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탄약대대 (4)
괴물들을 떨쳐 낸 뒤 출발한 차량들이, 부대를 가로지른다.
목적지는 적의 대장.
‘여왕’이 머무르고 있는 곳.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꽤 쉽게 알 수 있었다.
-샤아아아악!!!
[여왕의 분노가 울려 퍼집니다.]
계속해서 피어를 뿜어내는 괴성.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밟아!”
“예!”
그 소리의 진원지에, 여왕이라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두두두두…….
“저기, 반대쪽에서 거미들이 접근합니다!”
소리의 진원지로 향하는 길.
우리가 온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거미 괴물들이 우리를 공격해 왔다.
‘탄약대대는 넓은 만큼 탄약고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니까.’
다른 탄약고.
아니.
부화장에 있던 개체들이 뛰쳐나와 우리를 사냥하러 오는 것이겠지.
다행히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괴물들은 밀집해 있지는 않았다.
덕분에.
“쳐 버려!”
콰지지지지직.
-키에에에엑!!!
차량에 달린 커다란 뿔과 가시, 창날들.
접근해 오는 괴물들 대부분이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날들에 갈려 나갔다.
“하, 하핫! 어떻습니까! 전투차량의 힘이!”
“잘했어, 이 자식들아!”
공병 각성자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위력이었고.
‘자재 확보를 우선시 한 건 최고의 판단이였다.’
방호력은 물론.
전투력까지 가미된 전투차량.
소수의 괴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갈아버리며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샤아아아아아아아악!!!
들려오는 괴성의 크기가.
아까보다 커진 것이 느껴졌다.
“저쪽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기도 탄약고 아냐?”
머지않아.
우리는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어, 어어?”
“그. 탄약고는 맞는 것 같은데.”
다른 탄약고들과 마찬가지로, 산에 구멍을 뚫은 터널이나 굴처럼 생긴 탄약고.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엄청 크군…….”
부화장으로 사용되고 있던 이글루형 탄약고들.
그 자체도 일반적인 부대의 탄약고에 비하면 턱없이 넓었다만.
눈앞에 보이는 탄약고의 문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산 하나를 아예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크기.
“우리 부대의 탄약을 보급받던 곳도 저기야.”
“김 중위님?”
“탄약 보급대대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탄약고지. 괴물들의 대장이 여기 있었을 줄이야.”
저 정도 규모의 탄약고라면.
평범한 포탄이나 탄약을 보관하고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미사일 같은 것도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규모.
탄약고의 거대한 문은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안쪽에.
거대하고 새하얀 거미의 모습이 보였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지간한 대형 트럭만 한 덩치의 흰 거미.
그런 거미가 침을 튀기며 괴성을 지르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보였다.
“저게 여왕.”
여왕의 피어는 적을 약화시키고 아군을 강화시킨다.
여기서 적은 우리고 아군은 거미들.
저 피어가 울려 퍼지기 전에는 전투 자체가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게 돌아갔다.
반대로 말하면.
“여왕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양만 많은 오합지졸이란 뜻이다!”
숫자가 많기는 하다만.
버퍼만 제거한다면 어떻게든 대처 가능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다른 탄약고의 부화장에 있던 새끼 괴물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상황.
속전속결로 여왕의 목을 베어 넘길 생각이었는데.
“여왕만이 아니군요.”
“여왕씩이나 돼서 혼자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 제기랄.”
끼이이익.
키이익…….
대형 트럭만 한 크기의 여왕.
그에 비하면 작지만, 승합차 정도 크기는 되는 거대한 괴물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스무 마리 정도 돼 보이는 커다란 괴물들.
그 모습에 시선을 가져가자.
[‘하급 요리의 깨달음 - 아라크론의 흰거미 손질법’을 깨닫습니다.]
스킬이 발동했다.
[아라크론의 날카롭고 단단한 앞발은 훌륭한 대장장이 재료로 손꼽히지만, 특별한 종족이 아닌 한 식재료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우선 이 앞발을 손질하는 게 핵심으로…….]
[피부 껍질 또한 단단한 편이지만, 앞발을 제외한 신체 부위의 경우 열을 가하면 껍질이 물러져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대신 살점도 많이 물러지니 이 점에 주의할 것.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살점을 뭉개지 않는 선에서 섬세하게 손질할 필요가…….]
“이름부터가 다르군.”
지금까지 우리가 싸웠던 거미들의 이름에는 ‘불완전한’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제대로 태어나기도 전이였던 유체들.
눈앞의 거대한 거미들은 그것들과는 달랐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뒤, 성장까지 거친 성체.’
불완전한 유체.
온전한 성체.
지금까지와는 달리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속전속결로 끝낸다.”
다른 부화장에서 부화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새끼들.
녀석들이 합류하는 순간 끝장인 셈이니까.
“신 병장님…… 이거, 가능하겠습니까?”
칼을 꺼내 든 뒤.
전투식량을 대충 씹어 삼키며 전투 준비를 하고 있자니.
광일이 녀석이 불안한 듯 물어왔다.
녀석에게 해 줄 말이라 봐야.
하나밖에 없다.
“벌써 잊었냐?”
되냐.
안 되냐.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안 되도 되게 해야지.”
군대란 게 그런 거잖냐.
아니, 지금은 비단 군대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군요.”
이 세상 자체가.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거든.
“우오오오!!! 전장으로! 영광스러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늘 저녁은 저 녀석들로 먹는다!”
“끼에에에에에엑!!!”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망설임을 떨쳐 낸 광일이 녀석을 시작으로.
전사조가 돌진하고, 후열의 각성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전투의 개시였다.
* * *
“최대한 빨리 여왕을 제거한다!”
“예!”
각성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 때.
공병들은 전투차량의 조종석에 앉았다.
“돌격!”
“하하핫! 이럴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 저런 커다란 괴물과 싸울 때를 대비한 설계도 해 놨다, 이 말입니다!”
부우우우웅…….
공병들에 의해 개조된 전투차량.
그 앞에 달린 충각 같은 거대한 뿔이 여왕을 향해 쇄도했다.
분명 직격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줄 공격이었으나.
-샤아아아아악!!!
쿵!
“큭……!”
“아. 제기랄, 엔진도 개조를 했어야 했는데!”
한두 마리의 성체들이 달라붙어 움직임을 저지하자.
바퀴만 헛돌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전투차량.
‘강화했다고 해도 엔진은 기존 차량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힘 싸움에서 밀리면 효과가 없다는 것.
공병들의 수준이 올라간다면 엔진의 개조도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아닌 모양.
성체 몇 마리가 전투차량들을 막기 위해 빠진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았다.
“젠장, 좀 비켜 이 자식들아!”
“저 녀석들. 여왕을 지키는 데 혈안입니다!”
녀석들의 전력 핵심은 여왕의 버프.
적들도 그것을 아는 것인지.
여왕은 뒤에서 괴성만을 지를 뿐.
앞으로는 나서지 않았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이 중얼거렸다.
“괴물 주제에 포지션까지 잡기냐?”
게임에서 흔히 잡는 포지션.
버퍼를 뒤에 두고, 앞에는 탱커들이 막는 모양새.
‘지능이 높다는 건가.’
저렇게 진형을 짤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디버프 요리를 던진다고 냅다 주워 먹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 쪽도 어떻게든 여왕에게 접근하기 위해 무리를 해 보았으나.
챙!
-키에에엑!
“크읍……!”
성체 괴물의 날카로운 앞발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는 전투.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야.
전투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뭐든 좋으니.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히 강력한 괴물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순식간에 제거하기엔…….
‘어?’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방금 나를 가로막은 괴물 녀석!”
확실히 강력한 몬스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다리가 하나, 모자랐던 것 같은데……?”
“예?”
“……맞습니다! 저 녀석만 다리가 하나 없어요!”
전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보니, 틀림없었다.
괴물 중 한 마리는, 다른 괴물들에 비해 다리 하나가 없었다.
‘아니, 녀석뿐만이 아니야.’
다리가 없는 수준의 괴물은 녀석뿐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
새하얀 몸체에 묘하게 피멍이 들어 있는 녀석.
묘하게 앞발의 칼날을 절뚝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이 녀석들.”
“다친 상태인 건가……?”
어디서 맞고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다리 한 짝이 없는 녀석이 그중 가장 큰 부상을 입은 듯하니.
약점이 있다면.
파고들지 않을 수가 없잖아?
“저 녀석! 다리 한 짝이 없는 녀석이 구멍이다! 저쪽으로 화력 집중해!”
“““예!”””
공략할 부분을 찾았다는 생각에, 희망이 조금 차오르던 순간.
“신 병장님! 뒤쪽에……!”
후열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던 병사 중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반응해 뒤를 보니.
‘제기랄.’
저 멀리서, 다른 탄약고에서 부화한 거미 떼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은 거리가 꽤 있는 편이지만.
머지않아 도착할 터.
양쪽에서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전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음의 위기 속.
머리가 미친 듯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도주? 아니. 전투차량이 아무리 튼튼해도, 한 대라도 전복당하는 순간 대참사야.’
‘차라리 탄약고 안쪽으로 파고들어야 하나? 양쪽에서 포위당하진 않을 테니……. 포위당하지 않으면 뭐? 도주로도 사라지는 셈인데 저 숫자를 어떻게 이기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여왕의 피어를 들은 순간 도주를 선택해야 했을지도.
‘지금이라도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면 몇 명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후퇴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탄약고 안쪽에서 무언가 보였다.
‘미사일……?’
커다란 미사일.
그리고 포탄들.
“……민재 형.”
“후퇴냐?”
“아니.”
민재 형도 전황을 보고 생각하는 게 있었는지.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화염 마법사들, 전부 불러와.”
“뭐……?”
민재 형은 순간 ‘무슨 소리냐’ 싶은 표정이었으나.
“아니, 네가 하는 일이니 생각이 있는 거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곧.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옮겼다.
“부르셨습니까!”
“마법사 조, 화염 계열 총원 7인. 집합 완료했습니다!”
격전의 와중.
나와 화염 계열의 마법사들만이 잠시 뒤로 빠져나왔다.
부대에서부터 함께한 화염 마법사들.
거기에, 최근에 각성을 마친 생존자 출신.
박씨 할아버지와 친했던 자매의 동생 쪽까지.
화염 마법으로 인한 재를 얼굴에 묻힌 녀석들이 급한 숨을 내쉬며 집합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내가 유일하게 신경 쓰였던 부분을 물었다.
“하나만 묻자.”
“예! 뭐든지 물어보십쇼!”
“너희들. 마법을 던지고 조금 나중에 폭발하도록 하는 건 가능하냐?”
이게 안 된다면 조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예? 아. 폭발에 딜레이를 주는 것 말씀이십니까?”
“조금 신경 써야 하긴 합니다만. 그 정도라면야.”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마저 가능하다고 하면.
문제는 없다.
“좋아.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충성. 뭐든지 맡겨 주십쇼.”
“저 안쪽에 거미줄들이 튀어나와 있는 부분들 보이지?”
손가락을 가리키자.
병사들의 시선이 탄약고 안쪽을 향했다.
거미줄로 덮인 거대한 탄약고.
거미줄은 바닥에만 쳐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튀어나와 있는 물건들도 덮고 있었다.
“예. 보입니다.”
“저렇게 튀어나와 있는 거 보면. 아마 탄약고의 포탄들이 쌓여 있던 곳 아니겠습니까?”
“잘 보이면 됐어.”
녀석들이 해 줘야 할 일은 간단했다.
“아까 내가 말한. 그 딜레이 마법? 그걸 저 부분들을 노려서 쏴.”
“괴물들이 아니라. 탄약고 안쪽에 말입니까?”
“미안하지만 설명할 시간은 없다. 가급적 빨리, 강한 녀석으로. 부탁하마.”
“……뭘 하시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신 병장님 하시는 일이니까. 이유가 있겠죠. 알겠습니다!”
내 부탁을 들은 마법사들은 즉각 눈을 감고 무언가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준비가 시작한 것을 확인한 뒤.
이번에는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전열로 복귀했다.
“신 병장님!?”
“이쪽은 너무 위험합니다! 신 병장님은 전투직이 아니시니, 외곽에서 싸우시는 게……!”
내가 향한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격전지.
우리 길드에서도 고레벨의 전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생산계열인 내가 있으면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지만.
녀석이라면 여기 있을 테니까.
“광일아! 전광일!”
“크크큭. 즐겁구나! 나를 더 즐겁게 해 봐라, 벌레 같…….”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미친놈처럼 성체급 괴물 한 마리를 혼자서 쥐어패고 있던 광일이 녀석.
녀석의 머리를 살짝 후려쳤다.
“크륵…… 아. 신 병장님?”
“그래, 임마.”
“말로 하시지. 왜 머리를 때리고 그러십니까.”
“…….”
한참 즐기고 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일은 해 줘야지.
“아무튼.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할 일이 있다.”
“예?”
부대에서 가장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모인 곳.
이 녀석들이어야만 가능한 일.
“지금부터는 전투 방식을 조금 바꾼다.”
“뭘 하시려고…… 아니. 생각이 있으시겠죠. 어떤 식으로 바꾸면 되겠습니까.”
“여왕을 노리는 건 무리야. 괴물들을 탄약고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여왕을 노리는 게 아니라, 녀석들을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잠깐 고민하던 녀석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오히려 지금 전투보다는 이게 더 쉽겠군요. 그게 다입니까?”
“하나 더. 녀석들을 안쪽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뒤에는. 탄약고 문을 닫아 줘야겠다.”
“예에?”
탄약고 안에 있는 것은.
여왕을 비롯한, ‘아라크론’이라는 괴물들.
그리고.
“탄약고를 폭발시킬 거다.”
엄청난 양의 폭발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