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탈영병 (2)
“타, 탈영병들이 우리한테는 무슨 볼일이오!”
탈영병이라니.
나는 불만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목숨을 구해 준 상대한테 하는 첫 말이 그겁니까?”
“……아. 크흠.”
그제서야 우리가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을 깨달은 건지.
헛기침하는 중년 사내.
“예, 예의가 아니었군그래. 내 사과하겠소. 실수한 것뿐이니 오해하진 않아 줬으면 좋겠구려.”
“오해라.”
내 쪽에서 오해할 만한 게 있었나? 싶다.
오히려 저쪽이 뭔가를 제대로 오해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런 생각에 중얼거린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목숨을 구해 준 건 정말로 고맙소! 감사를 표하지. 하지만…… 아까 한 말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오. 우리는 당신들한테 내줄 것이 아무것도-.”
“아니, 오해는 그쪽이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내줄 것이 없다니.
‘애초에 뭘 받을 생각도 없었어요. 이 양반아.‘
그렇게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우리는-.”
“제발, 한 번만 그냥 보내 주시오…….”
“…….”
이 아저씨.
분명 대화를 하겠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 걸까.
난 한숨을 내쉰 뒤 큰소리로 외쳤다.
“저희는!”
“히, 히익!”
“……탈영병이 아닙니다.”
갑갑해서 살짝 목소리를 올리자 위축되는 사내.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지만.
이러지 않으면 계속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지금은 막사를 떠난 상태긴 하지만.
막사에 남아 있는 부대원들과도 연락 중이고, 명목상의 부대 지휘관인 김 중위와도 함께하고 있다.
군부대로서의 규율 역시 남아 있는 상태.
탈영병이라고 부르는 건 좀 억울하지.
“그. 탈영병이라는 단어가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소.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르신들?”
“아니, 단어가 불쾌하고 뭐고가 아니라. 진짜로 탈영한 게 아니라니까.”
도무지 대화가 진전이 안 되네.
그때.
“그 병사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니. 한 번만 믿어주시죠.”
부대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나오며 말했다.
김 중위.
423대대의 현 최고 지휘관이었다.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김현석 중위라고 합니다.”
“뭐, 뭐라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복에 붙은 계급장을 내보이며 말을 잇는 김 중위.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소속 제12 군단 예하 직할부대. 423방공대대 소속 중위. 김현석이라고 합니다.”
“중위? 설마. 간부란 말이오?”
“예. 본래는 직책은 중대장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명목상이나마 대대장 대리를 맡고 있습니다.”
부대원들의 평가야 폐급 간부였다지만.
김 중위는, 겉으로 봤을 때는 정훈교육용 자료 영상에 나와도 될 법한 인물.
참군인의 표본같은 외모를 가졌다.
일단은 일개 병사가 아닌 간부에 해당하는 중위라는 직위도 그렇고.
부대에서야 무시당하던 양반이지만, 말빨이나 정치력은 또 수준급.
이런저런 요소들이 맞물리자.
“저, 정말 정규군이란 말인가.”
“세상에.”
“진짜 군인이었어? 탈영병이 아니라?”
그제서야 우리가 탈영병이 아니란 걸 믿게 된 듯.
생경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생존자들.
‘……내가 대화할 때랑은 꽤 다른 흐름이구만.’
그러고 보니.
수연, 수혁 남매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나를 영 무서워했지.
정작 이상아 조장과는 꽤 빨리 친해졌고.
김 중위의 인상이 좋은 것도 있기야 하겠지만.
이거 설마.
‘내 첫인상이 별로인건가?’
그러고 보니 가끔 인상이 날카로운 편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다.
섬세한 마음에 약간의 상처를 받아, 가만히 서 있자니.
김 중위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끄덕.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여긴 나한테 맡겨 줘라, 영준아.’
뭐 그런 뜻 아닐까.
‘생각해 보니. 김 중위를 포섭한 것에는 그런 목적도 있긴 했지.’
지휘관이라는 그의 직책을 생각해 보면.
각성시키면 괜찮은 직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가장 우선이기는 했다만.
되새겨 보니.
저렇게 유사시에 부대의 대표로서 나설 수 있다는 점 역시, 김 중위를 살려 둔 주목적 중 하나였다.
나 역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길 테니.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 보시라고.
“오히려 의문이로군요.”
내 허가가 떨어지자.
김 중위는 곧바로 사내와 대화에 들어갔다.
“왜 저희를 탈영병이라고 생각하신 건지.”
“응?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요?”
“예. 오히려 생존자분들이라면 군인들을 발견하면 보호를 요청할 줄 알았습니다만.”
“아아. 하긴. 보통같은 상황이라면 그런 반응이 정상적이였겠군.”
“지금은 보통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으음. 어려울 건 없소만.”
김 중위의 질문은 나 역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군복을 입고 있으니 군인이라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겠지만.
‘다짜고짜 탈영병이라니. 너무 갔잖아.’
중위의 질문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세상이 이 꼴이 나고 많은 사람이 죽었소.”
“그렇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동의하오. 하지만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이고, 우리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지.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됐다오.”
우리가 입은 군복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
“군인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을.”
“…….”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상황.
국민들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활동해 마땅한 사태.
나는 슬쩍 이상아 조장 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하는 그녀.
당장 그녀부터가 저런 의문을 품었던 이들 중 하나.
그룹을 이끌고 군부대를 찾아 이동하기로 결정했던 케이스였으니까.
“그리고 알게 됐지.”
그러나.
아무래도 그녀와 같은 사례는 드물었던 모양이다.
“모든 군부대는 전멸했다는 걸 말요.”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군부대는 전멸했소. 적어도 이 일대의 군부대는 모두.”
대화를 나누고 있던 김 중위는 물론.
뒤로 물러나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부대원 전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멸이라니.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정말 모르는 거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요.”
“일단은 전자입니다. 계속하시죠.”
너희들이 당사자면서 왜 모르냐는 태도.
하지만 정말 처음 듣는 얘기인 우리로서는 다음 얘기를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어떻게든 이 환경에 적응한 뒤. 몇몇 사람들은 알고 있는 군부대를 찾아갔소. 뭐, 강원도에는 넘쳐나는 게 군부대 아니오? 다들 알고 있는 부대가 한둘씩은 있었고, 찾아가는 데도 성공했지.”
여기까진 이해가 간다.
이상아의 그룹 역시 그중 하나였으니.
그런데.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저항 중인 군인들이 아니었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 사내.
“군인들은 전멸하고. 괴물들에게 점거당한 부대들뿐이었지.”
“……그게 무슨.”
“이유는 모르겠소만, 군부대에는 특히나 강력한 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수백 마리가.”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양팔을 비비는 사내.
“우리 그룹 역시 한 부대를 찾아갔었소.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동안 본 괴물들보다 강력해 보이는 괴물들. 그런 괴물들이 수백 마리씩 몰려 있는 풍경이란…….”
“…….”
“군인들이 우리처럼 불시에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면 이겨 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갈 수밖에 없을 정도였소.”
모든 군부대의 전멸.
그 얘기만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방금 한 말에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는지.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리자드들.”
어째서인지.
우리 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던 괴물들.
멸망의 날.
녀석들의 습격이 시작되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부대원들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생각해 보면.
리자드는 상당히 강력한 괴물이었다.
산맥의 부대 근처에는 리자드 외의 다른 괴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그 일대는 녀석들이 지배하고 있던 것일 테니.
실제로.
지상에 내려와서 만난 괴물들 중, 리자드보다 강하다 싶은 괴물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철물 창고를 지키고 있던 ‘맥’ 정도일까.
‘약점을 파악하고. 각성자를 늘려가며 싸운 덕에 겨우 살아남은거지.’
약점을 모르는 상태였다면.
아니, 안다고 해도 각성자를 늘리는 방법을 빨리 깨닫지 못했다면?
한 마리를 상대하는데 수십 발의 총알이 필요한 괴물.
며칠 안 가서 탄약이 고갈되고, 부대는 전멸했겠지.
“영준이가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 ‘전멸한 군부대’에 포함됐겠군.”
민재 형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하긴, 맨몸으로 리자드를 사냥해서 각성법을 깨달은 것도…….”
“리자드의 약점을 파악한 것도 신 병장님이었죠. 리자드들의 단단한 비늘을 생각하면, 각성자들도 리자드의 방어력을 뚫지 못했을걸요. 사실 약점 부위를 제외하면 지상에서 만난 어떤 괴물들보다도 위협적인 녀석들이었으니.”
“거기에다 생각해 봐. 신 병장님 요리가 없었다면 우리도 치프틴이 쳐들어온 날 전멸했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가 도마뱀들의 한 끼 식사가 되지 않은 게 기적이었군요. 신 병장님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으으.”
크흠.
틀린 말은 없긴 한데 그래도 뭔가 민망하네.
“왜 군부대에만 그런 강력한 괴물들이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소. 듣기로는 규모가 큰 부대일수록 더 강력한 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같은데……. 덕분에 최근 생존자들은 군부대가 있는 곳은 접근조차 안 하는 게 기본이지.”
우리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겹치면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거다.
다른 모든 군부대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우리처럼 운 좋게 여러 요소들이 갖춰진 게 아니고서야.
살아남기는 힘들었겠지.
“군부대 전멸은 그러려니 할 수 있었소. 사실 괴물들이 나타났는데도 조용했던 시점에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니까.”
“그 말씀은.”
“진짜 문제는 다른 부분이오.”
말을 끊은 그가 다시금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 부대원들을 훑었다.
“탈영병들이지.”
우리를 탈영병이라 생각한 이유는 여기서부터였다.
“솔직히 아직도 당신들을 믿기 힘들 지경이오만.”
“저희가 공격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하지 않았겠습니까? 계속 말씀하시죠.”
“크흠, 딱히 틀린 말도 아니군. 군부대들이 괴물의 공격에 전멸하는 와중에 어떻게든 부대를 버리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 병사들이 있었소. 군인이었으니, 당연히 총 같은 강력한 무기도 쥐고 있었지. 그 총을 좋은 곳에 썼으면 좋았겠소만.”
“아니었나 보군요.”
“아쉽게도. 괴물이나 좀비가 아닌 인간을 향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소.”
괴물의 습격에서 어떻게든 도망쳐 나온 군인들.
군부대로서의 규율이 허울이나마 남아 있는 우리와는 달리.
부대를 버리고 도망친 그들에게는 거리낄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을 터.
그런 와중에 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 할 일이야 정해져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약탈.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총을 든 탈영병들에게 물건들을 약탈당한 생존자들이 한둘이 아니오. 아니, 차라리 물건만 약탈당하면 그나마 양반이지. 가끔은 사람까지 데리고 가서는…….”
“…….”
“사실은 이 근처에서도 탈영병이 목격됐다는 소문이 있었소. 우리도 가급적 돌아가려고 했지만. 다른 길목은 좀비 무리가 막고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이 근처를 지나게 됐지.”
그 와중에 우리와 마주쳤으니.
“군복만 보고 십중팔구 그 탈영병들일 거라고 생각했소. 미안하오.”
“아뇨,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내의 설명이 끝난 뒤.
김 중위가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탈영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자에는 여유가 생겼다.
생존자들을 각성자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들은 큰 문제는 없는 그룹 같기도 하니.
“저희는, 같이 싸울 수 있는 전력을 찾고 있습니다.”
힘이 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지금 상황이라면 수용할 만하다고.
김 중위는 그렇게 판단한 것 같았다.
“같이 싸운다니, 보호해 주는 게 아니오?”
“본래라면 그래야겠지만, 저희도 타 부대와의 연결이 끊긴 뒤에는 여유가 없어서요. 전시의 민간인 모병 정도가 되겠군요.”
“모병이라…….”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저희와 합류하신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은 확실히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각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만.
“총기라도 보급해 준다는 말인가.”
“비슷합니다.”
저쪽은 총으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겠지.
제안을 들은 사내는 잠깐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일단은 묻고 싶소만. 모병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선택권은 있는 거요?”
“당연하죠. 강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답은 거절이오.”
약간은 의외였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당신들이 탈영병은 아닐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처음 보는 집단인 건 다름이 없소.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몸을 맡기는 건 너무 큰 도박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여러분께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해해 주시오. 우리로서는 당신들을 신뢰하긴 어렵소. 탈영병이 아닐 확률도 100%가 아닌 판국이고……. 솔직히 그 탈영병들 탓인지, 군인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렇게 좋지 못하거든. 우리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소.”
“그러시군요.”
더 이상 설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 중위.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아 온 이들이다.
그들만의 생존 법칙이 정립되어 있어도 이상하진 않은 일.
그 규칙으로 결정한 일을 설득으로 되돌리기는 힘들겠지.
“미안하오. 혹시라도 이 일로 앙심을 품지는 않았으면 좋겠소만.”
“설마요. 선택은 본인들의 자유니까요. 이런 일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그건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내.
혹시라도 우리가 앙심을 품지는 않을까 진지하게 걱정했던 모양.
“그러면. 혹시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하실 예정이신지요.”
“아? 그걸 말 안 했던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만.
그는 말해 주기 어렵지 않다는 듯 가볍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탈영병들의 목격 정보가 있는 이쪽으로 굳이 발길을 옮긴 이유가 있다오.”
“예? 무슨 이유길래.”
“이쪽에 엄청난 양의 물자를 확보한 그룹이 있다는 소문이 있거든.”
소문?
“웬 생존자 그룹이 어디 정부의 비밀 벙커 같은 거라도 털었는지, 식량도 많고 무기도 풍족하다더군. 대신에 사람이 적은 게 문제라는 것 같소. 괴물들을 피해 숨어 지내는 일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 무기와 식량을 나눠 주는 대신 함께할 생존자들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오.”
식량도 많고 무기도 많고.
그걸 그냥 나눠 준다고?
좋다 못해 혀가 녹아 버릴 정도로 달달한 조건인데.
“의심스러울 정도로 좋은 조건 같습니다만…… 그 소문은 믿을 만한 겁니까?”
“글쎄. 사실 100% 믿을 만한 정보란 게 지금 세상에 어디 있겠소? 어쩌면 당신들하고 합류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했다시피, 군인들보다는 동료를 찾는 생존자들 쪽이 조금 더 신용이 간다오. 이 소문은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얘기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미안하오. 목숨을 구해 준 일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은혜는 꼭 갚으리다.”
결국.
지상에서 처음으로 조우한 규모 있는 생존자 그룹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살펴 가십시오. 가시려는 목적도 잘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당신들도. 잘 살아남기를 빌겠소.”
떠나가는 길에도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
우리가 변심해서 공격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겠지.
생존을 위해서라면 저런 경계심은 필요할 테니.
생존자들이 떠나간 뒤.
“영준아, 어땠냐.”
“잘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있으면 김 중위님이 나서 주시는 게 좋겠네요.”
“하하, 바지사장 역할은 자신 있으니 얼마든지 맡겨다오. 대신,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생존자들과 대화할 때와 달리 영 우물쭈물하는 김 중위.
뭘 말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앞으로 3일간은 김 중위님 식사만 한 끼 더 해 드리겠습니다.”
“3, 3일씩이나? 고맙다! 정말 고마워!”
김 중위가 내게 복종하는 이유는 [행복한 감정]의 요리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 요리가 주는 행복한 감정에 중독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는 일을 잘했으니 포상을 줘도 되겠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겠는걸요.”
병사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각성 작업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참이다.
늦어도 이틀 내로 끝나겠지.
‘하지만. 우리가 지상에 내려온 목적은 세력을 키우기 위함이 크다.’
지상에는 더 많은 생존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수용하고, 각성자로 만들려는게 당초의 계획이었으나.
‘밖에는 이미 규모가 큰 생존자들도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지.’
의외로,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괴물들이 너무 강하니까.'
규모를 키우려면 각성자가 늘어나야한다.
평범한 생존자들은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각성자를 마냥 늘리기에는 괴물들이 너무 강했다.
좀비를 통해 각성할 수 있다고는 하나, 그 확률은 랜덤인 듯.
좀비를 잡고 각성한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생존자들도 소규모로 활동할 수 밖에 없게 된 것.
‘그 적은 규모의 생존자들을 어떻게든 수용해서 덩치를 키워야 한다. 이건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 부분은 걱정이 없었다.
생존자들을 설득할 때는 군인이라는 이미지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그 소중한 이미지를, 팍팍 까먹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 그거지?”
정작 우리가 흡수해야 할 생존자들은 오히려 다른 소문에 이끌려 그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듯.
세력 확장이 목적인 우리에게 있어서 이건 꽤 큰 문제다.
“영준아, 이 문제는 가급적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이민재 병장님 말씀대로입니다. 군인들에 대한 인식이 시시각각 나빠지고 있다니. 우리한테도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
“나도 알긴 아는데.”
문제는.
“그 탈영병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해결을 하든 말든 하지 않겠냐.”
당장 어떻게 해결하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문제 자체는 확실히 파악했다.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야겠지.
* * *
그런데.
“어이! 거기 아저씨들!”
“……?”
“사람도 많아 보이는데, 가진 거 있으면 다 내놓고 가쇼.”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