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탄약대대 (2)
“너무 조용한데요?”
몬스터가 점거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탄약대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탈영병들의 말에 의하면, 탄약대대가 몬스터들하고 교전을 치른 건 분명한데.”
“몬스터들이 군인들만 정리하고, 대대를 떠났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군부대라는 게 딱히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일 뿐. 괴물들이 그런 걸 고려하진 않을 테니.’
군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보급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공간.
몬스터들이라고 살기 좋은 환경인 것도 아닐 테니.
떠났을 확률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예? 이유가 뭡니까?”
“반쯤은 감이다.”
우리가 근무하던 423방공대대를 습격한 리자드 무리.
치프틴을 쓰러트리면서 그 공세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하루에도 열 마리 이상의 리자드가 꾸준히 부대를 공격해 왔지.’
치프틴과의 싸움을 생각하면, 리자드들은 멍청한 종족은 아니다.
병력을 모으고 적이 약해진 틈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정도의 종족.
각성자가 늘어나며 방비를 갖춘 부대에 몇 마리씩 공격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을 터.
그럼에도 자살이나 다름없는 공격을 계속 강행했다.
기괴하기까지 한 집착.
어째서일까.
“군부대에는 유독 강력한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했지?”
“그렇지.”
“괴물들이 부대를 점거할 필요가 없다면. 그 강력하다는 괴물들 입장에서 굳이 군대를 습격할 이유도 없잖아?”
아무리 강한 힘들 가진 괴물들이라고 한들.
굳이 위험한 군부대를 골라서 습격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들은.
어째서인지 그렇게 했다.
“분명 의도가 있을 거야.”
일전에 느꼈던 부분이 다시금 떠오른다.
인류를 공격하고자 하는 정체불명의 악의.
그것이 실존한다고 한다면.
“인류의 무력을 억제하려 하겠지.”
“…….”
“군인들이 죽었다고 해도, 정작 무기들이 모여 있는 군부대가 비어 있다면 결국은 살아남은 인간들이 그 무기를 이용해 재기를 노릴 수 있을 거야. 인류의 무력을 억제하려 한 모종의 의지가 실존한다고 한다면. 군부대를 쉽게 다시 탈환할 수 있도록 두지는 않을 것 같거든.”
방심은 금물.
조용한 저 부대 안에,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피해갈 생각은 없다만.’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내 얘기를 들은 병사들은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강적이 도사리고 있을 게 확실하다고 얘기한 셈이니까
“괜찮아 이것들아. 리자드들도 잘만 잡았잖냐.”
“그렇지만. 부대에서 방어전을 치르던 때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엔 최소한 리자드들과 비슷한 세력을 상대로 우리가 공성전을 치러야 하는 셈이니까
확실히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공격하는 쪽에도 유리한 게 하나 있지.”
“……? 뭡니까?”
“공격 타이밍을 정할 수 있다는 거.”
부대에 불이 꺼진 순간 공격을 감행한 리자드들도 그랬으니까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
“진입은. 점심 식사 후에 한다.”
가시 돋친 차량 중 하나의 트레일러를 열었다.
‘취사 트레일러.’
공병들이 만들어 준 이동식 주방.
군부대를 공략하는 일이니까.
지금까지처럼 전투식량으로 때울 수는 없잖아.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 * *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꺼억…….”
“아, 더럽게 진짜.”
“헤헤. 죄송함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지금.
탄약대대의 정문 부근에 도착해 있었다.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탄약대대.
그 주변은 죄다 논밭이었고, 부대는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부대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장소.
난 슬쩍 탄약대대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창살에 바리케이드 등으로 닫혀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박살이 나 버렸군.”
“그러게 말입니다.”
괴물의 습격을 받아 입구의 바리케이드는 산산조각이 난 모습.
이제 보니 펜스 곳곳에도 커다란 구멍이 나 있거나, 아예 뜯겨 나간 곳도 보였다.
그러나.
전투의 흔적만 많을 뿐.
어째서인지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입해 보는 수밖에. 김 중위님!”
“어어.”
“몇 번 와 보셨다고 하셨죠? 탄약고까지 가는 길은 아십니까?”
일단 우리의 제1 목표는 탄약의 확보.
다른 건물들은 무시하고 탄약고로 향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 중위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
“알긴 아는데…… 우리 부대가 보급받던 탄약고는 상당히 안쪽에 있어서. 일단 가까운 탄약고도 알긴 안다만.”
“그럼 일단 가까운 쪽으로 안내해 주십쇼.”
나와 병사들은 부대 정문의 잔해물들을 치운 뒤.
김 중위의 안내에 따라 탄약대대 내부로 진입했다.
단.
모두가 걸어서 진입한 것은 아니었다.
부릉…….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창날 등으로 무장한 전투차량들.
험악한 외형에 비해 소리는 극도로 적은 차량들이 느린 속도로 병사들의 보폭에 맞춰 전진했다.
‘이동식 바리케이드.’
산맥을 내려올 당시 차량을 이용하고자 한 방법.
그때는 괴물의 손에 차량이 박살이 나며 실패로 돌아갔지만.
차량의 강화가 끝난 지금.
이제야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저기 보십쇼.”
“음?”
“뭔가 날카로운 물건에 베인 듯한 흔적이…….”
그렇게 김 중위의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진입하던 중.
한 병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헌병들이 근무했을 법한 건물.
거기에 새겨진 커다란 베인 자국이 보였다.
“저건 대체.”
“얼마나 큰 대검이여야 저런 흔적을 낼 수 있는 거야……?”
베인 자국이 흔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건물 이곳저곳에 보이는 총알 자국들.
탄약대대의 병사들이 저항한 흔적이겠지.
마치 전쟁 후의 도시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괴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니.’
의문을 품은 채 넓은 탄약대대 부지 안쪽으로 들어가자.
부대 안쪽.
산에 걸쳐져 있는 묘한 구조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겉으로 봤을 때는 산을 뚫고 들어가는 터널처럼 보이는 건축물들.
탄약고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교전 한 번 없다니.”
“하하. 이거 괜히 쫄았던 거 아닙니까?”
탄약고의 모습을 본 병사들이 말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건가?”
이쯤 되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군부대를 전멸시키려는 의지라든가, 뭐라든가.
어쩌면 그런 건 없던 게 아닐까.
그냥 우연히 괴물들이 군부대를 습격했을 뿐.
그 괴물들은 살기에 좋지도 않은 이 땅을 버리고 이동해 버린 게 아닐까, 하고.
“보십쇼. 탄약고 문도 잠겨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빨리 탄약부터 챙기죠?”
가벼운 발걸음으로 탄약고의 커다란 철문으로 향하는 병사들.
그들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댄 순간.
갑자기 의문이 하나 생겨났다.
‘탄약고 문이 잠겨 있지 않다고?’
본래라면 두꺼운 잠금장치로 잠겨 있어야 할 탄약고.
그 잠금장치가 해제된 채 문만 닫혀 있는 모습.
괴물들과 교전을 위해 탄약이 필요했을 테니, 열어 놓은 거라면 이해가 간다만.
그러면 아예 열려 있거나 해야지.
닫혀 있는데도 잠금장치만 열려 있을 이유가 있나……?
“그럼…… 열겠습니다.”
“잠까-.”
“하나, 둘!”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내가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두꺼운 철문에 다가간 병사들이 문을 열었다.
쿠구구구궁…….
두꺼운 철문이 먼지를 떨어트리며 열렸다.
그 탄약고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리가 기대한 탄약과 포탄 따위가 아니었다.
“어. 이건.”
“거미줄?”
온통 거미줄로 뒤덮인 공간.
단순히 시설을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았다고 내려앉은 수준이 아니다.
본래 탄약고가 어떤 형태인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
그 구석구석에는 하얀색 거대한 구체가 보였다.
‘알, 인가?’
그것이 거대한 알 같다고 느꼈을 때.
하얀색 알의 외부에 실금이 가해졌다.
찌지직…….
찍.
까드득-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고.
움직이는 듯한 소리.
이윽고.
투두둑.
깨진 알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아악-!”
“뭐, 뭐야!?”
“제기랄!”
불길할 정도로 새하얀 몸체를 지닌 괴물.
마치 커다란 거미같이 생겼지만.
‘평범한 거미는 절대 아니겠지!’
탄약고 안쪽 곳곳에 퍼져 있던 알들을 깨고 뛰쳐나오는 거미들.
녀석들이 문을 열었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김 중위님! 일 안 하십니까!”
“저, 전투태세!”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고 있는 김 중위의 이름을 부르자.
이제는 자동반사 같은 느낌으로 소리를 지르는 김 중위.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아군의 전투 능력이 1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아군들에게 특성 - 전투태세가 부여됩니다.]
[특성 - 전투태세]
[일정 규모 이상의 아군과 진형을 구축해 전투에 임할 시, 전투 효율이 증가하며 전투로 인한 혼란에 면역을 지닌다.]
괜히 지휘관이라는 직업이 아니다.
본인의 전투 능력은 바닥을 기지만, 광범위로 퍼지는 버프.
“적인가.”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숨어 있었나 봅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했던 병사들이었지만.
김 중위의 버프로 인해 혼란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무기를 뽑아 들고 공격에 대응하는 병사들.
“큭!”
“숫자가 상당하다!”
“……힘든 전투가 되겠어.”
괴물의 공격을 받아친 병사가 말했다.
탄약고 안에 가득 차 있던 알들에서 튀어나온 괴물들.
그 숫자는 못 해도 수십.
잘하면 백 마리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
‘추측이 맞다면, 최소한 리자드 급의 괴물.’
그게 저 숫자라니.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병사들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병사들의 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를 향해 달려든 거미 녀석들.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
상대하기 위해선 그 약점을 파악하는 게 먼저일 테니까.
‘거미…… 같이 생기긴 했다만. 전혀 다르군.’
거미와 달리 잔털 하나 없이 매끈한, 갑각 같은 몸체.
크기는 인간의 허리까지 오는 대형견만 했다.
다리의 개수도 8개가 아닌 10개.
‘아니…… 저 앞다리 두 개는 다리가 아닌 건가?’
다른 다리들과 달리.
가장 앞에 달린 두 개의 앞다리는 잘 만들어진 칼을 보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렇게.
짧은 관찰을 마치자.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하급 요리 비결, ‘불완전한 아라크론의 흰거미’ 손질법을 깨달았습니다.]
녀석의 손질법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문구가 하나.
‘불완전한?’
[완전한 수정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불완전하게 태어난 아라크론의 흰거미.]
[성체가 되면 고기가 질겨져 요리하기 힘들어지지만, 유체 상태의 개체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별미로 여겨져 많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단, 성체와 달리 유체의 살점은 많이 무른 편이기에 조리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살점이 뭉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질하는 것이 핵심으로써, 우선 식용으로 유용하지 않은 앞발을 잘라 낸 뒤-.]
거기에 이어진 ‘손질법’의 내용까지.
‘하.’
이 녀석들.
완전한 형태가 아니잖아?
탄약고를 가득 메울 정도의 거미 무리들.
못해도 리자드와 비견될 괴물들이라는 정보에, 저 숫자.
처음에는 보기만 해도 두려울 정도의 위압감이었으나.
“신 병장님!”
“약점 같은 건 없는 겁니까!?”
약점을 묻는 병사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예에?”
100마리의 괴물들.
하지만 우리 측의 각성자는 125인.
거기에 김 중위의 버프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 부대만의 전투태세.’
나는 슬쩍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최하단에 빛나고 있는 문구가 보였다.
[적용 중인 버프]
[요리 :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괴수 불고기 백반]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모든 특성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
[‘하급 물리 저항’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급 공격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급 마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포만감이 최대로 채워진 상태입니다.]
[효과의 지속 시간이 연장됩니다.]
산맥에서 내려온 뒤.
쓸 만한 식재료는 모조리 소모한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고기를 말려서 만드는 육포, 즉 전투식량.
그 외에는 고기볶음 정도.
하지만 식재료를 충분히 확보한 지금.
본격적으로 힘을 준 요리의 효과는, 고작 전투식량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고작 불량품들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그 효과는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느라 바쁘던 병사들이었으나.
“뭐야, 이 녀석들.”
“생각보다 할 만하잖아!”
이쪽이 더 강하단 것을 눈치챈 순간.
반격이 시작되었다.
“전사조! 전장으로!”
“사수조, 사격 개시!”
“사수나 마법사들은 조심해! 안쪽은 탄약고다!”
“화염이나 전기 계열들은 빠져 있어!”
강력한 버프를 온몸에 두른 군인들.
그에 맞서 탄약고 안에서 뛰쳐나오는 거미 괴물들.
그 전투 결과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
양민 학살 정도.
그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산맥에서 내려온 뒤.
이런저런 전투를 겪으며 부대원들의 레벨도 증가해 왔던바.
거기에 새로운 각성자들의 합류로 인한 시너지까지.
우리 부대.
‘생각보다 훨씬. 강한가 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