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탈영병 (1)
의기양양한 채 차량을 타고 관사로 복귀했다.
그러자.
“충성.”
관사를 수비하고 있던 병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오냐. 그동안 관사에는 별일 없었고?”
“예. 그보다. 결과는 어떻게?”
우리는 물자 확보를 위해 작전을 떠났던 것.
관사를 지키던 병사들은 결과가 궁금해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아…….”
“크흠.”
병사들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퍼져 나갔다.
“그. 뭐냐. 작전이 다 쉽게 풀리리란 법 있겠습니까? 다들 너무-.”
“한 번에 다 옮기긴 무리더라고.”
“아쉬워하지 말고- 예?”
피식.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병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뒤로 손을 뻗어 개조된 트럭의 짐칸을 열었다.
끼익.
그러자.
“뭐, 뭐야!”
“이 양은 도대체……!”
실망한 표정들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너무 많아서 끌고 간 차량들로 한 번에 옮기긴 무리더라고. 미안하지만 너네도 내리는 데 고생 좀 해 줘야겠다.”
“그, 그런 의미였습니까?”
최대한 많이 옮기기 위해 그득그득 채워 둔 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사를 지키느라 사정을 모르던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
“이만한 물자들이 전부가 아니라니. 도대체 어떻게…….”
“운이 조금 좋았거든.”
슬쩍 고개를 돌리자.
다른 차량에서 내리고 있는 수연, 수혁 남매가 보였다.
“우와아…….”
“구경은 나중에 시켜 줄 테니까. 일단 들어가자.”
이상아의 손을 잡고 관사 안쪽으로 이동하는 남매.
그러는 와중에도 관사의 모습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사실 이번 작전은 실패하는 게 정상이었다.
물자를 얻고자 방문했던 마트는 이미 다른 생존자들로 인해 거덜 난 상황이었으니까.
본래라면 작전은 실패.
우리는 빈손으로 복귀했어야 했겠지만.
거기서 저 아이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들은 정보 덕에.
‘대박이 났지.’
상당한 양의 식량.
그리고 생필품.
의약품에, 덤으로 담배나 술 같은 기호품까지.
덕분에.
우리 부대의 생활에는 약간 여유가 생겼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미안하지만. 쉬고 있던 애들은 물건 내리는 것 좀 도와줄래?”
“예. 다들 불러오겠습니다!”
“그리고. 조장들은 잠깐 모이자.”
그러니 드디어.
몸집을 키울 때가 왔다.
* * *
관사 건물들 중 한 방.
그곳에 우리 길드의 조장급 인사들이 모였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슬쩍 창문 밖을 쳐다봤다.
“미친, 담배다.”
“아! 담배는 일단 인당 한 갑씩만 가져가시랍니다!”
“한 갑이라도 어디야. 강제 금연하게 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난 담배 안 피우는데.”
“어? 그럼 나한테 주면 안 되냐? 내가 나중에-.”
가져온 물자들을 옮기고, 분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확보한 식재료의 양도 상당해. 기본적인 수준이라지만 의약품도 챙겼고.”
“대충 봐도 한동안은 놀고먹어도 되겠는데요?”
모여 있는 조장들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말마따나.
괴물을 사냥해 얻었던 고기들도 남아 있는 상황.
아무것도 안 해도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식량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럴 때야말로 여유를 부려선 안 돼.”
여유가 생긴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니잖냐.
내 말을 들은 서수혁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여유가 생겼을 뿐, 장기적인 문제는 여전하니 말입니다.”
“응. 여유가 생긴 지금, 오히려 이때를 이용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힘을 키운다는 말씀은?”
“그동안 미뤄 뒀던 일을 할 때가 온 거지.”
내 말을 듣고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서수혁 상병이었다.
기대로 가득 찬, 반짝거리는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 녀석.
“그, 그 말씀은 혹시.”
“그래.”
나 역시 그에 응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각성자를 늘린다.”
“……아. 아아. 그 얘기셨군요.”
그러자.
인상이 급격하게 찌푸려지는 서수혁 상병.
“응?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아닌 게 아닌 표정인데?
내 의문에 대답해 준 것은 전광일 상병이었다.
“큭큭. 수혁이 녀석. 탄약 확보 얘기가 아니라 실망한 겁니다.”
“……조용히 해라.”
“탄약 확보?”
“아, 정말 아닙니다. 그보단 각성자를 늘리는 쪽이 효율이 좋겠죠.”
서수혁 상병은 사수들의 조장.
그리고 우리 부대 최초의 사수 각성자다.
하지만 지금 우리 부대는 탄약이 거의 고갈된 상태.
힘을 기른다는 얘기에, 당연히 총알을 보충하는 쪽을 생각했나 보다.
우리 부대의 화력 핵심을 차지하는 사수들.
그 대부분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란 걸 생각하면 그쪽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맞다만.
당장은 이렇다 할 방법이 없으니까.
반면.
다른 이유로 안색이 어두워진 사람도 있었다.
“후우…….”
이상아 조장이었다.
서수혁 상병의 경우와 달리.
이쪽이 이러는 이유는 알만했다.
“많이 걱정되나?”
“저를 믿고 따라와 줬던 사람들인걸요.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요.”
각성자 늘리기.
누굴 영입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부대에 머무는 생존자들을 각성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생존자들.
그들은 대부분 그녀의 그룹에 속해 있던 이들이니까.
이미 각성자였던 그녀와 범죄자 5인을 제외해도 20여 명.
이만한 인원을 각성시키지 않고 놀려 두고 있던 것 자체가 손해를 보고 있던 일이다.
“후우…… 사고가 없으면 좋겠는데요.”
각성하기 위해선 괴물의 숨통을 직접 끊어야만 한다.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일.
실제로 박태준 병장 같은 경우에는 걷지 못하는 중상을 입기까지 했으니까.
그녀의 걱정도 이해는 갔다.
“걱정 마십쇼. 부대에서는 숱하게 했던 일입니다.”
우려 섞인 표정의 이상아를 향해 전광일 상병이 말했다.
겁먹은 병사들을 닦달할 때와는 꽤 다른 태도.
“처음에는 부대원 중에서도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만, 그동안 우리 병사들도 괴물을 제압하는 노하우가 생겼으니까요.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옙. 믿고 맡겨만 주십쇼. 뭣보다, 신 병장님이 하자고 하신 일 아닙니까.”
어.
거기서 갑자기 내 이름이 왜 나오냐.
“이번에도 보셨죠? 완벽하게 의태한 괴물들……. 암만 봐도 평범해 보이는 냉장고인데 그걸 집어서 공격하라고 명령했을 때! 의심하지 않고 따르니까 웬 은색 슬라임이 딱!”
“그거야. 대단하긴 했죠.”
“그 후에도 평범해 보이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괴물이라고 알려 주셨고 말입니다. 저희는 그냥 신 병장님이 공격하라는 부분으로 공격만 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내 얘기를 하면서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녀석.
“이번에도 비슷할 겁니다. 신 병장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잘될 거라는 거죠.”
듣는 내 입장에선 꽤 어이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그러네요!”
그거에 또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나, 이건?
“광일아. 선임 이름 막 팔기 있냐.”
“헤헤. 전 신 병장님만 믿습니다. 충성 충성.”
“어휴. 말을 말자.”
장난스럽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걱정이 많은 이상아를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이었으니.
‘사실 이런 게 이 녀석의 원래 성격인데 말이지.’
기본적으로 순하고 자상한 녀석.
그런 녀석이 광전사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면…….
솔직히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 순한 녀석에게 몹쓸 짓을 한 건 아닐까 하고.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그런 건 생존이 확실하게 확보된 뒤에나 해야 할 생각이니까.
우울해질 여유 따윈 없단 말이지.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각성자를 늘리는 일.’
조장 회의가 끝난 뒤.
이상아 조장과 함께 생존자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각성에 대한 얘기를 전하자.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구나.”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대답한 것은 박씨 할아버지였다.
“병사들이 함께할 테니까.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알고 있다. 오히려 이날만을 기다려왔지.”
“예?”
“아무런 힘 없이 보호받기만 하는 처지도 썩 편하진 않거든.”
위험을 동반하는 작업.
꺼리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반대의 반응이었다.
“나이 먹고 은퇴했을 때도 느꼈다만. 할 일 없이 놀아 봐야 심심하기만 하더구나.”
“그렇습니까?”
“이제야 뭐라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할 지경이다.”
피식.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각성하고 나시면 지금이 좋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빡세게 굴려 드려야겠네요.”
“……요즘 것들은 노인 공경이란 단어를 모르나?”
뭐.
박씨 할아버지와의 농담은 뒤로하고.
다른 생존자들은 그와는 달리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엄마아…….”
“괜찮아. 엄마가 같이 있을 테니까. 아저씨들 말 잘 듣자?”
“누나…… 괜찮을까?”
“마트에서 저 군인 분들이 얼마나 강한지 봤잖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거야. 게다가.”
어린 아이와, 부모.
심지어 얼마 전에 부대에 합류한 남매까지.
그 중, 각성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이해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도 저 군인 분들 처럼 강해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야생이나 다름없게 변한 세상.
이제는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 * *
관사는 외곽 중에서도 외곽에 위치해 있는 건물.
주변도 사실상 깡촌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관사의 주변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수십 명의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마리지?”
“운이 좋군요. 세 마리입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마주했던 괴물 중 하나입니다. 신 병장님이 알려 준 공략법도 유효할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네.”
“그러면.”
“그래. 저걸로 간다.”
산개하며 논밭 근처를 돌아다니던 3마리의 괴물.
병사들이 그 근처를 포위하듯이 접근한다.
그리고.
크륵!?
공격!
카아아악.
숫자로도 이쪽이 우위.
사냥에 변수는 없었다.
“전투 종료!”
“소음을 듣고 접근 중인 몬스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면.”
슬쩍 병사들 사이를 본다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서 보호받던 사내가 나온다.
“제 차례군요.”
“어렵진 않을 거다.”
사내는 나보다 연상의 남자였지만.
이제는 부대의 후임이 될 터.
조금 어색하지만, 말을 놓기로 했다.
그를 향해 다른 병사들이 입을 열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십쇼.”
“만약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바로 달려들 테니. 침착하게 물러나시면 됩니다.”
“예.”
병사들이 그에게 대검이 꽂힌 총을 건넸다.
총검을 쥔 그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긴장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사실…….”
“예?”
괴물을 향해 칼날을 향하며 말하는 그.
“신기할 정도로 침착한 상태입니다. 걱정 마시죠.”
[침착한 감정의-.]
푸욱.
“세상에.”
그 사냥 과정을 지켜보던 이상아 조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식으로 각성할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했는데.”
“음? 이게 그렇게 신기한 방법인가?”
“생존자 그룹을 이끌던 시절엔 각성법을 모르기도 했지만…… 알게 된 지금 봐도 그래요.”
괴물과의 교전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심지어 그 괴물을 산 채로 제압한다니.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생존자들은 괴물을 피해 숨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존자 사이에 각성자 숫자가 적은 것은 그런 생존 방식의 탓도 크겠지.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괴물을 사냥한다는 일 자체가 신기하다기보단 말도 안 되잖아요.”
하지만 우린 그와는 정반대.
오히려 적극적으로 괴물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각성자가 100명이 넘으니까 이런 짓도 가능한 거지.”
그룹에 각성자가 둘이면 많다고 하는 생존자와 달리.
100명이 넘는 각성자를 보유한 우리라서 가능한 일.
사실 좀 무식하다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무식할지언정 효과적이라는 게 포인트지.’
각성은 굉장히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빙결 마법사, 라는데요?”
“언니도 마법사야? 나는 화염 마법사래.”
박씨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자매.
두 사람은 쌍으로 마법사로 각성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조 병사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마법사조도 후임이 생기는 겁니까? 드디어 저도 막내 탈출-.”
“당장은 그렇겠지. 근데 알지? 기수도 기수지만 이제부터는 실력 위주로 가게 된다는 거.”
“……따라잡히지나 않게 조심해야겠군요.”
그리고 방금 말이 나왔던 인물.
박씨 할아버지는.
“대장장이, 라는군.”
“대장장이요?”
“이 나이에 초보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달게 되다니. 클클.”
내 칼을 갈아 줄 때도 뭐 하는 분인가 싶긴 했다만.
설마 대장장이 같은 직업을 얻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원래 그쪽 일을 하셨던 사람인 건가.
‘생산직이 늘어난 건 호재다.’
전투직과 달리 생산직은 큰 단체일수록 힘을 발휘한다.
우리 길드에서도 톡톡히 활약할 수 있겠지.
그렇게 각성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어? 신 병장님.”
“무슨 일이야?”
“잠깐 와 주십쇼.”
주변을 정찰하던 병사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뒤에 있던 나를 불렀다.
그를 향해 몇 발자국 걸어가자.
멀리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앙…….
쾅…….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
그리고.
-크아악!
-형님!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낯선 상황이기는 하다만.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생존자들인가.”
가까이 가자, 그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괴물과 교전 중인 생존자 그룹.
그룹에서 떨어져나와 둘만 남았던 수혁 수연 남매와 달리 나름대로 규모가 있어 보인다만.
“아. 저 괴물은 저렇게 상대하면 안 되는데.”
“약점을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흠.”
괴물을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야 상대할 만한 괴물이라고 해도, 각성자가 많아야 한둘인 생존자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일 테니.
“어떻게 할까요.”
병사들이 나를 보며 물어왔다.
“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렇게 소리를 내면서 싸우고 있잖습니까. 전투에 개입했다가 소리를 듣고 온 다른 괴물들까지 몰려오면…….”
병사들의 의견도 반으로 나뉘는 느낌이었다.
일단은 구하고 보자는 의견과, 위험하니 지나쳐야 한다는 의견.
예전이었다면 전자의 의견이 대부분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단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다 보니.
후자 쪽이 미세하게 많은 느낌.
하지만.
“어차피 각성하려면 괴물을 사냥해야 하잖냐.”
각성 과정은 거의 다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
각성을 마치지 못한 생존자도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가급적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은 작업.
마침 저쪽에서 생존자를 습격 중인 괴물은 숫자도 적어 보인단 말이지.
최고의 사냥감.
굳이 놓칠 필요는 없겠지.
“다들. 무기 들자.”
“예! 병장님이 무기 들라신다!”
“충성 충성!”
명령을 내리자.
지나치자는 의견을 내던 병사들도 군말 없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제기랄, 다들 도망쳐! 3번 포인트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도망치라니, 이런 장소에서 어떻게 도망을……!
-내가 시간을 끌 테니 어떻게든-.
-자, 잠깐만요!
“2, 3번 분대는 오른쪽 녀석을 맡아라! 명심해, 숨통은 끊지 마!”
“예!”
“나머지는 나랑 같이 왼쪽 녀석을 맡는다!”
병사 중 일부가 반대쪽으로 향하고.
나는 가까이 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코끼리를 닮은 거대한 괴수.
그 이빨은 날카롭고 근육질의 육체는 덩치에 비해 민첩했다.
하지만.
[특성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미 조리법을 깨달은 대상입니다.]
녀석은.
이미 사냥해 본 적이 있단 말이지.
나는 녀석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녀석의 약점을 향해 식칼을 찔러 넣었다.
푸욱-
이 녀석의 약점은 저 코.
그곳에 내장이 몰려있다 보니.
칼침 한 방이면 전투 불가 수준의 치명타가 된다.
구워어어어어-.
전투 능력이 대단하지 않은 나라도 상대할 만한 적이라는 뜻.
쿠웅.
“오오. 신 병장님.”
“나이스샷이였슴다.”
“니들은 요리사한테 싸움 맡기고 지켜보고 있기냐?”
“에이, 방금 그거 보면 아무도 요리사라고 생각 안 할걸요.”
저 녀석은 약점이 확실한 괴물이었다.
약점을 모른다면 꽤 난적이겠지만, 안다면 오히려 간단한 부류.
내가 아니라도 여기 있는 부대원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처치할 수 있었겠지.
그걸 알기에 다른 부대원들은 가벼운 분위기였으나.
“뭐, 뭐야”
“저 거대한 괴물이 일격에……?”
그 약점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사뭇 대단한 일처럼 보인 것 같다.
괴물과 전투를 치르던 생존자들이 경악하며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음.
각성을 위해 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들 괜찮으십니까? 걱정 마십쇼. 이 녀석은 확실히 제압했으니-.”
그래도 생존자들을 도운 것도 사실.
고맙다는 칭찬 한마디 정도는 듣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히끅.”
“구, 군복이다.”
……뭔가.
“제기랄.”
“여우를 피했다고 생각했더니. 호랑이를 만나냐.”
“쉿! 다들 조용히 해. 괜히 도발하지 말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
이건 고마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릴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인상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쪽의 각성을 빠르게 마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와준 것은 도와준 것.
그런데도 이 반응이라니.
‘예의가 아니지 않나?’
그때였다.
“아, 아저씨.”
“비켜 보거라. 내가 얘기를 해 볼 테니.”
생존자 그룹 한가운데서 한 중년 남성이 나왔다.
들리는 대화에 의하면 아마도 이 그룹의 리더 격인 게 아닐까.
앞으로 나온 그를 향해 내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사내 쪽이 먼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타, 탈영병들이 우리한테는 무슨 볼일이오!”
경계심이 가득 담긴 말.
그런데.
신경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탈영병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소.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오!”
탈영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