, 가죽은 장비의 재료가 된다.
‘사실 괴물들한테 던져 버린 고기들도 아까워 죽을 것 같은데. 다른 몬스터들도 못 챙기면 억울해서 못 살지.’
사체들이 썩기 전에 신선한 식량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다들 힘든 상태일 테니 미안한 명령이긴 하지만.
“아. 그 얘기였군요. 알겠습니다!”
“사실 이미 전광일 상병님이 몇몇 병사들 데리고 작업 중입니다. 저희도 합류하겠습니다.”
뭐?
“광일이가?”
내가 명령하기도 전에 이미 일을 시작했다는 말.
나는 농가의 낡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슬쩍 밖을 쳐다봤다.
-전 상병님,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세 마리씩 옮기실 필요는…….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나는 할 수 있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저쪽 트레일러가 꽉 찼더라. 빙결 마법사 좀 불러 줄래?
-……옙!
창문 밖에는 괴물들의 사체를 트레일러에 옮기고 있는 전광일 상병.
그를 따르는 몇몇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힘겨운 전투가 끝난 직후다.
다들 기진맥진할 법도 한데.
“저 녀석들.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거야?”
“전광일 상병님은 전투가 정리되자마자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번 전투에선 아무것도 못 하고 신 병장님한테 민폐만 끼친 것 같다면서……. 다른 전사조 병사들도 조장이 혼자 일하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조금만 쉬고 바로 합류한 것 같습니다.”
괴물의 사체를 확보하는 건 확실히 필요한 일이긴 하다만.
힘든 와중에 저렇게 직접 나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긴, 저 녀석은 저런 놈이었지.’
괜히 시설반의 에이스 출신이 아니다.
부대에 있을 적에도 힘든 일을 나서서 하던 녀석.
“그럼 저희도 합류하러 가 보겠습니다.”
“어어. 수고해 줘.”
“옙. 편히 쉬십쇼, 충성!”
내가 정리를 부탁한 병사들도 곧 밖으로 나가 광일이를 돕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한테는 나중에 뭐라도 더 챙겨 줘야겠네.’
마음 같아선 당장 도와주고 싶긴 하다만.
지금은 솔직히 일어나 있는 것도 버겁다.
한숨 더 자고 나서 생각해야지.
* * *
[천문관]으로 각성한 박태준 병장은, 우리에게 서쪽으로 향하길 권했다.
참고로 이유는 본인도 모른단다.
점괘에 따르면 운이 더 몰려 있다던가?
운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만.
서쪽을 선택하는 이점은 확실하다.
‘더 넓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마력 고갈로 인해 골골대며 한숨 더 자고 난 뒤.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된 나는 농가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된 거야?”
“글쎄요?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어딘가로 피신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흐음.”
가끔 대민 지원으로 내려오던 농가.
주인 부부가 안 보이는 건 조금 꺼림칙하긴 하다.
그래도 하룻밤 쉴 장소가 되어 줬으니 감사할 일인가.
생각을 마친 나는 주변의 풍경을 훑었다.
부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나오는 농가기도 하고, 대민 지원으로 올 때도 있었고 하다 보니.
이 근처의 풍경 자체가 눈에 익은 편이었다.
“저쪽으로 가면 번화가 쪽으로 갈 수 있고. 사격장으로 갈 때는 저쪽이었던가?”
“맞습니다.”
빠삭하다고 까진 말 못 해도 어느 정도 익숙한 장소였다.
서쪽으로 내려왔을 때 이점은 이 부분이겠지.
나는 잠시 부대원들을 뒤로 한 채 근처의 논밭으로 향했다.
꽤나 넓은 농지.
이 정도라면, 어쩌면.
[소환에 필요한 공간이 부족합니다.]
“쯧.”
나로서는 어이가 없어지는 결과였다.
‘기껏 얻은 아이템이 너무 커서 못 쓴다는 게 말이 되냐고.’
[기동요새 비마나]
처음에는 거대한 전차쯤 되겠거니 생각했다.
우리 부대의 연병장에서도 소환하지 못했을 때는, 이름 그대로 요새 규모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
하지만.
‘그 이상인 거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게임의 기본적인 원칙이란 게 있다.
사용하는 데 드는 난이도가 높다면, 그만큼 성능은 더 뛰어나다는 것.
이 정도로 사용하기 힘든 물건이라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강력할지.
‘뭐. 지금 상태로 봐선 한참 나중 일일 것 같다만.’
잠시 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전기는 끊겼으니 괜찮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맡겨 주십쇼! 말씀드렸잖습니까? 제 특기가 나무 타기임다.”
나를 포함한 일단의 병사들은 농가 근처의 전봇대 근처에 몰려 있었다.
“읏차.”
병사 중 한 명이 한 손에 망원경을 든 채 전봇대에 매달렸다.
저 녀석.
각성한 직업이 도적이라던가.
원래도 몸이 날랜 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무타기가 특기라더니 기어코 전봇대를 기어올라 꼭대기에 걸터앉는 녀석.
“어디 보자.”
전봇대 꼭대기에 걸터앉은 그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어때!”
“뭐 좀 보이냐!”
“어…….”
밑에서 지켜보던 나와 병사들이 소리쳤다.
그러나 대답 없이 말꼬리를 흐리는 녀석.
잠시 뒤.
녀석이 아래쪽을 보고 소리쳤다.
“신 병장님!”
“왜!”
“우리! 저기로 들어가는 겁니까!?”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왜!”
“만약 그렇다면! 반대하고 싶어서요!”
“뭐?”
스르륵.
전봇대 기둥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온 병사.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것 같기도 하다.
“반대하고 싶다니.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임다.”
진저리를 치며 말하는 녀석.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냥 자살행위일 것 같슴다.”
자신이 본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하는 녀석.
직접 보지 못하고 말로 전달받을 뿐인 우리로서는 정확히 상상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심각하군.”
“우리가 외출 나가던 인제군. 완전 인외마경이 다 되어 버렸나 봅니다.”
산맥을 타고 서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인제군이다.
이상아 조장을 비롯해 우리 부대에 합류한 생존자들이 대부분 인제군 출신이다.
부대원들의 외출 시 위수 지역이기도 한 곳.
그곳은 지금 반쯤 지옥으로 변한 상태였다.
“음. 생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렇다고 듣긴 했지.”
“저도 나름 예상은 하고 봤습니다만. 상상한 것보다 심하던데요.”
기본적으로 괴물들은 인간을 먹잇감으로 본다.
그리고 가장 많은 먹잇감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도시.
아마도 괴물들에겐 공짜 뷔페쯤으로 보이겠지.
그렇게 모여 있는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해 수많은 괴물이 몰리고.
그 괴물들로 인해 발생한 소란이, 더 많은 괴물을 불러오고.
괴물들에게 죽은 인간들은 좀비가 되어 일어난다.
멀쩡한 도시가 지옥이 되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좀…….”
“그야. 불가능하겠지.”
100명에 가까운 각성자들.
우리들도 꽤 강력한 전력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시가전은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
누군가는 현대의 공성전과 비교하기도 한다.
진입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도시의 건물들은 우리의 시야와 화력을 제한한다.
게다가 도시 전체에 괴물과 좀비가 넘쳐 나는 상황.
건물 하나하나가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경계 대상이 되겠지.
“좀 더 전력을 키운 뒤라면 모를까. 부상자들의 치료가 끝나지도 않은 지금은 도시로 진입은 꿈도 못 꿔. 지금도 힐러 둘이서 한계까지 커버하고 있는 건데, 여기서 부상자가 더 늘면 기어코 사망자가 나올 거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병사의 질문에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으니. 굳이 이동해야 한다면…….’
신경 쓰이는 장소가 한 곳 있다.
“관사로 가 보자.”
“관사, 말입니까.”
인제군의 외곽 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부대의 관사가 있다.
우리 부대는 차를 타고 이동해도 몇 시간이 걸리는 1급 격오지 부대다.
부대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그렇다 쳐도 출퇴근하는 간부들에겐 지나치게 사회와 격리된 장소.
그런 간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관사.
BOQ라고도 부르는 장소다.
사실 간부만 이용하는 곳은 아니고.
우리 부대원들도 휴가 전후로 관사의 병사 휴게실에 들러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에 휴가를 떠나거나, 복귀하는 게 기본.
그럴 때마다 부대원들은 번화가와 동떨어진 위치에 불만이 많았다.
‘무슨 관사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냐.’
‘웬 허허벌판에 건물만 떡하니 있는 게 뭐냐.’
등의 이유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아.”
“과연. 그런 이유군요.”
“위험한 번화가와 동떨어진 것도 좋고. 허허벌판에 건물만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유리한 지형이니.”
지상에 내려온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활동을 위한 거점 확보.
관사라면, 그럭저럭 괜찮은 거점이 되어 줄 수 있겠지.
“그러면, 관사로 가는 길을 알아보겠습니다.”
“운전병들은 관사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잖아. 아는 길은 다 불라고 그래.”
그렇게 부대의 다음 행선지는 관사로 결정됐다.
관사까지 가는 루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대원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관사가 좋은 거점인 건 맞지만.’
사실.
관사로 행선지를 결정한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병사들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몇몇 이들은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앞서 말했듯.
관사는 휴가 전후의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머무르던 장소.
‘그 사람들은 멸망의 날에 관사에 있었을 터.’
같이 괴물과 싸우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같은 부대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