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탈영병 (3)
강원도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낡은 건물.
정상적이었던 시절의 흔적은 거의 사라진 건물의 한 방에서.
한 남자가 총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름 묻은 천으로 총기를 손질하는 남자.
그때.
남자가 있는 방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왔다.”
“진영이 왔냐.”
둘은 친근한 사이인 듯.
서로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둘 다 군복을 입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장사는 어때, 잘됐냐?”
“오늘도 공쳤다.”
“……쯧.”
“슬슬 이 근처에서 활동하긴 힘들겠어.”
방에 들어온 남자.
진영은 총기를 구석에 세워 두고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소문이 난 것 같아.”
“무슨 소문?”
“뭐긴? 여기 탈영병들이 있다는 소문이지.”
“……야. 우리 입으로 우리를 탈영병이라 해야겠냐.”
“틀린 말도 아닌데 무슨. 그런 게 신경 쓰일 거면 애초에 튀질 말았어야지.”
“큼.”
총기를 내려놓은 진영은 낡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규모 생존자 그룹이 생긴다는 소문만 듣고 그쪽으로 가는 길목인 이쪽에 자리 잡은 건 좋았는데. 우리에 대한 소문이 돌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어.”
“괴물이랑 좀비 때문에 돌아다니기도 힘든데 무슨 소문이 이렇게 빨리 도는 거야?”
“어쨌든 일이 개같이 돼 버렸어. 제기랄. 얼마 전에 노예 녀석도 죽어 버려서. 다음에 만나는 생존자 중 한 명 끌고 오려 했더니.”
“그러니까 굳이 죽이진 말자고 내가…….”
“아! 갑자기 생존자들 발길이 뚝 끊길지 내가 알았냐고.”
진영의 고함에.
둘 사이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총기를 손질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야.”
“아, 노예 죽인 건 내가 미안하다고 저번에도 사과했잖아.”
“그거 말고 인마.”
“엉?”
지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남자.
“소문이 나서 근처에 오는 사람도 없다고 했지?”
“어. 아주 개같은 상황이지.”
“그러면…… 슬슬 이 짓 그만두는 건 어때.”
“뭐?”
동료의 말.
진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으나.
“언제까지 이렇게 약탈이나 하고 지낼 순 없잖아. 우리는 총도 있겠다. 어디 사람 없는 산 같은데 틀어박혀서 적당한 땅만 차지하고, 농사짓고…… 그러면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냐.”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게 아닌 듯.
진영은 잠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헛웃음을 내뱉은 진영이 말했다.
“야. 너 미쳤냐?”
“뭐가.”
“하…… 이 대가리에 꽃밭 핀 새끼.”
짜증나는 듯 머리를 헤집는 진영.
“총? 좋지. 덕분에 우리가 먹고살고 있는 거니까. 근데, 너도 알잖냐. 총소리가 얼마나 큰지.”
“…….”
“산에서 농사나 짓자고? 그러다가 괴물이 찾아오면?”
“어지간한 괴물은 총으로 처리하면-.”
“한 마리는 총으로 잡는다고 치자. 그 총소리 듣고 몰려오는 괴물들은 어쩌려고?”
“그건.”
“설마 벌써 잊은 거냐? 부대에 몰려왔던 그 괴물들.”
진영은 자기 입으로 꺼낸 말임에도.
자신의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불과 한두 달 전의 이야기.
멀쩡하던 그들의 부대에, 갑작스럽게 침공해 온 괴물들.
갑작스러운 습격에 부대원들 대다수가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무기를 들고 저항했지만.
‘쥐뿔도 안 먹혔지.’
외부와의 연결도 끊겼다.
그대로라면 전멸할 게 뻔했을 상황.
부대원들이 갈피를 못 잡고 건물에서 농성을 시도할 때.
진영을 비롯한 몇몇 병사들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총알을 최대한 확보한 뒤.
차량을 훔쳐 괴물들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나온 것.
‘솔직히 뒈질 뻔했지만……. 운이 좋았어. 거기 있어도 죽는 건 똑같았을 테니까.’
진영과 함께 탈출을 감행했던 동료 중 생존자는 반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탈출함으로써 진영과 동료들이 경비하던 방향의 수비는 완전히 뚫려 버렸겠지.
어차피 얼마 안 가 전멸했을 부대였겠지만.
아마도 그 속도를 꽤 앞당기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영은 생각했다.
‘뭐 어쩌라고?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도망치려 했을 텐데.’
그럴 바에야 자신이 먼저 도망친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이미 다른 부대원들의 뒤통수를 치고 나온 상황.
그들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그때처럼 괴물들이 몰려들면 답도 없어. 농사 같이 눈에 띄는 짓은 자살행위라고. 그에 비해…….”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 진영.
“인간을 상대로 하는 건 얼마나 편하냐?”
총을 쏘면 소음으로 인해 괴물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인간을 상대로는 쏠 필요도 없으니까.”
총을 보여 줘도 상관없이 덤벼들 좀비, 괴물 등과는 다르다.
총.
21세기에서 가장 대표적인 힘의 상징.
그 위력은 인간들의 뇌리에 이미 단단하게 각인되어 있는바.
총구를 들이밀고 협박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알아서 고개를 조아리고 물건들을 내뱉는 생존자들.
최근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초능력자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초능력자고 뭐고.
몸에 구멍 나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적어도 이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버틸 만한 물자는 확보해야 해. 그전에는 뒈져도 이 짓 못 그만둔다. 맘에 안 들면 분위기 흐리지 말고 너만 따로 나가, 이 새끼야.”
“……아니.”
으르렁대며 말하자.
총기를 닦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미 부대원들도 우리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데, 이제 와서 양심 같은 걸 챙길 이유는 없지.”
“잘 생각했어, 인마. 하. 이 새끼 갑자기 뭐 잘못 먹은 건가 했네.”
“아, 말 한 번 잘못했다고 겁나 쏘아 대네.”
“내가 미안했다. 됐냐?”
진영의 설득으로 인해 나름대로 잘 마무리된 대화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진영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 새끼, 아직도 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동료 중 한 명이 혼자 양심에 찔려서 떠난다던가.
그런 건 상관없다.
문제는 총과 총알.
그 일부라도 가지고 간다면 큰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이들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이니까.
진영은 잠시 고민한 뒤 결정을 내렸다.
‘혹시라도 도망갈 위험이 있는 녀석이니, 그전에 적당히 죽여 버리는 게 낫겠어.’
평상시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가끔 보인 동료다.
그 점을 빌미로 몰아간 뒤 죽인다면.
다른 동료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야. 한창 대화하는 중에 미안한데.”
건물의 발코니에서 망을 보던 동료가 말했다.
“저기. 누군가 오고 있다.”
“뭐?”
바로 조금 전에 소문이 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도 이 근처를 찾아오는 생존자가 있다니.
“소문을 못 들은 녀석들인가?”
“다른 지역에서 막 이쪽으로 온 놈들일지도.”
그러나.
“큭큭.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안 그래도 최근에는 장사가 영 안 되던 참이다.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노예로 쓸 만한 인간도 몇 명 챙기자고.”
“아니. 잠깐.”
“응?”
“자세히 보니까. 뭔가 이상해.”
망원경으로 정찰하던 동료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군인 같은데.”
“뭐?”
진영은 동료의 망원경을 빼앗은 뒤 눈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저 멀리서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진짜잖아?”
“우리 부대 녀석들은 아닌 것 같아. 본 적 없는 얼굴이었어.”
“우리 같은 탈영병일지도.”
“저쪽도 군인들이라면 그냥 보내는 게 낫겠군.”
진영의 동료들 역시 그 군복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같은 탈영병이라면 총을 가지고 있을 테니 협박도 통하지 않을 터.
동료들은 김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니.”
진영의 생각은 달랐다.
“잘 봐. 저 녀석들. 총이 없잖아.”
“음?”
그의 말대로.
군복을 입은 일행들은 망치나 칼 같은 걸 들고 있기는 했으나.
총을 든 사람은 없었다.
“정말이야? 군인들인데 총이 없는 건 뭐지.”
“우연히 외출을 나왔다가 괴물들한테서 살아남은 녀석들이거나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뭘 망설여?”
진영은 방구석에 세워 둔 자신의 K2 소총을 쥐며 말했다.
“니들은 여기서 적당히 위협만 하고 있어.”
“네가 가려고?”
“탈영하기 전엔 내가 막내였잖냐. 내가 가 줘야지.”
K2를 어깨에 걸친 그는 건물에서 내려갔다.
건물의 입구로 나오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접근하는 군복을 입은 인원들.
진영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아저씨들!”
“……?”
“가진 거 있으면. 다 놓고 가지.”
* * *
‘얘는 또 뭐야?’
처음 건물에서 생존자가 나올 땐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저 입고 있는 군복.
건들거리며 들고 있는 총.
마지막으로 직접 한 말까지.
“아까 만난 생존자들이 말했던 탈영병 같습니다.”
“존재를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만나게 되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탈영병.
난 녀석의 얼굴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라는 선택지는 없겠지.
저쪽도 우리가 가진 물자들을 원하는 모양이고.
게다가.
안 그래도 가급적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녀석들.
“민재 형.”
“무슨 일이냐.”
“우리. 총을 든 병사들 상대로 이길 수 있나?”
“흠. 고민해 봐야 할 주제로군.”
산맥에서 탈출을 시도할 때.
좀비가 된 병사들의 총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총에 맞은 병사의 말에 의하면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하던가.
하지만 우리 군복도 보통 물건은 아니라서.
충격은 남을지언정 관통되지는 않았었지.
저 녀석들이 사수로 각성한 녀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그런 느낌도 아니고.
“흠.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가 부대를 방어할 때처럼 충분한 시야와 거리가 확보된 상태에서 방어를 굳히고 있는 군인들이라 한다면 뚫기는 힘들겠지.”
“그러면, 한 명은 정면. 나머지 인원들은 100m 이내의 건물에 있으면?”
“몰라서 묻는 거냐?”
민재 형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건물 안에서는 총의 사거리도 줄어들지.”
“음.”
“반면 우리 병사들은 어지간한 거리는 순식간에 좁힐 수 있고.”
“결론만 말하자면?”
“압승이 예상된다.”
뭐어.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좋아, 다들 들었지?”
“““예!”””
“다들 전투식량 꺼내자.”
곧바로 전투식량을 꺼내는 병사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탈영병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어이, 아저씨들.”
“정면의 녀석은 내가 제압한다. 나머지는 건물로 진입해. 김 중위님, 신호 주십쇼.”
“갑자기 뭘 꺼내는-.”
“하나, 둘…….”
“뭐?”
총을 보여 주면 우리가 쫄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모든 능력치가 소폭 상승-.]
이쪽이 대놓고 식사를 하는데도 멍하니 지켜보는 녀석.
“셋!”
그를 향해.
나와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무, 무슨!?”
당황한 탈영병 녀석이 그제서야 총을 바로 잡았다.
그 총구가 우리를 향해 겨누어지려 했으나…….
애초에.
너무 가까웠다.
“컥……!”
“총을 들고 협박하려면 거리를 두셨어야지.”
일반인들이었다면 총을 든 상대에게 달려들어 제압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겠지.
하지만 이쪽은 전원이 각성자.
내 요리와 김 중위의 지휘까지 겹쳐진 지금.
어지간한 거리는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녀석의 총을 멀리 쳐 낸 뒤.
녀석 본인은 바닥에 내치며 제압했다.
“놔, 이 개새-!”
“어허. 진정해요. 아저씨.”
탈영병 쪽에서도 나름대로 저항해 보는 듯했으나.
꽈악.
“무, 무슨 힘이……?”
각성자들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의 그것을 아득하게 상회한다.
전투직이 아닌 나라도 성인 남성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좀 진정되십니까.”
“크, 크큭…… 너. 요즘 나타난다는 초능력자인가 보군.”
“응?”
바닥에 깔린 녀석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내 쪽을 흘겨보며 히죽거렸다.
“그래. 갑자기 그런 힘을 얻었으니, 자신감이 생겼을 만도 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넌 그래도 괜찮겠지만. 네 동료들은 어떨까?”
내가 눈앞의 탈영병을 제압한 사이.
나머지 병사들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건물 안에는 내 동료들이 10명 가까이 있다. 전원이 총으로 무장한 상태지.”
“흠.”
“내가 제압당한 걸 봤을 테니, 다들 방비를 단단히 하고 있을 거다.”
바닥에 얼굴을 비비면서도 키득거리는 녀석.
“너 같은 초능력자야 어떻게 될지 몰라도, 건물 안에 들어간 녀석들까지 무사할까?”
아.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했더니.
“고작 그거였어?”
그때였다.
-저 새끼들이 진영이를 제압했다.
-미친. 죽여 버려!
탈영병들이 머무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
그 건물의 발코니에 있던 탈영병 하나가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흐흐…… 네 동료들은 결코 쉽게 죽지 못할 거다. 특히 너. 너는 내가 특별히 공을 들여서 괴롭혀 줄 테니…….”
“민재 형.”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은 무시하고.
나는 민재 형을 바라보았다.
“뭐 해? 제압 안 하고.”
“안 그래도 슬슬 나서려던 참이었다.”
내 말을 들은 민재 형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했다.
발코니의 탈영병을 향하는 손가락.
“십만 볼트.”
파지직!
-커, 커어…….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와 함께 뿜어지는 푸른 전격.
그 전격에 직격당한 탈영병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쥐고 있던 총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
당황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쏴, 쏴도 되는 거냐? 괴물들이 몰려올 텐데…….
-멍청아! 지금이 그런 걸 따질, 커헉.
-미친. 설마 전부 초능력자라고?
그중 대부분은.
탈영병들의 비명으로 채워졌다.
“흠. 대충 정리됐나 보네.”
“…….”
“아. 아저씨. 아까 뭐라고 했지? 내가 바빠서 미처 못 들었는데.”
10명 이상의 탈영병들.
그들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