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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40화 (40/227)

40화 마트의 귀신 (1)

“그 위치를 알려 드리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당돌하게 거래를 걸어오는 그녀.

심지어 그 거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당장 식재료나 의약품 등이 모자란 건 사실이니까.

‘아까 내가 한 말을 기억해 뒀던 건가.’

고기만 많고 다른 물건들이 없다는 얘기.

애라고 생각해 가볍게 흘린 얘기를 기억해둔 모양.

그때 말하지 않고 숨겨 놓다가 이제 와서 말한 이유도 알 만하다.

‘우리가 자신들을 보호해 줄지 어떨지, 간을 보고 있던 거겠지.’

그러다가 우리가 떠나려던 모습을 보였으니.

그때 아껴뒀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뭐 그런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영악하기 그지없다.

애라고 생각해서 봐줬다간 오히려 큰일 날 수도.

나도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일단 들어나 보자. 네가 말하는 조건은?”

“저희를 보호해 주세요.”

뭐.

그거 말곤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만.

“네 쪽이 제시한 조건은 확실히 매력적이긴 한데, 이미 말했다시피 힘들다. 애초에…… 네 말을 온전히 믿어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믿지 못하시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정말-.”

“아, 그것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너희를 위한 부분도 있지.”

그녀의 말을 끊은 나는 설득에 들어갔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우리는 주로 숨어서 활동하는 생존자들과는 단체의 성격이 달라.”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는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게 목표거든.”

당장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목적인 생존자들과 달리.

우리는 그 너머를 목표로 삼고 있다.

“……세력을요?”

“뭐, 당장은 좀 고생하고 있지만.”

바뀌어 버린 세상.

그 세상이 제시하는 법칙은 [점령전]이다.

세력을 키우고, 땅을 점령하라.

그게 이 게임의 룰인 이상.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세력을 키워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

“그 과정에서 괴물이나 좀비와의 교전도 자주 일어나겠지.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만큼 적들의 시선에 노출되기도 쉽다는 뜻이니까.”

당장 지금 거점으로 삼고 있는 관사만 해도 그렇다.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지지는 않은 건물.

언제고 괴물들의 눈에 띄어 전장으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를 따라오는 것보다 여기 숨어 있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안전이 확보된 뒤에 다시 합류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받아 줄 수도 있어. 혹시 넘겨준 식량이 부족한 것 같다면 약간 더 얹어 줄 수도 있고.”

거래하려면 일단 조건을 명확하게 밝혀야 하지 않겠냐.

우리를 따라오는 게 여기 숨어 지내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힘들다.

그 부분을 알려 주려 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싫어요.”

대답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쪽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고, 나중에 우리 상황이 안정되면 그때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네.”

“흠.”

꽤 확고한 생각인 듯.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이유라도 들어 보자. 그렇게까지 우리한테 합류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지?”

“그건…….”

단순히 안전한 세력에 합류하고 싶다던가.

그런 이유라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훌륭한 선택지는 아닐 터.

그걸 설명해 줬는데도 굽히지 않는 걸 보면 조금 의아했다.

내 질문을 들은 이수연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답했다.

“……끔찍했거든요.”

“뭐?”

“이 안에서 숨어 지내는 거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으나.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꽤 어두운 것이었다.

“아세요? 혹시라도 밖에서 우리를 눈치챌까 봐 사방의 문을 닫아 놓고, 인기척을 들킬까 무서워 움직이지도 못해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러고 있다 보면 귀가 밝아지더라고요.”

그때를 떠올리는 듯.

아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고민했어요. 저게 무슨 소리일까. 괴물일까? 저 괴물이 우리를 발견한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하구요.”

“…….”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잠들다가도,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오면 저절로 눈이 떠져요. 숨을 죽이고, 수혁이랑 같이 벌벌 떨면서 소리가 멀어지기만을 빌어야 했죠.”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숨어지내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정도만 생각했지.

‘새삼 깨닫게 되는구만…….’

부대에 있던 우리는.

지상의 생존자들에 비하면 사정이 좋았던 것이라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상하시는 것 그 이상으로 끔찍한 매일이었어요. 단 하루도 자살 생각이 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이런 날을 더 지내게 된다면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죽는 게 빠를 거예요.”

“흠.”

“훗날 전투에 휘말려 죽는다고 해도, 아저씨들을 따라가는 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저쪽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더 이상 설득해도 의미는 없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이쪽이다.

애들 쪽에서 합류하고 싶다고 해도 우리가 거절하면 그만인 일.

문제는 저쪽에서 걸어온 조건.

“물건들이 있는 장소를 안다라.”

그것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나는 슬쩍 뒤를 돌아 이상아 조장을 바라보았다.

“…….”

그녀 역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야, 아무리 작은 동네라고 해도 마트나 창고 같은 게 하나뿐만은 아니니까요. 여기 말고도 다른 장소들도 많긴 하죠. 수연이가 말하는 장소가 어딘지 짐작도 안 갈 정도로.”

“하지만 이상아 조장은 그 많은 장소를 거르고 이 마트로 오자고 했지.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던 것 아닌가?”

“그건 그렇죠? 이 마트는 그나마 작고 외진 곳에 있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거든요. 다른 곳들은 여기보다 더 유명하고 아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즉.

“대부분은 이미 생존자들이 거쳐 갔을 확률이 높으니, 그렇다면 차라리…….”

“그나마 물건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은 곳으로 안내하겠다?”

“그런 셈이죠.”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겠지.

애초에 이 마트도 공략이 어렵거나 하는 건 없었다.

이미 사람들이 거쳐 갔기에 물자가 없던 게 문제.

“미안하지만 그렇다는군. 네가 안다는 그곳도 이미 누군가가 다녀갔을 확률이 높을 테니, 우리한테는 그다지 가치가-.”

“아뇨. 아니에요.”

고개를 저으며 반박하는 소녀.

“거기 물건들은 온전히 남아 있어요.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대부분은 남아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직접 봤으니까요.”

“뭐?”

의외의 말에 이상아 조장과 내가 놀라는 사이.

소녀가 말을 이었다.

“거기서 어른들이 모두 죽었거든요.”

* * *

수연이 말한 사정을 간단하게 줄이면 이랬다.

“너희 그룹이 물자를 얻기 위해 그곳에 방문했고, 너와 동생을 제외하면 전멸했다?”

“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물건들이 남아 있다는 말의 근거가 되기는 한다.

정말 남아 있는 걸 봤다는 거니까.

‘어린애 둘이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조금 신기하긴 했지.’

처음부터 둘이서 행동한 게 아니었다면 납득이 된다.

생존자 그룹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존해 왔고.

얼마 전, 그들을 잃었다는 얘기니까.

“잠깐.”

그때.

이상아 조장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 그룹에 속해 있다던 사람들, 누구누구인지 알려 줄 수 있니?”

“……? 네. 일단 저희 둘이랑, 리더로는-”

수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다 들은 이상아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들인가?”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구요. 건너 건너서 이름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네요.”

생존자들은 숨어지내야 하는 그 특성상 규모를 키우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마주칠 때마다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들어본 적이 있는 그룹이었던 모양.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거기 리더였던 각성자가 상당히 강한 각성자였다고 들었어요. 그 외에도 각성자가 한 명 더 있었다고.”

“아. 순이 아줌마 얘기가 맞을 거예요. 전사로 각성했던……. 두 번째 각성자는 철이 오빠 얘기일 거예요.”

전사라.

이상아 조장만 해도 꽤 잘 싸우는 편이다만.

결국 그녀의 직업은 나와 마찬가지로 생산직.

순수 전투 직군에는 미치지 못한다.

순수한 전투직인 전사.

그쪽으로 각성한 그 순이라는 여성이 이끌던 그룹은, 이상아가 이끌던 그룹보다 강했을 가능성이 크겠지.

심지어 강한 거로 소문이 있을 정도의 전사.

거기에 각성자는 한 명도 아닌 둘이었다고.

“그런 그룹이 전멸했다는 건가.”

그냥 생존자들의 죽음이라면 모르겠다만.

각성자가 둘이나 포함된 그룹의 전멸은 마냥 경시하기 힘들다.

물론 각성자가 비각성자보다 많은 우리 길드가 그 생존자들과 비교될 정도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 그룹을 전멸시킨 존재가 얼마나 강할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각성자 둘을 썰어 버릴 수 있을 정도.

최대로는 우리 길드조차 쓸어버릴 정도일지도.

철물 창고에서 만났던 괴물, ‘맥’ 역시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다.

그런 수준의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맥은 그나마 뭘 먹여서 정리하기라도 했지.

먹는다는 개념이 없는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리고.

수연의 사연을 들은 나는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한 가지 묻자.”

“네. 뭐든지.”

“그 장소를 우리한테 알려 주겠다는 게 네가 건넨 조건이지.”

“맞아요. 여러분들한테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분명히 있었어요.”

뭐 거기까지만 들으면 꽤 매력적이긴 한데 말이지.

“그런데 그 조건. 정말 우리 이득을 위한 일이냐?”

“네?”

듣자 하니.

두 남매와 그 그룹원들은 꽤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룹원들이 모두 죽어 나가면서 저 둘을 살렸다고 할 정도니.

그런데 그녀가 안내한다는 장소는 그룹이 전멸한 곳.

그렇다면.

“네 복수에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건 아니냐고 묻는 거다.”

“……!”

“잠깐만요. 군단장님?”

내 말을 듣고 당황한 것은 수연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끼어들려는 상아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건 중요한 부분이야. 정보를 주고받는 거래라면 무조건 확인해야 할.”

“……정말 거짓말한 건 하나도 없어요! 거기에 물자들이 쌓여 있다는 얘기도, 가서 보시면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게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동기가 거짓이라면 거래에 응하긴 힘들지.”

수연이 알고 있다는 장소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적어도 각성자 둘을 죽여 버릴 수 있는 괴물이 자리 잡고 있을 장소.

그런 곳에 대한 정보를 굳이 우리에게 넘기려고 한 것.

그룹원들의 복수를 바라는 마음에 위험한 장소로 우리를 몰아넣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어찌 확신할 수 있을까.

내 질문을 들은 수연은 허점을 찔리기라도 한 듯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그녀의 시야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맴돌았다.

“……솔직히 말하면.”

잠시 뒤.

생각을 정리한 듯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수, 수연아?”

“흐음.”

“그만큼 저희한테 잘해 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일이라면.

우리는 이 거래에 응할 수 없다.

오늘 만난 생존자의 복수를 위해 길드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옛날에요.”

“뭐?”

“지금은 아니에요. 복수 따위는 바라지도 않죠.”

“그건 또 의외로군. 왜지? 그냥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말은 아닐 테고.”

“그야.”

옆에 앉아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동생.

수혁에게 시선을 두는 수연.

“수혁이하고 저는, 살아남았으니까요.”

“음?”

“저희를 지키려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죽은 사람들의 복수에 집착하다가 그 사람들이 목숨 바쳐 살린 우리가 죽는다면.”

“…….”

“그건 그 사람들의 행동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드는 일이잖아요. 목숨까지 바친 일을 그렇게 허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나와 눈을 마주친 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 목표는 하나예요. 저하고 수혁이의 생존. 최악의 상황이라도 동생만은 살리는 것. 여기서는 죽더라도 정신병 같은 거로 죽는 게 빠를 테니까요. 그 정보도 어디까지나 거래 조건으로 유용하다 생각해 말했을 뿐이에요. 복수 같은 의도는 없었어요.”

“흐음.”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최우선 목표는 생존.

살아남기라.

“나랑 비슷하네.”

“네?”

다짜고짜 거래를 제안할 때는 너무 당돌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저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좋은…… 동료로 삼기에는 최적의 마인드.

그녀의 말마따나 지나간 것에 집착해서 피해를 보면 본말전도인 셈이니까.

“조건을 하나 바꾸자.”

“뭐, 뭐죠.”

“보호하에 들이는 건 어렵다. 누군가를 보호해 줄 여유 따윈 없거든.”

“그러면 거래에 무슨 의미가-.”

“부대에 합류해라.”

내 제안을 들은 수연은 그게 무슨 의미냐는 표정이었다.

합류와 보호의 차이가 뭐냐 싶겠지.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이상아는 그 의미를 깨달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병이라니……. 꼭 그래야 해요?”

“본인이 강하게 바라고 있기도 하고, 각성만 한다면 어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위험한 전투에서 굴릴 생각도 없고.”

애초에 이상아가 이끌던 생존자 그룹에도 어린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 각성시킬 예정이었으니.

거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큰 손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보호하에 들이는 게 아닌, 각성자로서 부대원이 되는 것.

그 정도라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안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희를 받아주신다는 거겠죠?”

“일단은. 너도 보호만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게 차이겠지만.”

“그런 거라면 상관없어요. 어른들과 함께할 때도 딱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거든요.”

“좋아.”

거래 성립이다.

“그럼 일단, 네가 말한 그 장소에 대한 정보부터 듣자. 아니, 그보다는 어른들을 죽였다는 괴물들에 대한 정보가 먼저인가.”

“아, 그게…….”

“음?”

그룹을 전멸시킨 괴물에 대한 정보를 묻자 망설이는 그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그걸 모르겠어요.”

“모르다니?”

“어른들이 모두 죽어 나가는 걸 눈앞에서 봤지만.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몸에 구멍이 뚫리고 베이면서 사람들이 죽었죠.”

“뭐?”

그녀가 설명하는 내용은.

본 적은 없지만 조금 익숙한 개념을 떠오르게 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나타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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