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51화 (51/227)

51화 탄약대대 (5)

“탄약고를 폭발시킬 거다.”

광일이 녀석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으나.

녀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탄약고 문을 닫는다……. 닫는 거 자체는 전사조 중 두세 명만으로도 가능할 겁니다.”

“문제는 다른 쪽이겠지.”

“예. 우리가 문을 닫는데 저 녀석들이 얌전히 그러십쇼 하고 구경할 리도 없으니까요.”

저항이 꽤 격렬할 터.

“……많이 힘들려나?”

“그렇긴 합니다만.”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턱을 매만지는 녀석은.

이윽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끼. 이제 잘 아네.”

“전사조! 작전 변경이다!”

전사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대원이, 한일이!”

“예!”

“이한일 여기 있습니다!

“두 명은 문 쪽으로 붙는다. 한쪽씩 붙어서 문을 닫아!”

“예!”

“나머지는 괴물을 안쪽으로 몰아넣는다. 실시!”

“실시!!!”

짧은 명령이 끝나자.

전사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여왕을 지키는 괴물을 처치하고 어떻게든 여왕에게 도달하려던 방식에서.

처치고 뭐고 일단 녀석들을 탄약고 안쪽으로 밀어 넣는 쪽으로.

몰려 있던 병사들이 산개했다.

전사 계열 각성자들의 진형이 갖춰졌을 때쯤.

“신 병장님! 마법, 준비됐습니다! 딜레이는 3분!”

마법사들의 영창이 끝났다.

“바로 쏴!”

화염 마법사들의 마법이, 활짝 열린 탄약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본인들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판단한 괴물들은 그 마법들을 쳐 내지도 않았다.

이윽고, 탄약고 안의 각종 포탄들에 마치 점착 폭탄처럼 달라붙는 마법들.

‘탄약 대대의 부지가 넓은 이유는…… 유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폭발이 발생했을 때 근처의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급적 건물 간의 거리를 멀게 하고, 이로 인해 부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본래라면 탄약과 탄약 간의 유폭을 막기 위해 탄약고 내에서도 거리를 둔다.

어지간한 폭발로는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안쪽은 거미줄로 뒤덮인 상태니까.’

작은 폭발 하나가 다른 곳에 도달하기는 더없이 쉬울 터.

그렇게 탄약고가 폭발했을 때 그 피해는…….

주변을 초토화하고도 남겠지.

‘문이 열린 상태로 그런 폭발이 일어나면 아군도 반 전멸이야.’

그렇기에.

“빨리 닫아!”

끼이이익……

거대한 철문.

그 양쪽에 전사들이 달라붙어 문을 밀기 시작했다.

-샤아악?

아군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안쪽에서 여왕을 지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괴물들.

녀석들도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키에에에엑!

“저 새끼들, 빠져나오려고 한다!”

“절대 못 나오게 해!”

탄약고 밖으로 나오려고 날뛰는 괴물들이었으나.

콰과가가가강.

투다다다다다…….

전사들이 몸으로 밀어가며 괴물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후열의 사수들과 마법사들이 화력을 투사.

빠져나오려는 괴물들을 오히려 탄약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괴물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것은.

“밀리면 안 된다!”

“좀 더 힘줘!”

단순한 힘 싸움.

안쪽의 괴물들 역시 밖으로 빠져나오고자 발악하고 있었으나.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모를까.

-끼에에엑……!

-끄륵……!

상처 입은 괴물들.

우리 부대의 화력 투사를 버텨 낼 정도는 아니었다.

점점 더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녀석들.

“거의 다 닫았습니다!”

“잠금 장치만 걸면…….”

“잘했어!”

됐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이제 잠금장치만 걸고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한.

그 순간.

-끼에에에에에에엑!

더없이 시끄러운 괴성과 함께.

캉!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두 개의 칼날이.

닫히던 문 사이로 튀어나왔다.

“큭!”

문 근처에 몰려 있던 병사들이 그 칼날에 밀려 날아갔다.

어지간한 사람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칼날의 모습을 한 앞발.

불완전했던 유체들은 물론.

성체 괴물의 앞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 칼날의 주인은.

“여왕.”

뒤에서 버프만 뿌리며 몸을 지키던 여왕.

녀석이 위기 상황에서 드디어 전면에 나선 것.

그리고 그 힘은.

괜히 왕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끄으으윽…….”

“이 녀석, 무슨 힘이!”

거의 다 닫힌 문이었으나.

여왕이 두 개의 앞발을 문 사이에 끼워 넣자 더 이상 닫히지 않는 문.

아니, 오히려.

‘조금씩 열리고 있다.’

엄청난 완력.

모든 전사가 문을 닫는데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은 닫히기는커녕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제기랄, 화력 투사해!”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과 사수들의 화력이 여왕의 몸을 두들겼지만.

단단한 칼날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듯 굳건했다.

난 녀석들의 손질법을 떠올렸다.

‘이 괴물들의 앞발은 엄청나게 튼튼하다고 했지.’

적을 공격하는 칼날이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방패이기도 한 셈.

폭발까지 남은 여유가 없었다.

의도한 대로 폭발할 수만 있다면 여왕도 멀쩡하진 못하겠지만.

저 문을 닫지 못한다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한 나는.

허리춤의 사시미칼을 뽑아 들고 뒤를 보며 소리쳤다.

“화염 마법사들! 마법 장전해!”

“예! 여왕한테 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걸로 죽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화력이 모자랄 가능성이 크니.

“여기에 쏜다.”

“예?”

“그건…….”

마법사들이 내 명령에 의아함을 표했다.

“식칼인데요?”

“잘 봤네. 내 칼에 쏘라고.”

“……잘못 들었습니다?”

“내 칼. 최대한 뜨겁게 달궈 줘.”

목표는 괴물이 아니다.

내가 들고 있는 식칼.

그걸 화염 마법으로 달궈야 한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 하지만. 칼을 뜨겁게 달구면 쥐고 있는 신 병장님 손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강하게 말하자.

화염 마법사들은 망설이면서도 내 칼을 향해 불길을 방사했다.

이윽고.

마력이 담긴 기름에 불이 붙어 크게 타오르고.

그 열기로 인해, 칼날 또한 점점 붉게 물들어 갔다.

‘……대장장이 유튜브 같은 데서 본 비주얼이구만.’

후임 녀석에게 받은 뒤.

지금까지 애용해온 기다란 사시미칼.

그 도신이 새빨갛게 변해 간다.

손잡이 너머로도 그 열기가 절절히 느껴질 정도.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이 녹아내릴 열기겠지.

하지만.

‘버틸 만해.’

[특성 목록]

[하급 화염 친화]

요리사는.

열에 강하니까.

“후열은 전부 후퇴해라.”

“예!? 하지만.”

“탄약고가 터지면 주변 일대는 초토화될 거야. 여기 있으면 전멸이니까. 어서.”

망설이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후열의 병사들이 전투차량을 타고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열로 인해 새빨갛게 변한 칼을 꽉 쥔 채.

문을 붙잡고 있는 여왕.

그 두 칼날을 향해 다가갔다.

“괜히 무기로 쓰는 부위가 아니란 건가.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는구만.”

실제로 마법사와 사수들의 화력 투사도 막아 내고 있으니.

평범한 칼질로는 피해를 입히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옥체에 상처가 꽤 많으시네.”

다른 성체 괴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왕의 몸에도 몇 군데 상처 난 부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상처 중 몇 가지는.

칼날과 같은 앞발.

그 관절부에도 존재했다.

어느 정도 아물어가는 듯한 상처.

덕분에 총알 정도는 버텨 낸 듯하지만.

이 녀석들의 ‘손질법’은 잘 알고 있다.

[피부 껍질 또한 단단한 편이지만, 열을 가하면 껍질이 물러져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뜨겁게 달궈진 사시미칼.

그 열기로 인해 주변 공기가 일렁거릴 정도의 칼날을.

상처 난 관절 부위를 향해 휘둘렀다.

푸욱!!!

찌르고.

서걱.

베고.

꽈직!

끊었다.

그러자.

-크라아아아악!

쿠웅-

‘성공이다.’

거대한 칼날이 잘려 나간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구는 칼날.

팔이 여덟 개나 된다고 한들.

한쪽 팔이 날아간 고통이다.

어지간히 참기 힘들었는지.

반쯤 문밖으로 몸을 내밀려 하던 여왕의 몸이 주춤하며 뒤로 빠졌다.

“지금이다! 닫아!”

쿵!

이제는 남은 것은 나머지 한쪽 칼날뿐.

문을 닫게 두지 않겠다는 듯 문 사이에 끼어 있다만.

“이제 슬슬, 좀!”

앞발과 몸통의 연결 부위.

그곳을 향해 열기가 일렁이는 칼을 휘두르자.

“들어가라!”

서걱-

나머지 한쪽의 날카로운 앞발마저 잘려 나갔다.

쿵!!!

그제야.

거대한 철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나는 급히 뒤를 돌아보고 외쳤다.

“다들 전투 식량 꺼내고! 전투차량 뒤로 후퇴!”

괴물들을 안쪽에 가둬 두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도망갈 일만 남은 상황.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육포]

[일시적으로,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열화)’을 획득합니다.]

“다시는 안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제기랄.”

탄약대대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탄약고.

아무리 두꺼운 철문이 있다고 한들.

그 폭발의 위력은, 철문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탄약고 자체를 터트리기에 충분할 터.

“빨리 튀어!”

“예, 예!”

나 역시 최대한 빠르게 탄약고에서 멀어지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발을 박찼다.

어지간한 차량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속도로 탄약고에서 멀어지면서, 주변을 살폈다.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것 같네.’

다행히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후열 각성자들은 전투차량을 타고 대피했다.

전투차량의 방호력이라면, 폭발로 인한 파편 정도는 막아 줄 테지.

나와 함께 문을 닫던 전사조 녀석들 역시 괜찮을 것 같았다.

괜히 전사직이 아니란 걸까.

안 그래도 전력 질주만으로 차량에 버금가는 속도를 내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마수의 특성까지 얻었으니까.

이미 나보다도 훨씬 더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 녀석들.

‘뒤쳐져 있는 녀석들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자.

…….

아무도 없었다.

‘……어?’

내 뒤에.

아무도 없다.

‘이거 혹시.’

내가 가장 뒤에 있다는 뜻인가?

전투직인 전사조 녀석들과는 달리.

요리사인 내 신체 능력은, 초인이라기엔 약간 모자람이 있는 수준이다.

아무리 특성을 얻었다고 한들.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 한들.

가장 늦게 도망치는 게 내가 될 것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즉.

‘나만 X된 거냐?’

폭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대로 망했단 걸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신 병장님! 빨리 이쪽으로 오십쇼!”

“이 미친 새끼들이! 신 병장님 안 챙기냐!”

앞서 달리던 전사조 녀석들이.

저 멀리서, 내가 어마어마하게 뒤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콰가가가강!!!!!!!!!

등 뒤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온다.

‘미친……!’

거대한 탄약고.

그 안에 있을, 엄청난 양의 탄약들.

시작은 작은 폭발이었다.

본래라면 유폭이 일어난다고 한들 다른 탄약들에는 영향을 주지 못해야 정상이겠지만.

안쪽에 쌓인 거미줄들이 폭발의 도화선이 되어 준 결과.

다른 탄약과 포탄들의 뇌관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 엄청난 양의 폭발물들이 순식간에 터진다는 것은 곧.

탄약고 자체를 폭발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큰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렇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소리가 들린 뒤에 찾아온 것은.

등 뒤를 뒤덮는-.

‘크으으으윽……!”

미칠 듯이 뜨거운.

엄청난 규모의 열기.

이미 탄약고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망쳐 왔음에도 불구.

충분히 멀어지지 못한 나는, 그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하급 화염 친화]

[요리란, 그 기원에서부터 이미 불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식당 요리사가 뜨거운 쇠 냄비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듯이.]

[뜨거운 불길 앞에서, 강철의 팬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요리사의 숙명!]

[강철 가죽 지휘 전투복]

[강철 리자드 일족의 가죽으로 만든 코트. 높은 물리 저항력, 일반적 수준의 속성 저항력을 제공합니다.]

등 뒤의 살점이 녹아내리는 게 느껴지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열기를 버틴 채.

“커어…….”

폭발로 인한 반동을 추진력 삼아.

더 빠르게 몸을 내던졌다.

폭발한 탄약고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마른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이성을 잃은 채 한참을 내달리자.

“제기랄, 신 병장님!”

전사들이 손을 뻗어 내 몸을 엄폐물 뒤로 끌어당겼다.

등 뒤의 살점이 녹아내린 것만 같은 고통.

‘제기랄.’

너무 아프다.

진짜 뒈질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어.’

가쁜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폭발로 인해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폭발은, 일단 멈췄나.”

“빨리 신 병장님을 의무병 쪽으로 데려가야 한다! 서둘러!”

오늘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큭큭.’

전광일 상병의 등에 업힌 채 쓰러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제와 치료사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군 생활 개빡세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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