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관사 (2)
“이번엔 분대를 짜서 행동한다.”
관사로 향할 때는 모든 부대원을 이끌고 가지는 않기로 했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 같이 움직이는 건 힘들다는 판단.
“길드 메시지가 가능한 각 조장이 10명씩의 부대원을 이끌고 이동한다.”
“가급적 고레벨 병사들 위주로 편성을 해야겠군.”
“분대는, 세 개면 되겠지.”
“세 분대?”
내 말에 조장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서수혁 상병.”
“예. 상병, 서수혁.”
“너는 사수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어다오.”
“……음.”
명령을 들은 서수혁 상병은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소음 때문입니까.”
“아쉽지만, 그래.”
현시점에서 우리 부대 최고의 화력은 사수들의 총알이다.
사수들의 총알은 마법사들과 비교해도 더 강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총알이 거의 다 고갈되었어.’
그들의 총알은 아끼고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전투에 포함시키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다.
또한 총성으로 인해 오히려 적들을 끌어모을 수가 있다.
마법사들과 달리, 사수들의 총기는 화력을 조절해 소음을 줄일 수도 없으니.
탁 트인 장소에서의 방어 임무라면 역할을 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임무에서는 걸맞지 않다.
내 대답을 들은 서수혁 상병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생존자들을 지키면서 대기해야 할 테니. 그런 임무에는 제가 제격이겠죠.”
“이해해 줘서 고맙다.”
“고마워할 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게 효율적이었을 뿐이니. 잘 다녀오십쇼.”
다행히 서수혁 상병도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전투에서 빠진다는 것에 안도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저 그게 합리적이니 불만 없다는 깔끔한 태도.
‘내가 명령만 합리적으로 내리면 잘 따라 준다는 거니까. 편하긴 하네.’
어찌 됐든 그렇게 결정이 났으니.
나와 이민재 병장, 그리고 전광일 상병.
이렇게 3명은, 각자의 분대를 만들었다.
“저는 이쪽에 끼는 게 맞겠네요.”
또 한 명의 조장.
이상아의 경우에는, 이번에는 내 조에 포함되어 활동하기로 했다.
조장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부대에 합류한 기간이 짧아 부대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형성되지 않은 타이밍.
지휘에는 걸맞지 않다.
‘대신. 우리 부대에 몇 안 되는 멸망한 도시에서 생존해 온 사람이지.’
그녀의 강점은 지휘가 아닌 지상에서의 생존 능력.
어쩌면 우리 부대의 그 누구보다도 그녀 쪽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 생존지식과 노하우를 썩힐 수야 있나.’
내 조에 포함된 이상아 조장 외에도.
이민재 병장, 전광일 상병의 조에도 생존자 출신이 한 명씩 포함되었다.
“범죄자들을 믿어도 되는지…….”
“지금은 개과천선 시켰으니까 한 번만 믿어 봐. 니들도 사고 치지 말고.”
“헤헤, 맡겨만 주십쇼.”
“일 끝나고 간식만 만들어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죠.”
지금은 ‘영구 막내’가 되어 버린 범죄자 출신 녀석들.
김 중위와 같은 조치를 한 덕에 나에 대한 충성심은 최대치다.
이상아와 마찬가지로 지상의 정보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그 생존 지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겠지.
* * *
“그럼. 먼저 가 있으마.”
“관사 근처에서 만납시다!”
각자의 분대 구성이 끝나고, 필요한 물자들 점검이 끝난 뒤.
이민재 병장과 전광일 상병의 분대가 먼저 출발했다.
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이면 지나치게 눈에 띄니까.
각기 다른 경로로 이동해, 관사 앞에서 만날 계획.
“우리도 슬슬 출발하자.”
다른 두 분대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우리 분대 역시 이동을 개시했다.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낡은 샛길.
군장을 멘 군인들이 기척을 숨기고 조용한 행군을 시작했다.
관사가 비교적 가깝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의 이야기다.
걸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걷기만 하기도 뭐 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내 뒤를 걷고 있는 이상아에게 말을 걸었다.
“이상아 조장.”
“네?”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로는, 생존자들은 주로 도시에서 활동했다고 한 것 같은데.”
아까 병사의 입에서 나온 도시의 풍경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의문.
“어떻게. 아니, 왜 거기서 활동한 거지?”
생존자들은 주로 도시 근처에서 활동했다.
저런 도시에서 어떻게.
왜?
“굳이 말하면 선택지가 없었던 거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상아.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던 장소에 식량이 많더라구요.”
“흠.”
“괴물이나 좀비도 그렇지만. 굶주림도 만만치 않게 무섭거든요.”
식량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있는 곳에 모여 있기 마련이다.
문명이 무너져 버린 사회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저 마경 같은 도시에서 생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는 것.
“부대에 합류하고 굶은 날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전까진 식량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목숨을 걸어야 했거든요. 사실 굶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저런 도시에서 어떻게 돌아다니고, 식량을 구한 거야?”
“군단장님들은 저 빼곡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화력을 제한하는 페널티라고 말했지만, 저희한테는 아니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슥 훑으며 말했다.
“이렇게 뻥 뚫려 있는 개활지보다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이 많은 도시가 나아요.”
“왜지?”
“숨어 다니면서 활동할 수도 있고. 상대할 수 없는 괴물에게 발각당하더라도 건물들을 장애물 삼아서 도망칠 변수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개활지에서는 괴물의 추격을 떨쳐 내지 못해 죽을 뿐이겠죠.”
과연.
우리에겐 페널티로 작용하는 환경이 생존자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장점이라는 건가.
그렇다는 건.
“아직도 도시 안에 사람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으려나?”
“아마도요? 저 때도 다른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일은 꽤 있었으니까요.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가 지상에 내려오길 결정한 이유는 지상에서 물자를 확보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함.
이상아의 그룹이 우리 부대에 합류한 것처럼 언젠가는 생존자들을 통해 부대를 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생존자들을 합류시키면 저 범죄자 같은 이들이 섞여 들어올 수도 있고.
뭣보다 생존자들을 찾아 저 도시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있는 일.
‘머리가 아프구만.’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팍!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뒤에서 걷고 있던 이상아.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쉿, 조용히.”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나는 목소리를 죽인 채, 슬쩍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주변 부대원들 역시 주변을 살피고 있으나 보이는 건 없는 모양.
난 의아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리세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대체 무슨.”
“보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해요. 집중해 보세요. 들리는 게 있을 테니까.”
들어야 한다고?
나는 그녀의 말대로, 숨을 죽이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 있었다.
커어…… 커어…….
‘거친 숨소리, 인가?’
병사들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상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좀비.’
그녀는 우리에게 가만있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뒤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커다란 재봉 가위가 들려 있었다.
커어…….
아무것도 없는 주변에 작게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이상아.
그녀가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작은 하수도였다.
일반적으로 도로 옆에 나 있는 평범한 하수도.
그런데 가려진 하수구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 순간.
카악-!
짐승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서걱.
동시에, 이상아의 재봉 가위가 움직였다.
그녀의 가위질에, 울려 퍼지려던 괴성은 단말마에 그치고 말았다.
“됐어요.”
스윽, 하고 식은땀을 닦으며 말하는 이상아.
익숙한 일을 끝낸 듯 헝겊을 꺼내 가위에 묻은 피를 닦는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무슨 일이었던 거야?”
그녀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일일지 모르나 우리에겐 아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음. 좀비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했으니,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이상아는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좀비는 괴물에 비해 약해요. 잘 쳐줘 봐야 성인 남성 수준? 저도 좀비를 잡고 각성했을 정도니까요.”
설명을 이어 가던 그녀는, 그녀가 가위를 박아 넣었던 하수도 블록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좀비를 결코 무시하지 못해요.”
끼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들어 올려지는 하수도 블록.
그 안에는.
흐르는 물에 살이 퉁퉁 불어 오른 시체 한 구가 들어 있었다.
“이런 점 때문이죠.”
“이건 대체…….”
“인간의 생활습관이 남아 있는 좀비들도 많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좀비들이 많아요.”
도로 외곽의 하수도에 기어들어 가 있는 좀비라니.
확실히 예상하기 힘들긴 하다.
“괴물들과 비교해도 더 질이 나쁜 부분도 있을 정도죠.”
“만약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적대적이에요. 운 좋게 멀리 돌아서 갔으면 몰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이 위에 발을 올린 순간, 공격당했을걸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말이 좀비지 이건.
‘부비트랩 같은 거잖아?’
부대원들이 각성을 하며 강해졌다고 해도, 발밑에서부터 공격해 오는 걸 간파하긴 힘들겠지.
“이 녀석들의 위험성은 그게 다가 아니에요. 좀비들한테 한 번이라도 물리는 순간, 물린 부위를 중심으로 몸이 천천히 썩어 가요.”
“…….”
“그런 사람들은 종국에는 온몸이 썩은 상태로 사망하고, 또 다른 좀비가 되는 거죠.”
“물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물린 부위를 절단해 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신체 일부를 잃는다는 건, 죽음하고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마지막 말을 할 때 유독 표정이 어두워지는 그녀.
그렇게 신체를 절단한 동료라도 있었던 걸까.
“그러면 대처법은 없는 건가? 이 녀석처럼 철저하게 숨어 있어서야 알아챌 방법이…….”
“방금 들으셨잖아요? 이 녀석들 숨소리.”
아.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숨소리가 거칠어요. 각성자들의 청력으로 집중하면, 조용한 환경에서는 충분히 간파할 수 있죠.”
“과연.”
유일한 방법은 청각이라.
어이가 없지만, 방법이 있기라도 한 게 어딘가.
아무것도 모르고 기습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조심하세요. 차라리 괴물에게 죽는 게 낫지. 좀비들에게 물린 사람들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하거든요.”
새삼 산 위에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던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체감된다.
부대를 습격한 리자드들도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강력한 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죽은 부대원들이 저런 좀비로 변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좀비들이 까다롭다고 고민만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뭔가 대책을 마련하긴 해야 할 터.
‘흠.’
슬쩍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메고 있는 군장 가방을 만졌다.
묵직하고.
약간은 서늘한 감촉.
‘이게 그 대책이 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좀비와의 조우가 끝난 뒤.
우리는 다시금 관사를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중간에 비슷하게 숨어 있는 좀비와 조우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부대원들도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카아…….
서걱.
악.
“그래도 집중하니 들리긴 하는군.”
“잘하셨어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저기 관사가 보입니다!”
우리 부대의 관사에 도착했다.
* * *
“영준이 왔냐.”
“뭐야, 내가 꼴찌야?”
“저희도 방금 도착한 참입니다.”
각기 다른 루트를 통해 이동한 세 분대.
우리는 관사 앞의 공터에서 합류했다.
“안쪽은 어떤 것 같아?”
“아직은 조용하다.”
민재 형의 대답을 들은 나는 눈앞의 관사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관사는 기본적으로 간부들을 위한 거주 공간이다.
우리 부대 간부 약 100여 명 중 절반 이상인 60여 명이 관사에서 생활한다.
특히 우리 부대는 격오지 부대.
부대에서 나가고 들어가는 것이 힘든 위치에 있다 보니 편의를 위해 휴가 전후의 병사들은 관사에서 대기한다.
그 병사들까지 생각한다면.
주말이라 관사에 있지 않을 걸 고려해도 꽤 많은 이들이 관사에 머무르고 있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모두 안전하게 피신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이미 각오는 해 둔 상태.
나는 민재 형과 광일이를 보며 물었다.
“좀비에 대한 거 들었지?”
“예. 오는 길에 몇 마리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막내한테 대충은 들었다.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
“좋아.”
다른 부대원들도 좀비의 상대법은 알고 있는 듯하니.
오래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지.
나는 부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진입하자.”
“……예!”
전투에 앞서 다소 긴장한 병사들.
그들을 이끌고 가장 외곽의 관사 건물에 접근한다.
“연다. 적들의 위치는 소리로 감지하는 거 잊지 말고.”
“예!”
끼이익…….
관사의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한 순간.
커어어…….
주변에서 익숙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였으나.
문제는.
커어어…….
카학…….
크흐. 칵…….
“……하, 방음 엄청 안 되는구만.”
들려오는 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
부대원들이 머무르는 관사 건물.
그 안은 수십의 거친 숨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