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탈영병 (4)
“그러니까. 부대에 괴물이 나타났고, 거기 있어 봐야 전멸할 게 뻔하다고 생각한 너희들은 탈출을 감행했다?”
“예, 예…….”
건물의 한구석.
총을 빼앗기고 쓰러진 탈영병들을 병사들이 심문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방어가 뚫려서 전멸할 다른 부대원들에 대해서는, 어차피 죽을 거 조금 더 빨리 죽는 정도라 생각했고. 맞나?”
“마, 맞습니다.”
“아주 쓰레기들이네, 이거.”
빡!
심문을 진행하던 병사가 탈영병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대상이 후임이었다면 눈살 찌푸려질 광경이었겠다만.
‘별생각은 안 드네.’
저 녀석들은 같은 부대원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몰고 간 탈영병들.
오히려 저 정도는 당해도 싸지.
“뭐. 어차피 다 죽을 목숨이었다는 건 알겠다. 어차피 탄약이 고갈되면 끝이었을 테니.”
“예? 아, 아뇨. 탄약은 많았어요.”
“뭐? 그럼 왜 다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한 건데.”
“그…… 총알로도 죽이기 힘든 괴물들인 데다가, 워낙 숫자가 많아서요…….”
계속되는 심문.
나와 다른 병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들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이하.
솔직히 말해.
우리도 놀랄 정도의 결과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총을 든 군인들이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강했나?”
자신들이 한 일임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의 병사들.
각성하고 시간이 꽤 지났다만.
지금까지 괴물을 상대로만 싸웠을 뿐, 인간을 상대한 적은 없었단 말이지.
총을 든 군인들은 현대 무력의 상징 같은 존재.
그걸 이렇게 쉽게 제압했다니.
그야 놀랄 만도 하다.
“우리도 그동안 레벨이 많이 올랐고, 영준이의 요리로 얻는 버프량도 장난이 아니니까. 당연한 결과지.”
“어, 그런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길 만한 싸움이긴 했습니다만, 감회가 새롭긴 하군요.”
물론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제압한 것은 총을 든 탈영병들.
제대로 된 체계와 방어선을 구축한 군대는 아니었으니까.
제대로 된 군대가 상대라면 아무리 각성자 100인이라도 힘도 못 쓰지 않았을까 싶다.
뒤에서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
탈영병들의 심문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나저나. 총알이 넘쳐난단 건 무슨 소리야?”
심문하던 병사의 입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총알이 거의 다 고갈된 상태란 말이지?
나야 그나마 신경을 덜 쓰고 있는 편이라지만.
사수 조의 병사들은 꽤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오히려 여유가 넘쳐 보였지.’
탈영병들의 제압이 끝난 뒤.
나는 병사들과 함께 건물을 대충 둘러보았다.
그렇게 발견한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들.
식량이나 기름 등은 물론.
‘상당한 양의 총알까지.’
식량 등은 약탈을 통해 얻은 물건이라고 쳐도.
탄약 쪽은 약탈로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 부대 화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수 각성자들.
그들이 탄약 고갈로 제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탄약에 관한 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평범한 부대에서 상비하고 있는 탄약이 많아 봐야 얼마나 많다고 총알이 넘쳐난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탄약만 해도 상당한 양이던데.”
“그게…….”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저희 부대가 탄약 보급소라서요.”
탄약 보급소.
“탄약 보급소? 그게 뭔데.”
“예. 그, 탄약대대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근처 부대로 보급해야 할 탄약들을 관리하는 부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탄약창하고는 다른 거냐?”
“탄약창의 하위호환이라고 보시면 되죠. 관련 업무를 해 본 적 없으신 분들이면 모르실 만도 합니다.”
“자세한 위치는?”
“그.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데…….”
탄약대대라니.
그 이야기를 들은 병사들의 시선이 탈영병에게 집중되었다.
“이거 잘하면.”
“탄약 문제.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사정도 한결 나아진다.
총알을 소모하고, 소리가 크다는 단점도 있지만.
사수들의 화력은 그 단점을 무마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그때.
‘어, 저 녀석은…….’
모여 있는 탈영병들.
그중 한 명이 구석으로 슬쩍슬쩍 몸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탄약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일까.
탈영병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다른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너, 잠깐 정지…….”
딱 봐도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탈영병.
녀석을 내가 저지하려던 순간.
“다, 다들 꼼짝 마!”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놈의 양손에 들려 있는 것은.
권총. 그리고…….
한쪽 손에 들린 권총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반대쪽 손.
“수류탄이라.”
그 물건들을 본 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무기는 다 뺏은 거 아니었나?”
“예. 몸에 지니고 있는 건 전부 압수했었는데…….”
“쯧, 방 안에도 숨겨 둔 게 있었나 보네. 저쪽 근처 조사한 녀석들은 나중에 나 좀 보자.”
“죄, 죄송합니다!”
방의 조사를 담당했던 병사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들 꼼짝 말라고 했지!”
“…….”
“너희들이 총을 쏘기도 전에 붙을 수 있는 괴물들인 건 나도 알지만. 수류탄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핀을 뽑는 순간 이 방 안에 있는 녀석들은 다 뒤지는 거야.”
“그러면 너도 몸 성히 넘어가긴 힘들 텐데?”
“어차피 뒈질 거, 다 같이 뒈지는 게 낫지. 안 그래?”
문제는 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보아하니 상당히 미친놈 같다.
난 슬쩍 녀석이 입고 있는 군복을 바라봤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황진영.
지상에서 우리를 협박하고, 내가 직접 제압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때.
“신 병장님.”
“어.”
“제가 처리할까요.”
내 뒤에 서 있던 광일이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전광일 상병의 신체 능력은 부대에서도 압도적인 수준.
……솔직히 이 녀석이라면 수류탄이고 뭐고 어떻게든 해결할 것 같기도 한데.
“잠깐만.”
“예?”
나는 광일이를 만류했다.
광일이 녀석은 의아해 보이는 태도였으나.
“한 번은 기회를 줘야지.”
나는 잠자코 녀석이 하는 짓을 지켜봤다.
“뭐 해, 이 새끼들아! 빨리 총 챙겨!”
황진영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수류탄을 들고 있는 상태로 소리쳤다.
그러자 무릎 꿇고 심문을 받던 탈영병들이 몸을 일으켰다.
“잘했어!”
“진영이 이 새끼. 믿고 있었다!”
“큭큭, 전세 역전이로구만.”
탈영병들은 구석에 따로 모아 둔 총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때.
난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
“엉?”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내 딴에는 나름.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었으나.
“큭큭. 이제야 좀 쫄리시나 봐?”
“안 할 자신 있으시다. 이 개같은 새끼.”
“후회는 무슨.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방금까지 무릎을 꿇고 세상 공손하게 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
이래서야.
기회를 준 의미는 없다고 봐야겠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광일이의 이름을 불렀다.
“광일아.”
“옙. 상병 전광일.”
“처리하자.”
후임에게 내린 명령.
그 명령에 대한 대답은.
‘충성!’
이나.
‘예!’
따위가 아니었다.
“그르륵…….”
짐승이 우는 듯한 기괴한 소리.
부대 최강의 전사이자, ‘광전사’ 각성자인 전광일 상병.
광기가 녀석의 몸에 퍼져 나가고.
쿠우웅!!
그 거대한 몸체가 탈영병을 향해 쇄도했다.
“내가 장난하는 줄 알았나 보지!?”
그 모습을 본 진영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핑!
정말로 수류탄의 핀을 뽑고 높이 던지는 녀석.
미친.
설마 진짜로 던질 줄은 몰랐는데.
“미, 미친 새끼!”
“진짜로 뽑으면 어쩌자고!”
“좆까, 새끼들아! 죽으려면 차라리 같이 죽자고!”
그 모습에는 같은 탈영병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수류탄이 터진다면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성치 못할 게 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뭐. 별 상관없겠지.”
지켜보는 나로서는.
딱히 위험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질주하는 전광일 상병.
녀석의 손이 허공의 수류탄을 향했다.
높이 던져진 수류탄이었으나.
저 몸체로 가능한가 싶은 기괴할 정도의 탄력으로 높이 뛰어오른 전광일 상병.
마치 장난감을 낚아채는 강아지처럼.
간단하게 수류탄을 낚아챈 녀석은…….
“크륵!”
수류탄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퍼어어엉-
건물 밖으로 던져진 수류탄이 폭발했다.
엄청난 폭발음과 풍압이 멀리 있는 우리에게까지 느껴졌다.
“미친 괴물 새끼!”
그 모습을 본 황진영은 전광일 상병을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탕, 타앙-
“크륵……!!!”
“초, 총알도 안 먹힌다고?”
돌격소총의 총알도 버텨 냈는데, 권총 따위야.
우리가 입은 군복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콰앙!
결국.
황진영이란 이름의 탈영병은 광일이의 손에 머리를 붙잡힌 채.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어?”
“뭐, 뭐야.”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광일이가 몸을 날리고 황진영을 제압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5초도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뒤바뀐 상황.
총을 쥐러 이동하던 탈영병 녀석들이 당황스러운 눈치로 중얼거렸다.
“크르륵!”
“어, 어어…….”
“오, 오지 마!”
승기를 되찾았다 생각했을 때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괴성을 내며 자신들을 노려보는 광일이의 눈빛에 압도당한 탈영병들.
“큭, 큭큭…… 이런 미친, 괴물 새끼들.”
벽에 처박혀 얼굴을 비비고 있는 탈영병.
황진영이 말했다.
“나름 마지막 발악이었는데, 쥐뿔도 안 통하는군.”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상대를 가려서 했어야지.”
여기 있는 병사들이 우리가 아닌 평범한 군인들이었다거나.
하다못해 광일이가 없었거나 하면 꽤 유효한 공격이었을 수도 있다만.
애초에 그딴 짓이 먹힐 상대가 아니었다는 거다.
“큭큭…… 이렇게 된 이상 마음대로 해라.”
“음?”
그나저나.
이 진영이라는 녀석.
아까부터 묘하게 잘난 척이 심하단 말이지.
그래봐야 결국 탈영병 주제에.
“저기요 아저씨.”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아니, 아까부터 중2병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
끝까지 기죽지 않겠다는 듯 구는 녀석에게.
난 지금 상황을 조금 알려 주기로 했다.
“당신들 처우를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닐 것 같아.”
“……뭐?”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묘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카아악…….
크륵.
끼에에에에에에-
“이 소리는?”
“몰려오고 있는 소리지.”
“모, 몰려오다니?”
당당한 척 굴던 녀석이 묘하게 초조한 태도로 되물었다.
난 오히려 어이가 없어져서 되물었다.
“우리는 뭐, 총이 없어서 안 쏘고 다니는 줄 아나?”
“무슨 소리를-.”
“총소리를 내는 것도 자제해야 할 마당에. 수류탄까지 던져? 뭔 미친놈들인가 했네.”
“아.”
권총만 해도 상당한 소음.
거기에 수류탄까지 터트리다니.
호들갑을 이만큼 떨어 댔으니.
괴물.
좀비.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지 않을까?
“이, 이봐. 아니, 저기요.”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은 듯.
탈영병들이 묘하게 비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요. 아재.”
“우,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좀 살려 주십쇼.”
다 같이 죽을 작정으로 수류탄을 던지던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
“같은 군인이잖습니까. 제발. 같은 처지인 사람들끼리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 살려만 주신다면 이 은혜. 꼭 갚을 테니-.”
“수류탄 던지고 뭐고 한 건 다 진영이 저 녀석이 한 짓입니다! 저희는 항복했잖아요!”
“……미친놈들.”
다른 탈영병 녀석들까지 거기에 가세해 목숨 구걸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기회를 줄 때 받았어야지.”
그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이민재 병장.
“미안하지만. 탈영병은 즉결 처형이 원칙이다.”
“무슨?”
“직접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뜻이야.”
그렇게 말하자.
탈영병 중 한 명이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그, 그러는 너희는 뭐 다른 줄 아냐!”
“당연히 다르지.”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뒤.
뒤로 돌아 우리 쪽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김 중위님!”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김 중위.
“영준아. 불렀니.”
그 모습을 본 탈영병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 중위?”
“간부까지 있다고?”
“……설마. 저 녀석들은 탈영병들이 아닌 건가?”
“설마. 노예로 잡아 온 생존자 녀석들도 말했잖아. 다른 군부대도 모조리 전멸했다고. 그렇게 괴물들이 몰려오는데.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을 리가…….”
같은 처지니 뭐니 할 때 혹시나 했다만.
우리가 자기들 같은 탈영병인 줄 알았나 보지.
난 녀석들을 무시한 채 김 중위에게 말했다.
“김 중위님. 명령 내려 주십쇼. 퇴각 명령으로.”
“알겠다. 전원, 최대한 안전하게 퇴각하라!”
김 중위가 소리를 지르자.
아군 병사들의 몸 안에 기묘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휘의 함성 - ‘퇴각 명령’이 울려 퍼집니다.]
[효과 대상자들의 전장 이탈 행위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몰려들고 있을 괴물들.
녀석들을 모조리 상대할 여유 따위 있을 리가 있나.
바로 몸을 빼려고 준비했을 때.
“아, 안 돼.”
누군가 내 발목에 매달렸다.
익숙한 얼굴.
아까까지 벽에 얼굴을 비비고 있던 황진영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말했다.
“아까는 같이 죽으려고도 하더니. 이제 와서?”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목숨 구걸이라.
맘 같아선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고 싶었으나.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
두 후임이, 내 눈 앞에서 괴물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본 이후에 생긴.
작은 강박 같은 것.
‘괴물이 인간을 살해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차라리 탈영으로 인한 벌을 받게 하면 받게 했지.
이대로 무력하게 괴물들에게 살해당하게 방치하는 것은.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기회를 줘도 못 받아먹을 놈들이지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도록 하지.
타악.
“먹어라.”
“이, 이건?”
내가 그들의 눈앞에 던진 것은.
얼마 전에 갓 만든 육포.
전투식량이었다.
‘각성자가 아닌 녀석들이니. 능력치 상승은 적용되지 않겠지만.’
특성정도라면 적용이 될지도 모르는 일.
이 녀석들을 살리는 건 내게는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라도 던져 준 뒤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뿐.
‘이 녀석들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충분하다면.’
저 육포를 주운 뒤.
입에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깊은 죄책감의-]
육포에는 이미 [특별소스]를 뿌려 놓은 상태.
저걸 먹고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먹고서. 너희 죄를 인정한다면. 우리 부대를 찾아와라.”
그 후에는, 죄책감으로 인해 몸부림치게 될 터.
그렇게 찾아온 녀석들에게, 탈영병에게 합당한 벌을 준다.
그럴 생각이었으나.
“흐, 흐흐. 육포라니.”
“죽기 전에 배나 채우라는 뜻인가?”
내 전투식량의 효과를 모르는 그들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듯.
기껏 건네준 전투식량을 내팽개치고 흐느끼는 녀석들.
“사, 살려 달라는 부탁은 안 할게.”
그리고.
그중 몇 명은, 이런 말을 꺼내 왔다.
“그러니까, 차라리. 차라리 죽여 주면 안 될까?”
이 녀석들이 구걸한 것은.
목숨이 아니었다.
“주, 죽는 건 피할 수 없겠지. 원래라면 부대에서 죽었어야 하는 목숨인 데다가…… 너희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이상.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한들,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
“하, 하지만. 죽는 방법이라도 선택하고 싶거든. 적어도 괴물한테 잡아 먹히는 것만큼은 싫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에도 종류가 있다.
우리의 손에 의해 처형당한다면.
적어도 고통의 순간은 길지 않겠지.
하지만.
‘괴물과 좀비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
총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과 공포의 시간이 될 거다.
“그러니. 제발…….”
“사, 살려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죽여 달라는 것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이들은 그런 식의 죽음만은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렇게 빨리 포기한다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짓거리를 다 해 왔다.
살아나갈 구멍이 안 보인다면, 구멍을 파서라도 만들어 낼 각오였지.
하지만.
저 녀석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쳐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
이 녀석들이 내 부대원들이었다면.
그렇게 다그쳤겠지만.
‘이 녀석들은. 내 부대원이 아니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아까 광일이가 쳐 낸 권총들.”
“예.”
“저 방구석에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겠지? 그건 두고 간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여기서 탈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총알도 얼마 없으니. 그 권총으로 약탈을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이번에는 탈영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탄창에는 총알이 남아 있을 테니. 어떻게 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정해라.”
“아, 아아.”
“괴물을 죽이는 데 쓰든, 다른 걸 죽이는 데 쓰든. 마음대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권총이 있다면.
적어도 편하게 죽는 것은 가능하겠지.
그리고.
만약에, 정말 만약에다만.
‘살아남고 싶은 의지가 있는 녀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권총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저들이 방구석에 내던진 저 전투식량을 먹는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결코 0이 아니겠지.
‘구멍은 마련해 줬다.’
의지를 가지고 그 구멍을 빠져나올지.
그냥 편안한 죽음을 택할지는, 녀석들 개개인의 몫.
나는 발에 매달린 녀석을 내친 뒤.
부대원들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알겠…….”
최대한 빨리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몸을 날리던 중.
타앙…….
“…….”
위에서 들려오는 권총 소리.
괴물이 몰려오기도 전에 들려온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이곳의 병사 모두가 알고 있었다.
‘멍청한 자식.’
기껏 살아남을 구멍을 마련해 줬음에도.
공포에 짓눌려, 그 구멍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몇 명이나 죽음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나약한 녀석들은, 어차피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영준아! 서둘러야 한다!”
“탈영병 녀석들보다야 낫겠지만, 우리도 위험합니다!”
속이 쓰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죽음을 택한 녀석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저 녀석들과 다르다.’
단순히 탈영자냐, 아니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을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
울려 퍼지는 권총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죽지는 않는다.’
나만의 식당을 열 수 있는 그 날까지.
기필코 살아남으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을 괴물들.
녀석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 건물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각성자들의 신체 능력.
거기에 김 중위의 버프까지 겹쳐졌지만.
“이걸로는 모자라겠네.”
“예?”
“그럼 어떻게 합니까!”
괴물들이 도착하기 전에 완전히 도주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어떻게 하냐는 병사의 질문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들. 전투식량 꺼내.”
“예?”
“아끼고 아껴 왔던…….”
이런 상황에 답이라곤 하나뿐이지 않겠냐.
“요리지.”
나는 품 안에서 요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껴 왔던 전투식량 시리즈.
그중에서도 아직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녀석.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육포]
방금 탈영병 녀석들에게도 던져주었으나, 스스로 내던져 버린.
‘살아남기 위한 구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