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튀기면 다 맛있어. (2)
[혼합된 마력의 동물성 기름]
기름.
현대의 주방에서 사용하는 것은 주로 식물성 기름이다.
하지만 과거에서는 오히려 동물성 기름을 자주 썼다고 한다.
특히 돼지기름은 라드유라고 해서, 여전히 중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에 하나.
그리고 그 동물성 기름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비계를 녹여서 기름을 쭉쭉 뽑아내면 되거든.
‘사실 나도 자세하게는 모르고 있던 거라. 잘될지 어떨지 긴가민가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잘된 것 같다.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어진다고 하던가.
그만큼 요리에 있어서 치트키로 여겨지는 재료.
내 직업은 요리사.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요리를 통해 해결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요리로 해답을 찾아야 할 때.
기름이 있어 주면 꽤 든든하단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이 정도인가.”
식사를 마친 다른 병사들도 각자의 준비를 하고 있을 터.
그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자재 확보를 위한 임무가 시작될 것이다.
* * *
“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시간.
조장들 사이에 낀 이공우 상병이 쭈뼛거리며 군사 지도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 보이십니까?”
“어. 관사에서도 가까운 곳이네.”
“맞습니다. 여기에 꽤 큰 철물 창고가 있습니다.”
“오호.”
대책 없이 자재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었던 듯.
이공우 상병은 자재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도 이미 파악해 둔 모양이었다.
“이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러게요. 현지인인 저도 이런 곳에 창고가 있다는 건 몰랐는데.”
“크흠. 가끔 부대에서 급하게 자재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면 지상에 내려가서 사 올 때가 있었거든요. 군내의 작은 철물점보다 이쪽이 더 가깝기도 해서, 여기를 자주 애용했었죠.”
과연.
취사병인 나도 가끔 모자란 조미료 등이 있으면 운전병들에게 부탁해 사 오곤 했다.
공병들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던 거겠지.
“꽤 넓은 창고라 어지간한 자재들은 다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괴물들이 나타난 날은 주말이었으니, 안에 좀비가 있을 가능성도 적을 테구요.”
관사와 가까운 위치.
번화가와 거리가 먼 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적을 터.
공략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짜식. 생각 많이 했네.”
“하, 하하.”
멋쩍게 웃는 이공우 상병.
이 일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전 분대원, 준비 완료다.”
이번 작전에는 이전에 관사 공략에 참여한 인원이 그대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오냐.”
차이점이 있다면 분대마다 공병이 한 명씩 끼었다는 것.
그리고.
부르릉…….
공병 한 명이 탑승한 차량이 추가되었다는 것.
“차량이라.”
“역시 걱정되는군요.”
“걱정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어쩔 수 없지.”
괴물들을 상대로는 무력하게 뜯겨 나가는 차량.
그런 주제에 배기음은 커서 어그로는 제대로 끈다.
본래라면 길을 어느 정도 안정화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물자를 옮기는 임무니까.”
전 분대원들이 자재를 양손 가득 들고 옮길 게 아니고서야.
확보한 자재를 옮기기 위해선 차량이 필수적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차량 소음은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예.”
“가자.”
분대원들은 이동을 개시했다.
나름대로 다들 소리를 죽이고 기척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만.
커다란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일.
“70도 방향에서, 옵니다.”
도처에 넘쳐 나는 괴물들.
그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전투 소음도 자제해. 김 중위님.”
“어어. 다들 전투태세로.”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괴물들과의 짧은 교전이 몇 차례씩 이어졌다.
“크윽……!”
“부상자는 뒤로 빠져!”
“빈 진형은 내가 메운다.”
최대한 전투의 소음을 줄인 덕에.
많은 무리에게 포위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쪽도 큰 소리를 동반하는 마법같은건 사용을 자제해야 하니.’
부상자도 조금씩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전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좀비하고 괴물들은 서로를 공격하진 않는건가.’
심지어 괴물들 끼리는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좀비는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마치.
‘독이 든 먹이를 피하는 것 처럼.’
* * *
“저기, 창고가 보입니다!”
병사 중 한 명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소리에 정면을 바라본 나는 진심으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진짜 큰데?”
엄청나게 거대한 창고 건물들.
주변에서 가장 큰 철물 창고라더니.
과연 그 말대로, 동네 철물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사건이 터진 날은 주말이었으니 출근한 직원들도 없을 거고. 안쪽은 비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좀비가 튀어나올 걱정은 조금은 덜하다고 봐도 되겠지.
“공병들은 필요한 물자들을 병사들한테 알려주고. 나머지는 공병들 지시 위주로 필요한 자재만 털고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드가자!”
쿠구궁-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창고의 문으로 다가가 커다란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는 않았던 것인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런데.
“……?”
“뭐야, 이거.”
그렇게 열린 창고.
그 안 쪽의 풍경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평범한 철물점이라면.
수없이 많은 선반들과, 그 위에 쌓여있는 철물들이 보이는게 정상이였겠으나.
“지진이라도 났나……?”
선반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우리가 찾으러 온 철물 자재들은 바닥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지진이라도 난건가 싶은 풍경.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만큼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그것뿐.
어떻게든 자재를 챙겨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공병들은 필요한 자재들만 말해 줘. 나머지는 공병들 지시 따라서 자재들을 차량으로 옮긴다.”
“예!”
내 명령에 병사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공병들의 지시에 따라 몇 개의 철판을 주웠을 때였다.
구우우우우웅…….
“……?”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다들 경계해라!”
갑작스러운 현상.
병사들은 물자 수거를 멈추고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얼마 뒤.
찰그락…….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철물 자재들.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다들 조심해!”
몇몇 병사들이 당황하며 중얼거린다.
창고 중앙에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 기운에 닿은 철물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긴 뭐겠어.”
이내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철물들.
“몬스터다.”
어쩐지 일이 좀 쉽게 풀리나 했다.
그럴 리가 없지.
‘강철로 된…… 곰, 인가?’
고오오-
검은 그림자와 철물이 엮여져 만들어진 형태는.
마치 거대한 곰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강철의 짐승.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크기.
그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단 말이지.
“김 중위!”
“전원, 전투태세로!”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김 중위를 부르자 대기 중이던 김 중위가 즉각적으로 버프를 흩뿌린다.
모든 병사가 우리 길드만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각자의 주머니에서 하나의 육포를 꺼내 입에 무는 병사들.
[음식을 섭취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마력이 담긴 요리입니다. 모든 저항력이-.]
산맥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
여러 버프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욱 큰 상승효과를 불러왔다.
“하하하! 귀여운 철쪼가리로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능력치.
‘용기’가 담긴 요리를 먹음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어쩌다 여기 자리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비켜 줘야겠다! 끼요오옷!”
버프를 몸에 두른 병사 하나가 기세등등하게 괴물을 향해 달려든다.
거대한 슬레지해머를 든 전사조 각성자.
바위도 쉽게 부수는 그 일격을 거대한 괴물을 향해 내리쳤다.
그런데.
깡-
울려 퍼지는 소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부서지는 소리라기보단 튕겨 나가는 듯한 소리.
“어?”
괴물을 짓이길 것이라 기대했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반대로.
강하게 휘두른 만큼, 강하게 튕겨져 나오는 슬레지해머.
“이게 무슨- 컥!”
-고오오오!!!
당황하며 중얼거리는 병사를 철물로 된 거대한 앞발이 후려쳤다.
쿵!
“한일아!”
얼마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창고 벽까지 날아가 박히는 병사.
반면 저 괴물은 아무런 피해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일이가 당했다!”
“다들 조심해! 생각보다 강하다!”
먼저 공격을 한 병사가 곧바로 당한 상황.
나머지 병사들은 최대한 침착하게 수비 진형으로 진형을 바꾸었다.
선제공격보다는 수비하며 적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진형.
괴물을 둘러싼 병사들이 교전을 개시했다.
“크어어어어어!”
쿠웅!
“큭!”
거대한 앞발이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풍압만으로도 몸이 살짝 뜰 뻔했을 정도.
‘미친.’
이 괴물.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잖아.
“그렇다고 공략법이 없는 건 아니지.”
방패를 든 병사들이 주도하며 괴물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사이.
살짝 뒤로 빠진 나는 들고 다니던 전투식량 주머니를 열었다.
[하급 요리사의 나른한 감정의 붉은 캉갈 육포]
내가 꺼낸 전투식량이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나른함’.
‘산맥을 내려오며 이 효과는 톡톡히 봤지.’
살기에 가득 차 있던 몬스터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누그러드는 기적.
아무리 강한 괴물이라고 해도.
기세를 잃어버린다면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육포를 던졌다.
내 예상대로라면.
저 녀석 또한, 눈 앞의 더 맛있는 먹잇감에 집중할-
탁.
‘어?’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요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앞발을 휘둘러 요리를 쳐 내는 녀석.
-고오오오오오!!!
철갑을 두른 괴물은 내 요리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병사들을 향해 발을 휘둘러 댔다.
그동안.
내가 만든 요리는 창고 구석에 버려진 채.
전투로 인해 날리는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뭐야.”
내 요리를 쳐 낸 괴물.
그걸 보고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 따위가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육포를 보며 느낀 것은.
조금은 다른 감정.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내가 만든 요리를…… 버려?’
분노.
자존심이 상했다.
“이 새끼가…….”
빠직.
머리에 혈류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맘 같아선 칼을 뽑아 들고 저 녀석을 활어회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신 병장님!”
“저 녀석, 너무 단단합니다!”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강철 곰과 고군분투하며 싸우고 있는 부대원들이 보인다.
이쪽도 나름 장비와 요리, 김 중위의 버프 등으로 무장한 상태.
제대로 된 수비 진형을 취한 뒤에는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워어어어어어어!!!
“쯧.”
그건 괴성을 지르는 괴물 역시 마찬가지.
몸을 두른 철갑에는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이었다.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이대로 전투를 이어 가 봐야 변할 건 없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
나는 김 중위를 향해 소리쳤다.
“일단 후퇴한다! 김 중위님!”
“뒤를 공격당하지 않게 조금씩 후퇴해라!”
[지휘 명령 - 퇴각이 울려 퍼집니다.]
[효과 대상자들의 전투 이탈 행위에 보너스가 부가됩니다.]
“다들 후퇴하랍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뒤로 빠져!”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원들은 뒤를 공격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하게 후퇴를 개시했다.
김 중위의 버프 덕분에 후퇴는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혹시라도 녀석이 창고 밖까지 추격해 온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으나.
“……?”
“쫓아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녀석은 창고를 벗어나 도망치는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지?”
“글쎄다. 영역을 확실하게 지키는 부류의 괴물인 건지도.”
어찌 됐든 우리의 안전은 확보된 셈.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내 요리를 거부하다니. 그딴 식으로 쳐 내 버리다니.’
나는 기껏해야 취사병.
지금까지 요리에 자부심을 느낀 적은 딱히 없었다.
병사들이 요리를 남기는 모습을 봐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뿐이었다만.
‘후회할 거다.’
이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