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탄약대대 (3)
두두두두…….
퍼벙…….
키야아악…….
한없이 고요하던 87탄약대대.
그 한구석에서.
갑작스러운 큰 소리와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로 인해.
스르륵…….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여왕.
그녀가 눈을 떴다.
‘샤아아아……’
새하얗고 거대한 동체가,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다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샤악……’
몸을 일으키면서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여왕.
그 몸은 군데군데가 그을려 있었으며, 상처에서는 기괴한 고름이 흘러나왔다.
군데군데가 그을리고, 베이고, 상처 입은 여왕.
고통을 억누른 채 눈을 뜬 여왕이, 감각을 퍼트리자 느껴진 것은…….
……!!
수없이 많은 아이들의 죽음.
큰 전투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지난 전투에서, 여왕은 자신의 아이들 대부분을 잃었다.
거기에, 여왕 자신까지 중상을 입어야만 했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대신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여왕의 상처 또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느껴지는 바로는.
지금의 침략자들은 직전의 적들보다 강력한 존재들인 것 같았다.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지금.
더없이 위협적인 적들이기도 했다.
‘샤아아악.’
종족의 존망이 걸린 위기.
그 지도자로서, 여왕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전력의 손실이 큰 지금, 적들을 상대하는 건 손해가 큰 행위.
-승리한다고 해도, 먹잇감이 조금 늘어날 뿐, 이득은 적다.
-위험은 최소화해야만 한다.
짧은 시간에 모든 판단을 마친 여왕은,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깨웠다.
적들을 피해 이동하기 위해.
종족의 명운이 쇠락하기 전이라면.
자존심이 걸려서라도,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으나.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종의 생존.
여왕으로서의 자존심 따위.
종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여왕이었다.
그러나.
[인간종의 무력 시설을 침공하고, 점거하라.]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안 된다.]
여왕의 뇌리에.
한 가지 상념이 박혀 들었다.
‘샤아아아아악……!’
종을 멸망으로 이끌 명령.
여왕은 강력하게 저항하려 했으나.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안 된다.]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안 된다.]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누구에게도……]
그녀의 저항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폭발적으로 밀려들어 오는 상념의 파도.
그것은 여왕의 이성을 지워 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잠시 뒤.
그녀의 뇌리에 자리 잡은 것은, 종의 멸종에 대한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순수한 분노.
그리고 적의.
‘샤아아악!!!’
여왕은 상처 입은 몸을 일으키고, 지난 전투에서 살아남은 성체의 아이들을 깨웠다.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땅.
그곳을 침범한 침략자를, 제거하기 위해.
* * *
거미 괴물들과의 전투가 마무리된 뒤.
“으아. 거미줄.”
“끄으. 먼지도 장난 아닌데요.”
우리는 돔형 탄약고의 안쪽을 제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온통 잿빛 거미줄에 뒤덮여 있어 원래의 모습을 찾기도 힘들 지경이었던 탄약고.
하지만 어떻게든 그 먼지 쌓인 거미줄을 치워 내자.
“보십쇼! 포탄들입니다!”
“역시!”
우리가 탄약대대를 방문한 최대 목표.
탄약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상태도 멀쩡한 것 같은데요?”
“그야 뭐. 거미줄 밑에 깔려 있었으니.”
“저 철물창고에 있던 녀석도 아니고. 괴물들이 탄약을 가지고 있어 봐야 뭐 하겠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정체불명의 포탄.
포병 출신 녀석들은 뭔지 대충 아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취사병 출신인 내 눈에는 그냥 포탄일 뿐이었다.
애초에 진짜 중요한 것은 다른 쪽.
“여기, 5미리 탄이다!”
“와아아아!”
우리 병사들이 사용하는 주력 화기는 K2.
그 K2의 탄약인 5.56mm 탄환을 발견한 것.
“초, 총알이다.”
“그것도 이렇게 많이.”
“크흑. 잘못하면 총검술이나 익힐 뻔했는데.”
사실 나한테는 별 감흥은 없는 일이다.
나야 가진 특성이 ‘단도 숙련’ 뿐이니.
총은 어디까지나 보조 무기일 뿐이란 말이지.
하지만 사수 계열의 각성자들에겐 많이 달랐나 보다.
거의 뭐 축제 분위기잖아?
“설마 저 정도로 좋아할 줄이야.”
“아. 신 병장님은 모르셨나 봅니다?”
“모르다니. 뭘?”
“사수 각성자분들. 그동안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슴다. 총알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이 몇 움큼씩 빠져나가서 원형탈모가 온 사람도 몇 명 있을 정도니, 할 말 다 했죠, 뭐.”
“…….”
“탈영병들한테 탄약통 얻어 오셨을 때도 사수조는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더라구요.”
그 정도였다니.
하긴.
사수들의 조장인 서수혁 상병은 꽤 무뚝뚝한 편이지만.
그런 녀석이 탄약 확보 얘기를 듣자마자 표정이 바뀌었을 정도다.
다른 녀석들은 훨씬 심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 탄약고에 있는 양만 해도 상당한데.’
탄약고 옆에는 비슷하게 생긴 이글루식 탄약고들이 거리를 두고 늘어서 있었다.
그곳들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글쎄.
모르긴 몰라도 사수들이 연사를 당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산맥의 부대를 지킬 때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수들.
녀석들의 화력이 돌아온 이상.
우리 부대의 화력은 최소한 1.5배 이상은 늘어난 셈이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지.’
사수들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총은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니까.’
탄약이 충분한 지금.
423대대에서 가져온 총기들과, 이 탄약대대에 남아있는 총기들의 양을 더하면 상당한 숫자가 될 터.
총기들은 각성 전의 생존자들에게 들려 줄 수도 있다.
각성 전의 생존자들이, 충분히 괜찮은 전력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생존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빠르게 전력을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탄약고 안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우, 우와악!”
“신 병장님, 여기 좀 와 주십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탄약고를 둘러보던 중.
한쪽 구석을 둘러보던 병사들이 갑자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하게 다가가자.
“이건.”
탄약고 한구석.
거미줄에 둘둘 말려있는 고치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
병사가 뜯어서 내용물을 열어 놓은 듯한 고치.
그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이군.”
* * *
“의준아, 결과는 어때?”
고치 안에서 발견된 인간들.
나는 급하게 우리 부대의 의무병을 불러 상태를 살폈다.
“아무래도, 탄약대대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었습니다.”
“…….”
“몇 주 전까지는 살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뭐?”
죽으면 죽은 거지.
얼마 전까지 살아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건 무슨 얘긴가 했으나.
“어디서 들은 얘긴데. 거미는 먹이를 바로 잡아먹지 않고 마취한 뒤 보존해 둔다고 하더군요.”
“굳이 죽이지 않고 보존한다니. 왜?”
“신선도를 유지하려는 거죠.”
설명을 듣자.
군인의 시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먹이를 신선한 상태로 보관한 뒤에. 새끼들에게 양질의 먹이로 제공하는 겁니다.”
탄약고 안에 널려 있던 거대한 알들.
그리고 썩지 않은 시체들.
알에서 깨어날 새끼들을 위해 식량을 마련해 둔 것이다.
“그렇게 마취된 상태라고는 해도. 아무런 영양분도 공급되지 않은 채로 한 달 가까이 있었던 셈이니까요. 생명 활동은 이미…….”
“이해했다.”
괴물에 의해 살해당한 인간들의 시체.
이런 걸 볼 때면 부대에서 처음 습격을 받은 날이 생각난다.
내 눈앞에서 죽은 후임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쯧.”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일단은 군번줄만 챙기고 물러난다. 시체들은 한곳에 모아두고.”
“예.”
“부대 탈환이 제대로 끝나고 나면.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줘야겠지.”
그 후.
우리는 구석의 고치를 몇 개 더 열어 보았다.
그러자 나온 것은 또 다른 군인들.
“뭐야, 이건.”
“몬스터 같은데요?”
그리고.
정체 모를 괴물들의 시체들이었다.
“이 괴물들도 그, 식량 대용인가 뭔가이려나요?”
“그렇겠지. 그나저나. 탄약고를 괴물들이 부화장으로 쓰고 있다니.”
“하지만 지금까지 지나쳐 온 건물들에는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왜 탄약고에만……?”
이상아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다른 곳은 모두 조용한데도 탄약고에만 알을 낳아 둔 이유.
나는 왠지 답을 알 것 같았다.
“탄약고가 이 부대 내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니까.”
현대전에 있어서, 탄약은 어쩌면 식량보다도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물자다.
그 안에 보관하는 물건들의 중요성만큼, 탄약고는 철저히 안전하게 만들어진다.
우리가 있던 423대대 같은 일반적인 부대는 낡은 창고 건물에 총알을 쌓아 두고 때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곳은 탄약 보급소잖아.”
온갖 중화기, 대포, 미사일의 탄약들을 보관하는 장소.
그 탄약들의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적이 탄약 보급소를 공격한다면 목표는 역시 탄약일 수밖에 없는 일.
침입해 왔을 때 가장 먼저 노릴 장소이기도 하단 말이지.
그렇기에 탄약고는 공중에서 봤을 때는 산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위장한다.
단단한 철문.
동굴 형태의 건물까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안전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인 장소.’
괴물들의 눈에도 비슷했겠지.
소중한 알을 외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 그렇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탄약고를 열 때마다 괴물이 튀어나올 확률이 높단 거네요?”
탄약고를 안전한 장소로 여기고 부화장으로 썼다면.
둥지로 쓰지 않을 이유도 없긴 하지.
“괜찮지 않습니까? 이번 전투는 말 그대로 일방적이었는데요.”
“이런 괴물들, 몇 마리가 늘어나도 거뜬합니다!”
병사들이 기세 좋게 외쳤다.
확실히 그 말대로.
전투가 끝났음에도 우리 측은 가벼운 경상자만 몇 명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사제와 치료사에 의해 완벽히 치료된 상태.
한껏 쫄았던 것과 달리 아군의 피해는 전무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 싸운 괴물들만 있다면 말이지.”
“예?”
내 스킬.
‘요리사의 눈’으로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 녀석들은, 유체에 불과하단 말이지?’
아기라고 하기도 뭐하다.
태어나기 전에 수정을 거치고 있던 수정란쯤의 위치인 듯하니.
‘중국에서는 알에서 태어나기 직전의 병아리로 하는 요리 같은 게 있다던가?’
실제로 ‘요리사의 눈’이 제시하는 조리법도 그와 유사했다.
병아리와 다른 점이라면.
위협을 느끼자 직접 알을 깨고 나올 정도의 흉포함.
“이 녀석들의 성체는, 위험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직 만나 보지도 않은 성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뭐, 그 말도 맞지.”
위험할 수도 있을 추측뿐.
위험한지 확인이 된 것도 아니니까.
그게 두려워서 여기서 물러날 필요도 없고.
“옆의 탄약고로 이동한다.”
“예!”
내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다음 탄약고로 향했다.
그곳 역시 비슷하게 부화장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가뿐하네.”
“한 번 싸워 본 녀석들이라. 아까보다도 쉬운 것 같슴다.”
일방적인 학살이 재현될 뿐이었다.
“헤, 헤헤. 이렇게 탄약이 많다니.”
“저 녀석들. 좋아 죽으려 하는구만.”
그렇게 확보한 탄약의 양도 상당했다.
게다가 소총용 탄약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포탄들, 잘하면 전투차량에 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흠. 나쁘지 않겠는데요.”
전쟁 병기 제조에 특화된 공병들.
녀석들은 여기서 얻은 포탄들을 이용할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생각보다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부대를 습격한 괴물들은 다른 지역보다 강하다.
그 얘기를 듣고 많이 긴장했다만.
‘이 정도라면…….’
그렇게 안일한 생각이 머리를 지나친 순간.
쿠구구구구궁.
“어?”
“뭐야. 지진인가?”
갑자기.
부대 전체에 커다란 진동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지진이라도 일어난 건가 했으나.
-샤아아아아아아아악!!!
직후에 울려 퍼진 소리가.
방금의 진동이 평범한 지진이 아니었음을 알렸다.
* * *
“뭐, 뭐야!?”
“이 소리는 대체.”
탄약대대의 중심에서 울려 퍼진 정체 모를 괴성.
그리고.
[아라크론의 마지막 여왕, 카틀라냐가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 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여왕의 분노가 전장을 뒤덮습니다!]
[‘아라크론의 흰 거미’ 종족의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아군의 전투 능력이 대폭 저하됩니다.]
익숙한 형식의 메시지.
방금 울려 퍼진 괴성이 어떤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피어……!”
423대대를 습격한 리자드 치프틴.
혹은 김 중위가 사용하는 지휘의 함성과 같은 종류의 능력.
적들의 능력을 위축시키고 아군을 강화하는 광역 버프다.
게임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니 신기할 건 없다만.
문제는.
“피어라니.”
“이, 이렇게 광범위한 피어가 말이 됩니까!?”
그 괴성을 지른 괴물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
‘소리가 크긴 했지만 가까이에서 난 건 아닌 것 같았어.’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확실함에도 불구.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의 피어라는 것.
“이거 위험하겠는데.”
슬쩍 몸을 움직이자.
이전보다 약간 무거워진 것이 느껴진다.
‘디버프가 작용하고 있는 거다.’
단순히 우리에게 적용된 디버프뿐이라면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아라크론의 흰 거미’ 종족의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문제는 저것.
이 정도로 광범위한 범위에 퍼진 피어.
‘저 버프를 받을 괴물의 숫자는 대체 얼마나 된단 거야?’
그 의문은 곧바로 해소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
피어가 퍼져나감과 동시에 들려오는 진동 소리.
“바로 옆이다!”
진동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옆쪽이었다.
우리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다른 탄약고.
아니.
“괴물 녀석들의 부화장에서 난 소리군.”
“그러면 방금 그 진동은…….”
“알을 깨고 나오고 있다는 거겠지.”
이윽고.
쿵! 쿵!
탄약고 안에서부터 들려 오는 커다란 소리.
탄약고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주변에 늘어선 상당한 숫자의 탄약고.
그 안에 있던 괴물들이 모두 알을 깨고 나온 뒤.
문을 부수고 뛰쳐나오려 하고 있다는 거다.
“아니. 그야 몇 마리 늘어나도 거뜬할 거라곤 했습니다만!”
“몇 마리 정도가 아니라 몇십 배는 되겠어.‘
아무리 우리 부대가 강해졌다고 해도 그렇지.
그 정도로 늘어나면, 조금 많이 곤란하다.
“김 중위님! 뭐 하십니까!”
“아, 응! 전원 전투 태세!”
[지휘의 외침이 울려 퍼집니다.]
[여왕의 분노를 일부 무마합니다. 능력치 저하치가 감소됩니다.]
이제는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버프가 나오는 버프 자판기가 되어 버린 김 중위.
그러나 그 버프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능력치를 올리기는커녕. 저하된 능력치를 깎는 정도가 전부라.”
“미, 미안하다.”
“아뇨. 김 중위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방금 울려 퍼진 피어가 그만큼 강력하단 뜻.
이 정도라면 김 중위만으로 부족하다.
“전광일!”
“예, 상병 전광일!”
전사조를 지휘하던 전사조장.
광일이를 불렀다.
“김 중위론 모자랄 것 같다! 광일이, 너도 해!”
“예!”
뭘 하라는 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명령을 받은 광일이 녀석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크허어어어어어엉!”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광기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아군에게 최하급 혼란이 적용됩니다.]
[지휘의 외침이 최하급 혼란을 무마합니다.]
[아군에게 중급 능력치 상승이 적용됩니다.]
[‘여왕의 분노’를 일부 무마합니다.]
[‘여왕의 분노’의 능력치 저하 효과가 사라집니다.]
광일이 녀석은 치프틴과의 전투에서 피어 계열의 스킬을 얻었다.
다만.
애초에 버퍼 계열인 김 중위나 나와는 다르다.
‘광일이 녀석은 전사직이니까.’
그럼에도 버프 계열의 스킬이 있기는 하지만.
녀석의 피어는 지속 시간도 길지 않고, 횟수 제한도 주에 3회 정도.
게다가, 단독으로 사용하면 최하급 혼란을 준다는 디버프까지 엮여 있다.
아낄 수 있으면 가능한 한 아껴야 하는 능력이다 보니 지금까지 쓴 적은 없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
‘디버프는 모두 제거했다. 당장은 이 정도가 최선이야.’
그때.
쿵…… 쿵…….
쿠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로 옆의 탄약고 문이 부서져 나갔다.
그 안에서 거미 괴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전장으로!”
“군단의 승리를 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부대원들이 거미들과 격돌했다.
광일이와 김 중위의 피어 덕에 우리 측의 능력치 저하는 사라졌다만.
추가적인 버프는 나의 전투식량을 통한 버프밖에 없는 수준.
엄청난 전투력 감소.
반대로 적들은 버프를 받아 전투력이 향상된 상태.
“쯧.”
버프를 제외한 전력 자체는 우리 측이 앞선다.
당장 튀어나온 괴물들 정도라면 문제는 없겠지.
쿵…….
쿵…….
하지만 다른 탄약고 건물들에서도 괴물들이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이 부대 곳곳에 퍼져 있는 괴물들이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지 않을까?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괴물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그렇다면.
나는 결심을 내리고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원, 최대한 천천히 물러나면서 차량에 탑승한다!”
“신 병장님!?”
“차량에 탑승하라니, 갑자기 왜……!”
전투 중인 병사들이 의아한 듯 물었다.
우리 측의 버프는 미비하고 적측의 버프는 많다.
더군다나 수적으로도 곧 열세가 될 게 분명한 상황.
그렇다면.
“상황을 바꿔야지 않겠냐.”
분명 우리 쪽이 여유롭던 전투.
하지만 한 번에 뒤집혀 버린 상황.
이 사달을 낸 장본인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라크론의 마지막 여왕, 카틀라냐가 분노를 표출합니다.]
저, 마지막 여왕이라는 이름의 괴물.
피어를 퍼트리며 우리를 사냥하려는 장본인.
그녀의 분노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으니.
그렇다면.
“대장부터 부수는 게 정석이지.”
여왕을.
사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